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장의 삶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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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1948년, 23살의 짐 엘리엇이라는 청년과 4명의 친구들은 에콰도르로 떠납니다.
문명과 떨어져 한번도 복음을 듣지 못한 아우카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부족은 정글 깊숙히 살고 있었고, 경계심이 매우 심한 잔인한 부족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짐 엘리엇과 친구들은 그들과 친해지기 위해 경비행기를 이용해서 먹을 것과 신기한 물건들을 떨어뜨렸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들은 직접 아우카 족을 만나기 위해 그들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아우카 족은 그들을 보자 가까이 다가오더니 갑자기 창을 던져 그들을 모두 죽이고 말았습니다.
에콰도르로 떠난 그들에게 아무런 소식이 없자 미국 정부는 대대적인 수색 작업을 벌였고, 결국 그들이 모두 창에 찔려 죽어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신문들은 그들의 죽음을 조롱했습니다.
What a waste!
이게 그들이 전한 말이었습니다.
과연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희생이 낭비이고 무의미한 것으로 끝났을까요?
[본론]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제사장의 위임식에 대한 것입니다.
여기서 제사장이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선택된 자들을 말합니다.
앞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을 주셨고, 그곳에서 그들을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백성들을 섬기는 자로 제사장을 뽑아 주셨습니다.
백성들을 대신해서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에게 전달했습니다.
그들이 바로 모세의 형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구약의 제사장이라고 말하면 ‘목사’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제사장은 우리 모두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현재 제사장들의 옷을 입고 있지 않지만, 대제사장처럼 하나님을 직접 만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제사장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제사장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요?
첫번째, 제사장은 회복된 삶을 사는 자입니다.
19, 20, 21절입니다.
‘너는 다시 다른 숫양 한 마리를 끌어다 놓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숫양의 머리 위에 손을 얹게 한 다음에, 그 숫양을 잡고, 피를 받아서, 아론의 오른쪽 귓볼과 그의 아들들의 오른쪽 귓볼에 바르고, 그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도 발라라. 그리고 남은 피를 제단 둘레에 뿌려라. 너는 제단 위에 있는 피와 거룩하게 구별하는 기름을 가져다가 아론과 그의 옷 위에 뿌리고, 아론의 아들들과 그들의 옷 위에 뿌려라. 그렇게 하면, 아론과 그의 옷과 그의 아들들과 그들의 옷이 거룩하게 된다’
먼저 숫양 한 마리를 잡아서 머리 위에 손을 얹어 안수를 해야 합니다.
이 말은 그 숫양이 곧 내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아바타 아시죠?
그 숫양이 내 아바타인 것입니다.
그 숫양을 죽여 내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형벌은 사망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인간이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죽게 된 이유가 바로 죄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은 자신의 죄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만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죄에서 깨끗하게 된 것을 확인하는 작업이 바로 오른쪽 귓볼, 오른쪽 엄지, 오른발 엄지에 피를 바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피와 향기나는 기름을 옷에 뿌리는 것입니다.
오늘쪽 귓볼, 오른손 엄지, 오른발 엄지는 우리 몸 전체를 의미하는 표현방식인 것입니다.
여기서 피는 생명을 상징합니다.
향기나는 기름은 구별됨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먼저 몸에 생명의 피를 뿌려 거룩하게 하고, 몸과 맞닿아 있는 옷에는 피와 기름을 섞어 뿌려서 제사장의 몸 전체가 거룩하고 구별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절차가 복잡할까요?
그만큼 죄의 문제가 심각하고 중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사장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준비되어야 하는 지 알려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의 형상을 따라 거룩한 형상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죄가 그 거룩한 형상을 깨뜨린 것입니다.
죄는 독약과도 같아서 우리 삶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혹시 세익스피어의 ‘맥베스’라는 작품을 아시나요?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중 하나로 알려진 작품이죠.
예전에 아내가 스위스에서 오페라 ‘맥베스’를 출연한 적이 있어 보러 갔었습니다.
거기 보면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게 됩니다.
죄때문에 치루는 댓가가 얼마나 큰 것인지 보여줍니다.
오페라 대부분에 피가 등장하는데 참 보기 힘든 장면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이 맥베스의 아내가 미쳐서 환영을 보다가 결국 죽게되는 장면입니다.
원래 남편 맥베스를 부추겨 왕을 죽였지만 결국 죄책감이 그녀의 발목을 잡은 것입니다.
