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낙원, 새 에덴동산

요한계시록 강해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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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 어린 시절 주일 예배를 마치고 모두가 편안하게 쉬고 있는 주일 저녁이 되면 저희 가정은 한 기도원에 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이곳은 제가 너무나도 아파 병원에서 조차도 노타치를 외치며 손을 뗀 상태였을 때 신유의 집회가 있다고 누군가 알려주어 마지막 보루로 찾아갔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병원에서도 못 고친다고 하던 병의 증세가 심해지기 이전으로 호전된 것을 보고 신기해했던 경험을 했기에 저희 가정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심정으로 주일 저녁마다 곤지암 쪽에 있는 기도원을 매주 찾아갔습니자. 제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그곳에 가는 것이 줄고, 아예 가지 않게 되었지만, 어린 시절 주일저녁에 대한 저의 추억은 기도원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저는 그곳에 온 아이들과 놀았던 추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곳에 가는 것이 저의 입장에서는 싫었던 적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일 저녁마다 하는 주말 연속극이 너무나도 재미가 있는데, 그것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토요일 날 한창 재미있게 봐두면, 주일날 내용을 알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한창 KBS 주말연속극에서는 ‘젊은이의 양지’를 하고 있었습니다. 토요일 날 마지막 회를 앞두고 배용준이 자신의 가정을 몰락시킨 사장을 앞에 두고 끝이 나버렸습니다. 그리고 주일 저녁마다 가는 기도원에 가게 되어 저는 아직까지 젊은이의 양지의 마지막회 내용을 알지 못합니다. 처음부터 재미있게 봐왔지만, 어떤 결말이 났는지 보지를 않았으니 알 수가 없었던 것이죠. 아직까지도 궁금합니다.
이처럼 모든 이야기에는 처음과 끝이 있습니다. 처음의 내용 만 알아도 마지막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을 알아도 처음을 알지 못하면 모든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한계시록은 성경의 마지막 부분을 다루고 있기에 성경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읽고, 누려야할 아름다운 성경일 것입니다. 어떻게 성경을 읽을 때 마다 40명의 저자들이 성령의 영감에 의해 일관성과 통일성이 있게 기록해 나갔는지 신기합니다. 그리고 그 여정은 수많은 죄의 영향이 있지만,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가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연구할수록 창세기 1-2장과 요한계시록 21-22장은 창조와 완성(새창조로)으로 서로 평행하며, 연관이 깊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죄로 말미암는 저주가 없는 내용을 찾아보라면 4장을 뽑을 수가 있는데, 바로 말씀드린 4장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완성된 에덴을 통해 소망을 얻고, 더욱 주를 믿는데 힘쓰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1) 계 22:1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생명수의 강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저는 생명수의 강이 흐르는 이 모습을 보면 에덴동산이 떠오릅니다. 에덴으로부터 발원한 강으로부터 에덴에 생명을 주고, 모든 생물로 자라나게 한 강이 새롭게 창조된 이 지역에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 강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내리는 생명수로 표현을 합니다. 이 생수는 무엇일까요? 이 생수는 바로 성령을 뜻합니다. 성부와 성자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의 교재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을 뜻하며, 우리의 심령에 거하셔서 하나님이 누리시는 참된 교제와 사랑을 우리도 누릴 수 있도록 하시는 성령입니다. 생명수이신 성령이 우리의 심령에 거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을 참되게 알게 될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성전으로부터 흐르는 물이 사방으로 흘러나와 죽었던 땅과 바다를 살린다고 예언하였습니다. (겔 47:8-9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9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이 말씀은 죽은 바다가 살아나고, 죽은 땅이 살아나 열매를 많이 맺음 같이 영적으로 죽어있는 우리들에게 성취가 되어 성령으로부터 영원히 솟아나는 영원한 생명수가 되어 성령으로 솟아나 죽었던 우리의 심령을 되살리고, 우리를 통해 죽은 영혼과 땅을 되살리는 일을 할 것을 예언 한 것 입니다. 이 생명수 샘물이 우리에게 흐를 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흐르는 참된 만족과 생명을 누릴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명수 샘물을 마시지 아니하였을 때, 세상의 것으로 채우고, 마시고 하지만 그들의 영혼에 참된 만족과 생명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사람이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입니다. 그녀가 가장 채우고 싶어 했던 것은 남편이었고, 그것마저도 채워지지 않아 5명의 남편을 둘 정도로 갈급한 여인으로 묘사가 되는데, 예수님은 그녀에게 필요한 것을 말씀하시며, 자신이 바로 사람에게 참된 만족과 생명수 샘물을 채워줄 ‘그 사람’임을 말씀하십니다. (요 4:13-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님께서는 명절날 모든 사람 앞에 서셔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하시며 자신이 참된 생명수의 근원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에덴에서 쫓겨난 우리는 이러한 생명수 샘물을 마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완성된 에덴으로서 21-22장은 이 물이 풍성하게 흐르는 곳이라고 말씀하며, 이 곳이 우리가 들어가게 될 본향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한 이 완성된 에덴은 우리가 미래에만 가게 될 곳이 아닌 믿음으로서 누릴 수 있는 참된 영적 낙원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눈을 열어 하나님이 보여주신 낙원에 믿음으로 거하여 우리의 삶에 생명수가 닫지 않은 부분까지 닿게하여 생명을 얻고 회복을 얻는 영동제일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강이 길 가운대로와 나란히 흐르더라(2절)
이 물은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흐르는 물이었습니다. 이 보좌로부터 흐르는 물은 하나의 상징, 은유로 사용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이 누리시는 교제로부터 흘러나오는 기쁨과 사랑, 생명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계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그래서 이 생명을 흘려보내주셔 우리로 하나님께서 누리시는 교제와 사랑에 참여하도록 우리를 초청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적용 : 여러분의 삶에 메마름과 고통이 있지 않으신가요? 믿음으로 하나님의 교제가운데 거하심으로 참된 회복과 만족함을 얻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길 가운데로 흐르는 강 사이에 무엇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강 좌우에 바로 생명나무가 있습니다. 갑작스런 생명나무의 등장은 우리로 다시금 에덴으로 가보게 하는데요. 본문을 함께 찾아서 읽어보겠습니다. (창 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오늘 본문에 나온 생명나무의 등장은 지금 보고 있는 이 곳이 바로 생명나무가 있는 에덴동산임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동산은 이전과는 다른 완성된 에덴동산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완성된 에덴에 우리를 다시금 초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창 3: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그들이 죄악을 진 상태에서 영생을 할까 염려함이셨습니다.
