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받으신 구속주를 믿습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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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5 - 그리스도의 고난

Notes
Transcript

S1. 환영과 인사

네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시간에 함께 하신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충만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우리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은혜 충만하세요’ 하고 인사 나눕시다.
네 감사합니다. 10월이 시작하는 첫 주일 예배에 함께 하신 모든 분들에게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한 해의 마지막 사분기를 시작합니다. 이제 모두가 한마음으로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복된 영적인 수확을 거두는 시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가을 성경 공부를 통해, 또 지속되는 릴레이 기도회를 통해 어려웠던 2021년의 가을은 영적으로는 보다 풍성한 시간이 되실 줄 믿습니다. 한마음으로 힘쓰셔서 복된 은혜를 풍성히 누리시는 시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S2. 주제 제시

오늘은 사도 신경에서 예수님의 낮아지심의 사역을 고백하는 부분을 함께 묵상하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 이 부분을 같이 한 번 읽어 봅시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되셨습니다’
사도 신경에는 예수님의 고난을 세 단계로 고백합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셨고, 이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으로, 마지막으로는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장사되셨다’는 말씀은 죽으신 후에 무덤에 묻히셨다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은 고난의 과정을 통해 낮아지심으로 우리의 구속주로서의 사역을 담당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구속주로서의 사역은 먼저 고난의 사역이며 낮아짐의 사역이었던 것입니다.

S3. 문제 제기

당연히 이런 질문이 제기가 됩니다. 어떻게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죽으실 수 있으며 낮아짐으로써 자신의 사역을 완성할 수 있는가?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승리의 사역이어야 하고, 이 땅에서 이기는 자로 오셔야 하는데 어떻게 고난이 있고, 고통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예수님은 이기신 분으로 십자가가 아니라 영광의 주님으로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하곤 합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도 승리만이 있고, 존귀와 광명이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그렇게 번영을 꿈꾸며 사시는 분들도 없지 않습니다.

J1. 하나님의 마음, 속성, 그리고 방법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가지는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영광이 아니라 십자가를 교회의 상징으로 삼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당의 머리에는 십자가가 높이 들려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기도 손 위에도 십자가를 높이 달아둔 것은 고난의 주님이 우리 신앙의 중심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낮아지심, 곧 고난 당하심은 성도인 우리들의 삶에도 중심이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창조 시에 죄에 대하여 반드시 심판하신다고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은 반드시 집행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관계에서는 적당하게 타협이 가능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범한 죄는 반드시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구속주로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에 대한 형벌의 값을 받게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심판의 값을 대신 받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구속주가 되셨고,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낮아지신 고난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을 열어 두신 것입니다.

J2. 하나님 예수님

우리 예수님께서 성도의 구속자가 되시기 위해 하신 사역은 그리스도의 직분을 수행하시는 것입니다. 사도신경의 고백은 삼위 하나님의 위격과 사역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예수님의 위격을 고백한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이 예수님의 사역을 고백해야 합니다. 이렇게 보면 오늘 우리가 다루는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다음 주에 공부하게 될 높아지심은 곧 구속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사역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역을 두고 소교리 문답은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서 행하신 사역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 소교리 문답 23문을 같이 봅시다.
23문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속자로 무슨 직분을 행하십니까?
답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속자로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의 직분을 행하시되 낮아지시고 높아지신 두 지위에서 하십니다.
하나님이신 메시야의 구속자로서의 사역은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의 직분인데, 이는 고난 받으시고, 이후 영광 받으시는 낮아지고 높아지신 사역을 통해 성취됩니다.

