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9중고등]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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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4:23-24
제목 :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서론]

지난 주부터 계속해서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예배’라는 주제로 말씀을 살펴보고 있다. 지난 주일에는 ‘예배의 대상 : 영이신 하나님'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영이시기 때문에 영원하신 분이시고, 무한하신 분이셔서 유한한 우리가 먼저 알 수 없는 분이시며, 또한 전능하셔서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임을 살펴보았다.
오늘 우리는 23절을 중심으로 말씀을 생각해 볼 것이다. 함께 요4:23 말씀을 읽어보자.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 에 대해 말씀하신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 이 짧은 한 마디를 가지고 오늘 말씀을 전하려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수가 성의 여인을 찾아가셨다. 이 여인은 그리심 산에서 드리던 예배에 참석하던 자였다. 유대인들은 구약에 따라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지만, 사마리아인들은 구약성경 중에서도 모세오경만 인정했기 때문에 모세의 명대로 축복의 산인 그리심 산에 성전을 짓고 거기서만 예배를 드렸다. 저들에게 있어서 예배의 장소는 참 예배와 거짓 예배를 구별짓는 매우 중대한 문제였다. 따라서 이 여인도 나름대로 소신을 가지고 그리심산에서 드리는 제사를 참석했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무리 예배의 자리에 참석을 해도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 왜그랬는가? 그들의 예배는 매우 형식적이었고, 예배자의 마음이 조금도 포함되지 않은 빈껍데기 예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가 되어 예배의 자리에 참석은 하지만 그것은 마음과 정성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는, 몸만 왔다 갔다 하는 예배였지, 아무런 기대도 감흥도 감동도 없고, 어떤 정성도 진심도 없는 죽은 예배였지, 참된 예배자로서 살아있는 예배를 올려드리는 식이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도 때로 그렇지 않은가? 매주일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를 드린다고 하지만 여러분의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를 의식하며 예배드리는 친구가 얼마나 되는가? 예배 중에 이 자리에 충만하게 임재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친구가 몇이나 되는가? 예배자는 주일에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영적인 힘을 공급받아 세상으로 파송받는 선교사들인데, 예배 중에 이와 같이 신령한 복들을 받아 누리며 담대하게 세상으로 파송받아 나가는 친구가 몇이나 되는가? 여러분, 여러분의 예배 가운데 과연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어쩌면 성경에 기록된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과 지금 여러분들이 조금도 다를 바 없이 그저 형식적인 예배, 죽은 예배, 잘못된 예배를 드리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는 것은 본문 속에 등장하는 이 여인의 문제가 바로 나의 문제요, 나의 문제가 또한 이 여인의 문제임을 깨달으라. 오늘 우리의 예배 가운데 선포될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이시간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으라. 본문에서 예수님은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에 대해 말씀하셨다. 이 짧은 구절을 세부적으로 나누어서 생각해 보려고 한다.

[예배하는 자]

먼저 예수님께서는 ‘예배하는 자' 곧 ‘예배자'에 대해 말씀하신다. 여기서 ‘예배하다' 라는 단어는 성경 속에서 ‘예배하다' 라는 의미 외에도 종종 ‘경배하다, 절하다’ 라는 의미로 사용이 되었다. 우리가 찬양할 때에도 종종 ‘경배하다’ 라는 단어를 사용하곤 하는데, ‘경배하다' 라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 사전을 찾아보니까 ‘존경하며 공손히 절하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예배한다는 것은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그 대상 앞에 엎드리는 것이다. 절하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설날에 부모님이나 어른들을 찾아가 절을 한다. 웃어른들에게 절을 하며 공경과 사랑을 표현한다.
그런데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 ‘절하는 것'의 의미는 지금과는 조금 달랐다. 그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사랑하는 마음,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그 마음을 표현하는 의미로서의 절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 때는 나라간의 전쟁이 활발하게 일어나던 때였다.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정복하여 포로로 잡아가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던 시절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로마가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식민지로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일반적으로 강대국이 약소국을 정복하고 점령하며 세력을 키워간다. 이렇게 점령을 하고나면 강대국의 왕은 약소국의 왕과 귀족들을 데려다가 왕의 발 아래에 꿇어 절하게 한다. 왜 절하게 할까? 여러분이 절하는 행위를 한번 상상해보라. 내 이마가 땅 바닥에 닿을 정도로 납작 엎드려지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와 같이 절을 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나의 목을 맡기는 것, 그 사람에게 나의 생명을 맡기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그 사람이 나의 주인이며 나는 그 사람의 종임을 드러내는 행위였다. 절하는 행위를 통해서 나와 너 사이에 진정한 왕이 누구이며, 진정한 종이 누구인지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할 때 바로 이러한 의미가 담겨 있다. 하나님께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담아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 중요하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높여드리기 위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 정말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우리의 예배의 행위를 통해서 누가 진정한 주인이며 누가 진정한 종인지가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예배시간은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드러나는 시간이요, 우리는 그분의 종으로서 나의 뜻과 나의 생각과 나의 몸과 나의 마음을 나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시간이다. 그분이 나에게 어떤 말씀을 하실지, 그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기 위하여 내 온 몸과 마음을 그분의 말씀에 집중하는 시간이요, 그분의 영광과 이름을 높여드리기 위해 내 힘을 다해 주님을 찬송하며 경배하는 시간이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참되게]

