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시편 14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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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4편은 애가 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나온 애가들과 다른점은 앞에서의 애가는 시인의 상황의 고통, 고난에 대해 하나님꼐 부르짖는 애가라면, 14편의 애가는 시인이 볼 때 이 땅에 악한 사람들이 만연해 있는 것에 대해 슬퍼하는 애가입니다.
시인의 눈에는 이땅에 하나님을 알지못하고 하나님이 없다 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만연하며 그들이 기세등등하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슬퍼하고 있는 것입니다.
14편의 표제를 보면 다윗이 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재밌는 것은 이 어리석은 자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나발”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나발이라는 단어… 즉, 어리석은 자의 표본이 되는 사람이 바로 사무엘상 25장에서 다윗을 대적하였으며 그에 대한 심판을 당한 나발이라는 인물을 우리는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어리석은 자들의 주요 특징은 이들이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습니다.
잠언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잠 1:7)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지식없는자, 다시말하면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그럼으로 인하여 어리석음과 도덕적인 타락을 그들의 삶에서 행하는 자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2절과 3절에서는 인간들의 특징을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구하는 의로운 사람을 찾으면서, 하늘에서 사람들을 감찰하시고 살펴보시는데… 3절에서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하나님을 구하지 않고, 사람들은 하나님에게서 달아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니 그들의 삶이 선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 땅의 어느누구도 하나님을 찾는 자가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비록 이 시에서 시인은 하나님을 찾는 자로 나타나지만 그만큼 이 땅에 하나님을 찾는 의인의 모습을 찾기 힘들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모습은 창세기 6장에서 나타나는 노아시대의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나게 합니다. 창세기 6장 12절에서는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라고 성경은 진술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부패한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였음을 우리가 생각할 때 이 마지막때에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의 지혜를 드러내고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4절에서 보면 이러한 어리석은 자들은 의롭고 가난한 자들을 박해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평소에 먹는 밥처럼… 의롭고 가난한 자들을 박해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일상적입니다. 이들이 이렇게 너무나 당연하게 의로운 자들을 괴롭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1절에서처럼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의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지만 이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였을 뿐 아니라 선을 행하는 자들을 압제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이 의로운 자들과 함께 계신다는 사실에 두려워 떨게 될 것입니다.
시편 14편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악인들이 세상에 너무 많고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음에 시인이 슬퍼하며 기도하는 시입니다.
악이 이 땅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이 고대 이스라엘에도 있었고 오늘날도 그렇게 세상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악이 이 땅을 지배하고 세상을 호령하는 것 처럼 보이는 현실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에서 멈추지 않고 악인들은 의인들을 입제하며 핍박하기 까지 합니다. 그러한 핍박을 당하는 인물 중에는 시인도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현실에서도 시인의 기도는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결코 시인의 기도는 절망으로 끝나는 경우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인은 의인의 반열에 있는 자이기 때문에 지식의 근본이 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시편기자는 7절에서 구원을 위한 소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구원은 악인들이 득세하는 세상에서 의인들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의 날이 언제 올는지 알지못합니다.
최종적 구원의 날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셔서 모든 악을 심판하실 때이겠지만 또한 우리가 처한 어려움과 고난과 악인들에 의해 당하는 핍박이 있는 현재의 상황이 해결되는 것 또한 작은 의미에서의 구원의 날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구원의 날이 언제 올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시인은 확신합니다. 그날은 반드시 온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된 곳에서 돌이키실 날….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즐거워할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현재 우리가 당하는 상황과 환경 가운데 함께하시며 그 일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하시고 우리의 기도 가운데 응답하시는 날 그것은 우리의 삶에 나타나는 구원의 날이 됩니다. 또한 그러한 응답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결국 최종적인 심판의 날…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을 기대하고 소망하며 살게 될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사는 하루 되길 바랍니다. 반드시 주님께서 우리의 삶에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며 우리가 즐거워하고 주님을 찬양하게 하실 그 주님의 뜻과 방법과 때를 기대하고 소망하며 오늘 하루도 하나님을 아는 자처럼…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확신하는 의인의 삶을 살아가며 마지막때가 가까워지는 이 땅에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를 드러내는 삶을 사시실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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