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 센 백성을 다루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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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Transcript
[서론]
사람사전이라는 책에 하나님을 설명하는 재밌는 표현이 나옵니다.
하나님,
저 위에서 사람을 본다. 머리만 보인다. 하나님은 사람의 키를 볼 수 없다. 얼굴도 볼 수 없다. 몸매도 볼 수 없다. 저 위에선 그것들을 볼 수 있는 각도가 나오지 않는다.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을 거라는 결론.
다행이다. 나는
맞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앞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숭배를 하는 바람에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그들은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하나님은 그들의 회개를 받으셨을까요?
우리 역시 죄를 짓고 회개를 합니다.
그런데 거의 일방적으로 하나님께 통보합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제 회개 받아주시고 용서해주세요. 끝...
회개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과연 하나님이 우리의 회개를 받으실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받으시는 회개가 무엇인지 깨닫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본문의 배경설명]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를 합니다.
모세가 산에서 더디 내려오자 두렵고 불안한 마음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십계명에서 주님은 어떤 형상으로도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것을 어긴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다른 신을 섬긴 것은 아닙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어 ‘자신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신 신’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연상하며 만들었을지라도 그것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짝퉁 하나님’에 불과합니다.
보통 인간이 신을 만드는 과정도 동일합니다.
자신들의 욕망과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신을 만들어 자신들이 조정하려고 합니다.
인간의 풍요에 대한 욕망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다양한 신들이 탄생하게 되는 토양이 되었습니다.
앞장에 보면 이러한 이스라엘의 죄악에 가담했던 3000명의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응답이 주어집니다.
1,2절입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네가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이 백성을 이끌고 여기를 떠나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고 그들의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그 땅으로 올라가거라. 내가 한 천사를 보낼 터이니, 그가 너를 인도할 것이다. 나는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겠다. 너희는 이제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간다.’
[해석]
하나님은 자신의 천사를 보내 그들이 원했던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또한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싸워야 할 적들인 가나안 사람들과 여러 민족들을 쫓아내겠다고 하십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마치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용서하신듯 보입니다.
과연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악을 용서하신 것일까요?
1,2절을 잘 살펴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 백성’이라고 부르십니다.
앞에서는 뭐라고 하셨냐면 ‘내 백성’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내 백성’이 ‘이 백성’으로 바뀐 것입니다.
또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이집트에서 올라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앞에서 하나님은 ‘내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 땅에서 인도했다고 말씀하셨는데 말이 바뀐 것입니다.
그만큼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의 거리가 멀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증명]
저와 아내가 독일에 있을 때 아내가 흥미로운 독일어 단어 하나를 발견했다며 말해준 적이 있습니다.
바로 ‘우상’이라는 독일어인데요.
독일어로 ‘우상’은 Abgott 입니다.
Gott가 하나님이라는 뜻이고 ab은 분리나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접두어 입니다.
그러니까 우상을 뜻하는 Abgott라는 단어는 하나님과 분리되거나 떨어지게 하는 존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우상의 의미를 잘 드러낸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용]
이처럼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만듭니다.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서로 멀어 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를 짓고나면 하나님에게서 숨고 싶어집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 역시 에덴동산에서 죄를 짓자 하나님을 피해 숨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그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를 짓는 우리들이 동행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3절입니다.
‘너희는 이제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 너희는 고집이 센 백성이므로, 내가 너희와 함께 가다가는 너희를 없애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해석]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가도록 도와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가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집센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고집센 백성’ 이라는 단어를 개역개정에서는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단어의 히브리어 의미를 살펴보면 어떤 의미인지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개 키우면 절대 안가려고 버티는 개들 있습니다.
목줄도 안 차려고 하고, 길거리에서 안 움직이려고 버티고…
그런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표현한 것입니다.
[증명]
지금까지 우리가 본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어떻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보이지 않자 두려운 마음에 자신들이 신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것뿐입니까?
앞서 물없다고, 먹을 거 없다고 불평, 불만하던 백성들입니다.
심지어 차라리 이집트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고 말하며, 모세를 죽이려고 했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이 백성들과 함께 하시려고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성막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는 동안에 그 산 밑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토록 말을 잘 듣지 않는 백성이다보니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가지 않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가지 않겠다고 하시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겠다고 하신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선택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또 큰 죄를 짓게 된다면 하나님의 진노가 어떻게 일어날 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죄를 내버려 두지는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앞서 우상숭배하다가 3000명이 죽었는데 하나님이 함께 가지 않는 게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안전할 수 있습니다.
또 그들 입장에서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셨으니 목표는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럼 과연 이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냥 좋은 것일까요?
[적용]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숨은 이유 중에 하나가 ‘삶을 제약받기 싫어서’ 입니다.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살고 싶은데 하나님 믿으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들은 또다른 신에게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욕망이 만든 짝퉁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면서도 눈이 가려져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돈, 명예, 쾌락 모두 그들이 자유롭게 추구하며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결국 그것들의 노예로 전락할 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러한 우상들에게서 해방되는 것이며 간섭과 통제가 아니라 실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 하나님이 함께 가지 않겠다는 말을 듣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4절입니다.
