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4) 욥이 간절히 바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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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친구의 말 총 9장, 욥의 말 총 20장(6장~31장까지, 엘리후-총 6장)
욥 19:1-6

1. 욥이 가장 힘들어 했던 것

재산과 자녀를 잃은 슬픔, 신체적 고통, 아내의 비난
형제/친척과 모든 지인이 떠남, 종과 어린이도 무시함, 친구들의 비난과 증오
욥기 19:13–21
13 나의 형제들이 나를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내게 낯선 사람이 되었구나 14 내 친척은 나를 버렸으며 가까운 친지들은 나를 잊었구나
15 내 집에 머물러 사는 자(나그네)와 내 여종들은 나를 낯선 사람으로 여기니 내가 그들 앞에서 타국 사람이 되었구나
16 내가 내 종을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니 내 입으로 그에게 간청하여야 하겠구나
17 내 아내도 내 숨결을 싫어하며 내 허리의 자식들(손자들)도 나를 가련하게 여기는구나
18 어린 아이들까지도 나를 업신여기고 내가 일어나면 나를 조롱하는구나
19 나의 가까운 친구들이 나를 미워하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돌이켜 나의 원수가 되었구나
20 내 피부와 살이 뼈에 붙었고 남은 것은 겨우 잇몸 뿐이로구나
21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

1-1. 억울함을 호소함

욥기 12:4
하나님께 불러 아뢰어 들으심을 입은 내가 이웃에게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의롭고 온전한 자가 조롱거리가 되었구나
욥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결백(온전함)을 포기하지 않는다.
욥기 27:5–6
나는 결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내가 죽기 전에는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내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
“까닭 없이” 당하는 고난이기에 하나님을 원망한다. 그 이유를 알고 싶을 뿐이다.
(선택도 마찬가지다. 이유없이 우리를 택했지만 우리는 이유를 알고 싶어 한다.)
욥기 9:15–18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대답하지 못하겠고 나를 심판하실 그에게 간구할 뿐이며
가령 내가 그를 부르므로 그가 내게 대답하셨을지라도 내 음성을 들으셨다고는 내가 믿지 아니하리라
그가 폭풍으로 나를 치시고 까닭 없이 내 상처를 깊게 하시며
나를 숨 쉬지 못하게 하시며 괴로움을 내게 채우시는구나
원망이 하나님을 향함
욥기 9:21–23
나는 온전하다마는 내가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내 생명을 천히 여기는구나
일이 다 같은 것이라 그러므로 나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온전한 자나 악한 자나 멸망시키신다 하나니
갑자기 재난이 닥쳐 죽을지라도 무죄한 자의 절망도 그가 비웃으시리라
여러분은 욥의 말을 믿습니까?(아멘?)

*여기서 잠깐! 욥은 자신이 완전무결하다고 주장하는가?

그는 자신이 죄인이며 하나님의 용서로 지금까지 살고 있음을 안다. 그러기에 제사를 지냈었다.
욥기 9:2–3
진실로 내가 이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
사람이 하나님께 변론하기를 좋아할지라도 천 마디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리라
“욥은 자신은 죄가 없으며 완전하다고 주장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의 죄를 용서받았다고 믿는다는 뜻이다. 고백하 지 않고 용서받지 못한 죄가 자신의 삶에 하나도 없다는 인식은 욥기에서 엄 청나게 중요하다. 이것은 이제 욥이 하나님 아래서 갖기 시작하는 놀라운 희망의 도화선이다.” (애쉬)

