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 16장 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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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은 성경에 대해서 말합니다. 2장은 이 성경을 통해서만이 알 수 있는 유일하고 참되신 삼위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3장은 이 삼위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작정이라고 합니다. 이 작정에 대해 설명한 것이 4장 창조 5장 섭리입니다. 창조는 만드는 거고 섭리는 유지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렇게 잘 만들어놨는데 무슨 일이 생깁니까? 6장에 설명합니다. 타락이라는 사건이 일어나요. 타락이라는 사건이 일어나서 이 세상에 희망이 다 사라졌습니까? 아니죠! 하나님께서 인류와 언약을 맺으십니다. 7장은 언약에 대해 말합니다. 이 언약을 중개하는 중보자가 있습니다. 8장은 중보자 그리스도에 대해 말합니다. 이 중보자에게 나아가는 건 강제로 나아가는 건 아닙니다. 자유의지를 통해 나아갑니다. 9장은 자유의지에 대해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자유의지는 타락해서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10장 효력 있는 부르심, 하나님께서 효력 있는 부르심을 통해 우리를 부르십니다. 11장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난 뒤에 우리를 의롭게 칭하신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12장은 양자입니다. 하나님께 입양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요. 13장은 자녀 된 우리 안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말합니다. 성화입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살펴볼 14장은 믿음에 대해 나옵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고 자녀가 되고 거룩하게 되는 건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11, 12, 13장에서 생기는 일들의 중심에는 바로 믿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15장에서는 회개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 회개합니다. 그리고 16장은 선행을 말합니다. 선행은 믿음의 증거입니다. 오늘은 이 선행에 대해 알아봅시다.
1- 선행은 말씀을 실천하는 성령의 역사이다.
선행이 뭘까요? 여러분이 아는 선행은 뭔가요? 착한 행동이죠? 그런데 뭐를 어떻게 하면 착한 행동이 되나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 다른 사람 도와만 주면 무조건 다 착한 행동일까요? 사기 쳐가지고 돈 많이 번 사람 돈을 빼앗아다가 가난한 사람들 나눠주면 착한 행동일까요? 나쁜 행동일까요?
자! 선행은 그냥 착한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행동을 선행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생각할 때 착한 행동이 선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서 선하다가고 하는 행실을 선행이라고 합니다.
선행은 아무나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고 하나님의 명령이 어떤 것인지 압니다. 또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성령님께서 선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선행을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선행은 뭘까요? 예수님 안 믿는 사람들이 착한 일을 합니까? 안합니까? 착한 일을 합니다. 엄청난 거금을 기부금으로 내놓기도 하고요. 취미로 자원 봉사를 하기도 합니다. 말과 행동에서 예의가 묻어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말 멋진 사람들이 많아요. 예수님을 모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도 그 사람들이 나름대로 선행을 합니다. 그 사람들의 선행은 우리의 선행과 같을까요? 다를까요? 당연히 다릅니다. 우리의 선행은 성령님의 역사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거지만 그 사람들의 선행은 그냥 자기가 좋아서 하는 자기 만족의 선행입니다. 자기가 볼 때 그 행동이 아름다운 거예요. BTS가 칼군무를 출 때 우리는 그걸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자신이 어려운 사람을 돕는 그거 자체가 좋고 아름다운 거예요. 불신자들의 선행에는 가장 중요한 순종이 없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선행을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좋아서 그렇게 하는 거예요.
우리의 선행은 하나님 앞에서 가치 있는 선행입니다. 우리의 선행은 하나님의 기준에서는 당연히 부족한 선행입니다. 우리는 무슨 수가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다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지고 의롭다고 여겨진 것처럼 우리의 선행도 완벽하지 않은데 하나님 앞에서 완벽해진 것처럼 받아들여 지는 거예요. 우리 자신이 의롭다고 여김 받는 것처럼 우리의 선행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여겨 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여김 받는 것처럼 우리의 선행이 마치 예수님이 하신 일인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받아들여지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의 선행은 하나님 앞에서 의미 있는 선행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예요.
하지만 불신자의 선행은 하나님의 말씀과도 상관 없고 거기에는 순종도 없고 그리스도와도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불신자의 선행은 그냥 죄인이 하는 행위가 되어 버립니다. 그렇다고 해서 불신자들이 더 악한 일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더욱 심판을 받게 됩니다.
어쨌든 우리의 선행은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말씀을 실천하게 하시는 놀라운 역사입니다. 구원 받은 사람만이 이런 의미있는 선행을 할 수 있는 거예요.
2- 선행을 통해 믿음의 흔적이 드러난다.
그러면 우리의 선행은 어떤 일을 할까요? 우리의 선행을 통해서 믿음의 흔적이 드러나는 거예요. 신앙고백서에 정말 멋진 말이 있는데 “복음에 대한 고백을 빛나게 한다.” 이런 말이 있어요! 멋진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선한 일을 행하면 어떻게 될까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야 예수님 믿는 사람은 다르네!”, “쟤는 교회 다녀서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행동하는 것도 뭔가 달라!” 이렇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갑자기 몸에서 빛이 나거나 머리 위에 “예수님 믿음”이라고 글자가 뜨지는 않습니다. 결국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흔적은 우리의 선행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가장 큰 무기는 여러분 자신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갑자기 벌벌 떨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하는 행동을 보고 하나님을 발견하고 벌벌 떨어요. 신앙고백서 2항에 또 멋있는 말이 하나 있는데 “선행이 대적들의 입을 막는다.”고 나와 있습니다.
