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one Analysis

Overall tone of the ser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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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otion 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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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g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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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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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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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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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guage Tone
Analyt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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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fi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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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ta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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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 Tone
Open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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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cientious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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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ver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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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reeable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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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otional 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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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e of specific sentences

Tones
Emotion
Anger
Disgust
Fear
Joy
Sadness
Language
Analytical
Confident
Tentative
Social Tendencies
Openness
Conscientiousness
Extraversion
Agreeableness
Emotional Range
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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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영광의 주님을 뵙는 다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봤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꿈에라도 예수님이 나타나시길 기도하기도합니다.
신령한 몇몇의 신앙이 좋은 분들은 자신이 예수님을 봤다고 간증을 합니다.
이런 분들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예수님은 신령하고 신앙이 좋은 분들에게만 나타나시는 분이신가?
왜 우리에게는 나타나지 않으실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이러한 의문을 내려놓게 합니다.
이는 특별한 신령한 사람들에게만 자신을 보여주시는 분이 아닌 모든 사람에게 자신을 아낌없이 보여주시는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으로부터 오는 환란과 유혹에 지친 모든 성도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시고 계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보기를 원하십니까?
예수님은 오늘 말씀으로 우리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시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들에게 아낌없이 자신을 계시해주신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 예수님께서 교회와 성도들에게 어떠한 일을 하고 계신지를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1) 첫 번째 환상 :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관계(1:9-11)
오늘 본문은 요한한계시록에 나오는 4가지의 환상 가운데, 첫 번째 환상으로 시작이 됩니다.
이 환상은 교회와 교회를 온전히 통치하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2장부터 일곱 교회에 대한 책망과 격려가 주어지기 전에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모습을 아낌없이 보여주신 이유는 자신과 교회가 온전한 관계가 있음을 알려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신약성경은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그 누구도 나눌 수 없는 한 몸이 된 관계를 의미합니다.
신랑과 신부는 자녀보다 더 깊은 관계 가운데 있습니다.
자녀는 때가되면 부모를 떠나가지만 부부는 나눠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자기 뱃속에서 나온 자녀이기에 자녀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는 것이 부모긴 하지만, 관계로서는 누구보다 깊은 관계입니다.
그리고 신랑은 자신의 아내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칠 정도로 아내를 사랑하고 보호합니다.
이처럼 교회는 그리스도와 몸이요, 지체, 신부로 귀한 존재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교회를 신랑으로서 지키시고 계십니다.
2) 그리스도의 모습
왜 예수님은 이런 모습으로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셨을까요?
한 가지 오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 예수님의 모습을 문자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이 상징적이라는 사실을 숙지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목적은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신분과 사역이 무엇인가를 전달하려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한 번 같이 생각해 볼까요? 요한계시록에서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은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럼 실제로 예수님은 어린 양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어린양에 비유한 것은 구약에 어린 양으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는 양을 예수님께 비유한 것입니다.
(1) 일곱 촛대를 거니시는 분(12-13절)
환상의 처음 등장하는 시점이 예수님에게 향하기보다 금촛대가 나오고 13절에 금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서계신 것이 나옵니다.
일곱 금촛대는 일곱 교회라고 1:20절이 밝혀주고 있습니다.(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그리고 일곱 교회는 역사적인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를 향해 편지를 쓰셨지만, 모든 시대의 모든 교회를 의미합니다.
세대주의 신학은 성경을 세대별로 나누어 율법의 시대, 은혜의 시대, 종말의 시대로 나누는 것처럼, 일곱 교회 또한 7개의 세대로 나누어 마지만 라오디게아교회가 배도의 시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을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모든 시대의 사람들이 이해하기는 힘이 듭니다.
왜냐하면 유럽교회의 교회사를 중심으로만 일곱 교회를 대입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향하신 주님의 풍성한 메시지를 가릴 뿐이기에 옳지 않습니다.
