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6중고등]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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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 4:23-24
제목 :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서론]
[서론]
계속해서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예배’라는 주제로 말씀을 살펴보고 있다. 첫번째 시간에는 ‘예배의 대상 : 영이신 하나님'에 대해 말씀을 전했다.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영으로 존재하셔서 그 자체로 무한하시고, 그분은 오직 말씀을 통해서만 알아갈 수 있으며, 영이신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기에 우리가 예배를 드림에 있어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드려야 한다는 것을 살폈다. 이어서 지난 주에는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에 대해 말씀을 전하면서 ‘예배하다’라는 단어가 ‘절하다, 경배하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하나님께 나의 사랑과 존경의 의미를 담아 나의 모든 것들을 아낌없이 내어드리는 것이 바로 예배라는 사실을 생각했다. 그래서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 참된 예배를 드리는 자들이고, 하나님과의 그 어느 상호작용도 일어나지 않은 채로 예배드리는 자들은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지 않는 자들임을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오늘은 세번째 시간으로서,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에 대해 말씀을 전하려 한다. 이를 통해 아버지께 드리는 참된 예배로 나아가는 모든 양문교회 중고등부 되시길 축원한다.
[예배의 본질적인 두 요소]
[예배의 본질적인 두 요소]
예배에는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가장 본질적인 두 요소가 있다. 그것이 바로 진리와 성령이다. 오늘 본문 23-24절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교사선생님들은 아시겠지만, 예전 한글번역본에서는 이 구절에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다'는 부분을 ‘신령과 진정으로' 라고 번역했었다. 이 말을 얼핏 들으면 ‘세속적으로 하지 말고 신령하게, 건성으로 드리지 말고 진심으로’ 이런 의미를 가진 것처럼 생각할 수 있고, 또 예전 목사님들은 그렇게 설교하시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번역이다. 원래 그리스어 성경에는 “그 영과 그 진리 안에서 예배하다” 이렇게 되어 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진리’와 ‘성령’ 안에서 드리는 예배이다.
지난 주에도 본문의 배경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그간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이 예배에 계속해서 참석했다. 그러나 예배가 여인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해서 예배의 자리에 충실히 참여했다. 그러나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만남을 누리지 못했다. 오늘날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계속해서 주일마다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고는 있다. 열심히 참여는 한다. 그런데 예배가 나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어떠한 영적 교류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는 이유는 분명해졌다. 그것은 무엇인가? 오늘 말씀처럼 성령과 진리안에서 드리는 예배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서 드리는 예배]
[진리 안에서 드리는 예배]
그러면 여기서 이야기하는 진리는 무엇일까? 진리 라는 단어를 사전을 찾아보니 ‘언제 어디서 누구나 동의할 수 밖에 없는 보편적이고도 불변하는 사실’을 말한다. 진리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진리는 상황이나 시대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가령 예를 들어서… 목사님이 보기에 언약이가 참 듬직해보이고 남자답게 잘 생겼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목사님의 생각에 혹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목사님이 보기에 우리 중고등부 회장 민서가 참 귀엽고 예쁘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목사님의 생각에 혹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여기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방유라 총무선생님을 예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100년 뒤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 양문교회 교회당이 튼튼하게 지어져서 10년 20년, 100년 앞으로도 영원할 것 같이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건물도 결국 녹이 슬고 금이가며 노후가 될 것이다. 교회 앞에 있는 나무도, 큰 비석도 결국에는 사라진다. 이 땅에는 영원한 것이 없다. 불변하는 것이 없다.
또 예를 들어서, 돈이 많으면 행복하다고 한다. 그런데 여러분, 정말로 돈이 많으면 행복할까? 물론 너무 가진 게 없어서 가난한 사람들과 비교한다면 형편이 더 나아보일 수는 있다. 그러나 정말로 행복할까? 사회적으로 자살률이 가장 높은 계층이 중산층이라고 한다. 먹고 살만하다. 가진 것도 넉넉하다. 그러나 꼭 그렇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어려운 이웃들을 잘 보살펴주면 반드시 보상을 받는다? 이것도 꼭 그런 것만은 아닌것 같다. 물론 선을 행하면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는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오히려 이 세상은 남을 등처먹고 남의 것을 빼앗는 자들이 더 잘 사는 것처럼 보이기 도 하다. 결국 이런 것들은 진리가 아니다. 하나의 원리요, 삶의 지혜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진리는 될 수 없다.
