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내는 그리스도인 (296-373문)

제네바 신앙교육서 해설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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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Luke 12:13–21 NKRV
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서론

본론

오늘 본문에 한 동생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동생의 요청으로 인하여 오늘 본문은 등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은 이 동생을 욕심쟁이로 묘사합니다.

1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이 당시 유산 그러니까 상속은 장자 즉 첫번째로 태어난 남자에게 다른 자녀들보다 두배 더 많은 몫을 물려주는 것이 당연한 시대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이렇게 주면 법적 공방도 가고, 칼부림도 일어날만큼 불합리한 일이지만, 이 당시에는 이것이 당연시 되었었던 시대적 정서였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3절을 보면, 이 한 사람이라 칭해진 동생은 당연한 것을 넘어 무엇인가를 더 요구하는 그런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기에 오늘 본문은 이 동생을 욕심쟁이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동생들이 좀 욕심쟁이가 많습니다. 저도 동생입니다!
이런 동생의 요청에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 14절과 같이 대답하십니다.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라고 말입니다.

14절이 보여주는 모습: 모세!

14절을 통해 비추어지는 모습은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을 원문에서 살펴보면, 비슷한 구조와 어순을 가진 문장이 “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라는 문장으로 출애굽기 2장 14절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대답은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던 애굽사람을 쳐 죽이고 암매장 시킨 뒤에 이스라엘 백성들끼리 다투는 것을 보고 싸우지 마라고 중재하는 장면에서 던져진 대답입니다.
즉, 오늘 본문 14절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대답의 의미는 바로 다툼 속에서 누군가의 편을 들어 다른 누군가를 죽게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라고 말씀하시는다는 것입니다.
14절의 대답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왜 오셨는가?라는 것을 다시금 되짚으시려는 의도를 가지셨기 때문입니다.
정리하자면, 지금 한 동생이 예수님 나의 형에게 좀 설득해서 많이 물려받은 유산을 좀 나누도록 해주십시오라고 말할 때,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들끼리의 분쟁에 관심이 있고, 그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다른 문제 즉 더 크고 더 급한 생사가 걸린 문제를 해결하고자 왔다라는 것을 의도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 문제가 무엇인가면, 누가복음 1장 21절에 기록되어 있는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라는 구절의 의미 그러니까, 더 나아가서 이를 해석해주고 있는 마태복음 1장 21절의 의미를 다시금 집중시키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은 예수라는 이름을 이렇게 해석해 줍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동생이라는 사람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예수님을 이용하려고 하고 있으니,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 14절과 같이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라고 반문하시며 거절하시는 것은 당연한 것이죠.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다음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1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욕심쟁이인 한 동생의 요청을 단칼에 거부하신 예수님께서는 그 동생을 비롯하여 함께 있는 무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속에 있는 그 욕심을 물리쳐라”라고 말입니다.
지금까지 살핀 내용에 비추어 15절을 연결하자면, 이런 의미입니다.
즉, 욕심쟁이인 동생이 자신이 받을 몫을 받았음에도 욕심으로 인하여 자신의 형의 유산을 더 받고 싶어하는 것 그것에 예수님은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욕심으로 인하여 생기게 되는 죄로부터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야고보서 1장 15절이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즉,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라는 이 말씀과 지금 같은 의미로서 얘기 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재물 때문에 다투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재물을 탐내도록 하는 우리의 욕심과 그 욕심으로부터 시작되어 생기게 되는 죄에 초점을 두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 줍니다.

그 방향성을 설명함에 있어 예수님은 한 비유를 들어 설명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핵심으로 16-21절까지에 등장하는 비유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이 비유는 우리의 욕심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디를 향하여서 욕심을 내야 하는가 하는 방향성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비유에서 우리가 집중해서 보아야 할 부분은 바로 “나의”라는 1인칭 소유격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비유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라고 말입니다.
즉, 부자가 무엇인가를 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그저 때에 따라 씨를 뿌리고, 그것을 가꾸어 주었을 뿐인데 열매가 혹은 곡식이 풍성하게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즉, 오늘 본문은 부자의 열심에 따라서 소출이 풍성해진 것이 아니라, 한 부자가 그저 해야할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밭이 소출을 풍성하게 만들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부자가 풍성한 소출을 얻는데 있어서 기여한 기여도는 많아도 1%정도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어지는 본문을 통해 볼 때, 이 부자는 자신의 기여도가 많아도 1%인 것에 “나의”라는 소유격을 붙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17~19절까지 계속해서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나의 곳간”, “나의 모든 곡식과 물건”, “내가 나의 영혼에게”라는 표현들을 통해서 자신의 기여도가 마치 100%인것처럼, 마치 풍성한 곡식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가 자신의 피와 땀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하며 말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즉, 이 부자 비유는 내가 노력해서 무엇인가를 얻는 것이 과연 죄라 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노력을 넘어 열매를 맺도록 하시는 그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아이러니한 결과가 참 많습니다.

분명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며 준비했음에도 그 결과는 물거품이 되기도 하고, 의외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덜컥 좋은 결과를 얻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즉, 이러한 모습들이 보여주는 것은 바로 우리의 노력을 넘어 모든 것을 간섭하시고 이루어가시는 그 하나님을 우리가 의지해야 한다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분명 부자의 기여도는 많아도 기껏 1%였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하나님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마치 자신이 다한 것처럼 자신의 기여도가 100%인 것처럼 “나의”라는 소유격을 사용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결과물에만 집중하며 그 재물들에 욕심을 부리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 부자를 향해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평가하십니다.

2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우리는 우리의 노력을 넘어 역사하시는 그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노력했고, 내가 무엇인가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내가 무엇인가를 잘 할 수 있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지금 내가 무엇인가를 누리고 있는 것들 모두가 다 나로 인하여 생긴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내가 무엇인가를 잘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가능케 하셨기 때문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결과로 인함이다 라는 것이죠.

이어서 등장하는 21절은 이를 확증합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부자와 같이 지금 나에게 주어진 것에 욕심을 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욕심을 내어야 할 방향은 바로 우리의 노력을 넘어 역사하시고 존재하시는 그 하나님, 그 하나님 앞에서 부요해지기를 욕심내야 합니다.
지금 나에게 있는 것, 그리고 지금 내 앞에 잡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잡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부요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노력을 넘어 역사하시는 그 하나님 앞에서 부요해지기 위해서 욕심을 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하나님 앞에 부요해지기 위해 전력질주 해야 합니다.

결론

우리의 욕심은?

마지막으로 하나님 앞에 부요해진다는 것 그것에 대해 살펴보고 마치고자 합니다.
이에 대해 누가복음 12장 29-34절은 대답합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먹을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우리의 노력을 넘어 존재하시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며, 우리를 지켜 주시는 분이심을 믿는 것, 그리고 그 믿음 가운데 나에게 주시는 것들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사용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부하여 지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드리자면, 누가복음 12장 33-34절을 따라 살아가는 삶입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라고 말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무엇으로 만족을 얻으십니까?
여러분들은 무엇으로 행복을 느끼십니까?
우리의 행복이 하나님을 향한 삶이기를 소원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부요해지는 것에 있기를 소원합니다. 우리의 만족이 이로부터 나오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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