J3. 사람이신 예수님

특별히 예수님은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시기 위해 낮아지심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소교리 문답에서는 예수님의 제사장 직분을 이렇게 가르칩니다. 25문을 봅시다.
25문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십니까?
답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시는 것은 단번에 자기를 제물로 드려 하나님의 공의에 만족케 하며, 우리를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케 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항상 간구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단번에 제물로 드려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하신 구속주이십니다. 이 단번에 자신을 제물로 드린 사건은 예수님 공생애의 마지막 일주일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마태복음 27장 24절입니다.
마태복음 27:24 NKRV
24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하이델베르그 신조 38문은 왜 예수님이 본디오 빌라도 아래에서 고난을 받으셨는지 묻고 답합니다. 38문을 봅시다.
38문 그분은 왜 재판장 ‘본디오 빌라도 아래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가?
답 그리스도는 죄가 없지만 세상의 재판장에게 정죄를 받으셨으며, 이로써 우리에게 임할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에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여기에는 예수님은 죄없는 분이지만 세상의 재판장에게 정죄받으심으로 우리에게 임할 심판을 대신 받으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정죄를 받으셨을 때 우리는 이제 죄인으로 정죄받지 않게 된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우리는 더이상 죄로 인한 저주를 받지 않게 됩니다. 39문을 봅시다.
39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은 달리 돌아가신 것보다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까?
답 그렇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이므로 그가 십자가에 달리심은 내게 임한 저주를 대신 받은 것이라고 나는 확신하게 됩니다.

W1.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직분을 수행하시고자 낮아지신 분이십니다.

그리스도의 낮아지심 안에 성도의 구원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리스도로서 그 낮아지심의 직분을 감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정죄 받으실 때 우리는 이미 다 정죄받았고, 예수님이 나무에 달려 죽으셨을 때 우리에게 임한 모든 저주는 다 풀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장사되심은 그분의 죽으심을 더욱 확증하는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확실하게 죽으셨기에 우리는 이제 죽음으로부터 자유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성도는 죄값을 치르기 위한 죽음이 아니라 죄짓기를 그치고 영생으로 들어가는 육신의 죽음만을 남겨 두고 있는 것이지 결코 심판과 저주의 죽음을 겪지 않을 것입니다.

W2. 이러한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그분의 전 생애의 사건입니다.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이 마지막 죽으신 사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은 그분이 잉태되시던 그 순간부터 이미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그래서 소교리 문답은 그리스도의 낮아짐을 보다 넓게 설명합니다. 소교리 문답 27문을 봅시다.
27문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어떠합니까?
답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곧 그의 강생하심인데, 또한 비천한 지위에 나셔서 율법 아래 복종하시고, 금생에 여러 가지 비참함과 하나님의 진노하심과 십자가에서 저주의 죽음을 받으시고 묻히셔서 얼마 동안 죽음의 권세 아래 거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비천한 지위에서 말구유에 누이셨고, 율법의 규범들을 따르셨고, 가난하게 사시며 비참한 십자가의 죽음을 죽으신 모든 것을 포함하여 낮아지신 분이십니다.

W3.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을 통해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낮아지심을 통해 성도를 구원하시는 놀라운 능력이 됩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우리에게 잘 보여 줍니다. 이사야 53장 4, 5절입니다.
이사야 53:4–5 NKRV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구속주이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의 직분을 수행하시며 온갖 고난을 그 몸에 당하셨을 때 성도는 구원의 은혜를 누립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징계를 받으셨기에 우리에게 평화를 누리게 하셨고, 그가 채찍에 맞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나음을 입게 하신 것입니다.

T1. 성도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 구원을 회복합니다.

그리스도의 낮아지신 사역은 성도를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시켜 하나님의 양자가 되게 하신 놀라운 은혜의 선물입니다. 이제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고 회복된 새 백성의 삶의 열매를 누리게 됩니다. 주님께서 고난을 받으셨기에 우리의 고난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심판을 받으셨기에 성도에게는 심판이 아니라 새 생명의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 삶이 변하여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난장이로 태어나 온갖 학대 속에서 자신의 성공을 위해 나라를 배신하고 민족을 배반하며 부를 축적했다고 주님을 만나고서는 그 모든 것을 다 내려 놓아 버렸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살았을 때 지상에서는 가장 가난한 사람이었지만, 천국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풍성하게 누리는 진정한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낮아지심만이 우리의 진정한 복이 되고 영광이 됩니다. 십자가만이 성도를 거룩하게 하고 주님의 낮아지심만이 우리를 새롭게 하는 놀라운 구원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T2. 세상은 고난의 주님을 거절하기에 불행의 삶을 살아갑니다.

