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앞에 놓여진 새로운 산 길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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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우리는 그림자로서의 성소가 아니라 참 성소인 하늘성소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고 참대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위해 사역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대제사장사역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대제사장은 결국 하나님과 사람의 화해를 위해 사역하는 중보자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가운데서 화해의 수단… 화해의 도구로서 사용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잘 아는 “제사”라는 방식을 통해서 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희생제사겠습니다.. 이러한 희생제사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우리의 기도와 간구가 하나님께 올려 질 수 있으며… 우리가 짓는 죄의 대한 심판이 이러한 중보의 요청을 통해서 유보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희생제사는 이스라엘에게 공식적으로 주어진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연결고리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희생제사에는 무엇이 필요했습니까?? 제사의 장소의 성막, 제물이 되는 소나 염소 그리고 그 제사를 집행하는 제사장이 있어야 했습니다…
과거의 옛것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제한적이었습니다.. 제한적이었다는 것은 효력의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성막은 땅에 있기 때문에 장소적으로 제한적입니다.. 제물은 어떻습니까? 소나 염소는 영원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속죄 제물에 따라서 효력에 한계가 있는 것이죠.. 영원하지 못한 것이 영원히 죄를 속죄할 수 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대제사장도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대제사장직은 계속해서 바뀌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필요에 따라서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영원할 수 없기에 하나님은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 31:33.)
이제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고 마음에 기록할 것이다!! 새로운 언약… 새로운 약속… 새로운 율법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따라서 영원한 언약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는 것을 지금까지 히브리서를 통해서 살펴봤던 것입니다.
영원한 성소… 영원한 대제사장… 영원한 제물이 되신 예수그리스도.. 이 모든 것이 이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통해서 이루어 졌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굉장히 신학적 설교를 설교자가 한 이유는 오늘 본문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앞에서 이야기를 한 모든 것을 결론 지으면서 “그러므로 형제들아”라고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 성소… 하늘에 계신 영원한 대제사장… 우리를 위한 영원한 제물이 되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셨으니… 그러므로 형제들아…. 이제 우리가 이것을 알았으면 그것이 신학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에서 어떤 이유가 되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께서 자신이 희생제물이 되어서 피 흘려 죽으셨고 그 피의 뿌림으로 우리의 죄가 사해지고 그분의 육체를 통해서 우리 앞에 20절에서 생명에 이르는 새로운 길이 열렀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우리 앞에 이 새로운 살 길이 열렸음에도 우리가 그 길을 알아보지 못하고 이 완성된 영원한 것을 두려워 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 완전한 사역은 그냥 신학적 지식이나 역사적인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재의 감정과 지식, 의지를 움직이고 우리의 마음안에 그 영원한 예수의 피가 뿌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피가 우리에게 뿌려졌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는 성소에 들어가기 위한 담대함을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 앞에 살 길이 열렸다.. 다시말하면 생명의 길이 열렸다면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물쭈물 하지 말아라 입니다.
이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22절 마지막에 나타납니다..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3절에서는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야 한다., 또 24-25절에서 처럼 서로 돌아보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된 마음은 하나님께 얻은 선물입니다. 옛언약때를 기억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고 싶어도 나아갈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셨을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만나면 죽을까 두려워 얼굴을 땅에 뭍고 우리에게서 떠나소서~ 라고 간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정결하지 못한 자신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빛에 찔릴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참된 마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피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완벽한 대제사장 사역이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원한 제물 되심이 우리의 마음을 깨끗케 하고 순결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어떻게 하라구요? 하나님께 나아가자!!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으니 나아가자입니다.
과거에는 하나님꼐 나아가고 싶어도 참된 마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나아갈 수 없었다면 이제는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가 참된 마음을 선물로…. 은혜로 얻었는데… 나아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설교자는 너희가 나아가야 한다.. 자꾸 머뭇 거리지 말고 담대함으로 예수께서 우리 앞에 보이신 그 생명의 산 길로 나아가여 하나님을 만나자는 것입니다.. 그 길을 가는 동안 우리를 뒤돌아 서게 하려는 세상 권세가 있겠지요… 마치 소돔과 고모라를 빠져나오던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 보았듯이… 산 길로 나아가는 우리를 뒤돌아 보게 만드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23절에서철머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라!! 그리고 같이 함께하는 공동체를 권하여 함께 서로 돌보아 함께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 언약을 마음에 받은 자들이 해야할 일들입니다.
