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마음, 순종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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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열왕기상 3장 4-10절 말씀입니다.
4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5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6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7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8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10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설교 제목 : 듣는 마음, 순종하는 마음
서론
임진왜란의 영웅은 누굽니까? 네 이순신이죠.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일본의 한 정치가가 일본의 땅이 모자르다는 이유로, 조선에 침입하였지만, 우리에게는 이순신이라는 위대한 장군, 영웅이 그 침입자를 막아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있어서 이순신은 영웅이지만, 일본에게 있어서 이순신은 어떤 존재였을까요? 일본에게 있어서는 원수와 같았을 것입니다. 이순신만 없었다면, 일본은 우리나라를 진작에 삼켜 먹었을 테니까요. 아까 이야기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인물은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침입자, 원수와 같지만, 일본의 입장에서는 그 당시 나라의 영웅과도 같았을 것입니다.
2명의 인물, 이순신과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비교이지만, 우리의 선 악의 기준은 굉장히 모호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선악의 기준은 자기 자신에 근거하기 때문이죠.
저번주에도 살펴보았지만, 우리의 처음 범죄의 현장, 선악과를 따먹는 장면을 보면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기 원합니다. 창세기 3장 5절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지만 그 선악과를 먹게 됨으로써, 그 기준, 선악을 알게 하는 기준을 어떻게 정하느냐, 자기 자신의 관점에서 선과 악을 정의내리게 됩니다.
그 결과 우리는 사사기 21장 25절 말씀처럼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자기 소견의 옳은 대로, 자신이 생각하기에 선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행하기 시작합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선이 다르기 때문에, 똑같이 선을 행하여도 충돌이 일어나고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하나님께 듣는 마음을 요구하는 솔로몬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 삶에 도전 되길 원합니다.
본론
오늘 본문의 솔로몬은 기브온으로 갑니다. 왜 그곳으로 가느냐, 하나님께 예배드리고자 가는데, 그곳이 가장 큰 예배당이었기 때문이에요. 그곳에서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립니다. 그 일천번제는 하나님께 일 천 마리의 번제물을 드렸던 것입니다. 번제 한 번당 소 한 마리가 하나님꼐 드려지는 것을 생각하면, 천 마리의 희생이 있었던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린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날 밤에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라고 하셨기 때문이죠.
이 때 솔로몬은 하나님께 이렇게 얘기합니다. 자신이 왕이 된 것이 자신이 잘났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은 연약한 어린아이와 같지만, 자신의 아버지인 다윗과 하나님께서 맺으신 언약 때문이었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9절로 구합니다.
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선악을 분별하다. 우리가 앞에서 이야기 했던 선악과를 따먹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지 않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것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것이지 않나요?
그런데 차이가 있습니다. 앞에 나와 있는 표현처럼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시옵소서. 선악과를 먹는 행위는 자신이 하나님처럼 되어 선악을 스스로 구별하려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솔로몬이 지금 선악을 구별하는 행위는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 스스로 구별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연약하오니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옵소서. 제가 듣겠습니다. 저에게 들을 수 있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이것은 우리에게 2가지를 얘기해줍니다.
1. 듣는 마음은 하나님에게 선과 악에 대한 옳은 기준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내 뜻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근거하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꼰대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말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 항상 맞는 것처럼 얘기하죠. 하지만 정작 그렇지 않습니다. 틀린 경우에도 자신이 맞는 것처럼 계속 얘기합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꼰대가 되어가기 마련입니다. 내가 경험한 것들, 내가 생각하는 가치관들이 맞다고 생각 되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내 말이 맞음을 증명하고 싶어하죠.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선악의 기준은 왜곡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준만이 맞기에 우리는 내 얘기를 말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 이야기를 들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2. 듣는 마음은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누군가의 말을 듣는다. 이것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릴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사실 그럴 수 밖에 없지 않나요? 우리가 한 주 동안 듣는 강의와 수업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고 그 모든 사실들을 머리속에 때려박고 있는데, 우리 뇌는 그것을 다 받아드리면, 다른 무언가를 잊어버려야만 한단 말이에요. 쓸모 없다고 판단되는 지식들은 바로바로 지워집니다.
