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16장 새벽 수요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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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주권

16장의 위치. / 에스겔 - 하나님께서 강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강하시다. / 격동기 - 소국들이 사라지고 신앗수르 -> 이집트까지 영향을 미치는 // 지역 패권 //
에스겔의 간단한 소개
이스라엘이 멸망했다 할 때는 북 이스라엘과 유다로 나눠졌습니다. 우리가 수요일에 살펴보는 사무엘 상하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나라가 세워지는 과정을 다윗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나 다윗 후 솔로몬 그리고 솔로몬때가 지나서 분열이 될 때 이를 분열왕국이라고 합니다.
분열 왕국은 북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으로 불리고 정통성은 유다 왕국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이라고 하면 북 이스라엘 보다 유다를 가리키는 말이다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출19:1-6 “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2 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이스라엘이 거기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 3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우리 안에 내면화된 죄악 권세는 쉽게 죽지 않고 바로 같은 절대군주적 지배력을 행사한다.
로마서 6:11-20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
요한복음 8:31-36 “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33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
월요일 새벽
겔 16:1-5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예루살렘으로 그 가증한 일을 알게 하여 3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 근본과 난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버지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머니는 헷 사람이라 4 네가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 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로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5 아무도 너를 돌보아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하여 너를 불쌍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천하게 여겨져 네가 들에 버려졌느니라”
예루살렘으로 표현된 이스라엘은 어떤 백성인가요?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습니다.
겔16:8 “8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을 할 만한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를 내게 속하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새벽을 깨우고 기도하시며 그 누구보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자 하시는 성도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오늘 새벽부터 에스겔 16장의 긴 말씀을 시간이 되는 부분까지 살펴보고 수요일에 16장의 마지막 부분을 설교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짧은 시간이기에 결론 부터 말씀을 드려놓고 시작하려고 합니다.
겔16:60 “60 그러나 내가 너의 어렸을 때에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 입니다.
언약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중요한 키워드 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떠한 유익이 있으며 우리는 왜 그러한 언약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가를 잠시 살펴보고 특별히 성도 여러분이 에스겔이라고 하는 아주 기가막힌 인물을 살펴볼 기회를 얻고자 합니다. 내용은 엄청나고 그 깊이를 다 헤아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아주 집약적인 16장을 살펴보면서 성도 여러분을 에스겔 앞으로 초대하고 싶습니다.
시작하는 말씀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라고 시작하는 이 표현은 에스겔의 뚜렷한 특징입니다. / 이사야 1:1 “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렘1:2 “2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가 다스린 지 십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호1:1 “1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직접적으로 에스겔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어떤 선지자들에 비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알게하는 인물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두 번째 특징인 부르는 호칭입니다. ‘인자야’ 여러분이 자주 들었던 ‘인자’는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는 칭호로 특히 주일에 다니엘에서 나타나는 아주 중요한 신학적 용어입니다. 그런데 에스겔에서 나타나는 ‘인자’는 그대로 풀어서 ‘사람의 아들아’ 로 부르는 표현인데 긍적적 의미보다 아주 부정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 늬앙스를 좀 살리면 ‘으이구 이 사람 xx야’ 하는 느낌이죠.
세 번째 특징은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전체는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알게 하신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에스겔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바로 우리에게 ‘알게 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 입니다. 그렇지요.
여기에서 두 가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알게하시는가?
왜 알게 하시는가?
이 두가지 답에는 공통적으로 ‘언약’ 입니다. 겔16:62 “62 내가 네게 내 언약을 세워 내가 여호와인 줄 네가 알게 하리니” 첫번째 질문에는 답이 됩니다. 그렇다면 2번째 ‘왜 알게 하시는가?’ 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안타깝게도 알아야 하는 내용이 그렇게 좋지 못한 느낌을 읽을 때부터 받았을 것입니다.