‘백성은 이렇듯 참담한 말씀을 전해 듣고 통곡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아무도 장식품을 몸에 걸치지 않았다.’
[해석]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어차피 가나안 땅에는 보내주신다고 하셨으니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장식품을 몸에 걸치지 않았다’는 것은 자신들이 치장하던 모든 것을 벗어버렸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자신을 낮추는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회개란 자신의 죄를 깨닫고 슬퍼하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자신의 마음을 겸손히 낮추고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거기에서 그친다면 진정한 회개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한 단계가 더 남아있습니다.
5절입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여라. 너희는 고집이 센 백성이다. 내가 한 순간이라도 너희와 함께 올라가다가는 내가 너희를 아주 없애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 너희는 너희 몸에서 장식품을 떼어 버려라.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이제 결정하겠다”
[해석]
4절에서는 장식품을 걸치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여기서는 직접적인 하나님의 명령이 등장합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장식품을 떼어 내라는 것입니다.
6절을 보면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때문에 그들은 산을 떠난 후부터는 아에 장식품을 몸에 달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장식품이 무엇이길래 하나님은 그것을 떼어내라고 하셨을까요?
여기서 장식품이란 여러가지 옷을 비롯한 장신구들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를 나올 때 많은 장식품들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신 선물이자 은혜였습니다.
그것들이 나중에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인 성막을 만드는 재료가 됩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그것을 가지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이었던 장식품이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데 사용해야할 장식품이 우상을 만드는 재료가 되었던 것입니다.
[증명]
하나님이 주신 선물들을 잘 사용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데 쓰일수 있지만 잘못 사용하면 하나님과 멀어지는 우상을 섬기는 데 쓰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돈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우리 삶에 유용한 것이지만 그것에 사로잡히면 우상이 되어 버립니다.
성공과 명예, 쾌락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에게 명함 하나를 받은 적이 있는데 얼마나 자기 자랑이 많은 지 놀랐습니다.
자기가 쓴 책하며, 자기가 강의한 대학들, 또 자기가 얻은 자격증들 모두 다 적어놨는데 칸이 부족할 정도로 빡빡했습니다.
이게 모두 우리를 치장하는 장식품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장식품을 버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그냥 우상을 만들던 일부 장식품들을 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래봤자 또다른 장식품으로 우상을 만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가진 모든 장식품들을 없애 버리면 성막은 어떻게 만들겠습니까?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패한 마음을 땅에 완전히 묻어버리라는 의미입니다.
죄에 대해 마음의 여지를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적용]
그렇습니다.
회개란 죄에 대해 슬퍼하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됩니다.
그것에 대한 마음을 아에 끊어버리는 것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죄를 멀리 할 뿐만 아니라 죄를 미워하는 데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만 그 단계에 이를 수 있을까요?
그 답이 7절 이하에 등장합니다.
7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진을 칠 때마다, 모세는 장막을 거두어 가지고 진 바깥으로 나가, 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그것을 치곤하였다.
[해석]
원래 장막은 성막이랑 같은 의미로서 진 한가운데 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장막을 진 바깥에 쳤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일까요?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은 백성들 한 가운데 거룩하신 하나님이 들어가 계실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죄가 하나님을 진 바깥으로 밀어낸 것입니다.
이것은 아직도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가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회복의 여지는 남아있습니다.
바로 백성들의 태도 변화입니다.
그들을 보십시오.
8-10절입니다.
모세가 그리로 나아갈 때면, 백성은 모두 일어나서 저마다 자기 장막 어귀에 서서, 모세가 장막으로 들어갈 때까지 그 뒤를 지켜보았다. 모세가 장막에 들어서면, 구름기둥이 내려와서 장막 어귀에 서고, 주님께서 모세와 말씀하신다. 백성은 장막 어귀에 서 있는 구름기둥을 보면, 모두 일어섰다. 그리고는 저마다 자기 장막 어귀에서 엎드려 주님을 경배하였다.
[해석]
모세가 장막에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나아오자 구름기둥이 보였습니다.
자신의 장막에서 대기하고 있던 백성들은 그 구름을 보자 각자의 자리에서 주님을 경배하였습니다.
구름기둥이 보였다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직 떠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 밖으로 옮기시기는 하셨지만 백성들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백성들의 진정한 회개의 표시는 바로 이 예배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세에서 그들의 변화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하나님이라고 칭하며 그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춤추고 노래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 앞에 엎드려 예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죄를 멀리하며 더 나아가 죄를 미워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이처럼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죄에게서 우리를 멀어지게 만듭니다.
[결론]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큰 죄를 지었지만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그들이 들어갈 수 있게 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함께 가지는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어린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솜사탕이나 장난감을 아무리 많아 사줘봤자 부모님이 곁에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목표를 이루는 것보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통곡했던 이유이고, 장식품을 떼어낸 이유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회개인 것입니다.
그 회개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예수님의 또다른 이름이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가운데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내 마음과 내 삶의 중심에 계시다고 확신하십니까?
우리의 죄로 인해 예수님이 우리 마음과 삶에서 벗어나 계시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겉모습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의 중심을 보시며 우리의 삶의 모습을 보십니다.
우리 다카포 식구들 모두의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과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욱 커져가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