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가시는 예수를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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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주에 하나님께서 약속과 맹세로 우리의 보증이 되셔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피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큰 안위를 주신다!! 평안을 주신다는 사실을 살펴봤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말씀은 18절에서 말하는 하나님께 피한다는 그 의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피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 19절에 휘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수요예배때 성막에 대해서 함께 공부하셨던 분들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 휘장은 지성소 다시말하면 하나님이 계신 천상과 이 땅을 구분 짓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거룩성으로 봤을 때… 가장 거룩하고 가장 접근이 제한된 공간 그 공간이 지성소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리고 있는 것이 휘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피한다는 것이 휘장 안으로 들어감을 의미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그 휘장안의 공간에 우리가 들어가서 거룩한 하나님과의 만남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하나님과 만날수가 없는가? 우리는 성막을 배울 때…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성막을 에덴동산과 비교하며 생각해 보았었습니다…
성막 바깥 공간과 하나님의 백성들이 들어오는 바깥들.. 그리고 내성소 그리고 그 안에 가장 거룩하고… 하나님의 법궤가 있는 장소인 지성소…
마찬가지로 에덴동산도 그렇습니다… 동산 바깥과 동산 안쪽… 그리고 가장 거룩한 장소이자 동산의 중앙이고 하나님의 명령이 있는곳인 선악과가 있는 곳이되겠습니다.
우리가 에덴동산을 성막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성막과 에덴의 차이점은 휘장의 차이일 것입니다. 에덴에는 휘장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갈라 놓는 그 어떤것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 아담에게 직접 말씀하셨고 명령하셨고 그 어떤 중간에 거쳐야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만나러 오셨고… 만나셨고 대화하셨고 아담을 보셨습니다…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이 휘장… 가림막이 생기게 된 것은 아담의 범죄 이후입니다… 사람의 죄로 인하여 거룩한 곳이 더렵혀 질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거룩을 지키시기 위하여 사람을 에덴에서 내보내시고 그 에덴을 천사들을 통해 막으셨습니다.
그것의 모형이 바로 성막임을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히브리서에서 이 죄인들이 들어갈 수 없는 성소 안으로 우리가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만날수도 없는 두 세계가 그곳에서 만나고 화해를 하게 됩니다.. 막혔던 담이 허물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우리가 화해를 하게 되는데 그 화해의 중재자가 누구인가? 오늘 본문에 예수 그리스도라 말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를 시키셨는가? 오늘 20절에서 성경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앞서가신 예수께서” 예수께서 앞서 가셨다…
이 말의 의미를 다시 번역하면
ὅπου πρόδρομος ὑπὲρ ἡμῶν εἰσῆλθεν Ἰησοῦς
우리를 위하여 예수께서 진입하셨다!! 달려가셨다 라는 의미를 담고있습니다.
이 앞서가신 이라고 번역된 “PRODROMOS”는 전쟁에서 최전방으로 진격하는 선발대나 기동타격대를 의미하기도 하고요… 달리기를 할 때 혼자서 앞으로 치고 나오는 선두주자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그냥 우리보다 앞서 휘장 안으로 들어가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것은 굉장히 역동적인 표현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이끌고 앞서 달려가고 계신다!! 하나님을 향해 선두의 자리에서 앞서 달려가신다!
전쟁에서 선두의 자리는 모든 화살과 모든 공격을 받는 자리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앞서 선두주자가 되신다는 것은 우리가 비록 거룩하지 않은 죄인으로 휘장안으로 들어가지만 예수께서 하나님의 진노, 죄에 대한 책임, 비난의 화살을 몸으로 맞으며 달려 들어가신 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십자가 사건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냥 정적인 사건이 아니라 예수께서 우리를 뒤에 숨겨 주시고 맨 앞에서 모든 죄에 대한 것들을 맞으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달려 들어가시는 매우 역동적인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건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명이 경주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사도행전 20:24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디모데후서 4:7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1]
우리에게 사명이 이러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예요… 신앙이라는 것이 굉장히 역동적인 것입니다… 앞서가신 예수님을 놓쳐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앞에서 앞서가다 라는 뜻이 전쟁에서 맨 앞에서 달려가는 사람 혹은 달리기 경주에서 맨 앞서 달려가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전쟁인데 우리의 목표 지점을 향해 걸어 가겠습니까?? 맨 앞에 계신 예수께서 돌격 앞으로를 외치고 맨 앞에서 모든 총탄과 죄에 대한 채찍과 형벌을 받으며 길을 만드시며 달려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함께 예수님의 등을 보며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우리가 지난주 히브리서도 봤지만.. 히브리서 설교자가 설교하다 말고 교인들에게 뭐라고 말합니까? 너희들이 전혀 자라지 않았다…. 다시말하면 너희들이 목표지점까지 전혀 한걸음도 달려 나아가지 못했다입니다…
우리도 달려야 합니다… 그냥 지금 상태에서 서있거나.. 멈춰있다면 앞에 달려가고 계신 예수님이 멀어질 뿐입니다… 멀어진다는 것은 예수님이 만들어 놓으신 길이 희미해 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시간에 결단하기를 소망합니다… 신앙은 역동적이어야 합니다… 이게 저도 그렇지만 자꾸 현상에 머무르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삶이 피곤하기도 하고…. 빡빡하기도 하고 먹고 살기 힘들기도 하고…. 그냥 하긴하는데… 이게 도대체 왜 필요한지 모르기도 하고… 그런데 우리가 예수께로 가까이 있었을 때는 안드랬단 말이지요…
조그만 은혜에도 결단이 나오고… 전도의 열정이 넘쳐 나기도 하고… 예수님을 더 알아가고 싶기도 하고… 그런데 내가 지금 그러한 역동성을 잃어버렸다는건… 앞서 달려가고 계신 예수님이 나의 시야에서 흐릿해 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쫒아 가야합니다… 함께 달려가야 합니다.. 어디로요?? 하나님을 향해서 입니다.. 휘장 안으로 달려 들어가셨다!!! 그 막힌 담을 뛰어 넘으셔서 하나님께로 우리를 이끌고 달려가시는 예수님을 따라 우리도 휘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역동적 신앙… 그러한 결단의 신앙을 우리가 다시 회복하여서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다시 한번 경험하는…. 그 지성소 안에 들어감의 은혜를 경험하는 신앙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