본문에서 첫번째 알게 하시는 대상이 3절 ‘여루살렘에 관하여’ 입니다. 예루살렘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데 현실적으로 당시의 예루살렘을 말합니다. 주일 우리는 다니엘에 대해 배우면서 다니엘이 바벨론이라는 나라에 의해 1차로 잡혀온 포로(주전 605년)라고 배웠는데 에스겔은 그 후 (주전 597년) 대략 8년 후에 2차 포로로 붙잡혀 왔습니다. 그런데 붙잡혀 왔지만 여전히 예루살렘이라는 곳에는 바벨론이 세운 왕이 통치하는 상태로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주권을 잃어버린 상태였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에 있을 때 수많은 우리 국민이 끌려가서 일본에서나 주변 아시아 나라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렸던 뼈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때 우리나라는 주권을 빼앗긴 상태로 국내에서는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태 곧 혼란의 상태였던 것처럼 예루살렘은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다니엘 - 과 같은 상류층의 사람들이 1차 포로 였다면 2차 포로 상태는 에스겔과 같이 제사장 그룹과 같은 종교 지도자들이 대표적이었고 대규모 백성들이 붙잡혀 ‘텔아비브’ 근처에 아예 포로 공동체가 세워질 정도 였습니다.
시137:1 “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는 표현은 당시 포로 백성의 고토를 노래하는 대표적인 시편입니다.
그런데 잡혀 온 포로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포로된 땅에서 이국만리에서 내가 태어나 자라고 아버지의 집이 있고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관한 이야기를 지금 ‘여호와의 말씀’으로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새벽에 기도하러 오시는 성도 여러분. 오랫만에 여러분을 이 새벽에 만나지만 이 새벽에 기도하시는 여러분의 특별한 간구는 어쩌면 여전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상황이 변화되고 어떠한 문제에 대해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며 한나와 같이 간구하고 기다라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는 어제 하나님께서 코로나의 새로운 탈출구를 보면서 ‘회복’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보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지금 간구보다 더 중요한 다른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알게 하신다면 과연 우리는 그 알려주시는 것에 온전히 동의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에스겔의 입을 막으시고 포로로 잡혀온 네가 할 말이 많다는 것 안다. 그러나 너는 잠잠하라 내가 알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내가 여호와인 줄 알기’ 때문이다 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내가 원하는 기도가 응답되는 것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것이 중요합니까? 신약에 소개되는 몇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누가복음 2장체 간략하게 나오지만 눅2:28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그의 찬송은 여전히 우리가 읽고 되세기고 있습니다. 시므온을 가리켜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고 소개합니다. 시므온은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다’라고 찬양했습니다.
또 한 여자를 소개하는데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다’ 라고 소개합니다. 그의 삶이 어떠했을까요. 그럼에도 그는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받은 축복은 ‘마침 이 때에 나와와서’ 아기 예수께서 정결예식을 위해 성전에 오신 그 때에 모든 사람에게 예수에 대하여 말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구절을 읽으면서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라고 고백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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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은 25살에 잡혀온 제사장 가문의 아들입니다. 그러니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장으로 세워질 인물이었지만 눈 떠보니 이국만리 바벨론 그 어느 강가에서 모여 하나님의 뜻이라고는 알 수 없던 시간을 보낸 인물입니다. 이미 앞섬 1-15장 까지의 이야기는 에스겔이 그렇게 잡혀온지 5년이나 지난 시간의 이야기 입니다. 어쩌면 에스겔은 하나님께 이렇다할 기도한 번 제대로 한 적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찾아가기전에 어쩌면 에스겔은 왜 하나님께서 이곳에 나를 붙잡아 포로가 되게 하셨을까? 그래도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예루살렘은 성전이 있고 그래도 모여서 예배라도 할 텐데.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에스겔에게 장로되는 사람들은 찾아와서 여기서라도 예배를 드려야 하니 뭐라도 만들어서 이것이 여호와라고 해야하지 않겠냐며 우상숭배를 부채질 하곤 했습니다. 그들은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강한 삶의 의지를 나타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제사장으로 키워진 에스겔의 마음에는 여호와의 성전이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가에 빠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쩌면 코로나를 겪으며 우리는 이런 질문을 수없이 했을지 모릅니다.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리는게 예배드린 걸까? 그래도 나가서 함께 모여 예배드려야지, 어떤 이들은 시국이 그러니 인터넷으로 예배드린 것도 예배가 맞다고 할 것입니다. 어떤 때는 하나를 정해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면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것이 정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인가 ‘알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일에 목사님을 통해서 회복의 메시지를 받고 그리고 공동체가 성도의 교제를 함으로 회복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받았다면 이 새벽을 깨우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에스겔은 앞 선 장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이스라엘을 떠나 바로 여기 바벨론으로 옮겨 온다는 상상할 수 없는 환상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에스겔은 결코 기뻐할 수만은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 그 이스라엘 곧 예루살렘을 그토록 철저하게 버리시는 이유를 상세하게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음 시간에 살펴보겠지만 내용 뿐만 아니라 사용되는 표현조차 과연 성경에 담을 만한 이야기인가 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하나님께서 죄인 이스라엘을 고발하시면서 그 죄목을 지금 에스겔에게 말하고 있다라고 신학적으로 표현합니다.
