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03 더리버처치 주일예배 (마5:11-16) '복=소금,빛'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14 viewsNotes
Transcript
본문
본문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서론
서론
ㅇ 본문과 관련있는 예화 혹은 성경이야기
ㅇ 본문과 관련있는 예화 혹은 성경이야기
본론
본론
ㅇ 주제와 관련 있는 문제제기 (원인과 결과)
ㅇ 주제와 관련 있는 문제제기 (원인과 결과)
ㅁ 빛이 비치면 나타나는 현상
- 착한 행실
ㅁ 빛이 비치면 나타나는 결말
- 하나님게 영광을 돌린다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ㅁ 착한 행실을 하면 빛이 된다? NO!
ㅁ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
- 부패하지 않게 하며, 착한 행실을 한다
- ‘너희에게 있는 것으로 그렇게 되게 된다’
ㅇ 해결방법
ㅇ 해결방법
ㅁ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
〈3〉 1)‘심령이 가난한 자’ = ‘하나님 앞에서 비어있는 사람’
라는 표현은 이것이 물질적인 가난함(눅 6:20 에서처럼)이 아니라는 사실에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이 어구는 모든 지복의 사상적 기저가 되는 구약성경의 한 주제를 암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시편이나 다른 곳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가난한 사람들’혹은 ‘미약한 사람들’(‘ānî 혹은 ‘ānāw)이라는 주제이다(사 61:1–2 은 4절에 암시되어 있고 시편37:5 에 암시되어 있다).
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교만하게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사악한 사람들’과 대조되어서, 이들은 비록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이 압제와 물질적인 손해를 야기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겸손하게 신뢰하는 자들이다. 경건과 고난이 강조되고 있고, 물질적인 빈곤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의존이 강조되어 있다. 후기 유대교 문헌들 가운데, 특별히 솔로몬의 시편과 쿰란 문서들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라는 표현이 1QM 14:7에 등장한다) ‘가난한 자’라는 표현은 지속적으로 신실하고 박해받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에 의해서 신원을 받게 될 하나님의 백성을 나타낸다. 이렇듯 ‘세상과는 차별되고 오로지’ 하나님만을 신뢰하는(G. Barth, TIM, 123–124은 ‘하나님 앞에서 비어있음’[empty before God]이라는 구를 사용한다) 겸손한 태도는 제자의 표시가 된다. 천국은 ‘하나님 앞에 비어있는 사람’의 것이다(아마도 이런 사람으로 ‘구성 된다’가 더 좋은 번역일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4〉 2)‘애통하는 자들’ = ‘하나님께 충성스런 사람’
이라는 표현은 필연적으로 사별한 사람들을 의미하거나 심지어는 회개하는 자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고통당하는 사람들인데, 세상적인 관점으로 볼 때, 그들의 삶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특별히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으로 인해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다(참조, 3절). 이 절은 이사야 61:2 을 반영하고 있는데, 이사야의 본문은 메시아의 사역 가운데 하나로서 위로를 약속하고 있다. 하나님의 구속사 속에서 이들은 세상의 조건을 뛰어넘는 행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행하실 일에 대한 셈어의 숙어적 표현이다. 또한 6, 7, 9절을 보라.
〈5〉 3)‘온유한 자’ = ‘하나님의 멍에를 지는 사람’
라는 표현은 ‘마음이 가난한 자’처럼 구약성경의 사고를 반영하고 있다. 그들은 권력을 휘두르지 않는 사람들이고 그들에게 적절한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의 사역의 특성으로서 온유함은 마태에 의해서 강조되고 있다(마11:29; 12:15–21; 21:5).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18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19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20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21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온유한 자들에 대한 약속은 시편 37:11 로부터 인용되었다(이 시편은 전체에 걸쳐서 ‘온유한 자’와 ‘악한 자’의 태도와 운명을 대조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 땅’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온유한 자들이 악한 자들을 대체하게 된다는 사고를 나타내지만, 그 시편에서는 일차적으로 팔레스틴 땅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이것을 지역적인 의미로 적용하지 않으시고, 온유한 자를 궁극적으로 신원하신다는 관점에서 적용하신다. 하나님은 자신들을 위해서 높은 지위를 붙들려고 노력하지 않는 자들에게 그것을 허락하실 것이다.
〈6〉 4)‘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 ‘하나님의 뜻을 염원하는 자’
영적인 배고픔과 목마름을 위해서는 시편 42:1–2, 이사야 55:1–2 을 보라. 마태복음에 나오는 ‘의’에 대해서는 마3:15 을 보라.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이곳에서의 의미는 그들의 유일한 바램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께 순종하는 관계이다. 따라서 이것은 사회적 정의를 위한 바램이 아니라 개인적인 염원인 것이다. ‘신원’(구약성경에서 체다카[cēdāqâ], ‘의로움’의 일반적인 의미) 혹은 ‘의롭게 됨’(디카이오쉬네[dikaiosynē]는 바울 서신에서 ‘의로움’이란 의미를 종종 담고 있는데 아마도 마태에서는 아닌 것 같다)이라는 개념이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shall be satisfied)라는 표현 속에 암시될 수도 있지만, 불순종에 의해서 암운이 드리워지지 않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궁극적인 만족이 이 표현이 주로 드러내려하고 있는 것이다.
