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9.26일 대예배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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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의 물가로 나가라

로마서 15:1-13
지난 주에는 산으로 갔으니까 이번주는 물가로 나가보기 원합니다. 요즘 같이 어디를 가지 못하는 상황속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제목인 것같습니다. 그림 하나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아마 보신 분들도 많겠는데 여러분은 이 그림에서 보여지는 것이 무엇입니까? 젊은 여인입니까? 아니면 나이든 할머니입니까? 흔히들 착시 그림으로 알려진 이 그림은 사람들이 보는 대상의 초점에 의해 달리 보입니다. 심리학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론이 있는데 그것이 뭐냐면 게슈탈트 이론이라는 것입니다. 피사체를 인식하는데 있어서 관심을 갖는 전경에만 집중한 나머지 전제적인 배경은 보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보고 싶은 것만 집중해서 보기 때문에 전체를 보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요즘 시대를 살아가면서 사람들한테 요즘 살기 어떻습니까?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살기 힘들다고들 이야기합니다.
시드니에서도 있었지만 멜번에서 일어나고 있는 항의집회를 보며 참 마음이 무겁다는 생각을 했습니. 몇달 이상 일년이 넘는 기간동안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락다운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피폐해져 가고 소망을 잃어가게 되는지 모릅니. 정말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을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앞을 예상하기 힘든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살기 어떻냐고 물어보면 당연히 대답은 쉽지 않고 어렵다고 이야기 할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펜데믹으로만 야기된 문제만이 아닐 것입니다.
저는 얼마 전에 딩크족이란 말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딩크란 말이 뭐냐면 Double Income, No Kids 젊은 부부들이 맞벌이하면서 벌은 수입으로 아이를 갖지 않고 그들이 즐길 수 있는 삶의 영유를 최대한 즐기며 생을 마감하고자 하는 풍조라고 합니다.
미국에서 엄청나게 유행했는데 우리나라도 현재 남자는 73% 여성은 82%가 딩크족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출산률이 문제라고 하는 이유중 하나일지 모릅니다. 이것은 어찌보면 경제상황과 여러가지 사회 상황과도 맞닿아 있는데요 아이를 낳아봤자 고생만 할 것 같고 그 아이가 자라서 살아갈 나라의 환경들이 소망이 없어보이니까 아예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너무나 놀라운 것은 아까 말한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남 녀의 퍼센테이지는 1990년대 우리나라가 전쟁이후로 가장 경제적으로 힘들었다는 IMF때보다 3배나 되는 수치라고 합니다. 분명 경제는 그때보다 훨씬 나아졌다고 하고 선진국 반열이라고 말은 하는데 사람들은 더 이상 소망이 없다고 말합니다.
정말 소망이 없는 세상과 사회를 우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저와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정말로 소망이 없고 비극적인 미래만 존재하는 사회일까? 저는 이것이 게슈탈트 이론을 생각 해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기 때문에 전체의 것을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 내가 관심있고 가지거나 얻고 싶은 거에만 관심을 갖기 때문에 전체의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지요. 결국 전경만 보고 배경은 보지 못하니 젊은 여인의 그림보다는 할머니의 그림만 보이는 것입니다. 삶이 절망적인 것으로만 보이고 그 안에 있는 소망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분은 지금 절망을 보고 계십니까? 아니면 또다른 소망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그런면에서 오늘 본문은 우리의 삶 가운데 소망이 있고 그 소망 가운데 살아가려 하는 성도들이 알아야 할 몇가지 사실에 대해서 우리에게 큰 은혜를 주고 있습니다.

