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사랑의 위대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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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는 너희가 예수께 피하여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을 의지하는 삶.. 그것이 성도에게 필요하며 그것을 통해 성도는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예수께 피해야 하는가? 하면 예수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중재하는 중재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지난주 말씀처럼 예수께서 하나님을 향해 우리에 앞서 달려가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멜기세덱과 예수님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왜 여기서 멜기세덱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가? 하면 누가 참 중재자 인가? 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원래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를 중재하는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하던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바로 대제사장입니다. 대제사장은 일년에 한번 지성소로 들어가서 백성들의 죄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함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얻게 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백성과 하나님 사이의 중재자… 화해자로 있는 자가 대제사장입니다…
대제사장은 원래 레위 족속 중에서도 아론자손들 가운데 세워지게 되어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자는 이 예수님이 아론 지파의 대제사장들 보다 위대하시다 하는 것을 증명해 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예수님의 중재자 역할이 더욱 뛰어나시다 하는 것이 성립 될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레위 지파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유다지파로 오셨고… 이 유다 지파는 제사장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법원에서도 판례라는게 존재합니다.
과거에 어떤 것이 어떻게 인정되었는가? 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과거에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가 아닌 자 중에서 대제사장으로 인정하신 자가 있었는가? 입니다.
거기서 나오는 인물이 멜기세덱 입니다… 이 멜기세덱을 알아 보려면 창세기 14장을 봐야합니다.
창세기 14장은 아브람이 자신의 고향이었던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가나안으로 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생활을 하던 중에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땅으로 갈라져 나갔습니다. 그런데 얼마후에 가나안의 아홉개의 왕국이 두 패로 나뉘어 전쟁을 벌였고 롯이 거주하던 소돔 왕도 함께 전쟁을 했다가 패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롯이 포로로 잡혀가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 소식을 들은 아브람이 즉시 자신의 사병들을 끌고 가서 롯을 구출해 낸것입니다. 그리고 롯을 구출하고 돌아오는 길에 살렘왕 멜기세덱을 만나고 멜기세덱은 “천지의 주재이시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 아브람을 축복합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자신의 노획물 중에 십분의 일을 바치는 장면이 창세기 14장의 장면이고 여기서 멜기세덱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멜기세덱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1]
(창 14:18.)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이게 율법으로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제사장인데 이 사람이 레위인이 아닌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시대가 아브람시대이니 레위인이 있기전에 이미 제사장의 직분이 있었다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이 지점을 히브리서 설교자는 주목을 하고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이미 레위인이 아닌 자가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판례가 있다 입니다.
살렘왕 멜기세덱 이라는 히브리어 이름을 해석하면 2절에서 의의 왕… 평강의 왕이다 라고 해석을 합니다.
멜기 = 멜렉크 세덱 = 쩨데크(의) 살렘 = 샬롬 (평강)
그리고 이 멜게세덱의 등장은 마치 예수님과 같이 신비하죠… 전혀 성경에 등장하지 않다가 뜬금없이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등장하여 아브람에게 축복을 하고 사라지는 자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역할…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연결해 주는 역할에 어떤 정당성을 입증해 주는 것입니다.
이 멜기세덱이 이 히브리서에서 왜 중요한가? 하면 이는 “하나님의 아들과 유사”합니다…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아들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아들과 유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태복음 하면서 그림자…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모형!! 이다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모세는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닌것이죠.. 예수님의 역할과 유사한 역할을 감당했다 입니다..
마찬가지로 멜기세덱은 예수님의 모형으로 예수님과 유사했습니다… 히브리서 설교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멜기세덱이 예수님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멜기세덱을 닮은 것이 아닙니다… 멜기세덱이 예수님을 닮았다는 것은 예수님과 유사하지만 같지 않다 입니다…. 예수님보다 부족하다라는 것이죠… 그러니 예수님은 멜기세덱보다 더 뛰어나십니다.. 왜 예수님이 멜기세덱보다 더 뛰어나신가? 하는 것은 뒤에 나오게 됩니다.
일단 예수님이 대제사장이 될 수 있는가? 다시말하면 하나님과 백성의 중재자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정당성은 구약의 판례로 입증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 문제는 예수님이 모든 대제사장보다 뛰어나신가? 하는것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일 수는 있는데… 다른 제사장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먼저 예수님과 비슷한 멜기세덱과 대제사장중에 누가 더 뛰어난지를 보고 만일 멜기세덱이 다른 제사장들보다 뛰어나다면 예수님은 당연히 다른 제사장들보다 뛰어날 것이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멜기세덱과 예수님을 비교하여 예수님의 우월성을 입증한다면 예수님은 모든 대제사장들보다 뛰어나신 분이 된다 라는 것이 가능합니다.