여러분의 기도 요구에 저와 여러분의 그동안 죄악의 리스트를 쭉 읽고 내려간다면 감당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을 버리고 이스라엘을 철저하게 버리시고 에스겔이 있는 바벨론으로 이동하는 환상이 이제 나만 살면 되겠구나 하면서 마음 편하게 받아 들일 수 있을까요? 이런 죄악 가운데 과연 너는 예수 믿을 자격이 있는가? 라고 사탄 마귀는 오늘도 저와 여러분을 참소합니다. 무엇으로 이 참소를 이겨 낼 수 있을까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내가 너의 어렸을 때에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말씀을 조금 바꿔서 나를 위해 기도하고 나의 필요를 위해 기도하는 우리의 모습은 정말로 약속하신 말씀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주신 기도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를 부르면서 그 아버지가 세우신 언약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그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아야 ‘ 하는데 바로 예루살렘이 여기에서 실패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실패 곧 예배의 실패한 것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배에 실패하고서는 우리의 간절한 바람도 그 어떤 요청과 간구도 하나님께 상달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다시 각자의 예배를 점검합시다.
그 예배는 우리가 무엇을 믿는가 하는 것과 연결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을 위해 저와 여러분은 이 새벽에 대표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레이스 교회가 올려드리는 예배가 온전한 예배로 회복되길 기도합시다.
화요일 새벽
겔 16:15-22 “15 그러나 네가 네 화려함을 믿고 네 명성을 가지고 행음하되 지나가는 모든 자와 더불어 음란을 많이 행하므로 네 몸이 그들의 것이 되도다 16 네가 네 의복을 가지고 너를 위하여 각색으로 산당을 꾸미고 거기에서 행음하였나니 이런 일은 전무후무하니라 17 네가 또 내가 준 금, 은 장식품으로 너를 위하여 남자 우상을 만들어 행음하며 18 또 네 수 놓은 옷을 그 우상에게 입히고 나의 기름과 향을 그 앞에 베풀며 19 또 내가 네게 주어 먹게 한 내 음식물 곧 고운 밀가루와 기름과 꿀을 네가 그 앞에 베풀어 향기를 삼았나니 과연 그렇게 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0 또 네가 나를 위하여 낳은 네 자녀를 그들에게 데리고 가서 드려 제물로 삼아 불살랐느니라 네가 네 음행을 작은 일로 여겨서 21 나의 자녀들을 죽여 우상에게 넘겨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느냐 22 네가 어렸을 때에 벌거벗은 몸이었으며 피투성이가 되어서 발짓하던 것을 기억하지 아니하고 네가 모든 가증한 일과 음란을 행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법을 떠난 삶은 어떤 모습인가요?
