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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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믿음으로
롬 4:17-18
사도신경,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예배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 좌정하여 주시고 오직 주님의 영광만이 나타나는 거룩한 예배되게 하여 주옵소서! 말씀을 듣는 우리들의 심령 가득히 주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봉독: 본인이 다 읽기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멘트: 할렐루야! 오늘 이 시간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을 믿습니다.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찬양 드리신 후에 말씀 듣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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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는 롬4:17-18의 말씀을 가지고 <아브라함의 믿음으로>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 중 가장 소중하고 가치있게 생각해야 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내가 가진 학벌이나 스팩일까요? 내가 가진 재물일까요? 나의 가족이나 친구와 같은 인맥일까요? 나의 명예일까요?
네.. 여러분께서 생각하고 계신 모든 것이 다 중요하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소중한 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영생을 얻었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믿음이 있기에 우리는 이 풍파 많은 세상 가운데 낙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성경에는 많은 믿음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 역시 세상가운데서 수많은 고난과 시련이 있었고 환란과 핍박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이자 그리스도의 충성된 일꾼으로서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한 가지 그들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히11:2)
또한 그들은 믿음으로써 인간의 상식과 이성을 초월하는 놀라운 기적들을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3) 그런데 그렇게 많은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서도 믿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물을 한 명 꼽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아브라함”일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롬4:11,16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또한 신약성경의 맨 처음은 아브라함과 더불어 시작이 됩니다. 마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그리고 사도바울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아브라함의 영적인 후손이며, 또한 아브라함이 받았던 복이 우리의 복이 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갈3:7-9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이러한 말씀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믿음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 ‘믿음의 본보기’가 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그래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이러한 믿음과 명성 때문에 아브라함이 너무나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신앙에 있어서 우리와 차원이 다른 사람이라고만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아브라함도 우리와 똑 같은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그에게도 우리들처럼 믿음이 연약해서 오랜세월동안 이리저리 방황하며 곁길로 행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5) 하나님께서 맨 처음 아브라함을 모든 민족의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기로 작정하시고 택하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창12:1-2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아브라함은 이 말씀에 순종하여 갈 바를 알지 못한 체 자신의 고향 땅을 떠났지만, 온전한 순종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하셨지만, 그는 그의 조카 롯을 데리고 갔기 때문입니다. 창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그런데 사도행전 속의 스데반 집사의 연설에 나타난 아브라함의 행적을 보면, 이보다 훨씬 더한 불완전한 순종이 이전에 이미 아브라함에게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행7:2-4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가 보일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신 시점은 롯과 함께 ‘하란’을 떠났던 75세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로 ‘하란’에서 떠나기 훨씬 이전인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라는 것입니다.
그럼 과연 아브라함은 메소보디미아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그 명령을 듣고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롯과 함께 떠났을까요? 그 내용은 창세기 11장의 마지막 부분인 3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아브라함은 메소보다미아, 즉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에 이미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인 데라와 조카인 롯과 함께 떠났을 뿐만 아니라, 최종 목적지인 가나안에 이르기 전에 하란에서 상당히 오랜 기간을 거주하면서 머물렀던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지도를 보시면) 우선 지리적으로 볼 때 갈대아 우르라는 장소에서 하란까지 오는 길은 유브라데 강을 끼고 오는 길로서 굉장히 평탄하고 좋은 길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나안까지 가는 길에 있어서 정말로 어려운 길은 하란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늙은 아버지랑 어린 조카까지 데리고 어려운 여정을 계속하기가 너무 힘드니까 고생하기 싫어서 하란에서 상당히 오랜기간 머물렀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그때서야 다시 자라난 조카 롯을 데리고 가나안 땅을 향해 떠났던 것입니다.
6)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가나안 땅에 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좋은 일들만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가나안 땅에 거주한지 얼마지나지 않아 아브라함은 기근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명령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애굽으로 도피를 한 것입니다.
7) 그런데 애굽에 가까워지지자 또 다른 걱정거리가 발생합니다. 아내인 사래가 너무 이뻐서 아내를 탐내는 애굽 사람들이 자기를 죽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가득차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인생이 그러하듯, 문제를 만난 아브라함은 살 길을 찾기 위해 한가지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냅니다. 그리고 자기 아내인 사래에게 이런 치졸한 부탁을 합니다.
