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빌런
Notes
Transcript
성경 본문: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역대하 33장 10-13절 말씀입니다.
10 여호와께서 므낫세와 그의 백성에게 이르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11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들이 와서 치게 하시매 그들이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간지라
12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13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
설교 제목 : 역대급 빌런
서론
오늘은 성경에 나오는 역대급 빌런을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악당이나 악역을 뜻하는 영어 단어로, 히어로 물에 악당, 해를 끼치는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선이 아니라, 악을 선택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이 아니라, 좋지 못한, 악한 영향력들을 끼치는 것이죠.
우리 삶에서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저 사람만은 닮지 말아야지, 저렇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지.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사람을 피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사람과 함께 숙제를 하거나, 발표를 준비하게 되어 피할 수 없게 되기도 합니다. 그 상황이 지속되어 너무나도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나쁜 생각으로 저 사람은 교회 다니지 않았으면, 예수님을 몰랐으면 하는 마음을 갖기도 합니다.
이렇듯 우리 삶에서도 빌런을 만나듯이, 성경에 나와 있는 이스라엘의 왕 중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왕을 만나기도 하고,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빌런, 사악한 왕을 만나게 되기도 합니다. 오늘은 그러한 사악한 왕 중에서도 가장 사악한 왕에 대해서 살펴 보려고 합니다.
본론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은 바로 ‘므낫세’입니다. 이 므낫세는 어떠한 사람이냐,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경건한 왕, 히스기야의 아들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어떻게 살까 고민하다가 예배당을 정화하고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했는데, 가장 문제 되었던 이방신을 섬기던 예배당인 산당을 제거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일을 했습니다. 그 때 당시 남 북이 갈라져 있는데, 북에 있는 사람들 중 므낫세라는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요청하며,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므낫세로 지었습니다. 대통령이 아들 이름을 북한이라고 짓는 거죠
그렇듯 므낫세는 어려서부터 아주 경건한 아버지, 히스기야의 모습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려서부터 왕이 되어 무려 55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통치를 하게 되는데,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긴 통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므낫세는 왕이 되었을 때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행했습니다.
아버지가 개혁했던 모든 것들을 다시 원래상태,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상태로 바꾸어 놓습니다. 첫번째로, 히스기야가 없앴던 이방신들을 섬기는 예배당인 산당들을 다시 부활 시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당에서 하늘의 일월성신, 해와 달과 별을 위한 제단을 만들고, 하나님 앞에서 다른 신에게 경배드립니다. 하나님을 많은 신 중에 하나로 치부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인신제사를 합니다. 다른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해 사람을 제물로 바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왕의 영향력은 대단하여서, 왕이 하나님께 잘 순종하면 그 시대의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께 순종하였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왕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범죄하면, 그 시대의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타락한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므낫세 왕은 가장 악한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오랜시간 동안 통치했기 때문에, 가장 악한 시대를 살아가게 됩니다.
33장 9절 “그러나 므낫세는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을 그릇된 길로 이끌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멸망시키신 나라들보다 더 악한 일을 했습니다.”(쉬운성경)
그 때에 하나님께서 므낫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를 하십니다. 10절 “여호와께서 므낫세와 그의 백성에게 이르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하나님의 경고에도 므낫세는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듣고 싶지 않은 소리를 하는 선지자들을 죽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앗수르 사람들을 통해서 징계하십니다. 앗수르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쳐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므낫세를 생포하고 갈고리로 그의 코를 꿰고 쇠사슬로 묶어서 그를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 (현대인의 성경)
이 모습은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를 연상시킵니다. 한 나라의 왕이 지금 범죄함으로 인해 전쟁애서 패하였고, 비참한 굴욕을 당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고 살아가던 므낫세가 저렇게 굴욕당하는 모습을 보며 통쾌함을 느낍니다. 그는 악인 중에 악인이었고, 역대급 빌런이었습니다. 열왕기하 21장 16절에 “또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득하게 하였더라” 수 많은 사람들을 죽였던 그가 이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러한 죄인인 므낫세를 아직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므낫세가 그렇게 비참하고 굴욕적인 시간들을 경험하였을 때, 므낫세는 하나님께 회개합니다.
