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04 SEE-IT 청년선교사연합예배 (눅9:57-62) '너는 나를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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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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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서론
서론
ㅇ 본문과 관련있는 예화 혹은 성경이야기
ㅇ 본문과 관련있는 예화 혹은 성경이야기
ㅁ 오징어 게임
1. 오징어 게임이 인기입니다. 오징어 게임은 목숨을 건 서바이벌 게임 내용의 드라마입니다. 456명의 참가자들은 상금 456억원을 걸고 옛날 어린시절 놀이를 진행합니다.
2.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구슬치기, 줄달리기, 징금다리 건너기, 오징어 게임 등의 여러 게임을 합니다. 탈락하면 그 순간 목숨을 잃습니다. 돈 때문에 죽고 죽여야만 하는 현실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3. 게임 참가자들은 빚으로 궁지에 몰린 사람들로 환난 당한 자, 빚진 자, 원통한 자들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입니다.
4. 그런데 오징어 게임에 나타나는 기독교인의 모습은 너무 부정적입니다.
5. 첫 번째 등장인물은 줄다리기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자 감사기도를 드리며 주위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다른 사람을 죽이고 자신이 살아남자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합니다.
6. 어떻게 해석할까요? 성령이 없는 그냥 이기적인 신앙인 것입니다. 성도로 볼 수 없습니다.
7. 진짜 성도에게는 타인의 죽음과 고통이 긍휼의 시선으로 봅니다. 나의 감사제목이 될 수는 없습니다. 성령이 함께하는 성도라면 어찌하든지 공존과 공생을 추구할 것입니다.
8. 두 번째 등장하는 기독교인은 아버지를 죽이고 출소한 어린 나이의 여성입니다.
9. 그녀는 자신의 사연을 이렇게 말합니다. "학교 갔다 집에 돌아오니까 엄마가 방바닥에 누워서 죽어 있었어. 그 옆엔 아버지란 인간이 칼을 들고 서 있었고. 그 다음으로 본 건 우리 아버지 시체. 그 옆에 칼을 들고 서 있던 건 나였고. 그 인간 직업이 목사였어. 엄마를 때리고 나한테 그 짓을 하고 나면 항상 기도를 했어. 우리 죄를 사하여 달라고."
10. 어떻게 해석할까요? 이런 부류라면 성령이 함께하지 않는 그냥 나쁜 인간입니다. 직업으로 목사를 선택하고서 위선적인 삶을 살아가는 유형입니다.
11. 그는 직업이란 항목에 목사로 기입을 할 것이지만 진짜 목사로 보기도 힘든 유형일 것입니다. 그저 바리새인 유형의 위선자로 해석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 유형은 목사 흉내를 내는 가짜 목사인 셈입니다.
12. 성령이 함께하는 목사라면 그런 위선적인 삶을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성령은 진리를 추구할수록 더욱 진실한 삶을 추구하도록 양심에 촉구하기 때문입니다.
13. 마지막 등장하는 기독교인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오징어 게임의 최후 승자가 된 주인공의 눈이 가려지고 양손이 뒤로 묶인 채 비오는 길거리에 버려집니다.
14. 그때 다른 행인들은 주인공을 무시하고 지나갈 때,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열정적으로 외치던 한 전도자가 다가와 주인공의 안대를 벗겨줍니다. 주인공이 길바닥에서 눈을 뜨자, 남자가 그에게 내뱉는 말은 "괜찮아요?"가 아니라 "예수, 믿으세요." 라고 합니다.
15. 여기엔 세상이 바라보는 기독교인의 이미지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사람을 감동 시키는 것은 예수천당 불신지옥이 아닐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고통당하고 고난당하는 이들을 조건 없이 품고 조건 없이 섬겨주는 것일 것입니다.
16. 말로는 자주 예수 믿으세요 라고 외치지만 삶은 공감할 수 없다면 오히려 전도의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차라리 말을 하지 않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다가가서 조용히 그를 붙잡아 일으켜 주었다면 좋았겠다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17. 3번 모두 기독교가 너무 부정적으로 그려져서 안타까웠습니다.
18. 이외에 저의 눈에 확 들어오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오징어 게임을 두고 도박을 벌이는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오징어 게임에 참여한 사람이 경주마처럼 전락하고 싸움탉처럼 전락해서 죽고 죽이는데 그것을 돈을 걸고 즐기고 있는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19. 단순하지만 우리 시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돈 앞에 부모형제도 없고 친구나 동료도 없어지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형이 동생을 죽입니다. 믿었던 동료가 배신을 합니다. 약자만 계속 죽습니다.
20. 오징어 게임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 모두는 생존 게임을 합니다.
ㅁ 어떻게 인간이 그럴수 있어?
ㅁ 인간적이지 않다
- 사악하다는 의미.
- 선한 인간 VS 사악한 존재의 구조 = 틀렸다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 시 14:1 이하; 시53:1 이하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ㅁ ‘제자적이지 않다’
- 선과 악 / 정상과 비정상을 비교하려면
본론
본론
ㅇ 주제와 관련 있는 문제제기 (원인과 결과)
ㅇ 주제와 관련 있는 문제제기 (원인과 결과)
ㅁ 무리 제자
1) 조급한 제자
57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주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어디로”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이다. 거기에는 대가를 계산하지 않는다. 그는 충동적이고 생생한 열심이 있는 생각을 소유한 사람이니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약간 기쁨으로 받았으나, 아직도 그의 마음속에 뿌리가 박히지 않았다. “내가 하리이다”라는 말은 그 자체가 힘을 지닌 것 같지만 사실은 약할 뿐이다. 주님께서 그를 어떻게 대하셨나를 살펴 보라. 그는 제안을 거부하지 않으신다. 그는 의미심장한 문장을 주사 그의 성급함에서 그가 행하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기 위해 기도와 자기 반성을 하라고 명하실 뿐이다. “어디로 가든지 나를 따르겠다고? 너희는 내가 모든 자 중에서 가장 가난한 자, 즉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나는 경멸과 버림을 당한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가? 왕자도 없고 왕도 아니요 너희가 생각하는 나라도 내게는 없지 않는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그렇다면 너희 자신을 어디에 호소해야 할지에 관해 생각해 보라.” 덧붙여 한 말씀이 더 요구된다. 즉 열심으로 따르려고 하는 의지가 때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정신 원리를 받는 데에는 더디다.