“여보! 혹시라도 누가 당신과 나와의 관계를 물으면 내 누이라고 대답해야 돼요. 알겠죠?”
아내인 사래의 입장에서는 정말 황당하고 기가막힐 일이었겠지만, 사래는 이 부탁에 순종하고 결국 사래는 애굽의 고관들의 눈에 띄어 애굽의 왕 바로에게 이끌려가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아브라함의 연약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기 위해 그를 구원해 내시고 오히려 그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창 12장)
9) 이게 바로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아브라함의 본래 모습입니다. 우리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아브라함을 선택하셔서 참된 믿음의 길로 인도하시고, 성장시키시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그 믿음을 소유하게 하셔서, 그의 믿음을 축복의 통로 삼아 온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를 이 땅가운데 보내주신 것입니다.
10) 그러므로 믿음이 연약하다고 해서 걱정하거나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께로 가는 믿음의 길은 사람의 열심과 노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와 자비와 사랑으로 가능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그러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있게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서론이 길었는데요, 오늘 이 시간, 하나님께서 이처럼 연약하고 부족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택하여 세우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마침내 주시기 원하셨던 그 믿음은 과연 어떤 믿음이었는지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함께 살펴보면서, 우리도 함께 그 믿음을 믿음으로 소유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기 원하셨던 믿음은 ‘첫째로’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롬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 아브라함의 원래 이름은 “아브람”입니다. “아브람”이라는 이름의 뜻은 ‘큰 아버지, 높임을 받는 아버지, 존귀한 아버지’ 이런 뜻입니다. 즉 “아브라함”은 “아브람”이라고 불리던 시절부터 이미 ‘아버지’라는 뜻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아브람”은 새로운 사람들과 만날 때마다 이런 질문을 받았을 것입니다.
“실례지만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높임을 받는 아버지 인데요”
“와우 좋은 이름이네요. 그럼 자녀가 많으시겠네요?”
“아뇨 한 명도 없는데요”
얼마나 스트레스받고 수치스러웠을까요?
2) 그런데 여러가지 불완전한 순종 가운데 고생하고 세상속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살아가는 동안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에게 자녀를 약속해 주셨을 때 그것을 믿습니다. 창15:5-6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자녀가 아직 한 명도 없는데, 하나님께서 하늘의 별과 같이 수많은 자손이 생길거라고 하시니까 그것을 믿은 것입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3) 제가 캄보디아에 있을 때, 주로 사역했던 곳이 호산나 학교라는 곳이었는데요, 그곳의 교장선생님은 정순영 선교사님이라는 분이셨습니다. 이분은 여성분이신데, 젊은 나이에 혼자의 몸으로 캄보디아 선교사로 헌신하셔서 정말 희망이 전혀 없어보이는 빈민가에 유치원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 아이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 아이들이 커서 미래의 캄보디아를 이끌어갈 주역들이 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캄보디아에서 학원 선교를 시작할 당시에는 목회선교 위주의 선교사님만 있었지 학원선교를 하는 평신도 선교사는 없었고, 게다가 여성이었기 때문에, 선교사로 제대로 인정을 못받아서 대내외적으로 사역을 하는데 상당히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가장 유명한 빈민학교가 되어서 킨더가든부터 하이스쿨에 이르기까지 수백명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요. 또 태권도, 펜싱 등 체육분야에서 여러 국가대표를 배출하고, 음악가, 교사, 사진작가, 회사원, 모델, 컴퓨터 전문가 등 캄보디아 사회 각 분야에서 아름답게 쓰임 받는 귀한 일꾼들을 수없이 배출하고 있습니다.
이미 10년 전 호산나 합창단 연주회를 위한 영상과 2019년 학교영상을 잠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상)
또 한가지 정순영 선교사님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랐던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결혼이었습니다. 나이가 50이 넘도록 처녀로 혼자 사셨었는데, 그래도 결혼에 대한 소망을 놓지 않고 기도하다가 마침내 50대 중반의 나이에 멋진 분과 함께 결혼해서 지금은 함께 열심히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3) 그러므로 여러분도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아무것도 바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의 말씀들을 믿어 의심치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구원하여 주시고 영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이미 구원받고 영생을 얻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짖으면 응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크고 은밀한 일들을 보여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둘째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이루기 위해 아브라함에게 주시길 원하셨던 믿음은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롬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5장에서 이미 하늘의 별과 같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아브람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이 있은 후에도 한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다시 한번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데요.