여기 대적들은 복음을 믿지 않을뿐더러 복음을 조롱하고 복음을 훼손하려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신앙고백서에서 왜 하필 대적들의 입을 막는다고 했을까요? 그 사람들은 주로 입으로 복음 전파를 방해합니다. “하나님이 어딨어? 예수라는 사람이 승천했으면 지금 어딨는데? 언제 다시 오는데?” 이런 식이에요. 말로 복음을 훼손하려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 앞에서 선을 행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그들의 입을 막을 수 있다는 거예요. 선을 행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그걸 인정해주니까 복음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순서를 한 번 정리를 해야 하는데 선행을 한다고 해서 우리가 구원 받는 건 아닙니다. 구원은 믿음을 통해 받는다고 14장에서 이야기 했습니다. 믿음은 말씀을 들을 때 우리 가운데 일어나는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선행을 했다고 믿음이 생기고 구원 받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선행은 우리가 믿음이 있다는 증거 역할은 합니다. 우리의 선행을 보고 사람들이 “아 저 사람 보면 진짜 하나님이 있는 것 같아”라고 되는 거예요.
오늘 성경 말씀에서 선행을 소금으로 묘사하고 빛으로 묘사합니다. 소금은 맛을 내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맛을 내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실제로 맛이 안 나는 소금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 소금은 음식에 넣어봤자 아무런 존재감이 없습니다. 그냥 버려집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소금이 음식에 들어가면 이 음식에 소금이 있구나 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게 눈에 보이지 않아도 행실로 보여주잖아요? 국물에 소금이 들어가면 소금 가루는 눈에 안 보입니다. 하지만 맛을 보면 소금이 있는 줄 알아요. 그 국물에 소금의 흔적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도 세상 사람들 가운데 믿음으로 맛을 내면 됩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참된 믿음이 실제로 있구나 하고 맛을 보는 거예요.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선행은 결코 감춰지지 않습니다. 어둠 속에서 빛을 아무리 감추려 해도 빛은 새어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조그만 빛이라도 어둠 속에서는 태양 같은 존재감을 과시합니다. 우리의 선행은 이 어두운 세상에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낼 거예요. 우리의 행실이 빛이 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비출 때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납니다. 그래서 아 ‘저 사람 보니까 예수님이 있겠구나!’ 하는 거예요.
3- 선행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
자! 선행은 성령님께서 우리가 말씀을 실천하도록 하시는 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선행이 믿음의 흔적이 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되어야 하는 최종적인 목표가 뭘까요?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거예요. 제가 주기도문 할 때 영광에 대해 설명을 했습니다. 영광이 뭐예요? 하나님의 선하심, 빼어나심,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할 때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됩니다. 우리 안에 일어난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가 선행을 하잖아요? 그걸 통해서 이 땅에 신자들을 통해 세상에 빛을 제공하시고 소금을 제공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거예요. 하나님의 선하심, 빼어나심,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드러납니다. 이 세상에는 죄인들 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니면 세상에 선행이라는 것자체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죄인들을 변화시키셔서 선행을 일으키시기 때문에 이 세상에 선행이 존재하는 거예요. 이 맛 없는 세상, 어두운 세상에 맛이 나고 빛이 나는 거예요. 하나님은 이 선행을 통해서 이 세상을 맛있게 요리하시고 어두운 세상을 리모델링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을 맛있게, 아름답게 만드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어떻게 죄인들을 사용해서 세상을 이렇게 좋게 만들어가실까? 하나님이 아니면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고백과 찬양을 기뻐하십니다. 여러분을 통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내가 하나님께 영광이 될만한 선행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선행을 하면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그걸로 영광 받으세요.
저희 딸이 이제 18개월입니다. 아침 마다 우리 집사람이 아기 머리를 묶어줍니다. 아기는 당연히 가만 있기 싫어서 막 움직이려고 합니다. 머리 묶는게 쉽지가 않아요! 그런데 제가 치즈를 조금씩 떼서 먹여주면 가만 앉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치즈 한 장을 찔끔 찔끔 떼가지고 머리 묶는 시간 동안 아기가 가만히 있도록 합니다.
아침에 제가 출근 준비를 하니까 바쁘잖아요? 그래서 한 번은 제가 치즈를 다 먹이고 비닐을 아무데나 던져 놨습니다. 그런데 저희 딸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 비닐을 주워가지고 쓰레기통에 넣었습니다. 저희 아내가 잘했다고 막 박수를 쳤습니다. 아! 이건 딸 자랑이 아닙니다. 어떤 아기는 돌만 지나도 쓰레기 통에 쓰레기 버립니다. 가르쳐 주기만 하면 모든 아기가 다 이 정돈 합니다. 우리도 가르쳐서 하는 거예요.
어쨌든 저희 아기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렸어요. 이거 사실 어른들 관점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잖아요?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 아기가 그렇게 하니까 너무 기쁘고 마음이 즐거운 거예요.
그걸 보면서 하나님의 마음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실천하며 하는 행동 하나 하나가 늘 역동적이지 않습니다. 단순한 말 한마디 일수도 있고 그냥 인내하는 것일수도 있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아기 엄마가 아기의 행동 하나 하나를 기뻐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의 작은 선행 하나로 기뻐하시고 영광 받으시는 거예요. 이걸 기억하면서 여러분들이 작은 선행이라도 그 선행을 통해서 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광을 돌려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성경 말씀이 명령하는 것 작은 것 하나라도 실천하시면 되는 거예요.
결론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선행은 성령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 말씀을 실천하도록 하는 거예요. 이 선행은 우리가 믿음이 있다는 흔적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됩니다.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성령의 역사로 말씀에 실천하여 선행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그 선행으로 믿음이 있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줍시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