*욥의 온전함의 예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욥을 온전한 자로 인정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욥은 마지막에 가서야 자신의 진실된 선행들을 열거한다(욥 29-31장).
욥기 29:12
이는 부르짖는 빈민도와 줄 자 없는 고아를 내가 건졌음이라
욥기 29:15–16
나는 맹인의 눈도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의 발도 되고
빈궁한 자의 아버지도 되며 내가 모르는 사람의 송사를 돌보아 주었으며
욥기 30:25
고생의 날을 보내는 자를 위하여 내가 울지 아니하였는가 빈궁한 자를 위하여 내 마음에 근심하지 아니하였는가
욥기 31:1
내가 내 눈과 약속하였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욥 31:13-15 종의 권리까지도 존중
욥기 31:16–18
내가 언제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았거나 과부의 눈으로 하여금 실망하게 하였던가
나만 혼자 내 떡덩이를 먹고 고아에게 그 조각을 먹이지 아니하였던가
실상은 내가 젊었을 때부터 고아 기르기를 그의 아비처럼 하였으며 내가 어렸을 때부터 과부를 인도하였노라
욥 31:19-20 의복이 없어 죽어가거나 가난한 자가 덮을 것이 없을 때 못본 체 하지 않고 옷을 주었다.
욥 31:24-25 금(돈)과 재물의 풍부함에 소망과 기쁨을 두지 않았다.
욥 31:29-30 원수의 멸망과 재난을 원하지도 기뻐하지 않았다.
욥기 31:31–32
내 장막 사람들은 주인의 고기에 배부르지 않은 자가 어디 있느뇨 하지 아니하였는가
실상은 나그네가 거리에서 자지 아니하도록 나는 행인에게 내 문을 열어 주었노라
욥은 소위 “깨끗한/선한 부자”였다.
➡︎ 욥은 인과응보의 원리 안에서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러한 일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친구들에게 변명하면서 그는 ...
세상에 많은 악이 있고 많은 악인이 형통하며(욥 21:7-34)죽을때조차도 평안히 죽는게 현실(욥 21:13, cf. 시 73:4)이라고 지적함으로써 그들의 논리를 반박한다. 약자의 참상(욥 24:12).

1-2. 하나님께서 자신의 원수가 되셨다는 느낌

욥에게 가장 힘들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떠났다는 생각이다.
e.g. 한나에게 가장 힘들었던 것. 자식이 없는 것, 둘째 부인의 희롱/자존심? 남편? 하나님의 떠나심, 하나님의 저주 경험
욥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자신을 떠난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원수가 되셨다. 욥은 이해할 수 없고, 하소연 하고 싶지만 사람에게 할 수 없고, 하나님께 해야 하는데 하나님은 지금 무섭게 자신을 공격하시는 분이시다.
그는 예수님의 고통을 그대로 경험했다.
시편 22:1 (다윗)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욥기 10:16–17
내가 머리를 높이 들면 주께서 젊은 사자처럼 나를 사냥하시며 내게 주의 놀라움을 다시 나타내시나이다
주께서 자주자주 증거하는 자를 바꾸어 나를 치시며 나를 향하여 진노를 더하시니 군대가 번갈아서 치는 것 같으니이다
욥기 16:9
그[하나님]는 진노하사 나를 찢고 적대시 하시며 나를 향하여 이를 갈고 원수가 되어 날카로운 눈초리로 나를 보시고
욥기 16:12–14
내가 평안하더니 그가 나를 꺾으시며 내 목을 잡아 나를 부서뜨리시며 나를 세워 과녁을 삼으시고
그의 화살들이 사방에서 날아와 사정 없이 나를 쏨으로 그는 내 콩팥들을 꿰뚫고 그는 내 쓸개가 땅에 흘러나오게 하시는구나
그가 나를 치고 다시 치며 용사 같이 내게 달려드시니
욥기 19:8–11
그가 내 길을 막아 지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내 앞길에 어둠을 두셨으며
나의 영광을 거두어가시며 나의 관모를 머리에서 벗기시고
사면으로 나를 헐으시니 나는 죽었구나 내 희망을 나무 뽑듯 뽑으시고
나를 향하여 진노하시고 원수 같이 보시는구나

2. 욥이 간절히 원했던 것

2-1. 죽는 것

그러므로 욥은 차라리 죽기를 원한다.
욥기 7:15–16
이러므로 내 마음이 뼈를 깎는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숨이 막히는 것과 죽는 것을 택하리이다
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영원히 살기를 원하지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혼자두다] 내 날은 헛 것이니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죽음”을 허락하지 않읏셨다. 사탄에게 생명을 넘기지 않으셨다. 욥은 하나님께서 죽게 허락해주지 않으신다고 불평한다.
*배울점: (1)최소한 욥은 삶과 죽음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2) 죽음마저도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께 허락을 구한다..

