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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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찬송

325장 / 예수가 함께 계시니

기도

성경봉독

1 Corinthians 9:24–27 NKRV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서론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5장부터 8장까지
고린도교회가 당면하고 있었던 여러 문제들에 대해
올바른 신앙적 가르침을 이야기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음행에 대해, 세상 법정에 송사하는 것에 대해,
결혼에 대해, 우상에게 바친 제물에 대해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져야 올바른 태도를 가르쳤다.
이제 9장에 와서
바울은 그 주제의 방향을
고린도교회가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돌려
자신의 사도권과 함께 복음 전파와 그 권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바울이 이 주제를 꺼낸 이유도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 일부가 자신에 대해 비판하며
바울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자신이 갖고 있는
복음 전파와 관련된 권리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그들을 이해시킬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디에 가치를 두며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가르치고 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인생의 목표를 어디에 두어야 하며
그것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묵상하는 복된 시간 되기를 소원한다.

본론

1-2절

1 Corinthians 9:1–2 NKRV
1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바울은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자신이 사도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자신의 사도권을 분명히 한다.
바울이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어떤 이들의 눈에는
바울이 ‘사도'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바울이 사도로 임명받은 그 과정도 그렇고
바울이 사역하는 방식도 다른 사도들과는 다른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사역하는 기간 내내
그가 가진 사도권에 대해 많은 공격과 비판을 받았다.
이에 바울은 자신이 로마 제국의 신분제도상으로는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자유인'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자신을 ‘사도'로 세우셨다는 사실을 먼저 강조한다.
그리고 지금 이 편지를 받고 있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고린도교회를 세우는데 그 기초를 놓은 사람이 바로 바울 자신이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자신의 사도됨을 확증하고 있다.

3-11절

1 Corinthians 9:3–11 NKRV
3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 4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5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6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7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8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9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10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11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바울은 ‘사도'로서 가질 수 있는 몇 가지 권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첫째는 먹고 마실 권리이다.
둘째는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이다.
셋째는 일하지 아니할 권리이다.
그런데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자신들이 누릴 수 있는 이러한 권리를 누리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사도행전 18장 말씀을 보면
바울은 1년 6개월 동안 고린도에서 지낼 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와 함께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경제적인 필요를 채워나갔다.
그러면서 또한 복음 전하는 일도 했던 것이다.
초대교회 당시 사도는 교회의 영적 지도자로서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와 성도들을 돌아보며 말씀과 기도에 힘쓰는 데 전념했다.
이러한 사도들의 사역과 그들의 가정을 위해
교회와 성도들은 그들의 경제적인 필요를 채울 의무가 있었고
사도들은 그것을 받아 누릴 권리가 있었다.
이것은 세상적으로 보나 성경적으로 보나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바울은 세상적인 이치, 다시 말해 사람의 예 세 가지를 이야기한다.
첫째로 군 복무를 하는 군인에게 먹고 지낼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둘째로 포도나무를 심고 그것을 가꾸는 농부가 그 포도를 수확해서 먹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셋째로 양 떼를 기르고 돌보는 목자가 그 양 떼에서 젖을 짜서 먹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이치를 성경도 동일하게 말씀하고 있다고 하면서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는 말씀을 언급하는데
이 말씀은 신명기 25장 4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이 말씀은 문자적으로 보자면
구약시대 때 추수하고 곡식의 껍질을 벗기는 탈곡 과정에 소를 활용했다.
그 일을 하는 가운데 배가 고픈 소는 그 곡식을 먹기도 하는데,
그것을 먹지 못하게 하기 위해 입에다가 망을 씌우지는 말라는 말씀인 것이다.
다시 말해 곡식을 추수하고 탈곡하는데 힘을 보탠 소가
그 댓가를 얻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말씀이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이
단순히 소들만을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 사람들을 위해 주신 말씀임을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 농부가 밭을 추수할 때 그 추수한 것을 얻는 것에 소망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고
곡식 떠는 것을 도와 주는 일꾼도 무엇을 얻게 될 것을 기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11절에서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고 반문한다.
다시 말해 영적인 측면에서
사도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고린도 지역에서 복음 전파에 힘쓰며
그 땅에 교회를 세우고 성도들을 돌보았기 때문에
고린도교회와 성도들로부터
생활에 필요한 경제적인 후원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12-15절 말씀이다.

