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3새벽]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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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310 아 하나님의 은혜로
본문 민14:1-10
하나님, 오늘도 은혜로 하루를 열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하루 되게 하여 주시길 원합니다. 우리의 육신이 약하여 자주 죄의 유혹들이 찾아오지만 주께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의 중심을 지켜 주시길 간구합니다. 때로 세상으로부터 여러 어려움들이 찾아오고, 시련들이 찾아와도, 하나님 살아계심을 믿는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여 주시길 원합니다. 믿음 잃지 않고 신앙인답게 살아갈 수 있길 원합니다. 주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더욱 강한 믿음 허락하여 주옵소서. 더욱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게 하여 주옵소서. 더욱 하나님의 붙드심을 원하게 하여 주옵소서. 사랑하는 주님, 이 새벽의 시간에 우리에게 주실 주님의 교훈을 사모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옵소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서론]

어릴 적에는 그 작은 어항에 갇혀 평생을 살던 물고기가 가엽게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그 좁은 곳에서 살아가려니 얼마나 답답하고 괴로울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들은 정보로는, 붕어는 기억력이 15초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돌아서면 까먹는다는 것이다. 어항 안에 갇혀 살지만 돌아서면 까먹는 존재라서 자기가 갇힌 줄도 모를 것이라는 정보였다.
그러나 몇 년 전 미국의 어느 기관에서 붕어 과에 속하는 물고기를 연구했는데, 무려 이 물고기는 학습능력이 있었고, 그렇게 학습된 정보가 11개월이 넘게 유지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무시했던 붕어가 사실은 매우 뛰어난 기억력을 갖고 있었다. 심지어 갑오징어의 경우는 자기가 죽는 날까지 먹는 먹이의 종류를 전부 기억한다고 한다. 여러분, 어제 저녁에 뭐드셨는지 기억하시는가? 지난 명절 점심에 뭐 드셨는지 기억하시는가?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지만 실은 살펴보면 가장 힘이 약한 것도 인간이고, 어찌보면 제일 기억력이 형편 없는 것도 바로 우리 인간인듯 싶다.

[배경]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만 보아도 그렇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입성하기 직전에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내어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였다. 정찰을 마친 정탐꾼들이 돌아와서 자기가 조사하고 경험한 바를 소상하게 보고한다. 그리고 그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은 본문 1절처럼 소릴 높여 부르짖으며 통곡하기 시작한다. 왜 그들은 이와 같이 통곡하였는가? 자기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나안 거류민들이 강력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가나안 민족들은 중기 청동기 문명을 이룩했다. 경제와 문화적으로도 절정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미 당시 대다수의 가나안 도시 성들은 요새화 되었고, 모든 적들의 공격을 방어함에 용이하도록 건설되었다. 심지어 청동기 문명이 발달됨에 따라 구리와 주석의 합금으로 더 강하고 단단한 무기들을 갖추었고, 그들의 체격도 이스라엘과는 상대가 안될 정도로 월등하게 우세하였다. 열명의 정탐꾼의 보고는 거짓이 없었다. 모두 사실이었다.
긴 여정 끝에 드디어 약속의 땅에 들어가나 싶었는데, 일이 생각처럼 진행되지 않고, 계획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자 이스라엘 회중들은 낙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낙심과 절망은 곧이어 하나님을 향한 강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3절을 보라.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그들은 마치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죽이시기 위하여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다고 믿기 시작한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대한 강한 불신이 담겨 있다. 여러분, 과연 이런 모습들을 신앙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스라엘이 경험한 하나님]

생각해보라.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이었다. 소망이 없었다. 민족이 끊어질 위기에 놓였다. 더 큰 고역과 압제속에 신음하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먼저 찾아가셨다. 그리고 그 땅에 10가지 곧 피 재앙, 개구리 재앙, 이 재앙, 파리 재앙, 돌림병 재앙, 악성 종기 재앙, 우박 재앙, 메뚜기 재앙, 흑암재앙,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자 죽음의 재앙을 내리심으로서 하나님의 강하신 손으로 출애굽하게 하셨다.
출애굽 이후로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함께 하시며 이스라엘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셨고, 사방이 막힌 곳에서 홍해의 마른 땅을 건너가게 하셨으며, 그들이 르비딤에서 목말라 할 때 반석을 통해 물을 공급하셨고,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강림을 경험하게 하시고 언약을 맺어주셨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이와 같은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는가? 그들이 뭔가 다른 민족에 비하여 부하길 했는가? 아니면 민족의 수가 많길 했는가? 아니면 다른 민족에 비하여 앞선 문명을 이룩하길 했는가? 전혀 그런게 없다. 자랑할만한 것이 없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실 만한 이유가 이스라엘 내에는 전혀 없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의 선조들과의 언약을 기억하사 그들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백성 삼으신 것은 이스라엘을 거룩한 나라요 온 땅에 하나님을 드러내고 증거할 제사장 나라로 세우시기 위함이었다.
물론 열명 정탐꾼의 말은 틀린 것이 하나 없다. 전부 사실이었다. 가나안 거류민들은 크고 강했으며 매우 발달된 문명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여러분, 그것이 무슨 대수란 말인가? 강한 손으로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그리고 그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약속의 땅으로서 이스라엘에게 주시겠다고 약속까지 하셨는데, 가나안 거류민들의 강함이 하나님의 권능 앞에 무슨 걸림돌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이스라엘은 분명 앞서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구원의 은혜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붕어만도 못한 기억력, 형편없는 믿음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