그런데 오늘 설교의 제목을 보라.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있어 ‘참되게 예배하는 자' 라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예배에 ‘참되다' 라는 표현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참된 예배가 있고 참되지 않은 예배가 있으며, 참된 예배자가 있고, 참되지 않은 예배자가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어떤 것이 하나님을 허황되게 예배하는 것일까? 그리고 누가 하나님을 거짓되게 예배하는 자일까? 이 말씀을 정말로 신중하게 들으라. 주의깊게 들으라. 왜냐하면 어쩌면 저와 여러분들의 예배가 이처럼 허황된 예배, 거짓예배, 바르지 않은 예배일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예배하다’ 라는 단어의 의미처럼, 참된 예배와 참된 예배자란 하나님께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담아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다. 예배중에 선포하시는 그 말씀을 통해 그분 앞에 나의 뜻과 생각과 몸과 마음과 시간과 정성들을 내어드리는 자이다. 하나님께서 나의 이 모든 것들을 다스려주시길 간구하며 나의 삶의 모든 주권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겨드리는 사람이다. 바로 이것이 바른 예배요, 하나님을 합당하게 예배하는 예배자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참되지 않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예배이다. 하나님과 나와 아무런 상호작용이 이루어지지 않는 예배이다. 하나님은 변함없이 이 예배당 공간 안에 충만하게 임재하시는데, 그 하나님과 나와 아무런 교감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고, 하나님을 의식조차 하지 않은채로 그저 멍하니 앉아있다 가는 것이며, 예배라는 같은 공간 안에는 있어도 마음은 전혀 없는 빈껍데기 몸만 왔다 가는 태도이다. 시간낭비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나가서 공부라도 한 자 더 하거나, 아니면 밀린 게임을 하거나 하면 될텐데, 구태여 예배의 자리에 와서 시간만 낭비하는 자들이다.
제가 강하게 말씀드리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간혹 이런 사람들이 있다. 마음은 교회 밖에 있어도 내 몸이라도 예배의 자리에 앉아있다면 그것으로 하나님께 할 도리를 다 했다고 여기는 자들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거나 존경하는 마음이 없이 그저 예배의 자리에 다녀갔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복을 주셔야 하고 나를 섬겨주셔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만한 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헛되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이러한 저들을 향하여 사1:4 에서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라고 탄식하셨다. 그들은 분명 하나님을 섬긴다 하였지만 실은 하나님을 무시한 것이요, 하나님을 무능한 신으로 여겼으며, 하나님을 업신여긴 것이다.
여러분의 예배도 마찬가지이다. 여러분이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하지 않은 채로 이 자리에 앉아만 있는 것으로 여러분이 할 도리를 다 했다고 여기는 것은 큰 죄이다. 하나님은 그 예배를 결코 참된 예배라 말씀하시지 않는다. 그 예배는 오히려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더럽히는 예배가 될 것이다. 하나님을 모욕하는 예배가 될 것이다. 제발 그런 예배자가 되지 않길 바란다. 많은 무리들이 하나님께 몰려든다.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러 왔다지만 실은 자기의 소원을 들어주시길 원하는 마음에 찾아온 허황된 예배자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참되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그 대다수 무리들 중에서 진실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하는 그 소수의 사람들을 찾으신다. 바로 그 사람이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한다.

[아버지께]

마지막으로 주님께서는, 우리의 예배의 대상이 ‘아버지' 라고 말씀하신다. 본래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아니었다. 우리가 지난 수련회를 통해 배웠던 바와 같이 우리는 본래 사탄마귀에게 속한 진노의 자녀였다. 그랬던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며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셨다. 죄로 원수였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됨을 누리게 되었다.
여러분, 우리가 예배드리는 대상은 막연한 존재가 아니다. 또한 우리의 예배의 대상은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계신 분도 아니시다. 마치 아들딸들이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를 누리는 것처럼, 우리의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역시도 그러하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삶에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시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실정도로 여러분들을 지극히 사랑하신다. 우리와 늘 동행하시고,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예배 중에도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길 원하신다. 예배 가운데 충만하신 하나님과 사귐이 일어나길 바라신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이다.

[결론]

이제 말씀을 정리하려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라는 주제로, 우리의 예배에 관하여 아주 중요한 지침을 주셨다. 이를 기억하며 오늘 여러분의 예배를 돌아보자. 과연 여러분은 예배 가운데 충만하게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인식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이 자리에 충만하시다는 사실을 두렵고 떨림으로 깨달아 참된 예배를 드리기에 힘쓰고 있는가? 우리가 다 같이 예배라는 한 공간안에 있지만 기억하라. 우리가 함께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 안에 있지만 이 중에서도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하지 않는 자,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높여드리지 않는 자,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를 누리지 못하고 하나님과 어떠한 교제도 일어나지 않는 자는 참되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의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 그 결과 예배로 인한 어떠한 복도, 위로도, 평안도, 능력도 받을 수 없다.
반면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를 누리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배에 임하며, 예배 속에 충만하게 임재하시는 하나님과 사귐을 누린다. 이로 인하여 그들은 예배 중에 복을 누리고, 예배중에 위로를 경험하며, 예배 중에 평안을 누리고, 예배를 통하여 세상 가운데서 살아갈 힘과 능력을 공급받는다.
사랑하는 중고등부 여러분들, 간절히 바라옵기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이와 같이 아버지를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이 되시길 축원한다. 그래서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 깊은 사귐이 일어나고, 하나님이 주시는 많은 복들을 받아 누리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간절히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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