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 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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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우리는 계속해서 세상 속에서 성도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이 점을 꼭 기억하며 다니엘서를 계속해서 읽어가시길 바랍니다. 지금 유다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와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래도, 소망도 없는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과연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는지 말씀을 통해 알아보길 원합니다.
본론
본론
1. 왕의 걱정
1. 왕의 걱정
[바벨론 왕의 꿈: 고대 시대의 꿈/환상]
오늘 본문을 보면 느부갓네살은 한 꿈을 꾸게 됩니다. 이 꿈으로 인해서 왕은 마음이 매우 복잡하고 혼란스러워하는데요, 왜냐하면 나쁜 꿈이었기 때문입니다.
고대에는 신들이 꿈을 통해 미래를 알려준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어떤 꿈을 꾸었을 때, 신들이 미리 앞날을 알려주는 계시라고 믿었습니다. 지금 왕은 자신이 꾼 꿈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좋은 꿈은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 마음이 혼란스러운 것입니다.
[질문: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가는가?]
우리는 세상을 살다 보면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문제들을 만납니다. 사소하거나 간단한 문제는 스스로 쉽게 잘 해결해 나갑니다. 그러나 크고 무거운 문제들을 맞닥뜨릴 때,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십니까? 스스로 해결해 보려고 하지만 쉽게 해결되지 않을 때, 성도님들은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해 가십니까?
[바벨론 왕의 해법: 지혜자들을 부르다.]
바벨론 왕은 지금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분명 자신은 나쁜 꿈을 꿨는데, 그 의미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은 자신의 문제에 도움을 줄 사람들을 부릅니다. 왕이 부른 사람들은 박수와 술객, 점쟁이, 그리고 갈대아 술사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바벨론의 종교인들이 아닙니다. 이들은 당시 훨씬 높고 중요한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고대에는 종교와 국가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데요, 당시 이들은 꿈을 해석하는 전문가들이었고, 바벨론의 지식인들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해법: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다.]
오늘날에도 각 분야의 지식인들과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국가와 사회는 어떠한 사건들이 일어났을 때, 이들의 조언을 구하고, 그에 따라 국정을 운영합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 개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데요, 우리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보험사를 부르거나, 아플 때에는 주변 병원을 찾아갑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 문제에 대해 가장 효과적이고 확실하게 해결해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화: 수련회 광고 영상을 만들다.]
저도 예전에 친구로부터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데요, 수련회 홍보 영상을 만들어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어떻게 홍보 영상을 잘 만들 수 있을까 고민고민해도 별다른 대책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학부 시절 광고홍보학과에 있었던 친구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연락해서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친구의 도움으로 저는 그 일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바벨론 왕은 복잡한 자신의 마음을 해결해줄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이일에 전문가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왕은 그들이 자신의 꿈을 해석해주고 자신과 제국의 미래를 알려주길 기대했습니다.
2. 왕의 명령: 확실한 미래
2. 왕의 명령: 확실한 미래
[왕의 제안: 상과 벌]
왕은 전문가들을 불러 놓고 그들에게 자신의 걱정과 고민을 토로합니다. 그리고 왕은 그들에게 한 가지를 제안하는데요, 자신이 꾼 꿈과 해석을 알려달라는 것입니다. 만약 이를 해결한다면 큰 상을 줄 것이지만, 그러지 못할 때에는 그의 목숨은 물론이고 집안 전체를 멸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지혜자들은 왕에게 어떤 꿈인지 알려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지혜자들의 요청에도 왕은 그들에게 꿈을 전혀 알려주지 않습니다.
[문제 발생: 꿈을 알려주지 않는다.]
왕은 왜 꿈을 알려주지 않았을까요? 무슨 꿈인지 알아야 꿈을 해석하든지 말든지 할 게 아닙니까? 혹시 왕은 자신이 꾼 꿈을 잊어버렸을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왕은 이 꿈으로 인해 마음이 심히 괴로웠기 때문입니다. 너무 강렬해서 결코 그 꿈을 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꿈도 알려주지 않고 황당한 요구를 하는 것일까요?
[꿈을 알려주지 않는 이유?: 확실한 명령, 그리고 자의적 해석]
왕이 이들에게 꿈을 이야기하지 않은 이유는 8절과 9절에 나타납니다. 먼저 왕은 그들이 시간을 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왕은 그들에게 확실하게 명령했습니다. 왕의 명령은 무엇입니까? 꿈과 해석을 함께 말하라는 것입니다. 분명 그들이 확실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재요청하는 것은 그들이 시간만 끌고 있는 것이라 왕은 생각했습니다.