바로 자신의 아내인 사래의 말을 듣고 사래의 여종인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을 낳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긴 믿었지만, 하나님의 때까지 기다리지 못한 아브람과 사래의 조급함 때문에 벌어진 실수였습니다. 아내인 사래가 아닌 다른 여인을 통해서 자손을 주실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임신하지 못하고 있는 사래의 육체적 한계만을 바라보다가 성급하게 인간적인 방법으로 약속을 성취하려 한 것입니다.
이 실수로 말미암아 지금까지도 중동지역에서는 끝없는 분쟁이 벌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 그런데 그로부터 13년이 흐른 후, 아브람의 나이가 99세인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침묵하시던 하나님께서 다시 나타나십니다.
앞으로 일년 후에 아내인 사래를 통해서 약속의 자녀를 낳게 해주시겠다고 하면서 아브람의 이름을 더 황당하게 바꿔주십니다.
바로 “아브라함”이죠. 그 의미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입니다.
사래의 이름도 “사라”로 바꿔주셨는데, 그 의미도 “여러 민족의 어머니”입니다. 얼마나 황당했는지 처음에 아브라함은 웃고 말았습니다.
이후의 이야기를 보면, 사라 역시 얼마 후 찾아온 하나님의 사자들로부터 이 소식을 듣고 속으로 웃고 말았는데요. 이미 몸이 너무 늙어서 여성의 생리가 끊어진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사라가 적어도 90세쯤 되었을 때의 이야기인데요.
3)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말씀을 주시고 13년을 기다리셨을까요? 왜 아브라함과 사라의 몸이 죽어진 것같이 늙어 인간의 소망이 사라진 그때에 찾아오셨을까요?
왜냐하면, 그래야만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4)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이 아무리 확고해도 사람이 그것을 믿지 않는다면 약속은 성취될 수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그들의 연약한 믿음을 북돋아주시며 성장시켜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설마 가능하겠어?’ 라며 의심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인 사라를 통해 약속의 자녀를 주실 것이라고 거듭 말씀해 주십니다. 창17:19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그렇게 하나님과의 대화를 마친 아브라함은 할례를 행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온 집안의 남자들에게 할례를 행합니다. 자신이 의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자신의 아내인 사라 사이에서 약속의 자녀를 주실 것을 말씀해주시자, 이제는 그것을 정말로 확고히 믿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도우시고 성장시켜 가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5) 이렇게 해서 태어난 아이가 바로 “이삭”이죠. “이삭”이라는 이름의 뜻은 ‘웃음’ 입니다. 전에는 황당해서 웃었지만, 이제는 기쁘고 감사해서 웃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비하면 초라한 시작에 불과하지만, 단 한명의 약속의자녀를 키우면서도 아브라함과 사라는 약속대로 행하셨고 마침내 모든 약속을 성취하실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웃고 사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6)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었는데도 아무런 삶의 변화가 없다고 해서 낙심하거나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한 약속의 말씀에 비해 시작이 너무 초라하다고 해서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생각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있다고 하시면 있게 되는 것이고, 도저히 안될 것 같은 일이라도 하나님께서 된다고 하시면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이뤄지는 것입니다.
히11:1 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그러므로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제가 아는 분 중에 <주식회사 다울아이>의 대표를 맡고 있는 권향화 원장이란 분이 있는데요. 원래는 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삼성전자 VD 사업부라는 곳에서 디자이너를 했었는데, 비전을 놓고 기도하던 중에, 바로 하나님께서 사래의 이름을 사라라고 바꾸라고 하시면서 주셨던 말씀인 창17:16의 말씀을 주셨다고 합니다.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그때 권향화 원장은 평소 관심있어 하던 신생아 육아분야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통해 수많은 어린 생명들과 부모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을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태교지도자과정을 이수하고, 이후로 산후조리원 원장으로 변신하여서 10년 동안 산후조리원을 성공적으로 경영하게 됩니다. 저희 진유도 태어났을 당시에 2주동안 그 산후조리원에서 있었는데요.