이 일곱 교회는 모든 시대의 모든 교회가 가지고 있는 칭찬과 책망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약함은 현재에도 모두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러한 연약한 교회를 온전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일곱 금 촛대에 주님은 거닐고 계십니다.
이는 교회에 주님이 거하고 계시며, 주님의 시야 안에, 주님의 통제 안에 교회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교회가 아무리 연약한 모습을 가지더라도 주님은 교회를 온전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교회는 주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곳입니다.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로 고백위에 세워진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해하지 못합니다.
주님이 함께 하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적용 :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일들이 참으로 속수무책이며, 어디서부터 어떻게 온전케 해 나가야하는지 알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코로나19와 현대 교회들의 연약함은 주님의 도우심이 간절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상황은 주님께서 허락해주시지 않으면 올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교회와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 고난을 때로 허락하시고, 우리들을 다루시고 온전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지금도 주님께서는 교회에 함께하고 계시며, 알파와 오메가이시며, 처음이요 나중이신분의 능력으로 우리를 온전케 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상황을 보지 마시고, 주님을 온전히 붙드시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13절)
왕은 왕의 옷을 입고, 신하는 신하의 옷을 입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그 사람이 입은 옷을 보고 사람의 신분을 알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발에 끌리는 옷과 금띠를 띠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발에 끌리는 옷은 구약 성경에서 대제사장의 옷을 의미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하고 인도하는 대제사장이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가슴에 금띠를 띠고 계셨는데 원래 가슴의 금띠는 왕의 복장이었습니다.
왕들은 보통 허리에 금띠를 띠지만, 예수님은 가슴에 금띠를 띠심으로 더욱 존귀한 왕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주님은 교회와 하나님을 잇는 왕이요, 대제사장이요, 선지자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3) 양털 같은 백발에 눈이 불꽃같은 분(14절)
좌에 앉아 계신분의 머리털이 하얀 것은 바로 다니엘서가 말씀한 것 같이 이 분이 창세전부터 존재하고 계시는 분이라는 것과 영원한 신성을 소유하신 분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또한 눈이 불꽃같은 모습은 “단 10:5-6 그의 눈은 횃불 같고” 깜깜한 밤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횃불을 밝히면 다 볼 수 있지요.
예수님의 눈이 불꽃같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세상을 모두 볼 수 있으시며, 모든 것을 아시는 전지한 분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과 뜻까지도 볼 수 있는 분이기에 그의 앞에서는 심판을 피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님의 불꽃같은 눈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바르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4)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다(15절)
환상가운데 나타난 주님의 발을 볼 때, 우리는 무쇠팔-무쇠다리의 마징가 제트를 떠올렸습니다.
이러한 이유는 강도가 뛰어난 물질이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의 신상 환상에서도 강도와 능력으로 각 부위와 나라를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연단된 발에 대한 해석은 (단 10:5-6 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순금 띠를 띠었더라 6 또 그의 몸은 황옥 같고 그의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의 눈은 횃불 같고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의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에서 정확하게 드러납니다.
놋과 주석은 엄연히 다른 것이지만, 성경은 구분을 짓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 놋을 심판의 상징으로 사용해왔습니다.
놋 제단에 바쳐져 태워지는 재물들, 놋 뱀이 하늘에 들려져 이스라엘의 욕망을 심판하시는 것이 멈춰진 장면을 볼 때 그러합니다.
백성들은 심판을 회개하며 견디어내야 했습니다.
적용 : 주님은 하나님의 고난의 풀무 연단을 받아 온전함을 입으신 분이십니다.
그 분 자신이 고난의 풀무를 순종함으로 견디어 내셨기에 성도들을 권면하시며, 모든 성도들의 고난의 모범이 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고난의 시련을 믿음으로 이겨내고 있는 성도들에게 자신을 바라보고 인내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 믿음으로 고난을 이겨내며, 인내로 소망을 얻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5) 손에 일곱별을 쥐고 계신 분(16절)
이제 환상의 초점은 예수님의 손으로 갑니다.