[진리란 무엇인가?]
[진리란 무엇인가?]
시대나 상황이나 지역을 막론하고 결코 변하지 않는 사실이 진리라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 이 세계는 전부 유한하다. 변하기 마련이다. 이 세상에 속한 것 중에는 영원한 것이 없다. 수천년 동안 밝히 지구를 비추던 태양도 어느 순간에는 그 빛을 잃어버릴 것이다. 진리라고 불릴 만한 것이 이 세계 가운데에는 없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진리’란 무엇인가? 영원부터 영원까지 결코 변하지 않는 이 진리는 바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다. 하나님은 이 모든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어디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지만, 그것은 너무 희미하기 때문에 그것만 보아서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무엇인지 발견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모든 지식을 성경으로 우리에게 남겨주셨다. 성경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지식도 알 수 없고,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아 마땅한 죄인이라는 것도 알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을 마련하셨으니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길이라는 것도 알 수 없다.
[진리가 선포되어야 할 예배시간]
[진리가 선포되어야 할 예배시간]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그 시간이 진리가 선포되는 시간이어야만 한다. 그래서 목사에게 가장 중요한 직무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진리의 말씀을 예배자들에게 선포하는 것이다. 설교자의 관심사는 여기 앉아 있는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과 여기 모인 사람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에 있어야 한다. 여러분들이 저에게 각기 바라는 점들이 있는 줄로 안다. 설교 시간에 개그도 좀 했으면 좋겠고, 장난도 살갑게 쳤으면 좋겠고, 내 고민이나 내 이야기도 좀 들어주었으면 좋겠고 등등. 바라는 점들이 각기 많으리라 생각하며, 저 또한 그 부분들을 다 들어드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을 아주 완벽하게 수행한다고 할지라도 한 가지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정말로 최악의 목사가 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설교를 통해 진리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사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끊임없이 진리를 찾고 그 진리를 발견하고 그 진리 를 바르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한 주간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 시대의 상황을 보라. 동네마다 십자가가 없는 곳이 없다. 예배당은 많이 넘쳐날 정도로 많이 생기고 있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진리를 듣기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여 하나님보다 자기 만족을 위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전하는 자도 말씀을 전하기는 하지만 진리에 대해 관심이 없고, 진리에 대한 확신도 없이 설교에 임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처한 가장 고통스러운 상황이다. 예배하는 자는 반드시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만 한다. 왜?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배에 참여하는 자가 진리에 대해 무지하다. 진리를 사랑하기는 커녕 진리에 대한 관심도 없다. 말씀을 전파하는 자도 진리에 대해 무감각하고, 진리를 진리로 확신하지 못한 채로 설교한다. 그렇게 드리는 예배가 과연 참된 예배가 될 수 있는가? 그 예배를 통해 삶이 바뀔 수 있는가? 그 예배를 통해 신앙의 결실들이 맺혀질 수 있는가? 그 예배를 통해 진리이신 하나님을 더욱 믿고 따를 수 있는가? 그렇기에 여러분, 바르고도 참된 예배를 드리길 원한다면 두 가지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라. 먼저는 여러분 자신이 진리를 사랑할 수 있기를, 하나님에 대해 말씀하시는 성경을 사랑할 수 있기를, 그리고 여러분에게 진리를 선포하는 저를 비롯한 설교자들이 바르게 진리를 선포할 수 있기를, 그 진리를 확신하며 불을 토해내듯 진리를 선포할 수 있기를 기도해 달라. 여러분들의 기도가 필요하다. 특별히 대표기도를 맡은 학생들, 예배를 위한 기도를 빼놓지 말라. 바른 예배자가 될 수 있도록, 그리고 목사로부터 바른 진리가 예배가운데 올바르게 선포될 수 있도록 기도하라. 이와 같이 간절하게 기도할 때 우리의 바른 예배가 회복될 것이다.
