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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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싫어하는 건 : 선착순, 등수 매기기.
선착과 등수가 있다는 건 단순한 기준 한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부족해서일까? 우리는 기준 하나로 평가하기에는 너무 다양한 측면이 있는 사라이 아닌가?
하지만 세월이 흐를 수록, 우리는 줄세우기를 좋아하고
오늘 본문에서도 그걸 본다.
1. 자비의 집의 무자비한 이야기
1. 자비의 집의 무자비한 이야기
큰 병원에는 항상 사람이 많다. 나을 소망이 있기 때문에.
베데스다 연못도 그랬을 것. 어디에서도 나을 소망을 가질 수 없는 이들이 모여 치료를 기대하는 곳.
베데스다 : 자비의 집.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전혀 자비로운 곳이 아니며, 도리어 무자비한 곳이다.
빠르거나, 몸싸움 잘하거나, 보디가드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곳.
그런데, 갈수록 우리가 살아가는 곳이 이 베데스다를 닮았다.
1-20대, 닥치고 외워라 - 학교 서열 순서대로.
모든 것이 점수로 바뀌는 사회.
정말 그게 다인가? 그게 끝인가?
그러면 숫자가 신이 되는 것 아닌가 하나님이 거하실 곳은 어디고,
은혜와 자비의 자리는 어디있는가?
뻔히 보이고 파악할 수 있는 건 우상이기 쉽다.
손에 잡히는건(드라빔) 우상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분명하고 확실하지만,
믿음에 근거하며, 내 맘대로 내 손에 잡히지는 않는다.
2. 왜 우리는 무자비한 자비의 집을 떠나지 못할까.
2. 왜 우리는 무자비한 자비의 집을 떠나지 못할까.
사람들이 떠나지 않으니까. 다 여기가 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하니까.
우리가 시험에 들게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해달라 기도해야 되는 이유가 거기 있다. 완전히 빠지면, 보내 세월이 길어지면 무엇이 하나님 뜻인지 알기 어렵게 된다.
잘난 척하고, 자기 혼자 집에 누워있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신앙이 그런 수준에 머무를 때가 많다.
예수를 만나야 한다. 그에게 가까이 나가야 한다.
히브리서 4:14–16 (nkrv)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μισθαποδότης 삯을 잊지 않고 챙겨 주시는 분이심.
떼어 먹지 않으시고···.
수고해도 소용이 없는 세상. 38년 기다려도 소용이 없는 베데스다.
우리는 겉으로만 하나님께서 계신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마음으로는 무엇이라고 하는가?
주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자.
우리는 왜 주님과 거리두기 하려고 하는가?
내 인생은 내 맘대로 살아가면서, 쭉정이 같은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고 그렇게 살아가는가?
3. 주님의 원리, 주일의 원리를 알아야.
3. 주님의 원리, 주일의 원리를 알아야.
본문에서 우리는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다시 한 번 만난다.
아픈 사람이, 그것도 38년 된 환자, 병자가 나았다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놀라운 일이다. 요즘에도 가끔 해외토픽이나 인터넷 기사에 비슷한 경우가 나온다. 그런데 안식일에 고쳤다고 해서 전혀 기뻐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도 말씀이, 교리가 이런 것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27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안식일은 주께서 우리를 쉬게 하시고, 다 함께 즐기자고 하는 날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되어, 교묘한 그물을 쳐 놓고 괴롭히는 날이 되었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이 걸어간 사람을 괴롭게 하는 것이 유대인들의 모습이었다.
안식일은 안식을 주는 날이어야 한다.
이미 안식 얻는 이를 피곤하게 하는 날이어서는 곤란하다.
주일도 이에 대한 진정한 완성이다.
예수께서는 앞에서부터, 뭔가 희한한 퍼포먼스를 가급적 피하시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걸 그저 구경하기 좋아하는 이들이 넘쳐났으니까. 여기서도 말씀으로 고치신다. 말씀의 능력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말씀을 품고 되새겨야 한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음을 의식해야 한다. 말씀이 선포되면 빛이 오고, 중풍 병이 낫는다.
말씀이 선포되었을 때, 그대로 이루어지고, 그것을 기억하고 기념하며, 기대하는 것이 안식일·주일의 진정한 의미다.
갈라디아서 4:3 (nkrv)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갈라디아서 4:9 (nkrv)
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초보적 원리. - 이게 공부 이야기 하는게 아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 베데스다의 원리.
자비로운 척하나, 그리고 거기에 목매어 있으나 무자비한 그 원리 그걸 벗어나야 한다는 것.
이것이 율법의 원리가 되는 이유는 지켜야 준다는데,
지킬 수 없는 자들에 대한 자비가 없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예수께 더 가까이 나가자.
그리고 내 멋대로 판단한기에 바쁜 이 모습을 말씀에 비춰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