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고백서 20장 양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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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중고등부 예배 오신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은 신앙고백서 20장 양심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믿음은 우리가 구원 받는데 필수적인 거예요. 믿음은 예수님 믿는 사람한테만 있습니다. 믿음을 통해 우리가 의롭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성화됩니다.
양심은 불신자들에게도 있고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믿는 우리의 양심은 불신자의 양심과 다릅니다. 우리의 양심은 믿음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양심입니다. 믿음 생활에서 양심을 빼놓을 수 없는데 이 양심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옛날에 여러분들 태어나기 전에 ‘이경규가 간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거기서 어떤 콘텐츠가 있었냐면 새벽 시간에 정지선을 지키면 냉장고를 주는 콘텐츠가 있었어요. 그걸 양심냉장고라고 합니다. 새벽시간에 사람도 없고 그냥 빨간불이라도 지나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교통신호를 잘 지키는지 보는 거예요. 새벽시간에 신호를 잘 지키는 사람이 없죠. 그러다가 누가 신호를 딱 지키면 냉장고를 줍니다. 이게 당시에 굉장한 감동을 불러일으켜서 시청률이 엄청나게 올라갔습니다. 이게 양심의 능력인 것 같아요. 세상을 감동시키는 거예요. 신호등 지키는 양심은 사실 수준이 높은 양심은 아닙니다. 진짜 수준이 높은 양심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말씀에 따르는 양심이에요. 오늘 이 양심에 대한 설교를 할텐데 이 설교를 통해 양심의 능력으로 세상을 감동시키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양심이라는 개념이 쉬운 건 아니에요. 신앙고백서에도 성경 전체의 양심을 다 다루지 않아요. 저는 이걸 한 번 다 다뤄보되 이해할 수 있는 만큼 간단하게 그리고 이미지를 통해 한 번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1- 양심은 안경이다.
첫 번째로 양심의 이미지느 안경입니다. 입니다. 안경이 무슨 역할을 합니까?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시력을 교정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안경을 썼습니다. 제가 안경을 벗으면 눈이 보일까요? 보이지 않을까요? 볼 수 있죠! 볼 순 있는데 정확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흐릿하게 보여요. 글을 읽으려고 하면 읽을 수가 없습니다. 억지로 글을 읽으려고 하면 아마 글 내용을 오해하기도 하고 멀리서 사람을 보면 착각을 하기도 할 거예요. 그래서 시력을 교정해주는 안경이 필요합니다.
양심은 안경입니다. 세상을 볼 때 이 세상을 만드신 분이 누구인지 세상의 주인이 누구신지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양심입니다. 원래는 누구나 이 양심을 통해 세상을 보면 거기에 깃든 하나님의 흔적을 볼 수 있게끔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셨으니까 하나님의 성품이 세상에 녹아 있어요. 양심을 통해서 그걸 볼 수 있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의 양심은 죄 때문에 파괴되었습니다. 만약 제 안경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 깨지거나 렌즈가 빠지면 여러분 얼굴을 선명하게 볼 수 없고 글도 읽을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죄인의 양심은 마치 렌즈가 깨지거나 빠진 안경처럼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높고 아름다운 하늘을 보면 “아 저걸 만드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어” 이게 되어야 하는데 고장난 양심으로 세상을 보니까 이게 안되는 거예요.
제가 대학원 다닐 때 졸업여행으로 제주도 갔었는데 몽돌 해수욕장이라는 곳을 처음으로 가봤어요. 반질반질한 돌멩이들이 해변에 좍 늘어져 있고 파도가 치고 물이 빠질 때마다 자글자글자글하며 소리가 울립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지 모릅니다. 그걸 보면 누가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어요. 그런데 죄인들은 그걸 봐도 하나님을 떠올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처럼 예수님을 믿으면 고장 난 양심이 어떻게 될까요? 다시 고쳐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 만물을 보면서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는 거예요. 이렇게 다시 양심이 안경 역할을 하게 됩니다.
양심이 안경역할을 할 때 자연을 바라볼 때만 그런 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볼 때도 그런 역할을 합니다. 사회를 바라볼 때 인간관계를 바라볼 때 죄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을 모르고 나쁜 짓 하는 친구들을 보면 밉다가도 불쌍합니다.