한가지 물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잠깐 머리속에 스쳐지나가는 쓸모 없다고 판단되는 지식들입니까? 그렇지 않다면, 말씀을 들었을 때에 그냥 머리속에서 사라지도록 내버려 두지 말고 제발, 순종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구약의 유대인에게 “들음”은 “순종”을 의미했습니다. 듣는 것과 순종하는 것은 같은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그렇기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그것은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연구하고 판단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순종하기 위함이었어요.
솔로몬은 그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 듣는 마음이 왜 필요하였나면, 주의 백성을 재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솔로몬은 그 이후로 엄청나게 어려운 재판들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아이의 반을 가르라”는 재판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그러한 사람들, 힘들고 어려움을 겪을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백성들을 잘 다스리기 위해서.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시는 그 마음은 순종에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지혜는 자신의 잘남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백성들을 돕기 위함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챙기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 사람들은 무너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런 부담감을 가진 솔로몬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길 원했고, 순종했습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그의 책, ‘로마서 강해’에서 “내가 외적인 귀 뿐 아니라 내면의 귀를 통하여 정말 복음을 들었는지? 그를 통해 참된 믿음을 얻게 되었는지?를 우리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순종> 이라고 얘기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려고 하는가. 내가 아직 순종하지 않고 내 멋대로 살아간다면, 내가 복음을 진정으로 들었는지, 참된 믿음을 가졌는지 점검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스스로의 기준으로 내가 하고 싶은대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내가 어려운 길을 가고 싶지 않죠. 사실 우리가 말씀을 들으며, 순종하며 살아야 하지만, 우리의 힘으로는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우리의 마음 안에 선한 것이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겠습니까. 아무리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니 솔로몬이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 순종하는 마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마음을 제게 주세요.
사실 “하나님 말씀을 제가 듣겠습니다. 순종하겠습니다” 라고 하면 될 문제잖아요. 근데 그 똑똑한 솔로몬도 알고 있었던 것이에요. 우리의 힘으로는 절대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다는 사실을요. 맞아요. 심지어 예수님도 그러셨습니다. 십자가 지시기 전에, 제자들을 2번씩이나 깨워가며 기도하셨던 기도제목이 뭐였나요.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도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뜻에 맞추지 않고서는 도저히 하실 수 없던 것이 순종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하나님께 요청합시다. 하나님, 듣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싶으나, 순종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고 싶으나, 나의 몸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의 기준대로 내 뜻대로 살아가려고 발버둥칩니다. 이렇게 나는 연약한 아이오니, 말씀하여주시고, 순종하게 하옵소서.
결론
결론을 맺겠습니다.
오늘 살펴본 솔로몬은 이스라엘 역사상 위대한 왕으로 불립니다. 오늘 본문처럼 듣는 마음,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백성들을 돌보며 살아갈 때, 하나님이 부어주신 복을 누렸죠. 하지만 그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열왕기상 11장 9절에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그리고 그 영광스러운 나라는 힘을 잃어가고 나라는 분열됩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하나님을 떠났을 때,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며, 하나님과 긴밀한 교제를 나눴던지 간에, 지금 현재, 하나님에게 듣는 마음을 구하지 않고, 자신이 생각할 때에 옳은 길로 나간다면, 즉 하나님을 떠난다면, 소망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소망은 하나님께 붙어 있을 때 입니다. 오늘 말씀을 꼭 기억하십쇼. 제발 오늘 하루 지나고 잊어버리지 마십쇼.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순종하지 않으면,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가지니까, 하나님께 구합시다. 말씀하소서. 듣겠습니다. 순종하겠습니다. 아니 사실은 순종하고 싶지는 않는데, 순종하는 것이 옳은 것인줄 알기에, 순종하는 마음도 주시옵소서.
새로운 찬양 말씀하소w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