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증 해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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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views목마를 때 물을 마시듯, 영혼의 갈증은 물을 마셔야 한다. 물은 말씀, 공동체,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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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
1. 서론
1. 서론
목마르면 무엇을 마셔야 하나?
당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땐 무엇을 먹나?
2. 본론
2. 본론
#1 예수님도 피곤하시다.
#1 예수님도 피곤하시다.
오늘 본문을 유심히 보면 재미있는 점은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피곤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 4: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길을 걷다가 힘들다고, 안아달라고 투정부리는 아이들을 본 적이 있는가? 아이들의 입장에서 걷는 게 얼마나 힘들면 안아달라고 투정을 부릴까?
단지, 걷는게 싫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어른의 입장이 아니라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힘들 수 있다.
오늘 본문의 예수님은 마치 온 몸이 탈진해서 우물 곁으로 앉으시는 모습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대로라고 표현된 말은 더하거나 고치지 않고 전에 있던 것과 같이 그 모양이 변함 없이라는 뜻으로,
우리가 털썩 주저앉다라고 할 때,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그 모양 그대로 주저 앉는다는 것을 표현하듯, 오늘 예수님의 피로도를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
무엇 떄문에 피곤해 하셨는지 우리가 자세하게 알 수 없지만, 예수님도 분명 피곤해 하셨다. 지치셨다.
우리 입장에서야 예수님이 피곤하시다고? 라고 할 수 있지만, 성경은 분명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이시기에 이런 상태에 처한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인간인 척! 하는 신이 아니셨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는 요한복음 1장 14절의 말씀에서처럼 철저하게 인간의 한계를 지니고 사셨다.
그 분은 완벽한 사람이셔서 우리처럼 지치고 피곤하고 배고프고, 힘들고, 기쁘고, 슬프고, 괴롭고, 모든 감정을 우리와 같이 느끼신다.
오늘 본문의 피곤하다는 말의 헬라어의 뜻을 사전에서 찾으면 이런 뜻으로 나온다.
육체적, 정신적, 또는 영적으로,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고, 노력하고, 투쟁한다.
헬라어 사전의 영문을 번역기 돌린 해석이다.
꼭 우리의 모습 같지 않은가?
어느 시대보다 바쁘고 힘든, 수 많은 스트레스에 살아가는 이 시대의 청년들의 자화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체적, 정신적, 또는 영적 다른 표현으로 신앙적으로 많은 피로감에 놓여진 우리의 모습이,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보여졌다.
만약, 예수님께서 이런 과정이 없으셨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위로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었을까?
또 하나님께서는 성경 속에서 자신의 백성들을 위로하시는 분으로 많이 등장한다.
특히,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수고하는 믿음의 여정 가운데 몰려오는 피로들,
우리는 이것을 고난과 핍박이라고, 혹은 세상 사이에서의 갈등이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 그런 가운데서 느끼는 피로들을 하나님은 위로하신다.
(사 49:13) ...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도 피곤하셨다. 지치셨다. 쉬고 싶으셨다.
우리는 백만돌이가 아니다. 백만 스물 하나, 백만 스물 둘,
세상 속에서, 혹은 교회 안에서 지치고 힘든 여러분을 축복하고 위로하기 원한다.
#2 두통에는 게보린
#2 두통에는 게보린
대한민국에는 독특한 공식이 있다. 한국인의 두통약! 바로 게보린이다.
두통에는 게보린~ 이 광고의 짧은 메시지가 한국인들에게 매우 깊이 각인되어 있다.
오늘 본문에서 피곤하신 예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가?
(요 4:6) ...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요 4:7) ...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피곤할 때 우물 곁에 앉으셨고, 그 곳에서 물을 뜨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신다.
두통에 게보린이라면, 몸이 피곤할 때 예수님은 물을 찾으셨다. 물이 기력을 회복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적 특색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럴 것이다. 낮 12시든, 저녁 6시든 엄청나게 무더운 시간을 보낸 상황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이 우물 곁에 앉으신 건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우물은 물을 보관하는 장소, 즉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물을 구하는 곳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반드시 물을 마실 수 있는 우물을 찾아야 했다. 물이 필요했다. 탈진, 탈수 상태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것 같다.
성경에서 예수님처럼 탈진의 상태, 탈수 상태에 있던 사람들이 종종 등장한다.
대표적 인물이 엘리야다.
열왕기상 18장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와 진정한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 싸우고 난 후, 큰 승리를 거두지만 그는 이세벨을 피해 도망한다.