또한 왕은 만약 자신이 직접 꿈을 말해주면 거기에 대하여 끼워 맞추기식의 해석을 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마치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고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왕은 정말 그들이 신들과 교통하고 교제한다면 자신이 꾼 꿈뿐만 아니라 해석까지 모두 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지혜자들의 불평: 역사와 예우에 대한 불평을 하다.-> 확실한 미래를 향한 왕의 갈망]
이러한 왕의 조치에 바벨론 지혜자들은 불평을 합니다. 10절에 보면 이제까지 이렇게 터무니없이 물어본 왕들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강하고 위대한 왕이라 할지라도 지식인이고 전문가들인 자신들에게 이렇게 대하는 것은 실례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왕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일까요? 그냥 자신의 꿈을 이야기해주면 되는 것을 말입니다. 왕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신들이 주는 완전한 계시, 확실한 미래를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확실한 미래를 알고 싶어하는 우리]
오늘날 우리는 불안한 현실 속에서 불확실한 미래를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위기와 문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지쳐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확실한 미래를 알고자 싶어 합니다. 확실한 미래를 통해 평안을 얻고자 하는 것이죠. 주식을 하는 사람들은 주식 전문가를 찾아갑니다. 부동산을 하는 사람들은 부동산 전문가를 찾아갑니다. 왜 그들을 찾습니까? 그들이 확실한 미래를 알려줄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 부동산 유튜브]
그러나 우리의 기대와는 다르게 하나의 문제에서 여러 대안들이 나옵니다. 저는 가끔 부동산에 대한 전문 유튜브를 보곤 합니다. 거기에 보면 한 유튜브는 부동산이 계속 올라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다른 유튜브 방송을 보면 거기에선 부동산이 내려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과연 누구의 말이 정답일까요? 이처럼 하나의 문제를 가지고 두 가지, 세 가지 등 여러 의견으로 나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확실한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고충이 바벨론 지혜자들의 입에서 나옵니다. 11절을 함께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왕께서 물으신 것은 어려운 일이라 육체와 함께 살지 아니하는 신들 외에는 왕 앞에 그것을 보일 자가 없나이다 한지라
[지식(과학)의 한계: 미래를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세상의 지식과 학문으로는 결코 우리의 앞날과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고도로 발달한 현대 과학으로도 우리는 내일 태양이 뜰지 안 뜰지 확실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과학은 그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찾은 원리들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해가 어제도 떴고 오늘도 떴으니깐 내일도 뜰거야!”라고 과학은 예측할 뿐이지 미래를 정확하고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혜자의 말처럼 오직 신들만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3. 과연 신은 누구인가?
3. 과연 신은 누구인가?
[확실한 미래: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통치하신다.]
그런데요, 저는 내일 반드시 태양이 뜰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보존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오늘도 이 세상을 다스리고 운행하십니다. 그러므로 어제와 오늘처럼 동일하게 태양이 뜨고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의 확실한 미래는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의 전문가를 더욱 의지하는 우리]
그런데 오늘 우리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보다 이 세상의 지식과 지혜를 더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묻고 답을 구하기보다 세상의 지혜자나 전문가에게 가서 답을 얻고자 합니다. 물론 아픈데 병원에 가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법적인 문제가 생겼는데, 법조인을 찾아 가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의료인을 만나고 법조인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떠한 문제를 만나면 항상 하나님보다 이러한 것들을 더 먼저 찾고 더 의지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화: 기도하는 과거의 성도들]
저희 윗 세대, 부모님 세대들은 어떠한 문제가 생겼을 때, 교회에 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특별히 큰 문제일수록 금식하고 작정하며 기도를 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몇몇 가정들이 함께 교회 차를 타고 기도원에 가서 기도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그들이 그렇게 전심을 다해 기도한 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해결해주신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때에는 이러한 아름다운 모습들이 있었는데, 오늘날은 이러한 모습들이 매우 희귀해졌습니다. 학력과 전문성이 높아지면서 하나님보다 세상의 것이 더 합리적이고 지혜롭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의 것들이 더 신뢰가 간다는 것입니다.
[유다의 패배감: 바벨론 신들이 세계를 다스린다.<->성경은 세상의 주권자도, 지혜와 지식도 아무런 소용 없다.]
유다가 그러했습니다. 다니엘서 1장에 보면 유다가 바벨론과의 전쟁에서 패배합니다. 고대에서 전쟁에 패배한 것은 자기가 섬기는 신이 패배한 것과 같습니다. 나라는 망하고 성전의 기구들을 빼앗겼습니다. 이로 인해 당시 성도들은 바벨론의 신들이 하나님보다 더 우월하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세상의 신들이 진정한 주인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씀합니다. 세상 주권자도, 세상의 지식과 지혜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입니다.
[베드로의 고백: 주권자로 인정하다.]
예수님은 밤이 새도록 고생한 베드로를 찾아가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시죠.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입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베드로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분명 베드로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동생 안드레를 통해 목수의 아들이며 나사렛에 사는 시골 청년으로 말입니다. 그런 촌뜨기가 낚시의 전문가인 자신에게 훈수를 둘 때,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우리가 잘 아는 다혈질의 ‘베드로’라면 당신 일이나 잘하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어이 없는 예수님의 말씀에 호통치며 때려주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베드로는 그 말씀에 따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선생님 우리가 밤이 새도록 고생해서 잡은 게 없지만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여기서 제가 좀 의역해서 말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 세상의 전문가인 저희가 밤이 새도록 열심히 해봤는데 하나도 못 잡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동생이 전한 메시아라면, 이 세상의 주인이시라면 제가 그 말씀에 의지해서 다시 그물을 내려보겠습니다.” 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세상의 아름다운 지식이나 흠모할만한 지혜라도 결코 이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사탄은 자신이 마치 이 세상의 주권자인 것처럼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사탄에게 주권이 있나요? 그에게 주권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든 주권은 오직 우리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
결론
[다니엘서 시작부터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다.]
다니엘서 1장 2절에 보면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서는 처음부터 이 세상의 주권이 오직 하나님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세상이 마치 주인인 것처럼 믿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많은 유다인들이 바벨론의 주권에 굴복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세상의 주인으로 모십니다. 하지만 다니엘과 세 친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성도는 그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주인은 오직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여러 문제들이 있습니다.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도움은 세상이 우리에게 줄 수 없습니다. 오직 세상의 주권자이신 하나님만이 우리의 도움이요, 답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 어려운 시기, 이 세상의 진정한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주님의 성도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