연약한 자의 믿음을 돕는 자가 되라 1절

저는 단호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 믿음이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이 분명이 있습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내눈에 주님밖에 안보이는 사람입니다. 내 눈에 주님밖에 안보이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소망가운데 살아갈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께서 빛도 없고 좌절과 절망뿐인 우리 인생가운데 참된 소망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과 동행하며 나가는 길이 남들 볼때는 거친 들판을 걸어가는 것 같아도 .. 넓은 길 놔두고 좁은 길을 사서 가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에게는 참된 영원한 생명게 주신 주님을 바라보며 소망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내 아버지께서 나를 영원까지 인도하시고 나를 도우신다는 이 소망이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나를 앞을 향해 걷게 합니다. 저는 이것이 소망가운데 사는 사람이요 믿음이 강한 사람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믿음이 강한 사람과 믿음이 약한 사람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교회안에는 믿음이 강한 사람만이 있냐? 믿음이 약한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믿음이 강한 사람이 믿음이 연약한 사람의 약점을 담당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믿음이 연약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주님 안에 소망을 두고 믿음 가운데 살아가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즉 주님의 말씀따라 믿음따라 살아가는 것이 힘들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죠. 로마시대의 초대교회안에 음식문제 즉 우상에게 드려진 음식을 먹야 되냐 말아야 되냐? 또는 절기 준수 문제 꼭 유월절이나 칠칠절같은 절기를 지켜야 하느냐 로마에 살기 때문에 그날이 공휴일도 아니고 다들 일해야 하는데 … 먹고 살기 힘든데 다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가? 이런 저런 이유로 교회 안에 분란이 있었습니다. 바람 잘날이 없었습니다. 믿음가운데 살려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안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지만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은 아직도 그리스도 안에 참된 소망을 두기 보다는 세상가운데서 소망을 찾으려는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그렇습니까? 그것이 그들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피부에 와닿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믿음 따라살기에는 현실의 장벽이 너무나 높아보이고 말씀 가운데 살아 간다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아 보일 때가 많다는 것이죠.
그래서 때론 믿음이 강한 사람이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을 정죄하고 탓하게 됩니다. 너 그렇게 살면 안돼 하나님 따르는 사람들이 그렇게 살면 정말 못써…심지어는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 교회을에서 떠나가게 만드는 일까지 만들었습니다.
바울은 믿음이 강한 사람이 연약한 사람의 약점을 담당하라고 말합니다.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약점이 무엇입니까? 원어에서 찾아보니 도덕적 힘이나 용기나 의지가 결핍된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하며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는데 그렇게 살아갈 용기나 의지가 연약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 보면 어떻습니까? 답답하죠? 맨날 부정적인 이야기만 했샀고 어두운 이야기만 합니다. 이건 이래서 못하고 저건 저래서 못한다고 합니다. 신앙의 진일보가 없는것처럼 보입니다. 소망이 보이지 않으니까 언제나 현실적이고 상식적인 삶만을 살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바라볼때 자칫 잘못하면 믿음이 강한 사람안에서 무엇이 날갈 수 있습니까? 자기 의가 나갑니다. 본문에서는 자기를 기쁘게 한다고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나는 하는데 왜 너는 못하냐? 하며 정죄하고 타박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의의 가르침과는 다른 것입니다. 믿음이 연약한 사람에 대한 정죄는 결코 그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의가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누가복음 6:37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본문에서 다른 사람의 약점을 담당하다라는 참고 인내 하라는 말과 같습니다.아직 믿음이 약하고 소망의 주님을 온전히 볼 수 없으니 참고 기다리며 그가 온전히 주님 가운데 소망을 바라볼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도와 주라는 이야기 입니다. 언제까지요? 그의 믿음이 강해질때까지입니다. 생각해봅시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바라보실때 얼마나 답답하셨겠습니까? 십자가의 엄청난 사건이 다가오는데 한자리 해먹겠다고 자기 어머니까지 불러서 예수님의 좌우자리에 앉혀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주님과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자신있게 말했는데 유다는 은삼십에 예수님을 팔아먹고 … 베드로는 다른 제자는 모두가 떠나가도 자신은 주님과 함께 죽겠다고 하는데 닭울기 전에 세번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오죽했으면 오죽 답답하셨으면 한마디 하셨습니다. 귀신 들린 애를 데려왔는데 제자들이 예수님이 축사하시는 것 흉내를 냅니다. 그런데 오히려 귀신에게 놀림을 받습니다.
