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의 재료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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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백성들의 풍성한 마음이 모여 교회가 세워집니다
다양한 백성들의 풍성한 마음이 모여 교회가 세워집니다
[서론]
뚝딱 뚝딱, 챙챙, 이런 소리가 들리시나요?
오늘 말씀은 우리를 어떤 공방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기술자들이 지금 만들고 있는 것은 성막의 덮개들과 성막 벽, 성막의 휘장(커텐)과 기둥들입니다.
성경에 이런 건축과정이 너무 자세히 나와있어 읽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입장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이 다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 사건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질 뻔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목숨을 건 중재로 인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용서하셨고, 이로 인해 이제 다시 성막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기쁨과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한번 결혼을 앞두고 파혼 당했던 여인이 다시 결혼식장에 들어설 때의 그 설레임 같지 않았을까요?
[본론]
먼저 오늘 말씀에는 성막을 만들 다양한 재료들이 등장합니다.
색실들도 나오고, 금, 은, 놋, 널빤지도 등장합니다.
앞서 35장22절에 보면 백성들이 가지고 나온 것은 장식 핀, 귀고리, 반지, 색실들 이런 것들입니다.
금속들은 녹이고, 실들은 뽑아내서 이런 재료들이 등장한 것입니다.
앞에 내용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을 만들기 위해 기쁜 마음으로 넘치도록 많은 재료들을 가져왔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자신들의 마음이 움직이니까 자발적으로 가져온 것입니다.
백성들 입장에서 보면 거친 광야생활에서 필요한 것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렇게 힘든 사정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값비싼 것들을 하나님의 성막을 만들기 위해 내놓은 것입니다.
우리가 엊그제 발사체 누리호를 보면서 감동을 받았던 것은 그것을 만든 재료와 기술들이 대부분 우리나라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도 발사체들을 우주로 보냈는데 대부분 외국에서 가져온 재료들과 기술들로 만들어 졌었거든요.
그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직접 가져온 재료가 하나님의 집인 성막을 만드는데 쓰인다는 사실 자체가 감동이었을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섬기던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학교때 교회 건축을 하게 되었는데 그 때 저는 대학생이라서 돈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제 손으로 도울 수는 있어서 한 여름에도 찾아가 땀을 흘리며 교회 벽에 시멘트를 바르던 때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건축을 마치고나니 내가 교회를 세우는 일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자체가 감동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오늘 우리가 보는 성막도 금으로만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은, 놋, 색실들, 나무들도 필요한 부분과 역할이 존재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자발적으로 예물을 받으신 것입니다.
만약, 금만 필요하셨다면 강제로 금만 내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금을 낼 수 있는 소수 사람들의 헌신만으로 성막이 완성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다함께 만들어가는 성막을 원하셨던 것입니다.
어떤 교회는 교회건물을 짓기 위해 성도들에게 모금을 했다고 합니다.
돈이 많이 필요하니깐 몇 천만원, 몇 억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죠?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많은 돈을 헌금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교회에서 주인행세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헌금 많이 한 사람 마음에 ‘이거 내가 돈 많이 내서 지은 건물이야. 그러니까 나 함부로 다루면 안돼. 나 중요한 사람이야.’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건물을 세우기 위해 돈이 많이 필요했지만 모든 성도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상한선을 두었다고 합니다.
그 누구도 100만원 이상 내지 말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소수만을 위한 공동체가 아닙니다.
모든 교회 식구들이 함께 동참하여 만들어가는 곳이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 교회는 앞서 말한 교회와는 다른 선택을 할 것입니다.
앞으로 아무리 교회가 커져도 교회건물을 세우지 않을 것입니다.
건물이 생기면 교회가 마치 건물인양 착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사람입니다.
우리 각자가 교회이고, 우리가 모인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건물은 우리의 필요를 위해 존재할 뿐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다른 용도의 건물을 빌려 우리가 필요할 때만 사용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묻겠죠?