16장 초반부에 예루살렘에 관해서
4-5절은 유아 시기 아무런 돌봄도 받지 못했으며 부모 뿐만 아니라 5절에 아무도 너를 돌보아 주지도 불쌍히 여기지도 않았고 결국 ‘천하게 여겨져 들어 버려졌’다고 소개합니다. 그런 아이를 ‘내가 네 곁을 지나갈 때에 ‘ 살아 있으라, 살아 있으라 고 말하는 것은 아무도 돌보지도 불쌍히 여기지도 않고 오히려 천하게 여겼지만 하나님께서는 살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7절에 ‘크게 자라고 심히 아름다웠다고 소개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벌거벗은 알몸의 상태였다고 소개합니다.
여인으로 성장했지만 누구도 그녀를 아내로 맞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를 내게 속하게 하였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혼인을 상징하여 받아 주는 관계를 비유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녀는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존귀한 위체 올랐습니다. 9절 ‘기름을 바르고’, 10절 ‘수 놓은 옷을 입히고 가죽신 을 신기고’ 11절 /패물을 채우고 손목과 목 그리고 코와 귀까지 장직하였으며 화려한 왕관을 머리에 쓰웠다고 말합니다. 13절 하반부에 ‘왕후의 지위에 올랐느니라’고 말합니다. 14절에는 이로 인해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고 여인이 받은 모든 축복이 ‘온전한 ‘상태 곧 흠잡을 수 없는 상태로 올렸다는 것입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9장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시면 이스라엘 배성을 ‘특별한 보화,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는 칭호를 받게 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말씀
벧전2:9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 그리고 이어지는 말슴에서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 말씀이 바로 이 말씀의 해석판입니다. 그런데 오늘 16장은 마치 검사가 죄인의 죄를 열거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열거하는 듯 합니다.
그렇게 본분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15절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가지고 ‘행음하였다’ 어느정도였냐면 ‘지나가는 모든 자와 더불어 음란을 많이 행하므로 네 몸이 그들의 것이 되도다’ 성경은 가장 큰 음란의 상태를 표현할 때 이렇게 강하게 말합니다. 그녀는 적극적으로 행음을 즐겼습니다. 16절 각색으로 산당을 꾸미고 거기서 행음을 하는 모습은 바로 이방신을 모시는 모습입니다. 16절 후반부에 ‘이런 일은 전무후무하니라’고 그녀의 행음함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 행음은 17절 남자 우상을 만들어 행음하였으며 18절 수 놓은 옷을 우상에게 입혔고 19절 음식물 곧 고운 밀가루와 기름과 꿀을 네가 그 앞에 베풀어 향기를 삼았다고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하를 경배가 우상에게 그것도 행음과 함께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 끝은 21절 ‘나의 자녀들을 죽여 우상에게 넘겨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23절 부터는 이 모든 악을 행한 후에 오히려 모든 거리에 높은 대를 쌓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름다움을 가증하게 하여 모든 지나가는 자에게 다리를 벌려 심히 음행하였으며 이런 음행은 이웃 나라 애굽 사람과도 음행하여 심히 음란히 하여 내 진노를 샀도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고발을 듣고 있다면 아마 우리는 ‘그만해라 듣기 싫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에스겔은 ‘알게 ‘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도망할 수 없습니다. 듣는 그 자체가 고역일 것입니다.
그발 강 포로로 잡혀온 자신의 삶을 토로할 기회도 없었을 것입니다.
계속되는 죄의 고발은 갈수록 죄는 더 깊어지고 노골적입니다. 33절에 창기는 돈을 받고 행음을 한다고 했는데 34절 이 여인은 어히려 값을 주고 음란한 짓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알 사실 하나는 죄라는 것은 이렇게 모든 것을 태워야 끝나는 불같은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 실마리는 22절에 있습니다. 22절 중간에 ‘기억하지 아니하고’ 입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특별한 것입니다. 인간은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하루 이틀이면 지워집니다. 어쩌면 지워지는 기능 때문에 지난 시간 우리의 고통을 잊고 살 수 있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기억하기 위해 매일같이 기억을 확인하고 기록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대단히 특별한 것입니다. 그 언약의 약속으로 율법을 받았고 율법을 통해 이스라엘은 잘못을 깨닫게 됩니다.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를 분별하게 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잘못을 깨닫고 회복할 수 있도록 제사법을 레위기에서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제사장 나라’입니다. 이런 원리는 지금도 동일하게 작동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비록 죄를 범할지라도 주 보혈을 의지해 나아가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아뢰이면 천상에 오르신 그리스도의 영원한 중보는 여전히 작동하여 우리를 용서해주십니다. 그 죄가 너무 깊어 아뢸 수 없을 때에도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아뢸바를 기도하게 하십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바로 ‘기억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영접하기전 벌거 벗은 나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여기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지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로 가는 우리의 발걸음을 붙잡는 유일한 길입니다.