그리고 권향화 원장은 국제모유수유전문가가 되어서 지금은 세 아이의 엄마이자 <주식회사 다울아이>의 대표로서 직접 새로운 육아용품들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하고, 육아 전문가 양성을 위한 인터넷 강좌를 개설하고, 신생아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권향화 원장의 다울아이 TV>라는 유투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구독자수 10만명에 육박하는 유투버이자 신생아전문강사로 왕성하게 활동 중입니다.
또한 선교지에 여러 교회를 세우고, 선교사님들을 후원하고, 미혼모들을 돕고, 양육초기의 크리스천 엄마들을 돕는 사역에도 헌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비전으로 주신 약속의 말씀처럼, 그녀를 통해 수많은 생명들이 도움을 얻고 건강하게 자라나게 되고, 하나님의 복이 수많은 영혼들에게 흘러가게 된 것입니다.
8)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주시고 그것을 성취하시기 위해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롬8:32 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이처럼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자신의 생명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셔서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 않고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그의 생명까지 우리에게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끼실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황이 어렵다고, 불가능해 보인다고, 현재의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하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처럼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약속하신 말씀대로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할례를 행하는 순종의 믿음으로, 적극적이고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3. 마지막 셋째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이루기 위해 아브라함에게 마침내 주시길 원하셨던 믿음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입니다. 롬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 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이삭이 십대 후반쯤 되었을 때의 일이라고 추측이 되는데요. 하나님께서는 성장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테스트하시기 위해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그런데 그 시험은 상상하기 조차 힘든 엄청난 시험이었습니다. 그 시험의 내용은 바로 노년에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로 얻은 하나뿐인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것이었습니다. 창22:1-2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나님께서는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 지를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각을 뜨고 쪼개어 불살라 제물을 바치는 번제로 이삭을 바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명령은 아브라함으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약속의 자녀로서 이삭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2)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시험”을 하고 계신 것일까요?
여기서 “시험하다”라는 단어의 뜻을 살펴보면, 여기서의 “시험하다”는 ‘입증하다, 증명하다’의 의미입니다. 즉 합격 불합격을 가르는 ‘시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입증하시기 위해서 일으키신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떠한지를, 믿음이란 게 무엇인지를 보여 친히 나타내 보여주시고자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자 ‘믿음의 1세대’로서 믿음이 무엇인지를 삶으로 보여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이삭을 바칠 수 있을 정도로 커졌다는 것을 친히 입증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기대하신대로 아브라함은 다음 날 아침 곧장 여장을 꾸리고 두 종과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모리아 땅에 있는 한 산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기 위해 모리아 땅의 산으로 올라가면서 종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창22: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여기서 우리는 이미 아브라함에게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과 함께 둘이서만 예배하러 가겠다고 말하면서,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올것이다”라고 계속해서 말합니다. 이삭과 함께 갔다가 이삭과 함께 다시 돌아오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이삭을 약속의 자녀로 세우셨고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될거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제와서는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시다니…’ 처음에는 죽을만큼 고민이 되었을 것입니다.
4)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이 두가지 모순되는 계시의 말씀이 모두 사실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설령 자신이 이삭을 죽인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또한 자신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다시 부활시키실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그리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진실로 믿은 것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인류최초로 부활신앙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아브라함과 이삭만이 남아 모리아산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묻습니다.
“아버지, 불하고 나무는 여기 있는데 번제로 드릴 어린 양은 어디있나요?”
아버지 아브라함은 다정하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응.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실거야.”
아브라함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하나님께서 이삭을 지키리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5) 결국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일러주신 곳에 이르러서 그의 독자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칼로 그를 잡으려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다급하게 이렇게 외치십니다. 창22:11-12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은 정말로 마음으로 이삭을 죽임으로서 하나님의 시험에 믿음 증명 시험을 통과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정신을 차리고 눈을 들어 살펴보니 수풀에 뿔이 걸려 있는 숫양이 한마리가 보였습니다. 여기서 “여호와 이레”(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라는 말이 나오죠. 그리고 아브라함은 아들을 대신하여 그 숫양을 번제로 드렸습니다.
