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출애굽기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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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제가 교회라는 곳을 경험하게 된 게 대학교 3학년때입니다.
군대 막 다녀오고나서 이제 세상에서 뭐하면서 먹고 살까 고민이 많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친구들 보니까 돈 많이 버는 자격증을 공부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2년 정도 죽으라고 공부하면 딸 수 있는 자격증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1차 시험을 보게 되었는데 점수가 미달되어 떨어진 거에요.
그 때 실망하던 저에게 친구가 교회라는 곳을 소개하여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뽑으라면 저는 단연코 제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던 때를 뽑을 거 같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알게 된 것도 너무 좋았지만, 그 때 함께 신앙생활하던 친구들도 너무 좋았습니다.
시험에 지치고, 세상 경쟁에 지쳐있던 저에게 교회는 마치 오아시스 같았습니다.
나중에 성경을 알게 되면서 깨달은 거지만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고, 그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교회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교회를 제대로 경험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중 교회를 그냥 어떤 건물에서 예배드리는 것으로 잘못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 그들의 모임 자체가 교회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성막이란 신약에서 탄생할 교회의 모형입니다.
그래서 이 성막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란 어떤 교회일까요?
[본론]
먼저 우리가 지금까지 본 내용을 요약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식을 맺기 전에 그들이 지켜야 할 율법들을 자세히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난주 봤던게 노예에 대한 법이었잖아요.
그 뒤 하나님은 도덕과 우상숭배, 재판 등에 대한 법들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식을 맺으셨습니다.
그 후 모세는 시내산 꼭대기에서 40일을 머물면서 또다른 하나님의 명령을 듣게 됩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제일 먼저 성막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성막이야기가 남은 출애굽기 분량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입니다.
성막이 뭐길래 하나님은 언약식을 체결하자마자 성막부터 지으라고 하셨을까요?
자 8절입니다.
‘내가 그들 가운데 머물 수 있도록, 그들에게 내가 머물 성소를 지으라고 하여라.’
여기서 말하는 성소란 하나님이 거하실 집을 의미합니다.
성소, 성막을 여기서는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데 영어로보면 tent of meeting 입니다.
그런데 텐트는 임시 장소이지, 살 집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지금 성막은 광야에서 하나님이 임시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계시기 위해 지은 텐트입니다.
나중에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되면 그때는 제대로 된 성소인 성전을 짓게 됩니다.
그게 바로 이스라엘의 첫번째 성전인 솔로몬의 성전입니다.
성막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기 위해 한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프로그램보니까 아내가 남편에게 너무 자주 전화를 하는 거에요.
왜 그렇게 전화하는가 봤더니 아내가 외국인이라서 한국에서 너무 외롭고 두려운 거에요.
그래서 남편한테 시도때도없이 전화하면서 남편 목소리를 듣고 안심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막을 주신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친 광야를 지나가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성막을 쳐다보며 언제나 하나님이 자신들과 함께 있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이 성막을 어떻게 만드실까요?
물론 하나님은 놀라운 기적을 통해 갑자기 하늘에서 완성된 성막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좀 더 특별한 방식으로 자신이 거할 성막을 지으십니다.
2절입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나에게 예물을 바치게 하여라. 누가 바치든지, 마음에서 우러나와 나에게 바치는 예물이면 받아라.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단어는 ‘누가 바치든지, 마음에서 우러나와’ 입니다.
하나님은 소수의 몇몇 사람들에게 성막을 짓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예물을 가져와 성막을 만드는 데 참여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억지로 ‘내가 있을 텐트 만드는 거니까 너희들이 가진 제일 좋은 거 가져와’ 이렇게 하신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백성들이 가져온 예물이 얼마나 비싼가 아니면 예물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게 아닙니다.
바로 예물을 드리는 우리의 마음을 중요하게 보십니다.
3절도 함께 보겠습니다.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곧 금과 은과 동과 청색 실과 자주색 실과 홍색 실과 가는 모시 실과 염소 털과 붉게 물들인 숫양 가죽과 돌고래 가죽과 아카시아 나무와 등잔용 기름과 예식용 기름에 넣는 향품과 분향할 향에 넣는 향품과 에봇과 가슴받이에 박을 홍옥수와 그 밖의 보석들이다.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나 금 좋아하니까 금만 가져와’ 그러셨나요?