오늘날 세상은 혹은 일부 교회는 고난의 주님을 거절합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빌라도에게 고난받으신 예수님, 나무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부끄럽게 여기고 영광과 돈과 이름 드러내는 일을 즐기며 살고자 합니다. 그것이 무슨 성공인 줄 압니다. 사실 세상은 고난받고 손해 보고 희생하는 삶이 무가치하다고 오래 전부터 그렇게 가르치고 공공연하게 문화를 그렇게 만들어 왔습니다. 교회도 잘되는 것에 젖어 성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신앙을 이용하고, 교회를 통해 자기 이름 내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고난받는 주님을 내세워 자신은 영광을 얻고자 애쓰는 거짓 신앙인들이 판을 치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들에게 고난은 두려움이고 결코 가까이 하지 않아야 할 삶입니다.

T3. 그러나 성도는 십자가를 자랑합니다.

성도는 낮아지신 그리스도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고난받으신 그리스도를 자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 말씀을 봅시다.
갈라디아서 6:14 NKRV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사도는 그리스도의 고난 외에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십자가만이 성도의 자랑이고 고난의 삶을 통한 구원의 은혜만이 성도를 강건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L5.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정죄받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정죄를 앗아가신 예수님을 믿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신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는 구원의 기쁨을 발견하고 세상에서의 고난과 괴로움을 주님의 고난을 알게 하시는 은혜로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고난은 아프고 괴로운 것입니다. 육신의 질병과 마음의 고통은 우리의 생명을 갉아먹는 원수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내게 주신 고난을 통해 그리스도의 고난을 떠올릴 수 있고,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 무덤에 장사되신 예수님을 기억할 수 있다면 고난은 내 영을 새롭게 하고 나를 거룩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놀라운 위로가 됩니다.
사실 우리 사도신경에는 음부에 내려가신 예수님을 고백하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들 중 일부에서는 사도신경에 ‘장사지낸 바 되셨다가 음부에 내려가시고’라는 고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한국 교회는 그 부분을 번역하지 않고 사용해 왔고, 교회 역사 안에도 이 부분을 번역하여 사용하는 전통과 그렇지 않은 전통이 나누어져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이델베르그 44문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44문 ‘음부에 내려가셨으며’라는 말이 왜 덧붙여져 있습니까?
답 내가 큰 고통과 중대한 시험을 당할 때에도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지옥의 두려움과 고통으로부터 구원하셨음을 확신하고 거기에서 풍성한 위로를 얻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분은 그의 모든 고난을 통하여 심지어 십자가에서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아픔과 공포와 지옥의 고통을 친히 당하심으로써 나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지옥까지 내려가셔서 성도를 지옥의 고통에서부터 완전히 구원해 주신 분이십니다.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지옥까지 내려가셔서 그 모든 죄인의 고난을 다 대신 겪으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전 생애의 고난을 그가 잉태되신 순간부터 지옥에 내려가신 그 모든 과정을 통하여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영원한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온전한 백성이 되게 하시려고 죄로인해 생긴 모든 고난을 다 온 몸으로 지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통하여 우리 성도들에게 오늘 내 앞에 있는 고난까지도 감사와 기쁨으로 대적해 나갈 수 있는 힘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L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 구원의 자리에 이릅니다. 십자가는 성도의 영원한 자랑이며 교회의 항구적인 상징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한 이는 로마 병사도, 유대인도, 나 자신도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죄인을 사랑하신 주님 자신이 우리를 위해 스스로 가신 낮아지심 때문입니다. 주님은 고난의 길을 기꺼이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기쁨으로 걸어가셨고, 그로 인해 우리 모두는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되신’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살아갑니까? 그리고 우리도 죄인들을 위해 낮아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살아갑니까? 의인을 위한 희생이 아니라 죄인을 위해 낮아지는 마음, 바로 그 마음으로 성도는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는 살아야 합니다. 나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의 그 사랑을 마음에 온전히 새기며 또 한 주간도 고난의 주님을 묵상함으로 용서의 삶을 살고 겸손히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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