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결혼과 성
Notes
Transcript
Sermon Tone Analysis
A
D
F
J
S
Emotion
A
C
T
Language
O
C
E
A
E
Social
사도신경
사도신경
찬송
찬송
436장 /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기도
기도
성경봉독
성경봉독
1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2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3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4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5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6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
7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서론
서론
‘비혼주의’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결혼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선택사항이라 여기며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요즘 우리 사회의 결혼과 성에 대한 인식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우리 국민 중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비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30% 정도 된다.
또한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동거하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60% 정도나 된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주된 이유는 바로
결혼을 하면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고
원하는 취미나 여가를 누릴 가능성도 줄어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 살펴보게 되는 고린도전서 7장은 결혼과 성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이 시간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져야 할 올바른 결혼관과 성윤리에 대해 배우는
은혜의 시간 되기를 소원한다.
본론
본론
1-7절
1-7절
7장은 고린도교회가 사도 바울에게 어떤 문제에 대해 질문한 것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린도교회가 바울에게 질문한 내용은 결혼과 성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결혼과 성관계에 대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올바른 이해와 관점이 무엇인지를 질문한 것이다.
고린도교회의 질문은
남자와 여자가 성관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가?
이혼하거나 과부가 된 자들은 재혼해도 괜찮은가?
믿음이 없는 자와 결혼하고 있다면 이혼해야 하는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자는 결혼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들이다.
고린도교회가 이러한 질문을 한 그 배경에는
결혼이나 성관계를 경건하지 않은 것,
다시 말해 부정하거나 속된 것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교회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독신으로 살아야하고
금욕하며 살아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진 것이다.
여러분은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바울은 1절에서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다’고 말씀한다.
이 말씀만 놓고 보면 바울은 남녀가 결혼도 하지 않고 성관계도 맺지 않는
금욕주의적인 삶을 바람직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울이 이야기는 그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라고 말씀하시며
결혼제도를 창설하셨다.
따라서 결혼도 성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하나님의 질서 안에 있는 결혼과 성은 아름다운 것이다.
사도 바울은 2절에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고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결혼을 하라는 말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음행을 피하기 위하서라고 말씀한다.
다시 말해 결혼을 통해 맺어진 부부 사이의 성관계를 벗어나는 것은
‘음행'이라고, 죄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3절에서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씀한다.
우리에게 있는 성욕은 식욕이나 수면욕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주신 기본적인 욕구이다.
그 자체가 죄는 결코 아니다.
성적인 욕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결혼 제도 안에서 부부 사이에서 채움을 받아야 한다.
바울은 부부 사이에 서로의 성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것이 ‘의무'라고 말씀한다.
더 나아가 4절에서는
아내의 몸은 남편이 주장하고, 남편의 몸은 아내가 주장한다고 이야기한다.
하나님께서 ‘둘이 한 몸을 이루라'고 말씀하신 것은 실제적인 명령인 것이다.
나의 유익을 구하며 상대방에게 요구할 때 결코 하나됨을 경험하지 못한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향해 헌신할 때 진정한 하나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부부는 서로를 향해 나의 유익을 구하는 관계가 아니라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 나를 내어놓고 헌신하는 관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남녀가 결혼하지 않은 채 육체적인 관계를 맺으며 동거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또한 성적인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결혼을 통해 부부 안에서 그 필요를 채움받아야 한다.
그러나 바울은 6절 말씀에서 이러한 결혼과 부부 안에서의 성관계가
‘허락이지 명령은 아니라'고 말씀한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이 반드시 결혼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7절 말씀에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다'고 말씀한다.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리하다고, 사람마다 다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무엇이 다른가?
성적인 욕구와 관련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예수님도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마태복음 19장 10-12절 말씀이다.
10 제자들이 이르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
11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12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선천적인 어떤 신체적인 이유나 후천적인 이유로 인해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천국을 위해, 다시 말해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말씀이다.
사도 바울이 그러한 사람 중 하나였다.
베드로 같은 경우는 결혼한 상태에서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고
사도로 사역하면서도 아내를 데리고 다녔다고 성경은 이야기한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전파를 위해 독신을 선택했던 사람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바울에게 주신 은사였던 것이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자신과 같이 독신으로 지내기를 원한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따라, 부르심에 따라 결정해야 할 사항이지
획일적으로 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이어지는 8-16절 말씀에서
바울은 이혼이나 사별로 인해 홀로 된 이들을 향해서는
혼자 지낼 수 있으면 그렇게 하지만,
성욕 때문에 절제하기가 어렵다면 결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씀한다.