먼저 멜기세덱이 레위지파의 제사장들보다 더 뛰어난 이유는 무엇입니까? 4-10절에서 나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우리는 4절을 읽기 전에 7절을 먼저 읽어야 합니다… 7절에 이것이 기본 증명입니다… 낮은 자가 높은자에게 축복을 받는다…
창세기 14장에서 아브람을 축복한 자는 멜기세덱입니다… 심지어 아브람은 멜기세덱에게 축복을 받고 십일조를 바치기 까지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멜기세덱은 아브람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멜기세덱이 레위 지파의 제사장보다 더 위대하다는 증거도 될 수 있는 건데요… 그것은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바쳤을 때에….. 레위가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레위는 태생부터 이미 멜기세덱보다 낮은 자라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을떄.. 그때.. 아브람의 허리에 증손자 레위가 있었고 결과적으로 아브람을 통해서 레위가 멜게시덱에게 축복을 받은 것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우리르 7절로 연결시킵니다….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축복한다…. 그렇다면 레위 제사장들과 멜기세덱 누가 더 높은 위치의 제사장입니까??? 멜기세덱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멜기세덱은 예수님이 아닙니다… 이 둘은 또 다릅니다… 멜기세덱이 예수님과 유사하지만 예수님이 멜기세덱보다 위대하신가? 하는 증명이 또한 필요합니다.
먼저 멜기세덱과 예수님의 유사성은 무엇입니까? 첫째 레위 지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13절과 14절에 있습니다.
그리고 영원성입니다. 8절에 보면 멜기세덱과 레위의 비교에서 레위는 죽을 자들입니다..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았다 입니다… 그런데 멜기세덱은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입니다… 다시말하면 멜기세덱이 죽었다는 증언이 없다는 것입니다… 멜기세덱이 영원히 산자로 나타났다면 이것은 영원히 살아계신 예수님과 유사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도 16절에서 처럼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습니다… 23절에서도 같은 내용을 이야기 합니다… 레위 제사장들은 그들의 수가 많다는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분을 충분합니다.. 왜입니까? 영원히 계시기 때문이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영원히 우리를 위해 간구 하실수 있는 것이죠 그러한 유사성으로 예수님도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이렇나 면에서 당연히 레위보다 위대한 제사장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멜기세덱과 예쑤님의 가장 큰 차이점이자.. 예수님이 멜기세덱보다 위대하신 이유가 나옵니다… 27절입니다. 예수님은 백성의 죄를 위해 자기를 드리셨다 입니다…
멜기세덱은 위대한 제사장이지만 다른 이들을 위한 속죄 제물로 자신을 바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번에 자기를 드려 백성의 죄에 대한 용서를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엄청난 사랑의 차이가 나옵니다… 설교자가 이 이야길르 하고 싶은 것입니다…. 단순히 목목숨 바친 것을 넘어서서 사랑의 크기 입니다…. 멜기세덱은 위대한 제사장이지만… 의의 왕이라고 불렸지만 그의 의와 사랑은 예수님에게 미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이 놀라운 사랑인 것입니다…. 단번에 자신을 바쳤다 입니다.. 왜요??? 화해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화해를 위해서,,,.. 지금 성경은 우리에게 이 이야기를 위해서
이 화해가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 졌다…. 세상의 어떤 위대한 사람들도 하지 못한 일을 예수님은 그 큰!!!!!! 사랑으로 이루셨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믿게 하기 위해 이 긴 설명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놀라운 사랑을 받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의 설교자가 외치는 것입니다.. 이 사랑으 놀라운 것인데.. 너무 놀랍고 위대한 것인데…. 세상 어떤 것보다 위대한 것인데…
이것을 성도들이 모르고 느끼지 못하고 그것이 가치없는 것 처럼 살아가고 있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장 위대하다고 이야기 하는 멜기세덱 조차도….. 자신이 의의 왕이라고 평가받았지만 그 사랑의 크기에서는 예수님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오늘 이시간 우리가 그 사랑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알아서 정말 이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가? 하는 것을 깊이 묵상할 수 있는 한주 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