너희 다카포 교회는 어디에 있어?
응, 우리 교회는 간판도 없고, 건물도 없어.
그럼 사람들이 또 묻겠죠?
왜?
응, 내가 곧 교회고, 우리 교회 사람들이 교회거든.
무슨 소리야?
이처럼 예수님의 이름아래 다양한 사람들이 다함께 모여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이 있습니다.
20절입니다.
‘그들은 성막을 세울 널빤지를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었다. 널빤지는 길이를 열자, 너비를 한 자 반으로 하고 널빤지에 두 촉꽂이를 만들어 서로 잇대어 세웠다.’
성막 벽을 만드는 널빤지들에 대한 설명입니다.
널빤지들을 서로 연결하고 그 중간을 가로다지라는 널빤지로 다시 연결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널빤지를 다 붙이고 난 후 중간에 끈으로 묶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 널빤지로 만든 벽 안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릴 적 레고 많이 만들어봤죠?
저 때는 레고는 없었고, 거의 밖에 나가서 놀았던 기억만 있는데요.
아무튼 레고도 피스 하나 하나를 끼우고 연결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듭니다.
이처럼 성막벽도 서로 끼우고 조립해서 만들어가는 형태로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교회 성도들이 손을 맞잡고 기도하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성막의 서로 연결된 벽처럼 우리가 서로 손을 맞잡고 기도할 때 그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서로 손을 맞잡고 한 마음으로 교회의 울타리가 되어줄 때 하나님은 기쁜 마음으로 우리 가운데 임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2-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항상 겸손하고, 온유하며, 마음을 너그러이 하여 참아주고, 서로를 사랑으로 받아 주십시오. 여러분은 성령 안에서 평안의 매는 끈으로 한 몸이 되었습니다. 하나가 되도록 힘쓰고 여러분 가운데 늘 평화가 깃들도록 노력하십시오.’
우리가 손을 맞잡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영, 성령이 우리를 하나되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우리 교회가 추수감사절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모여서 손 맞잡고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주목할 단어는 8절에 나온 ‘기술이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 주인공은 모세가 아니라 브살렐과 오홀리압 그리고 함께 한 기술자들입니다.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성막의 정교한 도구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양한 재료를 가공하여 부품들을 만들어낸 사람들을 기술자들, 즉 장인들이라 부릅니다.
여인들은 실을 짜서 천 덮개를 만들었습니다.
나무를 다루는 장인들은 아카시아 나무를 가공해 널판지를 만들어 성막벽을 만들었습니다.
금속을 다루는 장인들은 그 널빤지에 금을 입히고, 그것을 연결할 금고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그냥 만든게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설계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26장 내용과 36장 내용이 거의 비슷합니다.
26장은 하나님이 어떻게 만들라고 설계도를 그려주신 것이고, 오늘 우리가 보는 36장은 그것에 순종하여 만든 내용들입니다.
성경이 동일한 내용을 반복해서 적은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그대로 순종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보통 장인들과는 다른 특징이 있었습니다.
출35장 31절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가득하게 하시고,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온갖 기술을 갖추게 하셨다.
성막은 그냥 평범한 건축물이 아니고, 하나님이 거하실 특별한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셔서 지혜와 능력을 넘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바로 성령인데 지혜와 능력을 주시는 분입니다.
앞서 하나님이 설계하라고 말씀하신 부분을 보면 성막 기구들부터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거부터 만들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성막의 구조물부터 만들고 있습니다.
성막 제작 순서가 달라진 것입니다.
그럼 성막 기술자들이 불순종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막기구들을 먼저 만들고 나면 그것을 둘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성막기구들을 함부로 둘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들에게 이러한 지혜들을 주셨기에 그들은 이런 판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흔히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솜씨는 디테일에 있다.
이 세상을 만드시고 움직이시는 하나님을 보십시오.
작은 꽃 하나도 얼마나 정교하고 아름답습니까?
