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 하나님이 내 인생에 왕이 되어주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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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5:11-32

*선악과 (창세기) - 누가 왕인지에 대한 표시.
타락으로 인한 인간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땅에서 뿌리 뽑힌 큰 나무 한 그루에 빗대어 설명하는 것이 적절하다. 왜냐하면 우리의 존재의 근원인 창조주 하나님에게 등을 돌리고 자신의 피조물적 내적 자원으로만 살려고 하는 인간은 생명의 근원인 대지로부터 뿌리 뽑혀 그 대지로부터 더 이상 수분과 양분을 공급받지 못하고 자신 안에 내재하는 수분과 양분에 의지해 사는 나무와 같기 때문이다.
그 나무는 한동안 잎이 파랗고 가지가 싱싱하여 삶의 기색을 완연히 나타낸다. 그러는 한 우리는 그 나무가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나무가 대지로부터 뿌리 뽑힌 바로 그 순간부터 수분과 양분의 결핍성 속에 빠져들어 잎이 시들고 가지가 마르기 시작한다. 이것들은 이 나무가 죽음의 권세 아래 놓여 있으며, 죽음의 그림자 아래 있고, 죽음의 병에 걸렸음을 나타내주는 증상들이다. 목이 아프고 콧물 나며 머리가 띵하고 관절이 쑤시는 현상들이 감기에 걸렸음을 나타내주는 증상들이듯이 말이다.
죄로 말미암아 우리의 존재의 근원인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그의 무한한 자원을 공급받지 못하고, 우리 자신의 피조물적 내재의 자원에만 갇혀 있는 우리는 그 자원의 유한성, 곧 결핍성에서 오는 갖가지 고난들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고난들은 우리가 죽음의 권세 아래 놓여있음 (곧 ‘죽음병')을 나타내는 증상들인 것이다. 이 죽음의 권세 아래에서의 삶, 곧 죽음병 걸린 삶이 하나님의 나라 (통치)로부터 벗어나 사단의 나라 (통치) 아래 떨어진 “이 세대 (세상)”에서의 삶이다.
구원은 이 죽음의 권세로부터의 해방이다. “영생"이란 원래 히브리어 “오는 세대 (세상)의 삶"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을 현대어로 번역하여 나온 말이다. 그러므로 그 뜻은 단지 시간적으로만 끝없이 길어진 영원한 삶이라는 뜻이 아니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오는 세대,” 곧 구원의 시대의 삶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이란 뜻으로서, 하나님의 무한한 자원으로 이루어지는 삶을 말한다. 하나님의 영원에 참여하므로 시간성으로부터 해방되어 늙고 병들고 죽음이 없이 영원히 사는 것도 포함하지만, 또 하나님의 전지하신 지혜에 힘입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불안이 없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힘입기 때문에 어떤 문제에도 빠지지 않으며,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에 힘입기에 갈등이 없는 삶이다. 그러므로 “영생"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적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살아계신 아버지에게 재산을 요구하는 것은 insult, 아버지를 모욕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죽었을 때 분깃이 돌아가는 데, 이렇게 요구하는 것은 아버지를 죽은 사람 치급하는 것이다.
(연관성) 하나님을 죽은 사람 취급하고 살아가는 인생이다. 포도나무 되시는 예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겠다는 것이다.
(예화) 창세기 2:7 “흙-아파르: 먼지, 허무한 존재"
C.S 루이스, 채워지지 않는 빈공간, 인류의 종교성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Our repentance is also vividly depicted as coming to realize the foolishness and unsatisfying nature of living apart from the Father (vv. 17–19). The gospel is explained through this image as a call for us to turn away from all that does not truly satisfy and return to the welcoming grace of our Father God.

아버지에게 풍족함, 만족함이 있다. 아버지 하나님을 떠난 삶은 결국에 결핍이 생기게 되어 있다.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This applies not only at our conversion but to every day of our life of faith in a broken and tempting world. It is important to note that the father runs in welcome to his son before his son has made any confession—grace even precedes the needed repentance.

이미 은혜는 우리가 회개하기 전에 시작된다. 비참한 우리의 인생에 하나님께로 돌이키려고 할 때 이미 하나님은 나에게로 달려오신다. 이것이 은혜이다.
(예화) 사람 마음의 문고리는 안에만 있다. 우리가 열 때 주님이 들어오실 수 있다. 요계 3:20
(예화 2) 존큐 영화, 아버지의 부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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