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7새벽] 사탄의 거짓말에 속지 맙시다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258 views
Notes
Transcript
찬송 357 주 믿는 사람 일어나
본문 삼상28:15-19 [신p.458]
하나님, 오늘도 새 아침을 열어주심에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시간들을 잘 활용하여 주님의 기쁨이 되는 우리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계속해서 원수 마귀는 우리를 넘어뜨리려 하나, 하나님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마귀의 유혹에 저항하게 하시고, 온갖 죄의 유혹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사 믿음의 시험들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서론]

우리가 구약성경을 통해서 사탄이 어떻게 집요하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넘어뜨리고자 했는지 보게 된다. 오늘날에도 사탄은 집요하게 자신의 세력을 늘려가고 있다. 그래서 할 수만 있거든 하나님께 인침을 받은 자들까지도 넘어뜨리기 위해 온갖 술수를 펼치고 있다. 벧전5:8 의 말씀이 참으로 옳다. 지금도 사탄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잔뜩 굶주린 채로 집어 삼킬만한 자들을 두루 찾아다니며, 그들이 믿음의 노선에서 실족하도록 계략을 꾸미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 ‘실족시키다' 라는 단어는 사냥과 관련된 단어이다. 짐승이 지나다니는 길에 덫을 설치하여 그 짐승이 걸리도록 계획하고 짐승을 그 쪽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탄은 아주 집요하게, 그리고 아주 철저하게, 할수만 있거든 한 사람이라도 더 걸어 넘어뜨리기 위해 우리가 약한 부분에 덫을 놓고, 우리가 그 길로 가서 덫에 걸리도록 우리를 몰아가며, 그렇게 실족할만한 사람들을 혈안이 된 채로 찾아다니고 있다.
롬12:12 의 말씀처럼 성도는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는 자들”인데, 사탄이 하는 일은 그 사람 마음 가운데 절망감과 무기력함을 불어넣어 소망을 꿈꾸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환난 중에 참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기도를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포기하게 만들고, 중단하게 만들며, 철저하게 짓밟아 다시 일어서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 부분이 잘 드러나고 있다.

[배경]

사무엘서에서 이스라엘의 대적으로 등장하는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신앙과 아주 깊은 관련이 있다. 이스라엘이 참된 신앙으로 회복할 때에는 블레셋이 이스라엘의 적수가 안된다. 전쟁을 하면 항상 이스라엘이 이겼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참된 신앙에서 벗어나 부패할 때에는 항상 대적 블레셋이 힘을 얻어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였다. 그들이 하나님을 제대로 믿고 따르지 않을 때에는 늘 원수들이 활개를 쳤다.
사울 왕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던 그 때만 툭 잘라서 보면 그래도 하나님 앞에 겸손하려 했고 하나님을 두려워했던 모습들을 아주 조금 볼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의 모습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모습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특히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하찮은 것들만 진멸하고 눈에 보기 좋은 것들은 남겨두었던 그의 탐욕과 교만을 볼 수 있지 않았는가? 이때 사무엘이 책망하며 당신의 나라가 길지 않을 것을 예언했을 때 사울은 어떤 반응을 보였던가.
다윗은 밧세바를 범한 이후로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그 즉시 침상이 완전히 눈물로 젖을 때까지 통곡하며 회개하였다. 일반적인 참된 신자들이 말씀을 통해 죄를 지적받을 때에도 동일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사울은 달랐다. 그는 죄를 지적받았음에도 회개하지 않았다. 오히려 삼상15:30 말씀을 보면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여 달라' 고 청한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의 합당한 반응을 보이는 것에 관심이 없고 오로지 백성의 장로들과 이스라엘 회중 앞에서 높임을 받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사울과 대화하는 대상은 누구인가]