그의 손에는 일곱별이 쥐어져 있습니다.
일곱 금 촛대를 거니시는 주님의 손에 일곱별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20절에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금촛대는 일곱 교회라고 했습니다.
일곱 교회의 사자에서 사자는 원어로 ‘앙겔로스’ 실려 있습니다.
이는 천사인데, 천사는 대개 하나님의 사역자를 통 들어 모두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하러 온 하나님의 심부름꾼들이었습니다.
이것은 일곱 교회에게 편지하는 내용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2:1, 2:8.
2:12, 2:18등) 각 교회의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교회를 세우는 일을 위해 그의 사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일곱별이라는 것은 다니엘 12:3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요.
(단 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진리의 말씀으로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인도하는 자는 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 날 것이라는 말씀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빛을 발하는 발광체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빛을 받지 않고는 빛을 낼 수 없는 별이 있죠.
빛을 내어도 우주 속에서 별은 그리 큰 빛을 내지 못합니다.
오직 해만이 우리들에게 밝은 빛을 비출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해의 밝은 빛을 받아야지만 빛을 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떠나서 교회와 사역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의 오른 손에 붙들리지 아니하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주님께서 16절의 말씀처럼 우리의 뒤에서 해처럼 힘 있게 비취고 계십니다.
(6) 그의 입에서 좌우의 날선 검이 나오는데(16절)
교회는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삽니다.
그리고 그의 사역자는 그의 말씀으로 사역을 합니다.
이 말씀이 때로는 경고로, 때로는 위로로, 때로는 사랑으로 우리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말씀을 믿음으로 듣고, 믿음으로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 말씀을 주님께서 직접 주시기도 하시지만 그의 사자/사역자를 통해 주십니다.
설교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과 주님의 입에서 주시는 말씀에는 차이가 있지만, 우리는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전하도록 기도해야 하며, 기대해야 할 것입니다.
적용 : 여러분 설교자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분별하여 전할 수 있도록 돕는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전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고, 선대할 때 말씀의 유익을 더욱 크게 해주실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일곱별을 지니시며,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검으로 성도를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랍시다.
(7)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다(16절)
이러한 예수님의 상징적인 모습은 ‘단 10:6의 그의 얼굴은 번갯빛 같고’의 배경을 갖습니다.
또한 사사기는 전쟁에서 승리한 자들의 얼굴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삿 5:31 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하니라 그 땅이 사십 년 동안 평온하였더라’ 이는 전쟁에서 패배한 사람의 얼굴과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의 얼굴 표정은 다를 것입니다.
해처럼 밝게 빛나는 예수님의 얼굴은 예수님이 죄와 사망과 사탄에게서 승리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능력 있는 메시아 이심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적용 : 1세기의 교회의 현실은 고난이 있었고, 고난에 타협하여 신앙의 빛을 잃는 교회들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교회의 현실이 어떠하건 교회 가운데를 거니시고, 교회에 말씀하시며, 힘있게 해처럼 비추시는 주님께 집중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어두운 세상에서 빛을 발하고 빛날 것입니다.
우리들은 실패하고 넘어지지만 주님께서는 이미 원수들에대해 승리하셨고, 평강을 주셨습니다.
주님의 빛 가운데로 나아오십시오.
그러므로 주님의 빛을 비춰달라고 간구합시다.
신구약 성경은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며, 하나님의 얼굴의 빛을 자신에게 비춰달라고 간구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 때 하나님을 알고, 참된 소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고난으로 빛을 잃고, 힘을 잃으셨습니까?
주님은 여전히 교회 가운데 말씀하시며, 빛을 비추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교회를 거니시며, 함께하시고, 손에 일곱별을 지니시며 그의 사역자들을 통해 교회를 온전케 하고 계십니다.
주님으로 온전케 되는 주님의 교회가 됩시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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