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이 갑처럼 대우받는 세상
Notes
Transcript
[서론]
여러분이 신고 있는 나이키 신발 어디에서 만들어진 것일까요?
대부분 노동력이 저렴한 동남아시아에서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겨우 몇 달러주면서 우리에게는 몇 십만원에 파는 것입니다.
한때 나이키가 불매운동에 시달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인도네시아 캄보디아같은 동남아시아 어린이의 값싼 노동력을 착취해서 나이키 축구공, 나이키 운동화를 만든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사서 신는 신발때문에 수많은 아이들이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아간 것입니다.
우리가 입는 옷과 생활용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노예제도는 현재 인류 역사에서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형태만 바뀌어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과연 우리들은 하나님 백성으로써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본론]
우선 오늘 말씀의 배경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해 내셨습니다.
그들은 이집트 노예신분이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곧바로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인도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셔서 하나님 백성으로서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들은 먹고 마실 것이 없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양식인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주셔서 그들은 먹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기적으로 목을 축일 수 있었습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도착한 곳이 바로 시내산이라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이 율법 안에는 하나님의 성품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 자유, 긍휼, 공평 이런 것들을 율법 속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대표적인 율법으로서 앞에서 십계명을 알아봤었는데요.
우리가 십계명을 율법의 요약판이라고 본다면 이제 하나님은 세부사항들을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가 어떻게 예배할 것인지에 대해서 가르쳐주셨습니다.
우상숭배하지 말라고 하셨고, 어디서든 흙 제단이나 돌 제단을 쌓아 하나님을 기억하도록 하셨습니다.
이게 세부적 율법의 머릿말, 서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여기까지가 토요일 묵상 본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본론으로서 하나님은 율법의 구체적인 세부사항들을 알려주십니다.
그 첫번째 세부사항이 바로 노예에 대한 지침사항입니다.
노예의 정의가 뭘까요?
노예란 개인의 자유를 박탈당해 다른 사람들의 착취와 억압의 대상이 되거나, 심지어 매매나 양도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노예 제도의 역사를 보면 거의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매우 오랜 세월동안 존재했습니다.
우리가 창세기를 보면 요셉이 미디안 상인들의 노예로 팔려가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때에도 노예제가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노비’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조선시대까지 존재했습니다.
그럴정도로 오랜 세월 노예제도는 매우 보편적인 문화였습니다.
그럼 고대 세계에서 사람들은 어쩌다가 노예가 된 것일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존재합니다.
먼저, 전쟁에서 져서 포로가 되면 노예로 팔려가곤 했습니다.
또는 빚을 갚지 못해 노예로 팔려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물론 인신매매도 존재했고, 부모가 노예여서 자식도 노예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노예제도는 다양한 문화에 오랜 세월동안 존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율법의 본론에 들어가서 처음부터 언급한 것이 노예에 대한 것이었을까요?
중요하니깐 앞부분에서 이렇게 언급하셨을 것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유명했던 바벨론의 함무라비 법전이란 게 있습니다.
아마 세계사 시간에 배우셨을 거에요.
그곳에도 노예에 대한 법이 있었는데 거기는 율법과 달리 맨 뒷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노예는 인간으로 대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소유물로 취급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보통 고대 사회에서 노예에 대한 시각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인 율법은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노예에 대한 법을 맨 앞에 두실 정도로 노예들의 인권에 대해서 신경쓰셨습니다.
왜 일까요?
하나님이 노예의 인권을 중요시 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거 이집트의 노예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들이 노예였던 것을 잊어버리고, 다른 누군가를 또다시 노예처럼 대하길 원치 않으셨던 것입니다.
2절입니다.
‘너희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종살이를 해야 하고, 일곱 해가 되면, 아무런 몸값을 내지 않고서도 자유의 몸이 된다.’
원래 노예면 영원히 노예지, 6년 노예를 계약직으로 하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심지어 노예가 자신의 몸값을 지불하지 않고 풀려나는 길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노예를 6년 후에는 몸값을 내지 않고도 자유인 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노예들을 노예로 다루지 않고 마치 계약직 노동자처럼 다루신 것입니다.
3절도 보실까요?
‘그가 혼자 종이 되어 들어왔으면 혼자 나가고, 아내를 데리고 종으로 들어왔으면 아내를 데리고 나간다’
당시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노예로 팔린 경우가 많았습니다.
소작농을 하다가 흉년이 들면 먹을 게 없어 노예가 되는 길을 선택하곤 했습니다.