가룟유다를 보십시오. 주님은 계속해서 유다에게 기억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가 결국은 예수를 팔려는 마음을 먹는 순간 사탄은 그를 지배했고 주님께서는 마음 먹은 일을 행하라고 허락하셨습니다. 반면 베드로는 닭 우는 소리에 기억이 났습니다. 그런 그의 행동은 무엇이었습니까?
막14:72 “72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 기억되어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 입니다. 바로 이 차이가 운명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회복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알게 하시’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아멘/
수요일 새벽
겔16:44-52 “44 속담을 말하는 자마다 네게 대하여 속담을 말하기를 어머니가 그러하면 딸도 그러하다 하리라 45 너는 그 남편과 자녀를 싫어한 어머니의 딸이요 너는 그 남편과 자녀를 싫어한 형의 동생이로다 네 어머니는 헷 사람이요 네 아버지는 아모리 사람이며 46 네 형은 그 딸들과 함께 네 왼쪽에 거주하는 사마리아요 네 아우는 그 딸들과 함께 네 오른쪽에 거주하는 소돔이라 47 네가 그들의 행위대로만 행하지 아니하며 그 가증한 대로만 행하지 아니하고 그것을 적게 여겨서 네 모든 행위가 그보다 더욱 부패하였도다 48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 아우 소돔 곧 그와 그의 딸들은 너와 네 딸들의 행위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9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의 딸들에게 교만함과 음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 주지 아니하며 50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보고 곧 그들을 없이 하였느니라 51 사마리아는 네 죄의 절반도 범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네가 그들보다 가증한 일을 심히 행하였으므로 네 모든 가증한 행위로 네 형과 아우를 의롭게 하였느니라 52 네가 네 형과 아우를 유리하게 판단하였은즉 너도 네 수치를 담당할지니라 네가 그들보다 더욱 가증한 죄를 범하므로 그들이 너보다 의롭게 되었나니 네가 네 형과 아우를 의롭게 하였은즉 너는 놀라며 네 수치를 담당할지니라”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인으로 판단 받을 때 과연 올바른 길에 서있나요 ?
하나님께서 가증한 예루살렘에 대해 에스겔에게 알게 하셨습니다.
과거에 이스라엘 민족을 어떻게 세우셨는지를 버려진 아이와 그 아이가 성장해 결혼의 비유를 통해 왕후의 자리까지 올랐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간 행한 행음과 우상숭배는 전무후무 한 것임을 고발하였습니다.
에스겔은 이미 앞서 천사의 이끌림을 통해 예루살렘에서 벌어지는 황당 무개한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기도의 방에 각종 죽음에 관한 이방신 그림이 가득했으며 하나님의 성전 앞 뜰에는 이방신상이 세워졌고 제사장이 집례해야 할 성전의 제사의식은 장로들에 의해 진행되면서 하나님의 제사법은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더 나아가 이들은 동쪽을 바라보면 하나님의 성전을 등지고 숭배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음을 에스겔은 환상을 통하여 본 것입니다.