2-2. 하나님과 변론하기 (하나님의 한 마디-결백증언)

욥은 이제 방향을 바꾸어 하나님과 단판짓기로 결심한다.
욥기 10:1–2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불평을 토로하고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 나를 정죄하지 마시옵고 무슨 까닭으로 나와 더불어 “변론”하시는지[법적으로 다투다] 내게 알게 하옵소서
그런데 한편으로,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안다.
욥기 9:32–35
하나님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신즉 내가 그에게 대답할 수 없으며 함께 들어가 재판을 할 수도 없고
우리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도 없구나
주께서 그의 막대기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그의 위엄이 나를 두렵게 하지 아니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리하시면 내가 두려움 없이 말하리라 나는 본래 그렇게 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니라
욥은 1차적으로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내가 (이번만큼은) 까닭없이 욥에게 재앙을 내렸다. (내가 잘 못했다)”라고 말씀하셔야 한다. 그러나 그분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을 것이고, 도리어 자신의 모든 (과거의 용서받았던) 죄들이 드러나 정죄당하게 될 것이다.
욥기 9:28–29
내 모든 고통을 두려워하오니 주께서 나를 죄 없다고 여기지 않으실 줄을 아나이다
내가 정죄하심을 당할진대 어찌 헛되이 수고하리이까
그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왜 자신을 괴롭게 하시는 지 그 이유를 알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알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안다.
23장에서도 욥은 자신이 하나님과 변론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절망한다.
욥기 23:3–5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
어찌하면 그 앞에서 내가 호소[소송]하며 변론[논쟁]할 말을 내 입에 채우고
내게 대답하시는 말씀을 내가 알며 내게 이르시는 것을 내가 깨달으랴

2-2-1. 결백을 증명하기위해 부활을 원한다

욥의 성장
부활을 꿈꾼다.
욥기 14:13–15
주는 나를 스올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실 때까지 나를 숨기시고 나를 위하여 규례를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옵소서
장정이라도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나는 나의 모든 고난의 날 동안을 참으면서 풀려나기를 기다리겠나이다
주께서는 나를 부르시겠고 나는 대답하겠나이다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기다리시겠나이다
욥기 19:25–26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구속자, 고엘]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육체로부터] 하나님을 보리라
➡︎ 결국 욥은 소망을 이 땅이 아닌 “죽음 이후의 삶”에 둔다.
부활은 욥에게는 희미한 꿈이었겠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 일의 첫 열매가 되셨으며 그분께 속한 우리 모두에게 생명이 되어주셨다. 욥이 꿈꿨던 하나님과의 대화(교제)는 우리에게 현실이 되었다.” (애쉬)

2-2-2. 결백을 증명해 줄 “중보자”를 소망한다

욥은 스스로 하나님 앞에 서서 변호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기에 자신을 위한 중보자가 필요함을 절감한다.
욥기 16:19–21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변호인)가 높은 데 계시니라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고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니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와 인자와 그 이웃 사이에 “중재하시기”(중재자)를 원하노니
존 하틀리(NICOT)와 크리스토퍼 애쉬는 이 중보자가 “하나님 자신”이라고 말한다.
욥기 33:23–24 (엘리후가 말함)
만일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중보자”(판결자)로 함께 있어서 그의 정당함을 보일진대
하나님이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사 그를 건져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 하시리라
욥은 왜 그렇게 자신의 결백이 증명되는 것에 목숨을거는가? 이젠 그런것 포기하고 그냥 병이 낫고, 친구들 도움으로 다시 일어나면 되는거 아닌가?
➡︎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다. 욥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는 것을 견딜 수 없다. 그것이 가장 힘든 것이다.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하라. 관계의 단절! 그것이 죽음이다!

2-3.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욥기 29:2
나는 지난 세월과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던 때가 다시 오기를 원하노라
욥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원한다. 단지 부가 아닌 하나님의 인정을 원한다.
욥기 29:3–5
그 때에는 그의 등불이 내 머리에 비치었고 내가 그의 빛을 힘입어 암흑에서도 걸어다녔느니라
내가 원기 왕성하던 날과 같이 지내기를 원하노라 그 때에는 하나님이 내 장막에 기름을 발라 주셨도다
그 때에는 전능자가 아직도 나와 함께 계셨으며 ...
➡︎ 우리는 욥과 동일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 극치를 경험하셨기 때문이다. 욥이 보여준 “의인의 고난”의 예를 예수님은 온전히(충만히) 경험하시고 완성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대적되심을 완전하게 경험하셨다.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다)
욥기 30:9–10
이제는 그들이 나를 노래로 조롱하며 내가 그들의 놀림거리가 되었으며
그들이 나를 미워하여 멀리 하고 서슴지 않고 내 얼굴에 침을 뱉는도다
욥기 30:20–21
내가 주께 부르짖으나 주께서 대답하지 아니하시오며 내가 섰사오나 주께서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돌이켜 내게 잔혹하게 하시고 힘 있는 손으로 나를 대적하시나이다[원한을 품다/미워하다]
예수님은 육체적, 정신적 모든 고통을 최고치로 경험하셨다.
히브리서 5:7
그[그리스도]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 이제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의 참된 “중보자”가 되심을 믿는다.
디모데전서 2:5
...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3. 적용: 고난을 끝내는 것이 답이 아니다

하나님과 씨름하고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그것이 우선이다.