아닙니다.
어느 누구나 자발적으로 예물을 가져오기만 하면 됩니다.
금, 은이 아니어도 동이라도 괜찮습니다.
흔한 아카시아 나무도 괜찮습니다.
집안에서 쓰는 실도 괜찮습니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등잔용 기름도 괜찮습니다.
자기 형편에 맞게 가져오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드는 점이 있습니다.
그럼 수백년을 노예로 살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이런 예물들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출애굽기 12장에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떠날 때 빈손으로 나오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집트에서 노예생활하며 고생한 대가를 얻게 하셨습니다.
악덕 고용주 이집트 왕 바로에게서 조금이나마 보상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 사람들에게서 각 종 보석과 물건들을 빼앗아서 나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을 짓기 위해 가지고 나온 것들은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기억하는 백성들은 하나님께 기쁜 마음으로 성막을 위한 예물들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란 어떤 교회일까요?
제가 영국에 있을 때 참 신선하게 느낀 점이 한가지 있습니다.
제가 다녔던 교회의 house group이라고해서 보통 교회의 셀이나 구역과 같은 그런 모임이 있었습니다.
저도 한 모임에 속해 있었는데요.
제가 속한 모임 구성원들이 너무나 다양했습니다.
나이, 성별, 지위 모두 달랐습니다.
저와 같은 신학생이 있었고, 담임목사님 사모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위직 공무원인 중년 여성분도 있었고, 은행 고위직에 있던 중년 남성분도 있었습니다.
또 동유럽에서 영국으로 넘어와 차 수리를 하던 청년도 있었습니다.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교회 모임을 짤 때 비슷한 그룹의 사람들을 묶여주려고 합니다.
나이나 성별, 또 심지어 사회적 지위도 비슷한 사람들끼리 묶어주려고 합니다.
물론 그것의 장점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교회는 이렇게 섞여야 하는구나라는 것을 그 때 느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는 어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교회여야 합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젊으나 늙으나 지위가 높거나 낮으나 상관없습니다.
교회에는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누구나 자발적으로 교회에 나올 수 있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영화 ‘오징어 게임’과 같이 피튀기는 경쟁이 있는 험악한 세상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영화 ‘기생충’과 같이 신분격차가 존재하는 암울한 세상입니다.
그 속에서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 새로운 공동체인 것입니다.
숨막히는 세상에서 괴로워하고, 삶의 심한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마음껏 숨을 쉬고, 목을 축이는 곳이 교회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에는 청년들밖에 없지만 저는 우리 교회가 청년들만 모이는 교회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한 그룹 안에 나이든 할머니도 계시고, 중년 남성도 있는 교회이길 원합니다.
엄청 부자인 분도 있고, 많이 가난한 분도 함께 있는 교회이길 원합니다.
저는 이런 모든 성도들이 다함께 어우러져 만들어가는 교회이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목회자 마음대로 하는 교회가 아니길 원합니다.
우리 모두의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며 세워져가는 교회이기를 원합니다.
그런 교회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을까요?
그런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한가지가 더 남아있습니다.
9절입니다.
‘내가 너에게 보여 주는 모양과 똑같은 모양으로 성막과 거기에서 쓸 모든 기구를 만들어라.’
하나님은 우리의 자발적인 마음을 좋아하시지만 그렇다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을 좋아하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들 마음대로 성막을 지어보라며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매우 자세히 하나 하나 보여주시고 그대로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설계도를 주시고 그대로 지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왜 이렇게 명령하셨을까요?
왜냐하면 성막 하나 하나 모든 것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화, 기생충을 봐도 소품 하나 하나에도 감독의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그것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죠.
이렇게 잘 만들어진 영화 한편도 그렇다면 하나님의 성막은 얼마나 더 그럴까요?
성막 안에 있는 작은 소품 하나까지도 모두 하나님의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치수와 모양까지 모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막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그 다음에 나오는 구절들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원래 우리가 뒤에서 살펴보면 성막이 먼저 지어집니다.