이 세상이 여러분한테 경쟁을 요구하잖아요? 그래서 경쟁에서 이긴 사람을 또 다른 경쟁에 몰아붙여서 수입을 얻는데 상요하려고 합니다. 이런 경쟁하는 자본주의 구조를 잘 파악해서 이 구조 가운데서 내가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경쟁해서 상처주기 보다는 이웃을 사랑하며 배려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 지혜를 얻는 단서가 됩니다. 양심을 통해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볼 때 이게 가능합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양심이라는 안경이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양심은 사이렌이다.
그 다음으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양심의 모양은 사이렌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됩니까? 뭔가 찔리는 것을 느끼죠? 몸에서도 반응이 일어납니다. 심장이 쿵쾅쿵쾅하고 손에서 땀도 나고 눈을 어디다가 둘 지도 모르겠고 안절부절 합니다. 우리 안에서 양심이 사이렌 역할을 하는 거예요. 내가 죄를 짓고 싶거나 죄를 지었을 때 양심이 신호를 보냅니다. ‘그렇게 하면 안 돼!’ 혹은 ‘왜 그렇게 했어!’ 이렇게 신호를 보내요. 이게 양심의 역할입니다.
아까 안경하고도 똑같은 상황인데 죄인들의 사이렌은 제 때 제대로 작동할까요? 죄인들도 어쨌거나 완전한 양심을 가진건 아니지만 양심이 있기 때문에 사이렌이 울립니다. 그런데 제대로 울리진 않아요. 사람과 싸우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이런 상황에는 사이렌이 울립니다. 그런데 예배를 드리지 않고 명절에 제사장에 절할 때는 사이렌이 울리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죄를 지으면 사이렌이 울리는데 하나님의 완전한 법인 성경 말씀을 어기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이렌이 울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죄인 중에 어떤 사람은 사회적으로 잘못되었다고 하는 일을 저질러도 사이렌이 울리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폭력을 쓰거나 강도짓을 해도 괜찮은 사람이 있어요. 양심이 고장난거죠. 결론 죄인들의 양심의 수준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죄를 피하는데 턱 없이 부족하다는 거예요. 마치 고장난 사이렌과도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우리의 양심은 잘 작동하는 사이렌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지 못할 때, 이웃을 부족하게 사랑할 때 우리는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우리 마음에서 사이렌이 울립니다. 그래서 다시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도 사이렌이 고장날 때가 있어요. 우리의 양심을 민감하게 만들고 예리하게 만드는 건 결국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이렌이 언제 울리고 언제 안 울려야 하는지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사이렌이 말씀이라는 시스템으로 운영되는데 이 말씀이 없으면 사이렌이 제대로 안 울리거나 엉뚱하게 울리거나 합니다. 그래서 사이렌이 하나님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잘 받아들여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디모데전서 4:2에 양심이 화인 맞았다는 말이 나와요. 이게 무슨 말일까요? 옛날에 가축이나 노예의 몸에 소유자가 누구라는 표시를 했었는데 불도장으로 표시를 했어요. 도장으로 피부를 지지면 그 피부에는 신경이 죽어서 감각이 없어집니다. 양심이 화인 맞았다는 건 양심의 감각이 없다는 거예요. 죄를 지어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도 무감각해지는 거예요. 우리는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이 아니라 예리한 양심으로 늘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 양심은 열쇠다.
그 다음으로 성경이 말하는 양심은 열쇠입니다. 우리 신앙고백서 20장에 양심과 자유를 함께 가르칩니다. 양심은 자유랑 연결되어 있어요. 잘 들으세요. 양심은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 합니다. 하나님을 알면 우리가 자유롭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을 제대로 모르면 우리는 죄에 얽매이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신앙고백서가 쓰여 진 당시 상황은 이거예요. 영국에는 성공회라는 교회가 있었는데 왕이 성공회의 머리입니다. 왕이 교회의 대표가 되어서 자기 맘대로 하는 게 성공회입니다. 또 영국 교회는 여왕에 따라 로마 카톨릭이 영국의 국교가 되기도 했어요. 성공회와 카톨릭이 이렇게 휩쓸고 지나갈 때 장로교라는 교단을 만든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 문답을 만들었어요! 왕이 지배하는 교회 말고 진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교회 세워보자 로마 카톨릭의 잘못된 교리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워지는 그런 교회를 우리가 세워보자 이렇게 된 거예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웨스트민스터 교회에서 총회를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라고 해요. 이 분들이 신앙고백서를 만드는데 20장에 양심에 대해 나와요. 이분들이 양심에 따라 하나님을 믿고 싶은 거예요. 성도의 양심은 왕에게 지배받는 교회에 다니고 싶지 않아요. 로마 카톨릭처럼 이상한 교리를 주장하는 교회에 다니고 싶지 않아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그런 교회 다니고 싶어요. 왕이 다스리는 교회, 이상한 교리가 있는 교회에 안다니는 자유를 얻고 싶어요. 그 자유를 얻기 위해 필요한게 양심입니다. 성도가 이상한 교리, 이상한 가르침에 묶여 있을 때 양심이 열쇠 역할을 해서 다 풀어주는 거예요. 그래서 바른 교리,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음생활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양심을 열쇠라고 합니다.