3-1. 고난을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인

고난을 바라보는 바른 자세:
“성도의 고난”은 형벌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형벌을 받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생명”까지도 사탄에게 허락하셨다.
e.g. 아브라함-이삭
성도는 욥처럼 “나의 죄” 때문에 고난 받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큰 세계관을 이해하는 자는 현재의 고난을 받아들인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고난을 이해하지 못했다. 고난은 “나쁜 것”(벌/재앙)이다?
마태복음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그러나 그리스도의 고난이후 그는 깨달았다.
베드로전서 3: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베드로전서 4: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베드로전서 4: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소위 “번영신학” “순복음 신학”은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대신 받으셨으니, 우리는 고난을 안 받는 것이 맞다’라고 말한다. 고난을 인정한다하더라도 반드시 이 땅에서의 확실한 결말을 원한다. (결백 증거) 고난을 끝내는 것이 답(믿음)이 아니다!
BUT
눅 18:1-8 불의한 재판장과 과부의 탄원

3-2. 고난의 길을 “어떻게” 걸아가는지가 중요하다

모든 성도에게 크고 작은 고난은 반드시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고난을 어떻게 지나가는가 이다.
고난의 원인을 파악하고 빠져나오는 해결책을 찾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으라는 것이 아니다)
건강, 평안, 무사고 만을 위해 기도하지 마라.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
e.g. 수련회 준비기도제목. 무사고. 아침기도 “하루도 무사하도록” 기도한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나의 생각(기대)을 벗어난다는 것을 받아들이라. 신뢰, 믿음, 붙듦
e.g. 할머니집 갈 때, 아이들은 아빠가 어느 길로 가는 지 신경 안쓴다. 화장실 가고 싶은 때는 말한다. 빨리 세워달라고...

3-3. 끝까지 “하나님께” 부르짖어라

친구들은 한 번도 하나님과 대화(기도)하지 않는다.
“하나님에 관한 어떤 말보다 더 좋은 것은 하나님과의 대화다.” (데이빗 클린스, WBC)
욥기 13:22–27
그리하시고 주는 나를 부르소서 내가 대답하리이다 혹 내가 말씀하게 하옵시고 주는 내게 대답하옵소서
나의 죄악이 얼마나 많으니이까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하옵소서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시고 나를 주의 원수로 여기시나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날리는 낙엽을 놀라게 하시며 마른 검불을 뒤쫓으시나이까
주께서 나를 대적하사 괴로운 일들을 기록하시며 내가 젊었을 때에 지은 죄를 내가 받게 하시오며
내 발을 차꼬에 채우시며 나의 모든 길을 살피사 내 발자취를 점검하시나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깊어진다.
욥기 7:17–19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내가 침을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
일거수일투족이 하나님 앞에 있다.
머리카락도 다 세심바 되었다(마 10:30).
-------------

*질문:

욥은 사탄이 자신을 치는 것이라는 생각은 안하는가? 하나님께 허락받은 사탄의 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 사탄의 공격을 막아주십시오. 힘듭니다. 하나님, 이제 주님의 “허락하심”을 거두어 주십시오.’라고 할 수 있지 않았을까?
➡︎ 욥의 사탄(악한 세력)의 활동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욥은 하나님을 정말 악한 존재 혹은 악한 행동을 하는 하나님을 생각하는가? 악한 존재와 동일시하는가? 왜 욥은 하나님이 자신의 원수라고 생각하는가?
욥기 9:17–18
그가 폭풍으로 나를 치시고 “까닭 없이” 내 상처를 깊게 하시며
나를 숨 쉬지 못하게 하시며 괴로움을 내게 채우시는구나
욥기 2:3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켰느니라
욥기 2:5 (사탄)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 욥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욥은 궁극적인 원인인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어한다. 결국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기에 다른 것(친구들, 사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과 해결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것을 믿는다.
*배울점: 우리에게 있는 “모든”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 있다. 하나님과 원수관계인가? 아니면 그분과 화목하고 있는가? (예수님께서 고난의 대가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화목하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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