재밌는 것은 이 산길을 가는 것이 공동체 적이라는 것입니다… 소망을 굳게 붙잡고 서로 함께 돌보아서 권면하고 그 날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서로가 깨우쳐 주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것이 26절에서 나오는 경고의 메시지 때문입니다.. 26절에서는 지속적인 죄의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26절은 우리나라 번역에는 빠져있지만 이렇게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다시말하면 우리가 왜 서로 돌보고 격려하고 소망을 굳게 붙잡아야 하는가? 왜냐하면 속죄의 은혜를 깨닫고도 여전히 죄를 짓는다면 더 이상 속죄를 위한 제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은 6장 6절에서도 우리가 살펴봤습니다. 왜 이것이 속죄를 위한 제물이 없는가 봤더니 6장 6절에서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속죄를 깨닫고도 죄를 계속해서 짓는 것은 이 속죄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드러낼 뿐입니다… 예수의 피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는 것을 증명할 뿐입니다.. 그의 악한 행실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방탕한 생활과 악한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29절..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하게 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행하는자.. 우리가 성령 훼방죄라고 말합니다…
의도적이고 악의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거스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속죄의 제사가 더 이상 없다는 것입니다.. 매우 위험한 경고입니다.. 누구에게 하는 경고입니까? 그리스도인에게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하는 경고의 메시지 입니다…
오늘날 값싼 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만을 강조하니까 너무나 당연하게 죄를 짓고 회개를 하면 하나님이 용서해 주신다.. 너무 당연하게 말을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교회의 책임.. 성도의 책임은 말을 안합니다..
우리가 참된 마음으로 예배가운데 나아가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우리가 서로가 죄를 지음에도 불구하고 돌보고 권면하고 격려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믿음이 흔들리는 자들을 보면서 그냥 외면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러한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히브리서 설교자는 강력하게 이야기 합니다.. 너희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하나님을 알고도 죄를 짓게 된다면.. 더 이상 속죄의 제사가 없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여전히 악한 죄를 짓는 것.. 우리 눈에 보이기에 죄의 심판이 나타나지 않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죄를 짓는 자들이 전혀 하나님께 심판 받아 살아가고 있는 듯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심판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역사의 끝을 볼 수 없습니다. 현재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을 지라도.. 하나님의 심판은 진행중이고 마지막 때에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니 서로 돌보고 격려하고 서로 인내하면서 너희 앞에 있는 새로운 산 길… 을 함께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새로운 산 길이 열렸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그 길을 걸어가는 자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이 허락된다고 말합니다.
이 길을 깨끗한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가야한다고 말합니다..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산 길을 걸어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무엇이 필요하다고 말합니까? 담력.. 담대함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의 상황을 보십시요.. 히브리서… 유대기독교인들에게 설교하는 것입니다.. 유대기독교인들… 유대인들인데..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공동체의 반대가 있었을 것이고 누구는 집에서 쫒겨났을 것이고.. 누구는 다니던 직장에서 더 이상 다닐 수 없게 되었을 것이고… 누구는 여러가지 물질적 피해를 입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산 실이 가는 것에는 담력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길을 끝까지 인내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는 서로가 서로를 돌보고 권면하고 돕는 일들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 동일한 말을 우리에게 하는 것을 기억하십시요…
이 길이 인내의 길이고 우리의 삶에서 눈에 좋은 것으로 보이지 않을지라도 23절의 말씀처럼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나아가야 합니다..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서로 돌아보아 격려해줘야 합니다.. 누가 더 크냐 싸움이 아니라 함께 걸어가는 싸움을 싸워야 하는 것을 기억하면서.. 오늘도 우리 앞에 놓여진 이 새로운 산 길을 믿음과 용기와 담대함과 그리고 믿음의 공동체와 함께!!! 소망을 붙잡으며 걸어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