6) 그 양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이 때의 일을 이렇게 회상하면서 말씀하십니다. 요8: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또한 히11:17-19에서는 아브라함의 이 놀라운 믿음과 순종에 대해 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할렐루야! 이처럼 이삭을 드렸던 아브라함의 믿음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부활신앙이었습니다.
7) 그런데 중요한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고 했던 모리아 산은 이후에 역대하3:1에서 한 번 더 등장하는데요.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했던 그 모리아 산은 바로 약 천년 후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될 자리였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모리아 산”은 바로 그 이후 천년 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장소인 골고다 언덕이 있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지만 예루살렘에서 죽으셔야 했는데, 그것은 바로 예루살렘이 하나님께서 이삭을 바치도록 명령하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삭을 대신해서 희생을 당한 숫양처럼, 예수님은 ‘전 인류의 죄를 대신 담당하신 희생양’으로서 예루살렘의 골고다, 곧 모리아 산에서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3일만에 다시 부활시켜 주셨습니다. 그 부활의 주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수많은 죽음과 같은 고난을 경험하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후1:8-10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8)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죽음과 같은 시험과 고난이 닥쳐온다고 할지라도 결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저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비록 겨자씨처럼 연약한 믿음일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성장시켜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브라함처럼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며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위에 굳건히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오늘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으로 빚어가고 계심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이 시간 주님의 말씀을 듣게 하셨사오니,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긍휼히 여겨주시고, 우리에게도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며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날마다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다시 사는 믿음의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이 시간 다함께 찬양하고 합심하여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시겠는데요.
오늘 주신 말씀을 생각하면서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며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 주시고,
1.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l 미국의 대통령과 위정자들을 위해서
l 한국의 대통령과 위정자들을 위해서
l 미국과 한국의 영적 회복을 위해서 (인종간의 갈등과 혐오범죄, 동성애, 총기사고)
l 북한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 , 이스라엘의 평화, 미얀마,
l 남북한의 평화적 통일 위해서 (북한의 동포들과 함께 주님을 예배하며 주님을 찬양하는 날이 속히 다가올 수 있게 하옵소서)
2. 순복음타코마제일교회을 위해서
l 최병삼 담임목사님과 류현영 사모님을 위해서
l 재직들과 섬기는 자들을 위해서
l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성도들을 위해서
Amos(백혈병), Nick(약물중독), Monica, Alexsandria, Barbara(우울증), Michael Jones(루마티스 관절염, 심장병), Rena Collins(두통, 심장), 이영희 집사(암 치료됨), 영적인 묶임
온갖 부인병과 성인병,
l 후원하는 선교지와 선교사님들을 위해서
말레이시아 사라왁 신정채 선교사
인도네시아 메단 백진식 선교사
터키 앙카라 박성철 선교사
체코 진은숙 선교사
스페인 문기중 선교사
이집트 강완식 선교사
과테말라 홍근식 선교사
루마니아 부크레슈티 채정기 선교사
캄보디아 깜뽕톰 전성용 선교사
속초한세순복음교회 박영철 목사
예닮 공동체 김종호 목사
3. 코로나 19의 종식을 위해서
l 부작용이 없는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고 공급되어지도록
l 모든 상황이 다시금 정상화 되어지고
l 예배가 정상화 되어질 수 있도록
l 경제의 회복을 위해서
4. 우리에게 주신 마음의 소원과 기도의 제목들을 위해서
이 시간 다함께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 찬양 드리신 후에 합심으로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다함께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마무리 기도>
할렐루야!
죽은 자를 살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모든 문제보다 크시고, 죽음보다고 강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모든 기도의 제목들이 응답되어질 것을 믿고 감사합니다.
소망이 끊어진 곳에서 새 소망이 샘솟게 될 것을 믿고 감사합니다.
모든 불가능한 문제들이 해결되어질 것을 믿고 감사합니다.
오늘 이 시간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주님만 의지하오니 우리의 심령 가득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충만케 하여 주옵소서.
오늘 믿음으로 헌물을 드린 귀한 손길들이 있습니다. 믿음의 믿음을 더하여 주셔서 결코 쇠하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가득 채워주옵소서. 주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역사하여 주옵소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아름답게 쓰임받는 믿음의 일꾼들이 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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