또한 현재 결혼한 자들을 향해서는 현재의 부부 관계를 잘 유지할 것을 권면한다.
더 나아가 혹시 부부 사이에 신앙이 다르다 할지라도
그 이유 때문에 이혼하지는 말 것을 이야기한다.
8-16절 말씀이다.
8-16절
8-16절
8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9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10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11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12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13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14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15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16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사도 바울이 결혼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는지 그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결혼을 했다면 그 결혼은 힘써 지켜야 하는 것이다.
남편이나 아내가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이유로 이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배우자의 구원을 위해 힘쓰라고 말씀한다.
물론 15절 말씀에는
믿지 않는 자들의 이혼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말라고 말씀한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 없이 결혼하고, 하나님 없이 이혼한다.
그러나 믿는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과 결혼관이 달라야 한다.
결혼을 하나님 안에서 바라보고 하나님이 맺어주신 관계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세상의 결혼관이나 성윤리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17-24절 말씀이다.
17-24절
17-24절
17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18 할례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20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21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24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사도 바울은 앞에서의 8-16절 말씀을 더 확장하여 적용하고 있다.
8-16절에서는 결혼의 관점에서 각자의 부르신 자리에 순종하라고 이야기했는데,
여기에서는 민족과 문화, 신분에 구애받지 말고
각자의 부르심을 받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함께 거하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
우리 각자가 어떠한 모습과 형편과 상황에서 구원함을 받고 구원함을 받았든지
그 모습에 감사하며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주님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유대인인지 헬라인인지
할례를 받았는지 할례를 받지 않았는지
종인지 자유인인지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동일한 형제 자매인 것이다.
이제 바울은 다시 결혼과 관련한 주제로 돌아와 몇 가지를 더 이야기한다.
먼저 처녀의 경우에는 임박한 환난을 고려할 때
결혼하지 않고 그냥 지내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그 때를 염두해 두고 그 때를 준비하며 살아가라고 말씀한다.
25-31절 말씀이다.
25-31절
25-31절
25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
26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27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28 그러나 장가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29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0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1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사도 바울의 이러한 말씀은
그 시대의 특수한 상황이 반영된 것이라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바울은 26절에서 ‘임박한 환난'에 대해 언급한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바울은 조만간 고린도교회를 비롯한 초대교회에 닥치게 될
핍박과 환난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핍박과 환난을 생각할 때에는
결혼하는 것보다 결혼하지 않고 홀로 지내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결혼을 해서 배우자가 생기게 되면
그로 인한 육신의 고난을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바울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결혼하지 않는 것을 권면하고 있지만
이것은 전적인 개인의 선택이고 결혼이 결코 죄는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결혼한 이들을 향해서는 그 결혼을 계속 유지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32-40절 말씀이다.
32-40절
32-40절
32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33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34 마음이 갈라지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
35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36 그러므로 만일 누가 자기의 약혼녀에 대한 행동이 합당하지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그 약혼녀의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원하는 대로 하라 그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그들로 결혼하게 하라
37 그러나 그가 마음을 정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 그 약혼녀를 그대로 두기로 하여도 잘하는 것이니라
38 그러므로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39 아내는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로워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40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
사도 바울은 결혼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라고 말씀한다.
결혼은 하나님이 제정하신 아름다운 제도이며,
결혼을 통해 남자와 여자는 서로의 다양한 필요를 채움받으며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결혼은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향해 헌신을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당연한 의무이자 책임이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이 주신 은사가 있어
결혼하지 않고 홀로 살아갈 수 있다면
자신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릴 수 있기에
사도 바울은 38절에서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라고 말씀한다.
결론
결론
우리가 이 말씀에서 명심할 것은
바울이 결혼하지 않는 것을 언급하는 것은
혼자 원하는대로 살며 자신의 취미나 여가를 즐기라는 뜻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이 세상 사람들은
결혼에 얽매이지 않고 편하고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비혼을 선택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비혼을 선택할 때에는
온전히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함이 동기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신 은사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어제 6장에서 본 것처럼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이며
이제 우리는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결혼에 대해서도 이러한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바라기는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혼탁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올바른 결혼관과 성윤리를 확립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길 축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