작은 벌 하나도 얼마나 뛰어난 생존기술을 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세상 유일한 The Maker, 장인이십니다.
그런데 그 분의 영이 함께 한다면 우리 또한 얼마나 지혜롭겠습니까?
우연히 the makers라는 TV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습니다.
수제품을 만드는 장인들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거기보니 대기업에서 기계가 대량생산으로 만드는 제품과 장인이 손으로 직접 만드는 제품의 차이는 분명했습니다.
영국의 한 자전거 장인은 심지어 수백년간 쓸 자전거를 만들 각오로 튼튼하고 정교한 자전거를 만든다고 합니다.
그들은 최상의 재료를 사용해 최고의 제품을 만들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도 이같은 장인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이 땅에서의 해야할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직업들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잘 다듬으셔서 세상 곳곳에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최선을 다해 우리의 삶을 디자인해 가야 합니다.
주신 사명에 있어 장인이 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막 기술자들처럼 하나님의 영,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만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른 1프로의 디테일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는 다양한 직분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집사, 권사, 장로, 목사 이런 것만 알지만 모두 은사별로 주어진 직분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대로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재능이라고 말하지만, 교회에서는 성령의 은사, spiritual gift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 성령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들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힘든 사람들을 돕는 구제의 은사가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가르치는 은사가 있어 성경 교사가 되기도 합니다.
저같은 사람은 가르치고 돌보는 은사가 있어 목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로마서12: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따라, 우리는 저마다 다른 신령한 선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령, 그것이 예언이면 믿음의 정도에 맞게 예언할 것이요,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또 가르치는 사람이면 가르치는 일에, 권면하는 사람이면 권면하는 일에 힘쓸 것이요, 나누어 주는 사람은 순수한 마음으로, 지도하는 사람은 열성으로,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한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성막 건축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그 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 만들어 놨는데 하나님이 거기에 안 계신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신방은 꾸며놨는데 신랑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고, 영화에 주인공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크신 창조주로서 세상 어떤 것으로도 그 분을 제한할 수 없습니다.
하늘과 땅이 아무리 넓고 커도 하나님을 다 담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시고, 모든 것들은 피조물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크신 하나님이 이 작고 초라한 성막 안에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만한 특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성막이 자신이 말한 대로 지어졌다고 해서 그곳에 반드시 거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막은 사람들의 마음이 모인 곳입니다.
바로 앞장에 이런 부분이 나옵니다.
백성들이 성막을 짓기 위한 예물을 너무 많이 가져와서 공사가 진행이 안될 정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더이상 예물을 가져오지 못하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백성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기술자들은 어떻습니까?
자신이 가진 기술을 최선을 다해 성막을 만드는 데 보태고 있습니다.
이처럼 백성들의 자발적이고 풍성한 마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막 곳곳에는 백성들의 마음이 모이고 묻어있는 곳입니다.
그렇기때문에 하나님은 기꺼이 그곳에 임하시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라고 해서 무조건 하나님이 그곳에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상숭배와 같은 죄악이 행해지는 곳에는 하나님이 계실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죄악으로 물들어 있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 사이에 거하실 수 있겠습니까?
[결론]
이제 설교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성경은 교회의 머리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있는 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장 1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온몸이 그리스도께 붙어있으니 각 지체가 서로 도와주어 각자 맡은 일을 잘 해내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온 몸이 건강하게 성장하여 사랑 안에서 더욱 튼튼히 서게 될 것입니다.’
성막은 백성들의 내놓은 다양한 재료와 백성들의 순종으로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그 밑바탕에는 하나님을 향한 백성들의 풍성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이 모인 곳에 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린다고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를 무조건 받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예배드린다고 무조건 우리 가운데 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진실한 마음, 풍성한 마음이 모인 곳에 주님이 임하십니다.
우리 다카포 식구들은 모두 한 마음으로 손을 맞잡으며 하나님이 임하시고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