노예는 그래도 의식주가 해결되었으니까요.
그러다보니 결혼한 경우에는 아내까지 종으로 들어와 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아내까지 함께 종으로 들어왔으면 나중에 나갈 때 아내와 함께 나가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주인 입장에서 갑자기 2명의 종이 집에서 사라지면 꽤 부담이 되지 않겠습니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들이 6년동안 자신들의 몸값을 노동으로 갚았다고 여기고 자유의 몸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노예가 되고 싶어서 노예가 된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노예가 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그들을 긍휼히 여기신 것입니다.
그럼 우리 사회는 어떨까요?
앞서 말한 것처럼 현대판 노예제도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과거 무한도전에서 노홍철이 조선시대로 돌아가서 포졸 옷을 입고있다가 지나가는 한 회사원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노홍철이 그 사람한테 옛날로 치면 본인의 신분이 무엇일꺼 같냐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 대답이 재미있었습니다.
그 회사원이 ‘노비’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쯤에서 노예의 정의를 다시 한번 볼까요?
노예란 개인의 자유를 박탈당해 다른 사람들의 착취와 억압의 대상이 되거나, 심지어 매매나 양도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밤낮 회사일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노예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제가 예전에 회사다닐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는 토요일도 일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딱 일요일만 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상사분은 일요일에도 고객을 만나 골프를 치더라구요.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나 쉼의 시간이 없는 것을 보며 참 안타까워 했던 적이 있습니다.
과연 우리들은 하나님 백성으로써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내 주변 사람들에게 쉼과 자유를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주일날 보면 가게를 여는 크리스천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가게에 있는게 아닙니다.
자신은 교회에 나와 쉬면서 직원들은 일을 시키는 것입니다.
교회는 가야겠고, 돈은 벌고 싶으니까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을 보십시오.
안식일에 종이나 짐승에게까지도 쉼을 줍니다.
자신이 쉴 때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과 짐승들도 쉬게 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내 자유만 중요한 게 아니라 남의 자유도 지켜줄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쉼을 주고, 아내도 남편에게 쉼을 줘야만 합니다.
부모와 자식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은 항상 가사 노동과 자녀 양육에 시달리는 엄마에게 자유와 쉼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자 이제 4절을 볼까요?
‘그러나 그의 주인이 그에게 아내를 주어서 그 아내가 아들이나 딸을 낳았으면, 그 아내와 아이들은 주인의 것이므로, 그는 혼자 나간다’
만약 주인이 종을 결혼시켜준 경우 아내와 자녀는 주인집에 두고 자신만 나가야 합니다.
왜 일까요?
그 이유는 주인이 손해보는 일은 없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의 아내가 처음부터 주인의 여종이었기 때문입니다.
남종이 여종과 장래 종이 될 자녀들까지 데리고 나가면 주인의 손해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약한 자의 편만 드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약자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두시지만 그렇다고 한쪽편만 드시는 편파적인 분은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공평하고 공정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만약 이렇게 자신만 나가고 나머지 가족들은 종으로 계속 있게 된다면 그 종은 또 얼마나 불행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구제책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5-6절입니다.
‘그러나 그 종이 '나는 나의 주인과 나의 처자를 사랑하므로, 혼자 자유를 얻어 나가지 않겠다' 하고 선언하면, 주인은 그를 하나님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의 귀를 문이나 문설주에 대고 송곳으로 뚫는다. 그러면 그는 영원히 주인의 종이 된다.’
남종에게는 선택권이 있었습니다.
무엇인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유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종은 주인과 아내를 사랑해서 그냥 종으로 남겠다고 선언하면 평생을 종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그 표시로 귀를 뚫습니다.
지금보면 귀뚫는 게 그 옛날부터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 다 귀 뚫으셨다면 옛날같았으면 다 노예입니다.
그런데 과연 종이 이런 선택을 하는 게 쉬운 일이었을까요?
주인이 종을 착취하고 억압했다면 어떻게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주인이 종을 가족처럼 대했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세상을 보십시오.
생산성과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세상에서 직원을 가족같이 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작은 가게에서조차 아르바이트생한테 어떻게든 월급보다 더 많이 일시키려고 합니다.
뉴스를 보십시오.
외국인 노동자들이 노동착취를 당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게 다반사입니다.
최근에는 제대로 된 보호장비나 보호규칙을 만들어 놓지 않아 100톤이 넘는 철판에 깔려죽었던 젊은 청년도 있었습니다.