마가복음 9:19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예수님은 믿음의 약한자의 약점을 담당하십니다. 지속적으로 참고 인내하며 계속 기도와 말씀으로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언제까지요 그들이 성령받고 변화받을때까지!
교회 안에 연약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믿는다고 하는데 아직도 그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해? 아직도 세상적인 걱정과 근심 가지고 헤메고 있어? 아직도 결단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게 멈춰 있어? 분명 우리 입과 마음속에서 정죄함이 나갈 수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정죄함이 넘치는 공동체는 소망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 많다고 생각되어지는 사람들이 가기에는 결코 만만치 않은 너무나 함께 하기 어려운 밝은 곳이라고 생각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소망을 보러 갔다가 다시 더큰 절망만 보게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인내와 위로가 넘치는 공동체가 되라 5절

3절에 주님은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꼐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모든 비방과 모욕을 다 받아 들이심으로 죄인된 우리가 영적으로 소생 할 수 있도록 도우셨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참고 인내하심으로 우리에게 위로와 새생명을 주셨다 . 마치 어린양이 제단에서 죽임을 당하여도 큰소리 내지 아니함과 같이 모든 것을 참아주고 인내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로하셨다는 것입니다.
5절은 말합니다.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그리스도 안에 참된 소망을 보지 못하고 세상적인 가치관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은 언제나 부정적인 이야기만을 합니다.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이 보이는 가장 큰 특징중에 하나가 언제나 상식선에서만 생각하고 상식선에서만 말하려고 합니다. 물론 상식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상식을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창조세계의 많은 부분이 상식적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상식안에 갇혀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상식선에서만 믿으려고 하며 상식선에서만 따르려고 하는 사람은 십자가를 온전히 질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연약해서 우리에게는 능력이 되는 십자가가 때론 미련해보이기 까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소망이 안보이고 울타리 안에 있어도 여전히 불안하고 답답한 것입니다.
. 그러나 그리스도안에서 먼저 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믿음이란 것은 상식을 초월한 영원한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믿음이 연약한 사람은 아직 이 상식을 초월한 영원한 것에 대한 범주를 이해하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했으니 언제나 결정적인 순간에 약점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니 언제나 환경에 영향을 받고 상황에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서 8:24-25의 말씀을 깨달은 사람은
로마서 8:24-25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은 분명 소망에 대해서 이야기 할때 많은 부분에 있어서 분명 부정적 일 수 있습니다. 교회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미래를 이야기할때나 앞날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도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은 부정적인 이야기를 알 수 있습니다. 상식 선에서만 이야기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러한 상황속에서 믿음이 강한 사람들과 믿음이 약한 사람들 사이에 분쟁이 나서 교회의 분열이 일어난다면 … 하나님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합니다. 바울은 이야기합니다.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믿음과 사랑가운데 서로를 인내하고 위로해서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리게 하길 원하신다고 말합니다.
교회는 분명 믿음이 강한 사람들이 이끌어 갈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연약한 자들도 인내와 위로와 사랑으로 격려하며 함께 가야하는 공동체적 책임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의 말씀을 바라보길 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에베소서 1:17-19
먼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참된 소망을 체험한 사람으로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소망이 얼마나 풍성하고 놀라운 것인지를 알게 될떄까지 끝임없이 참아주고 인내하며 믿음가운데 나가는 것이 교회 공동체인줄 믿습니다.
실제적으로 그렇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의 교회 사역이 어렵다 힘들다 위기다라고 말하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 하는지 몰라요 .실제적으로 각양의 출석률이나 데이타등을 봐서도 앞날이 어두워보이고 소망이 없어보일지도 모릅니다.
교회에서도 이런 부정적이고 소망이 없어 보이는 말들을 하는데 하물며 세상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떻겠습니까? 자녀에 대한 소망도 잃어버리고 내일에 대한 소망도 잃어버려서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내일에 대한 소망을 포기한채 의미없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까?