나중에 맥베스 역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이처럼 죄는 독약처럼 우리 삶을 파괴하며 우리를 죽음으로 이끕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도 갈기갈기 파괴하는 것입니다.
이 죄의 문제를 하나님은 어떻게 해결하실까요?
죄 자체를 없애버리면 되는데 그 죄가 인간에게 기생하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죄를 죽이려면 사람도 죽여야 하거든요.
그럴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임시로 주신 해독약이 바로 ‘제사’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죄의 무서움을 잘 모르는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지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짓고나서도 쉽게 변명을 일삼습니다.
‘다 그렇게 하는데 뭘…’
또는 죄를 짓고나서 하나님께 쉽게 ‘아임쏘리’ 하고는 맙니다.
그러나 만약 지금 우리가 보는 구약의 말씀처럼 죄를 지으면 소나 양을 잡아야 한다면 어떨까요?
내가 지은 죄의 대가도 너무나 크고, 그것을 처리하는 절차도 너무나 복잡할 것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죄를 안 짓고 말지.’
이런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하는 회개의 무게가 소나 양을 잡는 것의 중대함과 동일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참된 회개는 후회가 아닙니다.
참된 회개는 우리의 삶의 태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제사장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요?
둘째, 제사장은 헌신된 삶을 사는 자입니다.
22-25절입니다.
‘이 숫양에서 기름기와 기름진 꼬리와 내장을 덮은 기름기와 간에 붙은 기름 덩어리와 두 콩팥과 그것을 덮은 기름기를 떼어 내고, 오른쪽 넓적다리를 잘라 내어라. 제사장을 위임하는 의식에서 쓸 것이니, 너는, 주 앞에 있는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둔 광주리에서 빵 한 덩이와 기름을 섞어서 만든 과자 한 개와 속 빈 과자 한 개를 가져다가, 그 전부를 아론의 손과 그의 아들들의 손에 얹어 주어, 그것으로 주 앞에 흔들어 바치는 제물로 드리게 하여라. 너는 그들의 손에서 그것을 받아다가, 제단의 번제물 위에 놓고 불살라라. 이것이 바로 향기로 나 주를 기쁘게 하는, 나 주에게 살라 바치는 제물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숫양의 기름이 붙은 부위와, 누룩이 없는 빵 3가지를 모두 하나님 앞에서 태워드리라는 것입니다.
기름은 짐승의 가장 좋은 부분을 의미합니다.
그 기름을 떼어내고 콩팥을 태운다는 것은 내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의미입니다.
기름도 가장 깊숙한 곳에 있고 콩팥도 가장 깊숙한 곳에 있기 때문에 내 마음의 은밀한 부분까지도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입니다.
빵 3가지를 태워드리는 것도 물론 3개 샘플로 드리는 것이지만 하나님께 내 모든 소유를 바친다는 의미입니다.
제사장들의 삶을 생각해보십시오.
평생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막을 들어갈 때면 극도의 긴장상태였을 것입니다.
조금만 부주의해도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생각까지도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기름과 콩팥 그리고 빵을 태우며 하나님께 헌신하는 마음을 되새겼을 것입니다.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이란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보면 어떤 친구가 닫혀있던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자기 마음에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예수님께 소개하기 시작합니다.
자기 삶을 예수님께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먼저, 생각을 채우는 방인 ‘서재’에 예수님을 모시고 갑니다.
그 다음, 욕구를 채우는 방인 ‘주방’에 예수님을 모시고 갑니다.
그 다음, 쉼을 채우는 방인 ‘거실’에 예수님을 모시고 갑니다.
그 다음, 능력을 채우는 방인 ‘작업실’에 예수님을 모시고 갑니다.
그 다음, 재미를 채우는 곳인 ‘오락실’에 예수님을 모시고 갑니다.
그 다음, 또다른 욕구를 채우는 방인 ‘침실’로 예수님을 모시고 갑니다.
아마 이쯤에서 그 친구는 예수님께 자기 집을 다 보여줬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가 숨겨둔 은밀한 장소 한 곳을 더 가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곳이 바로 그의 비밀을 숨겨둔 벽장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자기 삶의 찌꺼기들과 죽은 것들이 가득 있었습니다.