12-15절

1 Corinthians 9:12–15 NKRV
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13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15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사도 바울은 영적인 것을 뿌리는 자들이 육적인 것을 거두는 이치에 대해
몇 가지 예를 더 이야기한다.
먼저 구약 시대 때
레위인들과 같이 성전에서 일을 하며
제사장들과 같이 제단을 섬기는 자들이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과 제단에 바친 제물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은
하나님이 율법으로 정하신 것으로
이것은 성전과 제사를 섬기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생활을 위해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이었다.
또한 신약 시대에 이르러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명령하셨다고 바울은 이야기한다.
이 말씀이 복음서에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여행 보내시면서
‘일꾼이 그 삯이나 자기의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하신 것과
일맥상통한 말씀인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다양한 예를 들면서
자기 자신과 그의 동역자들이
고린도교회와 성도들에게 경제적인 후원을 받는 것은 당연한 권리임을 분명히 한다.
그런데 바울이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그러함에도 바울 자신과 그의 동역자들은 이러한 권리를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권리가 자신들에게 없는 것이 아니라,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제 앞으로는 고린도교회와 성도로부터 경제적인 후원을 받기 위해
이렇게 자세히 이야기하는 것도 아님을 강조한다.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자신들이 누릴 수 있는 이러한 권리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가 어디 있는가?
왜 바울은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경제적인 필요를 채웠던 것일까?
그것은 바로 12절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기 위함'이었다.
사실 고린도교회는 영적으로 볼 때 어린 아이와 같았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 1절 말씀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1 Corinthians 3:1 NKRV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이렇게 영적으로 미성숙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었기 때문에
그들 앞에서 사도 바울이 경제적인 후원, 다시 말해 ‘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면
그들은 이러한 원리와 가르침을 이해하고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오히려 바울이 자신들의 돈과 재물을 노리고
자신들에게 접근한 것이라고 오해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된다면 그들은 바울이 전하는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도
순순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게 될 것이고,
그리스도의 복음에 장애물을 만든 결과가 되고 말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제일 염려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영적 어린 아이와 같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가르치고 양육할 때에
이러한 내용들을 이야기를 하거나 경제적인 후원을 요청하지 않고
자신과 그의 동역자들의 경제적인 필요를 직접 일하면서 채워나갔던 것이다.

16-23절

1 Corinthians 9:16–23 NKRV
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17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18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사도 바울의 삶의 목적은 복음을 전하는 데 있었다.
바울은 그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그 사명을 받은 자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바울의 말처럼
그는 예수님의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함받은 예수님의 그릇이었다.
예수님은 복음 전파의 사명을 바울에게 주신 것이다.
사명을 받은 자로서
바울은 자신의 삶과 생명을 바쳐 힘써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 혹여라도 장애가 되는 것이 있다면
자신이 마땅히 누려야 되는 권리와 자유가 있다 할지라도
복음 전파를 위해 그 권리와 자유를 기꺼이 포기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바울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편안하고 윤택한 삶을 누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복음을 더 잘 전파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값없이 복음을 전하고
자신의 권리를 다 쓰지 않은 것이 바로 자신의 상이라고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갔을 때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일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고 믿는 자들을 얻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자유도 기꺼이 포기하고 사람들의 종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유대인과 같이 되었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이방인과 같이 되었다.
율법 아래에 있는 자에게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처럼 행동하고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처럼 행동했다.
연약한 자들에게는 연약한 자가 되어 그들에게 다가갔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의 제일 목적은 복음을 전해 믿는 자를 얻는 데 있었고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기 자신을 내려놓았던 것이다.
그러하기에 바울은 23절에서 자신은 복음을 위해서 모든 것을 행했다고까지 이야기한다.

24-27절

1 Corinthians 9:24–27 NKRV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자신의 복음 전파의 삶을 운동 시합에 비유하고 있다.
여러분은 올림픽에 대해 잘 알 것이다.
현대 올림픽은 고대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4년에 한번씩 열렸던
올림피아 제전에서 유래한다.
고대 그리스에는 올림피아 제전 말고도 지역별로 이와 비슷한 제전들이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고린도 지역에서 개최되었는데, 이를 가리켜 이스트미아 제전이라고 불렀다.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제전은 2년에 한번씩 개최되었다.
여기에는 전차 경주, 판크라티온, 레스링 등의 운동경기가 치루어졌다.
24절부터 27절에 나오는 운동 시합의 비유는
이러한 제전과 운동시합에 익숙했던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쉽고 명쾌하게 그 의미가 전달되었을 것이다.
달리기 시합에 나가 뛴다고 해서 무조건 상을 받는 것은 결코 아니다.
등수 안에 들어가야 상을 받으며
특히 1등상은 가장 먼저 골인 지점에 도착한 한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또한 시합에 나가는 선수들은 그 시합에서 이기기 위해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등을 포기하고 시합 전까지 절제하는 삶을 산다.
우리는 올림픽에 나가 메달을 따기 위해
운동과 시합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헌신하는 선수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사도 바울은 썩어 없어질 이 세상의 것을 얻기 위해서도
이렇게 구체적인 목적과 방향을 갖고 헌신하며 절제하는데
하물며 썩지 않는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의 삶은
더욱더 그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

사도 바울은 복음 전파를 자신의 사명이라고 말하면서
그것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권리와 자유마저도 기꺼이 내려놓는 삶을 살았다.
이러한 바울의 삶의 태도를 배우는 우리들 되길 소원한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하나님께 인생 잘 살았다고 칭찬받으며 상받는 우리 인생들 되길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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