그런 에스겔의 마음에는 어쩌면 지금 포로로 붙잡혀온 자신을 보면서 그래 난 당해도 싸다. 난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구나. 그렇다면 이제 하나님 백성이라 불릴 자격도 없으니 우리는 하나님으로 부터 버려졌구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35절부터 43절까지는 하나님의 심판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음행한 여인이 좋아했던 모든 것들을 모아 오히려 대적하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그녀가 세웠던 누각을 허물로 부순다고 39절에 말씀하고 더 나아가 무리를 데리고 와서 너를 돌로 치며 칼로 찌르며 불로 네 집들을 사르고 여러 여인의 목전에서 너를 벌할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하십니까. 42절에 ‘그리한즉 나는 네게 대한 내 분노가 그치며 내 질투가 네게서 떠나며 마음이 평안하여 다시는 노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보응 곧 심판은 43절에 보시면 ‘내가 네 행위대로 네 머리에 보응하리니’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포로 시기에 있었고 충분히 혼란 스러운 과정이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의 택한 보물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시키신다고 했습니다. 제사장 나라로 거룩한 백성으로 삼는 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전쟁에 승리하게 하셨음을 말씀을 따라 살때 평안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때를 기억하지 못하고 마치 자신이 잘나서 그 자리에 오른 것처럼 할 때마다 하나님은 열방을 들어 회초리로 사용하셨습니다. 그 때마다 울부짓으며 돌아오길 반복했지만 어느 순간 우는 것 조차도 포기한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방식은 ‘네 행위대로’ 받는 것입니다.
제사를 통해 용서를 받는 백성이 행위대로 판단을 받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이방민족에게 행하셨던 방식입니다.
43절에 [네가 어렸을 때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이 모든 일로 나를 분노하게 하였은즉’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비의 법에서 벗어나 행한대로 심판을 받는 세상의 법에 놓이게 됩니다.
이렇게 심판에 대한 메시지는 에스겔의 마음을 녹였고 도무지 포로 상태인 자신의 입장에서는 일어설 힘조차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시고 버리시는 구나’ 이제는 더이상 기댈 곳이 없구나. 아 우리 부모의 잘못으로 여기에 포로로 붙잡혀서 이제 죽는 일만 남았구나.
바로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44절에 ‘어머니가 그러하면 딸도 그러하다’ 이 얼마 조롱거리의 말입니까. 이미 앞선 말씀에서 아이를 버린 돌보지 않는 매정한 어머니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 비유를 왼쪽은 사마리아, 오른쪽은 소돔을 형제로 말하면서 결국 망해버린 그들 역시 잘못된 길을 좇아 살아가는 딸들처럼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돔은 이미 오랜 시간 전에 파괴 되어 사라졌습니다. 그 심판에 대한 전설만 남았을 것입니다. 사마리아는 어떻습니까 오히려 지금 예루살렘 보다 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48절 ‘네 아우 소돔 곧 그와 그의 딸들은 너와 네 딸들의 행위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들은 자신의 풍족함을 나누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풍족함을 나누지 않는 것 또한 하나님 보시기에는 가증한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사라미아는 네 죄의 절반도 범하지 않았다고 51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 예루살렘이 한 일 때문에 오히려 소돔과 고모라가 의롭게 될 정도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의 모습이 이처럼 수치를 당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도 한 때는 교회를 다니는 것 교회의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자랑했드랬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교회를 다니는 것은 주일에 낚시를 가거나 캠핑을 가거나 자전거나 휴식을 취하는 것보다 못한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주일에 교회를 가느니 차라리 낮잠을 자겠다. 아이들을 교회에 보내달라며 위험하고 말하면서도 학원은 결석없이 보내는 것이 오늘 우리가 맞이한 현실입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세상의 사람들이 우리가 못한 일 때문에 그나마 의롭게 보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회복의 틈이 있습니까? 의인 한명이 있으면 멸망을 거두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그 의인은 의롭게 살아가는 우리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으로 명예를 지키고 사랑가는 사람 곧, 하나님께서 보배로 칭하며 하나님의 예배를 존귀히 여기며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내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에스겔은 도무지 찾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는 제사장이 될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누구보다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회복 시키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의 희망은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요. 오늘 저녁 말슴 60절에 하나님 편에서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가 출발입니다. 거기에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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