“12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징계를 통해서 교만함이 부셔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2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얼굴을 간구하였습니다. 둘째,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크게 겸손하였습니다.
여호와께 간구하였다.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하게 구하였습니다. 자신을 낮추다 겸손하게 하다는 것은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고 회개하였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해결 할 수 없음을 보며, 하나님께 겸손함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는 솔로몬이 하나님께 응답 받았던 기도와 연결됩니다. 하나님께 우리 민족이 범죄하여서 전쟁에서 패하여 포로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면, 용서하시고 돌아오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길
역대하 7장 14절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얼굴을 찾으면(은혜를 구하면) 내가 듣고, 죄를 용서하고, 땅을 고치리라
하나님께서는 므낫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용서하시고, 솔로몬과의 약속대로 다시 므낫세를 왕위에 앉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경험하게 하시는 은혜와 자비였습니다. 므낫세의 행동을 보면 용서하고 싶지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솔로몬과의 약속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와 회개하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행하면, 죄를 용서하고 회복시키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므낫세는 그것을 통해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 전, 바벨론으로 끌려 갔을 때에 자신이 그토록 신뢰하고 예배하였던 신들에게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자신의 아들을 제물로 바치면서까지 섬겼던 그 신들에게 기도하였으나, 전혀 기도를 받아주지 않는 것을 보며, 아니 받아줄 수 없는 허울 뿐인 신이었음을 보면서 좌절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을 평소에 예배하지도 않고, 오히려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던 그 므낫세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였을 때에 용서함으로 받아주었습니다.
그 때에 아버지였던 히스기야 왕이 섬겼던 아버지의 하나님, 조상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구나를 깨닫게 됩니다. 물론 우리가 뒤에 말씀들을 함께 읽지는 않았지만, 그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복귀 했을 때에 하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자신이 다시 지었던 산당들을 죄다 성 밖으로 던져버리고, 성전 안에 세웠던 우상들을 없애고, 유다를 명령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백성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만 제사를 드렸습니다.
엄청난 반전입니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짓만 골라서 하던 역대급 빌런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에 그의 삶 전체가 변화 됩니다. 그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을 거역하고 살도록 만들었던 므낫세가 하나님을 경험하고 나서, 180도 바뀌어서 백성들에게 하나님만을 예배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므낫세가 어떻게 바벨론에게 끌려갔다가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왔는지 아는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을 두 눈으로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만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바뀔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므낫세가 바벨론에 잡혀 있을 때에도, 선견자가 찾아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씀을 권합니다. 18절 “므낫세의 남은 사적과 그가 하나님께 한 기도와 선견자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권한 말씀은 모두 이스라엘 왕들의 행장에 기록되었고” 그 때 무엇이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하나님께 회개할 것을 요구받았을 것이고, 그를 통해 므낫세는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셨음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신 것과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것이 이러한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사랑하는 우리 청소년부 친구들, 그리고 항상 애쓰시는 선생님들, 그리고 죄인 중의 괴수인 저 스스로에게 오늘 이 하나님 말씀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므낫세와 같은 죄인을 포기하지 않으신 것처럼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 청소년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 대흥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말씀으로 얘기하십니다. 다른 신들에게 시선을 돌리지 말고, 오로지 하나님 한 분만 바라봅시다.
결론
‘천국의 사냥개’ 이야기를 하며 결론을 맺겠습니다.