하나님께서 어떠한 은혜를 여러분에게 베풀어주셨는가? 그 어느 작고 사소한 은혜조차 받을 자격이 없던 원수와도 같던 우리였다.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였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의 아들들로 삼아주셨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하신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셨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기까지 신실하게 그 약속을 이루어가시고 그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다. 이는 과거 이스라엘이 경험하지 못한 더 크고 놀라운 은혜이며, 이를 입은 자가 바로 여러분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생 속에서 뭔가 장벽을 만난다. 뭔가 계획한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고, 뭔가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을 불신하기 시작한다. 온갖 세속적인 걱정과 근심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을 원망하며, 하나님을 거역하기 시작한다. 하나님을 멸시하며 하나님보다 세상의 법칙과 원리를 더 신뢰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구약을 통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그들이 매번 하나님 앞에서 넘어지고 실패하는 모습을 통해서 그들의 믿음없음을 비웃고 손가락질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을 돌아보면 그들과 비교할 수 없는 큰 은혜를 입었음에도 더 믿음없음을 보게 되지 않는가.

[신앙인 답게 살자]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을 살펴보면, 궁핍함, 목마름, 굶주림, 대적들로부터 우겨쌈을 당하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때마다 번번이 넘어지고 실패한다. 그런데 우리의 인생도 비슷하다. 우리의 인생도 뭔가 부족함의 연속이요, 뭔가 목마르고 굶주리며, 원수들로부터 사방의 우겨쌈을 당하여 답답하고 막막한 일들의 연속이다. 이스라엘이 그 믿음없음으로 인하여 매번 실패하고 넘어졌던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의 측량할수 없는 사랑을 입은 여러분 역시도 계속 믿음없음의 신앙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다수의 의견과는 달리 믿음의 시각으로 현실을 꿰뚫어보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여 어떠한 현실 앞에서도 조금도 요동치 않는 신앙인으로 살아갈 것인가.
여호수아와 갈렙을 보라. 그들은 그간 자신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를 기억하였다. 그리고 그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자신을 지키시고 보호하사 여기까지 인도하셨던 것처럼, 이제는 그 약속하신 바 대로 눈 앞의 땅을 약속으로 주실 것을 확신했다. 눈 앞의 대적이 얼마나 크고, 얼마나 강하며, 얼마나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고, 얼마나 발전된 문명을 이루었으며, 저들이 쌓은 성벽이 얼마나 크고 그들이 세운 요새가 얼마나 굳건하든 그런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왜인가?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 이를 또한 이루실 것을 그들은 확신했던 것이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 늘 돌보아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우리가 함께 찬송했던 고백처럼, 그간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며, 그 신실하신 하나님 지금도 살아계심을 확신하고, 그 하나님께서 변함없이 나와 함께 하고 계심을 믿는다면, 지금 당장 눈 앞의 걸림돌들은, 지금 당장 괴로움들은, 지금 나를 짓누르는 마음의 무거운 짐들과 염려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줄로 믿으시길 바란다. 왜? 하나님이 계시기에.
제 아무리 거대한 폭풍이 몰아쳐온다 하더라도 바닷물이 솓구쳐 하늘로 올라갈 수 없고, 하늘이 무너져 땅으로 쏟아내릴 수 없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이 세계의 질서를 여전히 붙들고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 앞에 넘실거리는 거센 풍랑이 날 집어삼킬 것처럼 밀려온다 할지라도, 그것들이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경계를 넘어설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택한 교회와 함께 하시며 그들을 붙들고 계시기 때문이다. 엘리사가 수많은 아람의 말과 병거들에 포위당했어도 담대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군대, 불말과 불병거들이 엘리사 자신을 둘러싸 지키고 있음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모든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 살아계시지 않는가? 택하신 백성들을 능히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다스리시는 우리를 지극히도 사랑하시는 신랑, 예수님이 지금도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시지 않는가? 우리의 구원에 대한 보증으로 우리 마음 속에서 우리를 주장하시는 성령님께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는가? 그러므로 신앙인답게 살자. 현실의 어려움에도 믿음 잃지 않고 하나님 백성답게, 그리스도의 신부답게, 거룩하신 성령의 전 답게 믿음으로 살아가시는 이 자리의 모든 성도 여러분들 되시길 간절히 축원한다.

[기도]

기도하자. 이 세상을 살면서 궁핍함, 목마름, 굶주림, 대적들로부터 우겨쌈을 당하는 것 같은 막막하고 답답한 상황들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안을 열어주셔서 여전히 우리를 지키시고 붙들고 계심을 바라보게 해 주시길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붙들어주셔서 낙심할만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여 요동치 않는 우리가 되게하여 주시기를, 그래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신앙인답게 살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여주시기를, 이러한 제목으로 주여 한번 외치며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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