교회는 소망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어두워져 가는 세상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라고 부르신 진정한 소망공동체입니다. 누구든 소망이 없고 삶에 자신이 없던 사람들이 교회와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말씀가운데 또한 성령의 은혜 가운데 깨닫고 .... 그들의 인생이 바뀌어 믿음이 강한 사람으로 그리고 그 소망의 생물을 마시려고 소망의 물가로 나가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모여드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누가 교회입니까? 저와 여러분이 교회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을 통해 그래도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 그래도 우리같은 교회가 있으니까 소망은 아직 있다라는 말이 들릴때 크던 작던 주님께서 부르신 그 부르심에 소망에 참여하고 있음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교회가 그런 교회이며 앞으로 더욱 그런 교회가 되어 갈줄 믿습니다.
누가 소망된 교회입니까? 누가 믿음이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시겠습니까? 누가 인내와 위로와 사랑으로 사람들을 품어 믿음이 강해지도록 섬기며 도우시겠습니까? 바로 저와 여러분인줄 믿습니다. 한마음과 한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부르심을 받을 줄 믿습니다.
시드니에 얼마나 교회가 많습니까? 그런데 우리들 중에 이교회 저교회 가봐야 다 똑같으니까 그냥 이교회 있는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만큼 믿음이 연약한 소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이 교회로 부르시고 공동체로 소망가운데 나가게 하시는 이유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이 교회로 부르셨을떄는 우리 교회를 통해서 소망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를 더욱 체험해서 여러분의 믿음이 더욱 강해지길 위해 부르셨습니다. 그리하여 어두워져 가는 이 시대에 빛과 소금의 역할 감당케 하시려고 부르신줄 믿습니다. 연약해져 있던 믿음이 더욱 뜨거워지고 식어졌던 은혜가 다시 회복되고 보이지 않았던 소망이 다시 철철 넘치게 하기 위해 부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서 주님의 소망된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은혜가운데 회복되고 주님의 백성으로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를 영화롭게 하는데 힘써 가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저는 확신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소중하고 교회를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 특별한 소망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이 교회를 가나 저교회를 가나 여전히 믿음이 연약한채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해야할 일이 무엇입니까? 믿음이 강한 자로서 ! 즉 주님의 우리를 부르신 비전과 사명을 깨달은 사람으로써 그 연약한 자들이 믿음 가운데 강하고 올바로 설 수 있도로 끊임없는 인내와 사랑과 위로와 섬김으로 세워 가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13절은 이야기합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바라보는 믿음가운데 서있으면 우리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우리에게 믿음가운데서 충만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늘 소망이 넘치게 하십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무리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된 소망이 있습니다. 이말은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참된 소망이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환경과 상황이 떄로는 우리를 억누르고 힘겹게 할 수는 있으나 결코 우린 그 소망의 물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왜그렇습니까? 하늘에서부터 부어지는 참된 영생의 소망과 하늘의 특별한 소망의 맛을 이미 봐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의 물가에서 흐르는 물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날마다 새롭게 할 것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보이게 할것이며 낙담하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용기와 힘을 줄 것입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는 사람들의 사람들의 말에 동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들은 결코 전경만 보는 사람이지 배경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신 크고 넓은 그림을 못보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빅픽쳐를 절대 못보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향 빅픽쳐가 있단 말입니다. 우리교회를 향한 빅픽쳐가 있단 말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눈을 열때 우린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께서 주시는 소망을 바라보며 힘차게 나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불안과 절망과 부정적인 말들을 하는 사람들 주변에 계십니까? 지금은 정죄할때가 아니라 지금은 우리가 소망을 보여줄때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을 통해서 빛된 소망을 보여줄떄입니다. 인내와 위로와 사랑과 섬김으로 그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도록 쓰임받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입니다. 오로지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 삶가운데 소망이 넘치게 하시는 그 은혜를 체험하기를 소망하며 한 주간도 믿음가시기 바랍니다. 믿음 가운데 소망의 넘치는 말과 기도를 하나님께 마음껏 올려 드려서 우리 영혼이 믿음의 하강 기류가 아니라 상승기류를 타서 날아오르는 귀한 믿음의 한주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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