그런데 모두에게 금지가 되었던 생명나무의 열매가 달마다 맺히며, 12개가 열려 모든 약속의 자손들이 먹을 수 있게 열렸습니다. 여러분 열매는 철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열매는 보좌로부터 흐르는 생명수로 달마다 열려 모두가 먹을 수 있게 되었고, 나무의 잎사귀는 사람들을 고치는 약재료가 되었습니다.(겔 47:12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이 약재료는 모든 병든 자들을 고치고, 만국을 고치는 효능이 있다고 합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성전으로부터 오는 생명수와 생명나무를 통해 자신도 소생하며, 만국을 소생케하는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막혔던 성전, 에덴은 이제 동서남북 3개씩 12개가 사방으로 열어두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나 들어오게 열어두셨습니다. 그리고 생명나무가 있는 에덴을 우리에게 다시금 초청하셔서 우리로 영생하며 누리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성전인 에덴에 참으로 거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이 성전에 거하여 고난 가운데서도 영생의 기쁨을 누리는 성도가 됩시다.
3) 다시는 저주가 없으며(3절)
에덴은 하나님의 저주로 쫓겨남을 받은 곳이었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에덴은 닫혀졌고, 그 이후로 사람들은 죄의 저주 아래 살게 되었습니다. 온 땅은 그의 범죄와 실패로 인해 고통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새 예루살렘 성인 새 에덴에서는 저주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가 그들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없는 저주 받은 땅에 살던 우리가 이제는 그의 보좌에 거하여 하나님의 임재가운데 살고, 하나님을 섬기는 삶인 그의 종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 종들은 바로 교회를 의미합니다. (계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이 종들은 일곱 교회를 가리켰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함께 일하는 우리의 모습이 얼마나 복됩니까? 우리의 삶이 얼마나 복될까요? 이 삶이 미래의 삶의 모습이기도 하겠지만, 일곱교회의 성도들은 이 말씀을 들으며 현재의 삶에서 소망을 느꼈을 것입니다.
또한 첫째 아담인 아담은 실패하여 온 땅에 저주를 가져왔지만,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완성하셔, 저주가 없고, 생명과 영광이 있는 땅으로 다시금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아담은 에덴의 왕으로 세움을 받았지만, 실패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성취하셔서 완성하신 에덴에 다시금 우리를 초청하시어 자신과 함께 왕 노릇 할 것을 초청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왕 노릇이 왕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섬기는 왕노릇의 삶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5절)
구약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빛을 자신에게 비춰주시기를 간절히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낯을 가리셨을 때, 그때에는 정말 버림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론은 성도들에게 대제사장적 축복을 하며 백성들이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었습니다. (민 6:24-27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27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아론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평강과 복을 구하고 있습니다. 에덴은 이러한 평강과 복이 끊이지 아니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얼굴을 가리지 않은 밤이 없고, 빛이 가득한 곳임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복을 누림은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뵐 때,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와 온전한 교제를 나눌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삶,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없는 삶에 대해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고후 13: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아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낯을 피해 숨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찾으시며, 자신의 얼굴 빛을 우리들에게 비추시는 분이십니다. (창 3: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그리고 그곳은 우리가 얼굴을 숨길 필요 없는 죄가 없고, 빛이 가득한 에덴동산입니다.
적용 : 은혜를 경험한 성도는 언제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합니다. 이 일은 구약의 많은 사람들이 바라왔던 일이었습니다. (단 9:17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시옵소서) 빛이 가득한 성소는 모든 구약 성도들의 바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성취하신 것입니다. 저주가 끊기고 은혜가 시작된 것입니다. 완성된 에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언제나 뵈옵는 것 얼마나 영광스럽고 대단한 일입니까?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빛이 아직 임하지 아니한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빛이 온전히 비춰 하나님을 아는 삶으로 변화함을 받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적용-예화 : 시각장애인 작사-작곡가 파니제인 크로스비 여사는 맹인으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소원이 있다면 보게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하자. 그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나에게 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다고 해도 받지 않으렵니다. 하늘에 가면 밝은 눈을 주실 것인데, 이 세상에서 더럽혀지지 않은 깨끗한 눈으로 주님의 얼굴을 뵈오렵니다.” 그녀의 평생에 소원은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크로스비여사처럼 주님의 얼굴을 항상 뵙기를 소원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 날은 비단 완성된 에덴에서의 삶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거듭난 성도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는 일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린도후서 3:18).” 우리는 말씀을 들음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영광을 볼 때, 우리는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됩니다. 요한일서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한1서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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