그리고 난 후에 언약궤를 만들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은 언약궤를 제일 먼저 언급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만큼 언약궤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언약궤는 여러분께 보내드린 것처럼 생겼습니다.
이걸 보면서 설명하겠습니다.
먼저 아카시아 나무로 궤를 만들어서 겉에 순금으로 발랐습니다.
그리고, 양쪽에 고리를 만들고 그 고리에 봉을 만들어서 끼웠습니다.
그 궤를 우리는 언약궤 또는 증거궤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들어가는 게 언약판, 증거판이라고 부르는 십계명 돌판이 있거든요.
이 십계명 돌판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을 맺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래서 언약궤, 증거궤라고 부르는 것이죠.
우리가 결혼식하면 남편과 아내가 서약을 하거든요.
십계명 돌판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서약서와 같다고 보면 됩니다.
이제 그 궤 위에 뚜껑을 덮습니다.
그 뚜껑을 속죄판이라고 부릅니다.
거기서 백성들의 죄를 깨끗히 씻는 의미로 염소의 피를 뿌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속죄판 위에는 그룹, 즉 천사들 두 명이 날개를 펴서 서로 맞대고 있습니다.
그 날개로 속죄판을 덮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속죄판 위 천사들 사이에서 말씀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왜 언약궤가 중요할까요?
성막은 세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지성소, 성소, 바깥뜰 이렇게 말이죠.
그런데 지성소는 대제사장만 1년에 한차례 밖에 못 들어갑니다.
그 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죠.
그런데 그 지성소에 들어있는 게 바로 언약궤입니다.
그러니까 성막의 핵심이 지성소인데 지성소의 핵심이 언약궤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이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언약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란 어떤 교회일까요?
아무리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헌신하더라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교회는 자선단체와 다름없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그 주님이 우리에게 언약궤로 주신 게 뭘까요?
바로 성경,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성경이 알려주는 것입니다.
성막의 핵심이 지성소이고, 그 지성소의 핵심이 언약궤였듯이, 교회의 핵심은 예배이고, 그 예배의 핵심은 말씀인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대한 꿈이 있습니다.
저와 우리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 말씀을 부지런히 묵상하고 부지런히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억지로 순종하는 게 아니라 우러나오는 마음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마치 성막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설계도에서 나왔듯이 우리 삶의 구석구석이 모두 하나님의 뜻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런 우리들을 통해 하나님은 자신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세워나가시는 것입니다.
[결론]
이제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 말씀은 하나님이 성막을 어떻게 지으라고 지시하시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뒤에 가면 직접 짓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 때 참 마음이 뭉클해지는 한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온 예물을 바치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그 백성들이 바친 예물이 너무 많아서 나중에는 모세가 더이상 가져오지말라고 말합니다.
기꺼이 자신의 것을 바쳐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수많은 백성들을 보며 모세도 기쁘고 또 하나님은 얼마나 기쁘셨을까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란 예배드리는 건물이 아닙니다.
교회란 예배드리는 사람들 자체입니다.
우리도 교회 건물이 없잖아요.
우리가 바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 교회를 지어가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완벽한 건축가이십니다.
우리가 드리는 자발적인 헌신과 순종을 통해 하나님은 아름다운 교회를 세워가십니다.
우리 각자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완벽한 건축가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고, 우리의 삶을 디자인해 가십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완벽한 설계도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께 순종할 뿐입니다.
아무도 없는 외로운 광야, 짐승들과 대적들이 기다리는 두려운 광야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을 보며 하나님이 자신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기억했습니다.
언약궤를 보며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것을 기억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하나님은 무엇을 통해 우리와 함께 하실까요?
무엇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실까요?
바로 말씀과 기도입니다.
오징어 게임같은 세상, 기생충같은 세상속에서 힘들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것입니다.
힘들 때 마다 기도하며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를 받는 것입니다.
언약궤에서 말씀하시던 하나님은 이제 날마다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성막을 통해 함께 하셨던 하나님은 이제 우리의 기도를 통해 우리와 교제하십니다.
우리 다카포 교회 식구들은 모두 말씀묵상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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