과연 우리들은 하나님 백성으로써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오늘 말씀처럼 회사가 직원을 착취나 지배의 대상이 아닌 가족으로 대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곳곳에 들어가 조금씩 바꿔나가야 합니다.
이제 여종에 대한 율법입니다.
7절입니다.
‘남의 딸을 종으로 샀을 경우에는 남종을 내보내듯이 그렇게 내보내지는 못한다.’
여종은 7년이 되어도 몸값을 지불하지 않으면 자유를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일까요?
여기서 여종의 경우는 주인의 아내나 첩이 되는 것인데 7년째가 되었다고 풀어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여종이란 단순한 여종이 아닙니다.
당시 너무 가난해서 딸을 시집보낼 수 없는 집에서는 부잣집에 자신의 딸을 종으로 팔았습니다.
이렇게 젊은 여자를 종으로 들이는 경우는 주로 주인이 자기 첩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여종들이 쓸모 없다고 여겨지면 쉽게 매매의 대상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런 그들의 인권을 보장해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이런 율법을 주셨던 것입니다.
8절입니다.
‘주인이 아내로 삼으려고 그 여자를 샀으나, 그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는 그 여자에게 몸값을 얹어서 그 여자의 아버지에게 되돌려 보내야 한다. 그가 그 여자를 속인 것이므로 그 여자를 외국 사람에게 팔아서는 안된다’
주인은 여종을 데려왔는데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곳에 함부로 팔 수 없었습니다.
그 여종의 아버지에게 다시 돌려보내야 했습니다.
모든 계약을 깬 당사자는 주인이기 때문에 그 여종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해준 것입니다.
또한 종이지만 하나님 백성이기 때문에 그 여종을 다른 외국 사람에게 팔아서도 안됩니다.
그러면 진짜 노예가 되버리기 때문입니다.
9절입니다.
‘그가 그 여종을 자기의 아들에게 주려고 샀으면, 그는 그 여자를 딸처럼 대접하여야 한다’
여종이 딸의 신분이 될 수 있는 경우를 말하고 있습니다.
주인이 여종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그 아버지 집으로 다시 보내던지 아니면 그 여종을 자신의 아들과 혼인 시켜야 했습니다.
만약 아들하고 혼인시키면 그 여종은 며느리의 위치가 되는 것입니다.
10-11절입니다.
‘한 남자가 아내를 두고 또 다른 아내를 맞아들였을 때에, 그는 그의 첫 아내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줄여서 주거나 그 아내와 부부 관계를 끊어서는 안된다. 그가 그의 첫 여자에게 이 세 가지 의무를 다 하지 않으려거든, 그 여자를 자유롭게 풀어 주고, 아무런 몸값도 받지 않아야 한다.’
이것을 보시면 종의 의무를 말하는 게 아니라 주인의 의무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노예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에 하나님의 관심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주인이 여종을 자신의 첩으로 받아들였다면 3가지 의무를 지켜야만 했습니다.
먹는 것 입는 것을 책임져야 했고, 잠자리도 해야만 했습니다.
잠자리는 결국 그 여인이 아이를 낳아 후손을 이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면 몸값을 받지 않고 그 여종을 풀어줘서 자유인이 되게 해줘야만 했습니다.
주인이 여종을 사왔다면 하나님은 어떻게든지 주인이 그 여종을 책임지도록 만들었습니다.
[결론]
이제 결론입니다.
과연 우리들은 하나님 백성으로써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처음에 여러분들 중 누군가는 지금은 노예제도 없는데 왜 우리가 이스라엘의 노예제도를 알아야 하나?
이런 생각을 했을 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할 지 발견하게 됩니다.
계급과 신분이 여전히 존재하는 삭막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사회적 약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세상은 갑의 권리를 보장하는 데에만 관심이 많습니다.
법을 만드는 사람, 법을 판단하는 사람들 모두 갑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보니 을의 권리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무시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인 율법은 갑의 권리를 제한하고, 을의 권리를 세워주는데 관심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렇다고 한쪽에만 편파적이지 않고 공정하고 공평합니다.
과연 우리들은 하나님 백성으로써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코메디빅리그에 갑과을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그거보면 갑이 을이 되기도 하고 을이 갑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도 살면서 항상 을이 아닙니다.
갑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을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나도 을로 당했으니까 갑질을 해야 할까요?
그런 생각이라면 이 세상에 갑질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법인 예수님의 사랑과 긍휼을 베풀어야만 합니다.
그런 다카포 식구들이 되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