양심을 열쇠라고 할 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예요. 모든 사람들은 처음에 죄인이었기 때문에 죄와 저주 가운데 묶여서 자유를 누리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순간 타락한 양심이 회복됩니다. 그래서 양심이 열쇠 역할을 해서 자유롭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합니다. 그래서 양심의 역할은 열쇠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의 자유를 허락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걸 하면 구원 받고 천국가고 저걸 하면 천국 못가고 이렇게 아는데 이게 아닙니다. 양심이 우리를 이런 결박에서 풀어주는 거예요. 우리는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자유를 얻으면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까? 아니죠. 사도바울 말한 것처럼 우리는 모든 것이 가하지만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고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신앙고백서에서도 이 양심을 악용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양심을 마음대로 사용해서 이웃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람은 교회가 권징하고 국가권세가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자유를 얻었지만 늘 이웃의 덕을 세우는데 이 양심을 사용해야 합니다. 양심과 자유에 대한 이야기는 굉장히 어려워서 안하려고 했다가 신앙고백서에서 이걸 주로 다루고 있어서 안할 수가 없어서 조금 언급했습니다.
4- 양심은 나침반이다.
그 다음으로 양심은 나침반의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양심을 통해 좋은 안경을 끼고 정확한 사이렌을 얻고 또 자유를 얻게 었습니다. 우리는 이 양심을 가지고 세상 가운데서 선을 행해야 합니다. 오늘 읽었던 본문에 선한 양심을 가지라고 합니다. 베드로전서에서 이 양심이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 양심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불신자들 가운데서 나그네 같이 살지만 선을 행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하며 살아간다는 게 베드로전서 내용입니다. 양심은 우리가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나그네 생활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방향을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의 고향은 새 하늘과 새 땅이고 세상에서 잠시 머물러 있는 거예요. 세상은 요지경이라서 이렇게 살아도 될 것 같고 저렇게 살아도 문제 없을 것 같고 그래요 그런데 그렇게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죄를 짓고 있고 하나님의 뜻에 전혀 상관없이 살게 됩니다. 그래서 안경 역할처럼 세상을 제대로 보는 수준을 넘어야 합니다. 사이렌처럼 죄를 안 짓는 그 이상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이제 자유가 있잖아요. 그래서 양심이라는 나침반을 들고 선을 행하는 방향을 찾아 선을 행하는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나침반이 왜 계속 북쪽을 가리키는지 원리를 아세요? 지구가 강한 자기장을 발생시키고 있어서 마치 아주 큰 자석 역할을 합니다. 그 자기장의 영향 때문에 나침반에 있는 자석이 항상 북쪽을 가리키는 거예요. 마치 지구의 자기장에 자석의 바늘이 반응하는 것처럼 우리의 양심이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해서 항상 하나님의 뜻이라는 방향을 가리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끊임없이 여러분한테 찾아옵니다. 예배를 통해서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는 시간을 통해서 찾아옵니다. 지구가 쉬지 않고 자기장을 내뿜는 것처럼요. 그러면 우리의 양심이 거기에 반응할 수 있도록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이 어느 방향인지 찾아야 합니다. 이걸 안하니까 내 맘대로 가다가 길 잃어버리고 자꾸 쓸 떼 없는 곳에 내가 있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사는 게 힘듭니다. 제대로 된 방향을 찾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결론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은 양심에 대해 말씀을 나눴습니다. 첫 번째로 양심은 안경입니다. 세상을 바로 보게 해줘요. 두 번째로 양심은 사이렌입니다. 죄에 대해서 경고를 해줍니다. 세 번째로 양심은 열쇠입니다. 우리가 올바른 신앙생활 할 수 있는 자유를 줍니다. 마지막으로 양심은 나침반입니다. 우리가 말씀에 반응해서 올바른 삶의 방향을 찾도록 합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늘 양심을 깨끗하게 예리하게 강하게 정확하게 잘 사용하길 바랍니다. 선한 양심을 품고 세상 가운데 나아가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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