그는 처음에 예수님께서 너무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 보여줬는데 이 벽장까지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아무튼 그는 그 벽장의 열쇠도 예수님께 넘겨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집을 모두 다 청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방을 청소하면 저 방이 먼지가 쌓이니 끝도 없이 청소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도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면 또다른 죄를 짓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에 예수님께 자신의 집에 대한 모든 소유를 넘겨드립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그 집의 모든 더러운 것들을 치워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제사장의 삶을 산다는 것은 내 집의 명의를 예수님께 완전히 이전하는 일입니다.
내 삶의 구석구석 모든 것을 주님께 내어드리는 삶이 바로 제사장의 헌신된 삶인 것입니다.
이렇게 온전히 하나님께 내 삶을 내어드리지 않으면 위선적인 신앙생활로 변질되게 됩니다.
제가 아는 분은 교회에서의 삶과 집에서 삶이 다르고, 회사에서의 삶이 다릅니다.
자신의 거실과 작업실을 하나님께 내어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죄짓는 일도 얼마나 지치고 힘듭니까?
이 죄를 해결했다고 생각하면 다른 죄가 튀어나오죠.
끝없는 두더지 게임을 하는 느낌이 듭니다.
그것 역시 해결책은 하나님께 내 삶을 온전히 맡겨드리는 것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제사장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요?
셋째, 제사장은 함께하는 삶을 사는 자입니다.
31,32절입니다.
‘너는 제사장 위임식 때에 드린 숫양의 살코기를 가져다가, 거룩한 곳에서 삶아라.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회막 어귀에서 바로 이 숫양의 살코기와 광주리에 든 빵을 먹는다.’
앞서 고기를 다 태우는 게 아니라 일부 남겨둡니다.
숫양의 가슴부위와 넓적다리 부분입니다.
그것은 제사장들이 삶아서 함께 모여서 빵과 함께 나눠 먹습니다.
이것을 28절에 빨간색으로 표시되어 있죠.
화목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화목제의 특징이 다른 제사들과 다른 점은 짐승을 다 태우지 않고 남은 부분을 제물을 드린 사람들이 이웃과 함께 나눠 먹는다는 점입니다.
제사장들도 성막 입구에서 다른 제사장들과 나눠먹게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것과 사람들과의 관계도 회복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유태인들에게 식사를 함께 한다는 것은 신뢰하는 관계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앞서 우리가 본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삶, 하나님께 헌신된 삶이 이처럼 이웃과의 관계가 회복된 삶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만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가나안 성도라고 부릅니다.
거꾸로 하면 ‘안나가’ 성도이죠.
교회에 등록하지도 않고 혼자 몰래 예배만 드리고 오는 사람들입니다.
요즘은 온라인 예배를 드리니까 유튜브 켜면 대형교회 예배도 쉽게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삶이 아닙니다.
식사를 함께 나누는 삶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것을 초대교회에서는 성찬식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우리처럼 이렇게 단순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실제 일상에서 먹는 빵과 포도주를 나눠먹으며 교제를 나누는 것을 성찬식으로 여겼습니다.
성찬식에 사람들이 다 모여 예수님의 피와 살을 기억하며 함께 은혜를 나눴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을 제가 항상 교회 식구들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부모님의 피를 나눈 가족이 있는가 하면 예수님의 피를 나눈 또다른 가족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함께하는 삶을 사는 제사장으로 부르셨습니다.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식사를 함께 하며 기쁨과 슬픔, 감사와 위로, 격려를 함께 나누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처음에 제가 소개한 사람이 바로 짐 엘리엇이었습니다.
그는 애석하게도 선교사로 떠난지 얼마 안돼 죽었지만 하나님은 그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가 죽은 후 그의 아내와 친구들의 아내들은 그 부족들을 다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여성들과 아이들은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아우카 부족들 속에 들어가 함께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자 아우카 부족들은 그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고,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남편이 그토록 전하고자 했던 예수님의 사랑을 그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는 교회가 세워졌고, 목사가 배출되었습니다.
그 목사가 바로 그들을 찔러 죽였던 그 사람이었습니다.
짐엘리엇의 아내는 남편의 죽음을 what a waste로 조롱한 기자에게 남편이 일기장에 쓴 문구를 보내줍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 영원하지 않는 것을 버리는 자는 바보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한 제사장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이 결코 낭비가 아닙니다.
가장 확실한 대박나는 투자입니다.
우리 다카포 식구들이 모두 이런 제사장의 삶을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회복된 삶, 헌신하는 삶, 함께 하는 제사장의 삶이 되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