그리고 6절,
(왕상 19: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치열한 싸움을 치룬 엘리야는 오히려 탈진했다. 퍼졌다. 그리고 그 때 하나님께서는 먹을 것과 마실 것으로 기력을 회복하게 하셨다.
우리 청년들, 혹시 지쳐있는가? 힘든가? 많은 고민 속에 있는가?
너무 힘들어 우리의 영혼조차 소멸되는 것 같은, 점점 하나님조차 나의 마음과 기억 속에서 멀어져가고 있지 않은가?
우리에게 물이 필요하다. 우리의 지친 영혼을, 낙심되고 절망 속에 스스로 포로된 우리 영혼의 갈증과 힘듦을 해결해 줄 물이 필요하고 그 물을 마셔야 한다.
그렇다면 왜 물인가? 피곤한데 왜 물을 찾으시나?
물은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먼저, 우리 인간의 몸의 6~70%가 물로 되어 있다.
우리 몸의 일부가 몸인데, 노년이 되면 50%대로 줄어든다고 한다. 즉, 물을 많이 마셔서 수분의 상태를 높여놓는 것이 노화방지의 근원이 된다.
그러니 물을 많이 마시라. 젊음을 오래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세포대사의 활동을 관장하고, 관절을 부드럽게 하고, 장기와 조직이 보호되며, 각종 영양소가 운반, 노폐물은 배출이 되는데 영향을 준다.
물은 인간이 건강하게 생활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물이 부족한 상태가 되면, 사진과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혈류량이 감소, 집중력이 저하되고, 어지럽고, 운동하면 호흡 곤란 상태가 되고, 혈류 순환에 장애가 일어나고, 신부전까지 가져온다.
이런 상태를 우리는 탈수상태, 탈수 증상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지치고 힘든 우리에게 물이 필요하다면, 그 물은 무엇일까?
단지 마시는 물 뿐 아니라 우리 영혼에 필요한 물은 무엇일까?
1) 물은 말씀이다.
1) 물은 말씀이다.
(시 119:50)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우리에게 오는 위로는 말씀으로부터 온다.
말씀이 우리에게 위로를 준다. 왜냐하면 말씀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아닌 것에서 위로를 찾는 것,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내 위안을 삼고 위로를 삼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위로를 찾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참된 위로를 주지 못한다.
2) 물은 공동체다.
2) 물은 공동체다.
(살전 2:11)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살전 2:12)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
청년부 공동체 안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격려하는 것, 서로를 위로하는 것,
그 안에서 이뤄지는 성도의 교제, 믿음의 권면과 위로가 바로 우리가 마셔야 할 물이다.
오해는 하지 말자. 수다가 아니다. 적당히 마음을 맞춰주는 게 위로와 격려는 아니다.
믿음의 권면이고 믿음의 위로다. 믿음이라는 것, 말씀이라는 것, 하나님이라는 것이 위로와 격려의 핵심이다.
특히 앞서 읽은 데살로니가전서 말씀에는 우리에게 왜 위로가 필요한지, 왜 나나, 다른 이들을 위해 위로와 격려를 해야 하는지 잘 말씀해 준다.
하나님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하기 때문이다.
공동체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돌아봄을 통해 격려와 위로로 우리 모두가 우리 삶을 하나님 앞에서 합당하게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3) 물은 은혜(성령)다.
3) 물은 은혜(성령)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뭔가 할 수 있는 자신감과 용기를 주신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믿고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도록 말씀하신다.
(단 2:18)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사 다니엘과 친구들이 바벨론의 다른 지혜자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시기를 그들로 하여금 구하게 하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구하게 하신다.
우리가 물을 마실 수 있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물을 마시는 것조차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라. 그 은혜를 갈망하라.
(대하 32:7)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를 따르는 온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히스기야 왕이 백성들 앞에서 외치는 메시지다.
적의 침공 앞에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우리의 하나님이 더 크시다고 말한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은혜다. 성령의 감동이다.
성령의 감동이 없다면 현실을 뛰어넘는 하나님을 볼 수 없다.
3. 결론
3. 결론
예수님이 피곤하셨고 목마르셔서 물을 찾으셨지만, 정작 삶의 자리에서 목말라하는, 지쳐있는 우리를 향해 마치 오늘,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을 향해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요 4:10) ...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요 4:13) ...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요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우리 삶의 수 많은 갈증들, 그 갈증은 우리 주님이 주시는 물로만 해갈된다.
오직 주님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