〈7〉 5)‘긍휼히 여기는 자’ = ‘하나님의 도움을 나타내는 사람’
‘긍휼’의 중요성과 그것의 상호적인 특성이 마태에서는 강조되고 있다(마6:12, 14–15; 9:13; 12:7; 18:21–35; 23:23).
25 자비로운 자에게는 주의 자비로우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26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니
상호적인 원리를 위해서는 시편 18:25–26 을, 그 역을 위해서는 욥기 22:9–10 과 잠언 21:13을 보라. 자비와 긍휼에 대한 실제적인 특성을 위해서는 본서의 9:27 주석을 보라.. 불쌍히 여겨달라(엘레손, eleēson)는 요청은 마15:22; 17:15; 20:30–31 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30 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각각의 경우에 있어서 실제적인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엘레모쉬네(eleēmosynē)의 일반적 사용이 ‘구제’로 쓰인 것은 18:33을 보라. 자비라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필요에 대한 실제적인 반응이다. 이곳에서 뿐만 아니라 15:22; 20:30–31에서도 자비라는 것이 ‘다윗의 아들’이라는 표현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자비’라는 것이 다윗 계통의 메시아를 특징지워 주는 것으로 기대되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그리고 이사야 35:5–6;61:1 의 사용과 더불어 마11:4–5 은 이러한 예수님의 분명한 호소가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메시아의 치유적 역할에 대한 보편적 인식이 유대인들 가운데 충분히 퍼져있었다는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8〉 6)‘마음이 청결한 자’ = ‘하나님을 찾는 사람’
시편 24:3–4 을 보라. ‘마음이 청결한 자’라는 것은 도덕적 청결함(성적인 의미는 덜 담고 있다)이란 의미로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13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3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4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5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6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이것은 전심으로(신 6:5) 또한 나누어지지 않은 충성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나타낸다. 이들의 내적인 특성들은 그들이 바깥으로 표현하는 고백과 다른 것이 아니다(참조, 사 29:13). ‘바로 그러한 것이 하나님을 구하는 자들의 세대의 특성이고’(시 24:6) 그들은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라’라는 약속을 받는다. 이것은 ‘그의 참 모습을 우리가 보게 될 때’(요일 3:2)에야 비로소 완전한 모습으로 천국에서 성취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그와 같이 될 것이며’ 6절에 표현된 바램들이 최종적으로 만족함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분을 마치 보는 것처럼’ 섬기며 인내하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이 땅에서 경험이다(히 11:27).
〈9〉 7)‘화평케 하는 자’ =’하나님의 아들을 전하는 사람’
경쟁과 분쟁으로 점철되어져 있는 세상에서 평화를 지키려는 자는 드물고 화평하게 하는 자(peacemaker)는 더욱 드물다. 이전에 언급된 지복들의 표시인 개인적인 야망의 부재는 바로 화평케하는 사람의 특성을 위한 기초를 제공한다. 바로 이러한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다(시 34:14).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하나님이야 말로 최고의 화평케 하는 분이시며(참조, 엡 2:14–18; 골 1:20) 바로 이 같은 특성이야 말로 제자들을 그 분의 아들들로 돋보이게 한다. 왜냐하면 아들은 아버지의 특징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10〉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 =’하나님의 뜻이 삶의 방향인 사람’
6절에서처럼 ‘의’는 단순히 ‘선함’ 그 이상이다. 이것은 모든 삶의 방향이 하나님과 그 분의 뜻에 맞추어져 있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한 삶은 눈에 띌 수밖에 없으며(참조, 14–16절) 11, 12절에 더 자세히 설명하듯이 박해를 야기시킨다.‘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라는 표현은 3절을 반향하고 있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팔복을 정리하고 있고 선택적으로 더할 수 있는 목록이 아님을 보여주며 또한 전체로서 하나의 특성을 나타낸다. 이것은 전체로서 하나님 같은 특성인데 모든 진정한 제자들에게서 점진적으로 발견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단지 그러한 특성이 발견되는 곳이 천국이고 하나님의 통치가 진정으로 효과를 발휘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ㅇ 나타난 결과
ㅇ 나타난 결과
결론
결론
ㅇ 핵심내용 정리
ㅇ 핵심내용 정리
ㅇ 결단할 내용
ㅇ 결단할 내용
축도문
축도문
지금은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하신 사랑과
날마다 우리와 동행하시며 인도하시는 성령님 역사가
세계 각지에서 주의 복음을 위해 삶을 태우는 선교사님들과
흑암의 땅에서 믿음의 경주를 하는 북한의 성도들과
사랑하는 더리버처치 성도와 가정의 머리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찌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