시인 프랜시스 톰슨이 쓴 시입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외로운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아버지의 기대에 어긋나게 신부도 되지 못하고 의사도 되지도 못하고 군인도 되지도 못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옥스퍼드에서 수학하기를 원했지만 프랜시스는 마약에 빠져 런던의 빈민굴에서 살았습니다. 그런 중에도 그는 자신을 계속하여 추적해 오시는 주님을 느꼈습니다. 주님의 추적에서 벗어나 보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결국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게 되고, 그의 인생은 극적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천국의 사냥개] (Hound of Heaven)라는 기념비적인 시를 썼습니다. 시가 상당히 길기에 그 의미를 살리는 선에서 압축하여 소개합니다.
1연 영혼의 도망
나는 그에게서 도망쳤네, 밤에도 그리고 낮에도.
나는 그에게서 도망쳤네, 수많은 세월 동안을.
나는 그에게서 도망쳤네, 내 마음속 미궁 같은 길로.
그리고 슬픔 속에서도 나는 숨었네, 겉으로는 연이어 웃으면서.
한순간 희망에 부풀어 오르다가도 두려움의 골짜기 거대한 음울 속으로 곤두박질쳐 버렸네,
나를 따라오는, 추적해오는 그 힘찬 발소리로부터.
그러나 서두르지 않고 흐트러지지 않는 걸음걸이,
일부러 속도를 내며, 장엄한 긴박함으로, 두드린다
그리고 한 목소리가 두드린다,
발소리보다 더 긴박하게-'네가 나를 배반하기에, 모든 것이 너를 배반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니, 모든 것이 나를 배반함을 얘기합니다.
4연 영혼의 체포
“가여워라, 너는 알지 못하는도다, 네가 얼마나 사랑받을 만하지 못한 존재인지!
너처럼 비천한 자를 사랑할 이 누가 있으랴, 나, 오직 나 외에는?”
내가 네게서 가지고 간 모든 것은 너를 해롭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네가 그것을 내 품 안에서 찾도록 하려는 것이라… 일어나라, 내 손을 잡아라, 그리고 내게로 오라!
프랜시스 톰슨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경험을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그것은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약 그리스도인이라면 그것은 우리가 그분을 믿기로 결단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기로 결심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천국의 사냥개, 대단한 연인’의 추적 때문입니다.
만약 이 자리에 하나님을 알기 싫어하고 만나기 싫어하는 친구가 있나요? 만약 여러분 중 하나님은 만났으나, 하나님에게서 벗어나려고 하는 친구들 있나요?
단언컨데,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천국의 사냥개를 보내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삶 속에서 하나님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서 심히 발버둥친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포기하지 않는 그 사랑이 여러분을 꽉 잡을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싫다고 하나님을 욕하고 악행을 저질러도, 역대급 빌런, 므낫세가 결국 하나님에게 무너졌던 것처럼 여러분도 붙잡힐 것입니다.
간절히 소망하기는 므낫세가 하나님을 따르게 되었을 때 백성들이 하나님만 예배하게 바뀌었던 것처럼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누릴 때 그런 역사가 일어나길 원합니다.
이 시간 함께 찬양했으면 좋겠습니다. 주께 포기란 없네 라는 찬양을 고백할 때 소망 없는 곳에 소망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것, 포기하지 않으실 것을 기억하며 고백합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이시기에,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저항하든, 저항하지 않든 결국 하나님 사랑 안에 거하게 됩니다. 다만 하나님에게서 벗어나려 할수록 하나님께서는 돌아오게 하시기 위해, 강한 역사를 경험하게 되죠. 사람마다 다 다른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처음부터 ‘예’ 하며 순종하지만, 누군가는 ‘예?’ 하면 도망치다가 잡혀서 돌아오죠. 어떠한 인생이 더 낫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 또한 우리가 정할 수 없구요. 다만 간절히 소망하는 것은 너무 많은 것들을 희생시키며, 본인을 갉아먹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 시간 기도할 때에 주님 사랑을 경험하길 원합니다. 나에게 주님의 사랑을 주시옵소서. 이렇게 이시간 주여 한번 부르짖고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