[성령 안에서 드리는 예배]
[성령 안에서 드리는 예배]
두번째로 예수님은, 성령 안에서 드리는 예배에 대해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던 사람을 바꾸어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만들어주는 이 위대한 힘은 오직 진리를 통한 성령의 역사이다. 진리의 말씀이 우리 마음을 비추어 내 안에 숨어있던 죄를 알려주고, 그 죄로 인한 비참함을 깨닫게 하며, 이제는 돌이켜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깨뜨려지고 변화되는 성화의 삶을 경험하게 하신다. 이것은 진리의 말씀을 사용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로 인하여 이루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예배당에 모이지만 또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난다. 우리 중고등부만 보아도 많은 친구들이 전도되어 교회로 왔다가 또 쉽게 교회를 떠나기도 한다. 왜 그들은 교회를 떠나는가?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여러분들이 예배의 자리 가운데 앉아 있지만,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지 않는다면 언제든 여러분들의 위치는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여러분들이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예배는 여러분의 삶에 아무런 선한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들이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갈급해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과의 그 어느 교류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왜? 이 놀라운 진리의 힘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정성껏 예배를 준비하고, 내가 아무리 예배의 감격에 빠지고 싶어도, 예배시간에 진리의 말씀이 없다면, 또는 선포되는 진리의 말씀을 내 마음 가운데 믿음으로 받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예배를 드릴 때 집중해서 말씀을 들어야한다.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지성과 모든 감각을 집중시키며 들어야하는 이유는 오직 한가지이다. 그 진리를 마음에 새기기 위해서이다. 예배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한 채로 자신을 방치한다면, 선포되는 그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된다.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다고 하는 것은 단지 설교자의 말을 집중해서 듣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말씀 이면에 잠겨서 왜 이 시간 이 말씀을 주시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도 함께 느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설교에 귀를 기울이는 그 시간에도 영혼으로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나는 어리석은 자이오니, 이 시간 주님이 나의 어두운 마음에 주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을 떠나가기 쉬운 나의 죄악된 마음을 그 진리에 붙잡아 매셔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을 때, 이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참여해야 한다. 그 때에 성령께서 우리 마음 가운데 역사하셔서 그 말씀이 우리의 영혼에 비로소 들리게 하신다.
성경은 믿음이 들음으로 생긴다고 말씀한다. 바른 진리의 말씀이 예배 가운데 선포될 때, 그리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그 선포되는 말씀을 받아 먹을 때, 성령께서는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그 말씀의 깨달음 안에서 우리는 이전에는 누리지 못했던 복음의 아름다움과,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이다. 반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있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예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면 그 마음이 끊임없이 변하지만 예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예배를 계속 드리게 되면 그 마음은 정반대로 굳어지기 시작한다. 정말 마음이 굳어진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서 이 세상 속에서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에서 늘 형식적으로 예배드리는 사람 가운데 있는 것임을 기억하라. 예배를 통해 그 어느 양분도 받아먹지 못하는, 메마른 심령들이 바로 굳어진 자들이다.
[결론]
[결론]
주 안에서 사랑하는 양문교회 중고등부 여러분, 진리를 탐구하며, 그 진리를 설교로 잘 녹여내어 바르게 선포하기 위해 설교자는 온 마음을 다해야 한다. 사람들의 인기와 성공신화에 눈이 멀어 진리를 왜곡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가슴 가운데 충만하게 하시는 진리를 불을 토해내듯 바르게 선포하는 자가 바로 말씀봉사자인 목사이다. 이 사역을 위해 여러분들은 저를 위해 기도해 달라. 여러분들이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듯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 달라. 우리 양문교회의 중고등부 담당 목사가, 그리고 우리 양문교회의 모든 목사들이, 사람의 인기를 위해, 사람의 즐거움을 위해, 설교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바른 진리를 선포할 수 있도록, 그 진리를 설교로 잘 녹여내어 바르게 선포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
또한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위해 기도하라. 일주일에 단 하루, 주일, 거룩한 예배를 드리는 날에, 그냥 아무런 생각없이, 기대 없이, 그저 습관적으로, 형식적으로, 마음이 텅 비어있는 빈껍데기로서 몸만 예배당 안에 왔다 가는 것이 아니라, 선포될 진리의 말씀을 내가 간절하게 사모하며, 그 말씀을 내 마음과 내 영혼에 새겨듣길 원하고, 그 진리가 내 삶을 변화시키고 그 진리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길 간절히 원하는 바로 그 예배자가 여러분 자신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하라. 우리는 이러한 예배 속에 부어주시는 성령님의 은혜로운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간절히 소망한다. 이 자리의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런 예배자들이 되길 축복한다. 이런 예배를 바르게 드림으로서 지금도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길 축복한다. 여러분들이 이런 참된 예배생활 속에서 죄를 발견하고, 거룩을 열망하며, 삶이 변화되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공급받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자들이 될 수 있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