이제 시간이 흘러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했던 사사였던 사무엘도 죽었다. 더군다나 지금 대적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공격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사울은 불안했다. 이전에는 사무엘을 찾아가서 이런 저런 조언을 얻기도 했는데, 이제는 사무엘도 없고, 또 하나님께 방법을 알려주십사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더이상 사울에게 아무런 말씀을 주시지 않는다. 점점 블레셋은 공격태세를 갖추고 공격해올 준비를 한다. 불안하다. 당장 어떻게 손을 써야 하겠는데 어디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결국 사울이 택한 방식은 무엇이었는가? 엔돌에 있는 무당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무당에게 찾아가 사무엘의 영을 만나고 싶다고 청했다. 이것이 얼마나 참담한 상황인가. 하나님을 믿는 자가 어찌 무당과 어울릴 수 있단 말인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자가 어찌 사탄에게 속한 무당과 뒤섞일 수 있단 말인가? 여러분,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아무리 답답하고 마음이 괴로워도 어찌 그리스도인이 무당을 찾아가며, 어찌 신자가 점을 볼 수 있는가? 그 정성과 그 에너지를 차라리 하나님 앞에 통곡하며 무릎을 꿇는데에 사용해야 맞는 것 아닌가? 재미 삼아라도 타로점이나 사주를 보는 분들이 없으시길 바란다.
엔돌의 무당은 나름대로의 제사의식을 치루었다. 이 때 13절처럼 “영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고 말한다. 이에 사울은 그 모양이 어떠한지를 묻자, 무당은 사실 별 특별한 대답도 하지 않는다. ‘한 노인'이며 ‘겉옷'을 입고 있다는 것 뿐이었다. 이는 지극히 평범한 것이었다. 무당은 별 얘기를 하지도 않았는데 사울은 그 존재를 사무엘이라고 확신하기에 이른다.
여러분, 사탄이 하는 일들이 이렇다. 그는 마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교활하게 접근하지만 실상은 별 것 없다. 그가 던지는 미끼들은 우리가 영적으로 강건할 때에는 정말 보잘 것 없는 사소한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연약해지고 위태로울 때에는 그 미끼들이 제법 혹하게 다가올 수 있다. 그리고 그 미끼를 덥석 물게 되는 것은 사탄이 강력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믿음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믿음이 강건할 수 있도록, 바른 믿음으로 세워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여러분, 지금 사울과 대화를 나누는 그 영의 존재가 과연 누구일까? 사무엘은 죽었다. 신자들이 이 세상을 살다가 죽게 되면 그 영이 어디로 가는가? 낙원이다. 그곳에서 안식을 누린다. 이곳은 하나님의 영역이다. 지금 무당이 끌어올린 영이 사무엘이 맞다고 가정해보라. 그렇다면 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낙원에서 안식을 누리던 사무엘을 다시금 이 땅으로 끌어내린 셈이 된다. 그 말인즉 무당의 신적인 힘이 하나님보다 강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말이 되는가?
사탄은 거짓의 아비이다. 아주 사소한 눈속임으로 사울을 완전히 넘어뜨리고 있다. 이후로 사무엘이라고 확신하는 그 영이 하는 말을 보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인 16-19절의 말씀을 보면, 마치 사무엘이 진짜 이 땅으로 내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 같다. 그러나 속으면 안된다. 이 존재는 사탄이다. 그가 하는 말들이 다 맞는 것 같고, 그가 하는 말들이 앞서 하나님께서 주셨던 말씀과 비슷한 맥락같지만, 사탄도 얼마든지 광명한 천사로 둔갑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사탄이 주는 음성들은 뭔가 하나님의 말씀과 비슷한 것 같고, 뭔가 정통적인 것 같지만 그 끝이 다르다. 이단들도 그러하지 않은가? 그 끝이 다르다. 그의 메세지들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끝 없는 좌절감을 주는 것이다.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무기력함을 주는 것이다. 더 이상 일어서지 못하도록, 더 이상 회복하지 못하도록 완전히 짓밟아버리는 것이다.
반면 하나님의 말씀은 어떠한가? 심판을 선고하시면서도 항상 회복을 꿈꾸게 하신다. 혹독한 현실 속에서도 소망을 품게 하신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라. 그토록 신랑되시는 하나님을 떠나 음행한 여인처럼 이방 신들을 섬긴 그들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징계하셨고 심판하셔서 결국 이방나라의 포로로 비참하게 끌려가게 하셨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고, 어떠한 소망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고아와 같이 내버리지 않으시고 선지자들을 통하여 회복과 소망을 품도록 계속해서 말씀을 선포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부담도 되고, 때로는 버겁고, 때로는 힘도 들어도, 그 말씀의 끝에는 생명이 있다. 그 말씀에는 소망이 있다.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8-10]" 사람은 사람을 포기하지만 하나님은 교회를 버리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교회의 지체인 저와 여러분들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따라서 지금 신접한 여인이 불러낸 영은 사무엘이 아니다. 만일 정말로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이었다면 이처럼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된 사울을 측은하게, 불쌍하게 여기어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자비의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했을 것이다. 사울도 그 말씀을 듣고 죄를 깨달아 지난 날의 죄를 애통해하며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았을까. 그러나 사울은 사탄에게 잡아 먹혀서 깊은 절망감과 무력함에 패배자와 같이 돌아가고야 만다. 이것이 사탄이 하는 일들이다.

[사탄에게 속지 말라]

성도 여러분, 지금도 사탄은 아주 굶주려 있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두루 찾고 있다.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 속을 헤집어놓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든다.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복음의 씨를 빼앗아 가려 하고 온갖 가시덤불과 가라지들을 심어놓아 그 생명의 말씀이 자라지 못하고 결실하지 못하게 만든다.
물론 우리가 그 존재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그가 아무리 교활하고 간계로 우리를 넘어뜨리려 한다 할지라도, 우리를 주의 소유 삼으신 하나님의 권능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온 우주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창조주께서 우리를 그 아들의 피로 값주고 사셨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그가 날고 긴다 하더라도 그 역시도 하나님의 다스리심 안에 있는 피조물일 뿐이다.
그러나 그의 존재를 경계하고 삼가 주의할 필요는 있다. 그가 놓는 덫들을 간파할 필요가 있다. 사탄에게 속지 말라. 그가 주는 거짓말들은 전부 우리를 실족시키게 만드는 것들이다. 그가 놓은 덫들은 우리에게 한없는 무기력함과 우울함, 좌절감들을 주는 것들이다. 이러한 마음들은 결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탄에게 속지 않기 위해, 그 거짓된 말들에 속아 넘어지지 않기 위해 하나님께 은혜를 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기도]
이 새벽의 시간에, 우리가 말씀을 붙들며 이와 같이 기도했으면 한다. “하나님, 우리는 작고 연약하여 사탄이 쳐놓은 올무도 발견하지 못하고 실족하여 넘어지는 존재들임을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우릴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더이상 사탄의 계략에 넘어지지 않도록 우리의 영안을 열어주시고, 그가 놓은 덫들을 간파하여 더이상 실패하지 않는 믿음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마음에 한없는 좌절과 무기력, 우울감을 불어넣는 사탄의 계략에 맞서게 하시고, 혹 우리 중에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하나님께 더욱 은혜를 구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에 이러한 제목으로 함께 간절하게 주여 한번 외치며 기도하자.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