은혜의 보좌앞으로 나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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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1. 서론
우리는 계속해서 히브리서에서 예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설명들을 듣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이야기 하는 것은 히브리서는 설교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약성경 곳곳에서 예수님이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이나 공관복음은 예수님의 행적들을 이야기 함으로 예수님의 출생, 기적, 여러 사건들을 소개함으로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반면에 히브리서는 어떻습니까? 이 본문이 설교문이기 때문에… 계속 구약성경을 인용해 가면서 이 예수님이 구약성경에 말씀하셨던 그 메시야이시다.. 예수님의 행동과 사역과 여러 역사적 사건들은 바로 예수님이 이러한 분임을 증거하기 위해서 나타났던 것이다.. 라고 설교형식으로 풀어서 해석하면서 우리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을 대제사장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그 대제시장은 하나님의 아들 이라고 말합니다. 이 본문안에는 이미 전제되어 있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이시긴 한데….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러니 지금까지의 대제사장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입니다… 지금까지의 대제사장들보다 월등히 우월하시고 더 크신 대제사장이다! 하는 것을 말해줍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증명해 내기 위해서 많은 노력들을 합니다.. 그것을 변증이라고 이야기 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과학적으로, 때로는 철학적으로, 체험적으로… 하나님을 증명하고 예수를 살아계신 분으로 증명하려는 시도들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사실 성경만을 가지고 그 모든 것을 과학적, 철학적으로 증명해 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은 거의 불가능 할 것입니다.. 모든 과학적 질문에 대답하고… 모든 철학적 문제들에 답을 내는 것이 성경의 목적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질문에 대한 모든 답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를 믿고, 또 예수를 증명하고, 예수가 어떠한 분인가 하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과학적이거나, 철학적인 접근이 아니라 순전히 믿음의 측면이라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4장 14절에서 설교자는 성도들에게 예수는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되시고,,,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우리가 그것을 믿는다!! 그 믿음을 지켜라 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대제사장되심, 하나님의 아들되심은 믿음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의 행적, 예수님의 사역을 보고 누구는 그것을 선생, 훌륭한 사람 정도로 치부할 수 있지만 그사역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다!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이 되신다 까지 나아가는 것은 믿음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설교자는 이 믿음을 굳게 붙잡고 지켜야 한다 라는 것을 처음에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신다는 것을 믿을 때 성도의 삶과 행동에 무엇이 달라지게 됩니까?
신기하게도.. 오늘 다룰 말씀을 금요일에 우리가 마태복음에서 배웠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주기도문을 다루면서 강사 목사님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해석해줬습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다… 초월성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전지하시고 우리를 위한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계신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초월성만 있습니다. 우리와 멀리 계시고 우리와 떨어져 계십니다.. 그러면 그 능력과 권세와 전능함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곘습니까? 우리와 아무런 관계성이 없는 능력들 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기도문에서 하나님은 하늘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라고 또한 말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내재성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 능력의 하나님이 우리를 초월하여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계시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그 능력, 힘, 권세의 유익을 우리가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이야기를 히브리서에서는 예수님이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다.. 무슨말입니까? 히브리서 2장에서도 살펴봤지만 예수님이 우리와 같아 지셨다.. 우리와 같이 낮아지셨다.. 우리와 함께 계신다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대제사장은 하늘에 계신 우리를 초월해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와 똑 같은 상황에서 우리와 똑 같은 시험을 받으시며 우리를 이해하시고 아시는 분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우리와 상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도 이야기 했지만 예수님의 초월성 “크심” 만 있다면 예수님의 우리와 너무 먼 분이 될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우리와 관계가 있으려면 우리중 하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백성중 하나여야 했다는것입니다.
오늘날도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를 하는데… 선거철만 되면 출마자들이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국밥집에 가서 국밥도 먹고, 떡볶이도 먹고, 버스도 타고 뭐 그런걸 하는 것이죠…
왜 그렇습니까? 이게 우리와 같은 삶을 살지 않았던 사람이 우리를 대표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프랑스에서 프랑스 음식만 먹던 사람이 우리 나라에 와서 한식을 대표하는 대표자가 될 수 있는가? 뭐 그런것이죠….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계속 하늘에만 머물러 계셨다면 그 분이 어떻게 우리 인간을 대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머물러 계신 분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존재들을 대신하고 이해하고 대표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크고 위대하신 제사장으로서 연약한 자를 동정하신다고 하십니까?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우리말로 번역된 이 연약하다 라는 단어는 그리스어인 “아스테네이아”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합니다. 이 아스테네이아 라는 단어가 주로 사용되는 것은 “힘, 기운, 능력”의 반댓말로 주로 사용됩니다. 즉, 주로 신체적인 허약함 또는 질병, 그리고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문제들, 어떤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상태, 경제적 궁핍, 도덕적인 약점, 부도덕성등 모든 그러한 부족함들… 그런 상황을 설명할 때 이 아스테네이아 라는 단어가 주로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56 아무 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지방이나 도시나 마을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께 그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 [1]
[1]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 전자책.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569: 대한성서공회, 1998), 막 6:56.
마가복음 6장 56절에서는 신체적인 질병 “병자”를 지칭 하는데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23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1]
[1]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 전자책.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569: 대한성서공회, 1998), 딤전 5:23.
디모데전서에서도 병나는 것을 설명할떄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1]
[1]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 전자책.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569: 대한성서공회, 1998), 막 14:38.
19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1]
[1]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 전자책.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569: 대한성서공회, 1998), 막 4:19.
또한 마가복음 14장 38절과 4장 19절에서는 마음의 약함.. 심리적 약함을 설명할때도 사용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약함을 동정하신다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의 육체적 질병, 여러가지 물질이나 유혹들에 대한 어려움들, 믿음의 연약함으로 인한 죄에 대한 것들… 그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가 우리와 상관없이 초월해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와 같이 낮아지신 분이기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에는 대제사장이 갖추어야 할 자격이 나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혈통입니다. 레위지파 중에서도 아론 집안 출신이어야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장애나 질병이 없는 건강한 신체를 가져야 했으며… 여러가지 제사 규정, 율법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기억력 또한 좋아햐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갖추었더라도 죄인에 대해서 공감할 줄 모르고 그들의 연약함을 도정하지 못한다면 아마 그 제사장은 제대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우리의 대제사장 즉,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해를 위한 중재자로서 앞에 계신다는 것은 죄를 범한 우리에게 동정과 긍휼의 눈으로 바라 보시며.. 우리의 처지와 상황을 이해하신 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자기가 그 죄인인것처럼, 그렇게 깊게 공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예수께서 이렇게 우리에게 깊게 공감하시는 이유는 “15절에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설교자가 뭐라고 이 설교를 마무리 합니까? 16절입니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라” 다시 말하면 우리가 질병 가운데 있을 때 주님께 기도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우리의 사정을 이해하시고 공감하시고 긍휼이 여기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재정의 문제가 있을 때 주님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긍휼하게 보시며 공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약함으로 죄가운데 빠질 지라도 주님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것은… 그 분이 우리가 얼마나 죄에 연약하고 유혹에 흔들리는 자들인가 하는 것을 이해하시고 그 사정을 아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라… 라고 말합니다.. 이 예수께서 우리의 중재자가 되셔서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변호하시고 우리의 탄식을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를 잘 아시는 예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며 하늘 보좌에 앉아서 우리의 삶을 구경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 깊숙히 참여하셔서 우리를 동정하시고 날마다 우리를 위해 일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서 우리의 삶에 어려움을 담대히 주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기도하고 눈물흘리며 탄식함으로 주님을 의지하는 한 주 되시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