2) 느린 제자
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조급한 제자가 시야에서 보이지 않자, 보라! 다른 한 사람이 나타나는데 그는 느림보라고 부를 수 있다. 두 사람의 차이점에 대하여 주의하라. 전자에서는 그 사람이 솔선했고, 후자에서는 예수님이 “나를 쫓으라”라는 짧고 절대적인 말씀으로 솔선권을 취하셨다. 한 사람에게는 의심이 없으니 다른 한 사람에게는 쫓으려고 하는 그의 확신을 나타낼 만한 용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마음이 결정되지 않는 상태인 것이다. 주님에 대한 신비스런 매혹을 느끼고는 있으나 또한 집과 나이든 부친과 조용한 마을에서의 친구들이 있다. 아니다 그는 준비가 되었으나 온전하게 되지 않았다. 주님이 보시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이다. 주님께서는 그의 영혼 속에서 역사하고 있는 말씀에 떨고 있는 그를 보시고 권세 있는 말씀으로 “쫓으라”라고 그를 부르신다.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소서”(59절)라고 한 것은 매우 자연스럽지 않은가? 그리고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신 주님께서 당장 허락하지 않으실까? 아니다. 주님의 요구와 부르심은 사적이며 가정적인 주장을 모두 묵살하신 것이다. 그런고로 60절의 불가사의한 대답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네게는 네 속에 고동하는 생명을 받지 못한 이웃과 형제가 있으니, 그들에게는 너희가 부름 받은 것과 같은 임무가 맡겨져 있지 않다. 그러나 너희 안에 이 생명을 가지고 있는 너희는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생명은 살아야 하는 것이니 살아있는 너희는 가서 산 자의 임무를 채우도록, 즉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도록 하라.”
3) 나약한 제자
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마지막으로 나약한 믿음을 가진 제자가 나타난다(61절)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 ~다만 나로 먼저 집에 가서 작별하고 모든 사람을 마지막으로 보고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아! 그에 대한 답변은 약간 엄격하였다(62절). 그렇다면 이제 그 교훈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다음과 같다. 우리는 해변의 바위들과 암초에서 그것들에 뿌리 박혀 있는 생물들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그 암초에서 말미잘을 떼어놓는 것은 매우 힘들다. 영혼을 가지고 있는 인간도 저 식충처럼 바위에 착 달라붙어 밀물과 썰물에 의해 약간씩 움직이는 것 외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 운명에 처해진다면 이 얼마나 끔찍스러운 일인가!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훨씬 낫게 연명하고 있지 않은가? 날마다 변화 없는 세상적 삶의 단조로움만 겪고 살며 더 고귀한 목적도 기댈 곳 없이 사는 생활은 모두가 세상적 삶인 것이다! 오 불쌍한 광경들~그것은 티끌에 붙어 사는 영혼이여! 우리는 더 숭고한 진리를 보지 않았는가! 그리스도의 얼굴을 들여다 볼 때에 우리를 더 높은 곳으로 이끄는 음성이 들리지 않는가? 만일 우리의 이 지구가 그 자체의 지축 궤도에서 약간만이라도 벗어나 움직인다면 사망과 어두움은 어떻게 될까? 그것은 거대한 태양계의 일원으로 그보다 더 높은 궤도 때문에 생명과 빛의 수령자가 아닌가? 또한 우리 존재의 중심이 하나님이므로 영적 생명과 빛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모름지기 손에 쟁기를 든 예수님의 제자는 흙덩이가 단단하고 그 일이 힘들지라도 결심을 굳게 하고, 얼굴을 주님과 함께 예루살렘을 향하여 똑바로 보고 이랑의 끝까지 쟁기질 하면서 돌아가는 것과 똑 같이 뒤돌아보는 일을 말아야 할 것이며, “주여, 내가 당신의 이름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도록 내 마음을 꼭 붙잡아 주소서”라는 기도를 모든 기도 중에서 특별히 해야 한다.
ㅁ 김진주 선교사님
1) 선교를 위해 직업을 결정
2) 외할머니 아프심 / 할아버지 홀로 되심 / 할머니
ㅇ 해결방법
ㅇ 해결방법
ㅁ 선교사는 살리는 사람이다
- 닥치는대로 살리는 사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ㅇ 나타난 결과
ㅇ 나타난 결과
결론
결론
ㅇ 핵심내용 정리
ㅇ 핵심내용 정리
ㅇ 결단할 내용
ㅇ 결단할 내용
축도문
축도문
지금은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하신 사랑과
날마다 우리와 동행하시며 인도하시는 성령님 역사가
세계 각지에서 주의 복음을 위해 삶을 태우는 선교사님들과
흑암의 땅에서 믿음의 경주를 하는 북한의 성도들과
사랑하는 더리버처치 성도와 가정의 머리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찌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