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은 하나님의 마음문을 여는 키입니다
Notes
Transcript
누군가 우리의 인생을 알파벳 BCD로 표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Birth 태어나서 Death 죽을 때까지 우리는 수많은 Choice를 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의 선택들이 매번 옳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지만 내가 보기엔 분명 맞다고 여기고 한 선택인데 큰 대가를 치룰 때가 있습니다.
점심으로 뭐를 먹을까 이런 작은 선택들이야 내가 책임지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는 큰 선택들이 존재합니다.
그것들은 잘못 선택했다가는 큰 대가를 치루게 됩니다.
남편, 아내 잘못 만나서 얼마나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까?
직업 잘못 선택해서 얼마나 힘들어 합니까?
우리의 선택은 항상 불완전 합니다.
우리는 한치 앞도 모르는 인간이라서 완벽한 선택을 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절대 실패하지 않을 선택을 할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삶의 탁월한 선택을 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출애굽기를 마무리하는 부분입니다.
출애굽기의 긴 시간 함께 달려오신 여러분과 제게 하나님의 격려가 있기를 바랍니다.
몇 달전에는 출애굽기 앞부분을 다뤘고, 이번에는 뒷부분을 다뤘습니다.
이렇게 전체를 다루었는데 출애굽기하면 뭐가 떠오르신가요?
아마 앞에서는 이집트 탈출한 거, 뒤에서는 성막 만든 거 밖에 안 떠오를 거에요.
맞습니다.
그게 출애굽기의 전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집트 노예에서 해방시켜주셔서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성막이라는 하나님의 집을 만들게 하셨습니다.
구원해주시고 함께 하고자 하시는 부모와 같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와 교제하시고 영원히 동행하고 싶어 하십니다.
험난한 인생길에서 어떻게든 우리를 도와주시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가 하나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을 보시면 계속해서 반복되는 말이 있습니다.
19절, 21절, 23절, 25절, 27절, 29절, 32절
반복되는 말이 무엇인가요?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대로 한 것이다’는 말입니다.
무려 7번이나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한번에 표현해도 될 것을 왜 7번이나 썼을까요?
‘7’은 성경에서 완전수 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내용이라는 말입니다.
성경은 중요한 내용을 다룰 때 사용하는 방법이 ‘반복’입니다.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자주 우리에게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모세가 하나님 말씀에 철저히 순종했다는 의미입니다.
자기 생각대로 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 말씀대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철저한 순종이 있었기에 그들은 성막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막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백성들의 순종하는 마음이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성막은 백성들이 순종하는 마음으로 세워질 때 의미가 있는 것이지, 성막 그 자체가 백성들의 부적이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그들은 성막 안에 있던 언약궤를 마치 전쟁을 이기는 부적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십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성막 그 자체가 아니라 백성들의 순종인 것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마음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부분적인 순종도 있다는 것입니다.
엄마가 형한테 돈 갖다주라고 2만원 줬더니 그 중 만원은 인마이포켓하면 그게 뭐가 될까요?
반만 순종한 것일까요? 아니면 불순종한 것일까요?
성경에는 부분적으로만 순종하다가 망한 대표적인 인물이 한 사람 등장합니다.
바로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입니다.
그는 매우 유능하고 매력적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왕이 된 후 교만해졌고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면 그 나라의 모든 사람과 짐승을 없애라고 했는데 그는 하나님께 제사드린다는 핑계로 좋은 짐승들 몇몇을 남겨두었습니다.
사울 입장에서는 아말렉 사람들을 다 죽였고, 겨우 짐승 몇마리 남겨둔 거라 괜찮을거라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화근이 되어 그는 하나님의 눈 밖에 나게 됩니다.
그 자신 입장에서는 하나님을 생각해서 한 행동이었고 순종을 아에 안 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그것은 분명한 불순종이었습니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왕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의 불순종을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에게 부분적인 순종은 불순종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철저히 순종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핑계대고 합리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 모세가 철저히 순종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성경의 완전수 7로 일곱번이나 반복한 것입니다.
또한 이런 철저한 순종은 그들이 금송아지를 숭배하여 죄를 지었던 사실과 매우 대조적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생각이 옳다고 여기고 숨겨둔 욕망을 담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들만의 생각이 결국 죄로 연결된 것입니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던 패턴과도 똑같습니다.
‘자기들이 보기에’ ‘자기들 생각에’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럽게 보인 선악과를 따먹은 것입니다.
그 우상숭배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이킨 모습이 바로 철저히 순종하여 성막을 지은 모습인 것입니다.
이번에는 자기들의 생각을 차단하고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행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순종은 쉽지 않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 이후 우리에게는 불순종의 DNA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의 자기 중심적입니다.
자기 생각이 옳다고 여깁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순종은 자기를 죽이는 과정입니다.
내 생각을 죽이고, 내 욕망을 죽이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순종에 있어 중요한 것이 바로 침묵과 기다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있는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들은 침묵하지 못하고 불평과 불만을 쏟아냈습니다.
불평, 불만은 우리를 기다리지 못하고 불순종하게 만드는 촉진제와 같습니다.
기다리지 못하는 농부는 수확을 거둘 수 없는 법입니다.
성경의 영웅들은 모두 기다림과 침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침묵하며 기다렸기에 하나님의 때, 카이로스를 맞이한 것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다윗 모두 묵묵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순종한 사람들입니다.
그럼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한 결과가 무엇일까요?
바로 성막가운데 임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34, 35절입니다.
그 때에 구름이 회막을 덮고,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찼다. 모세는 회막에 구름이 머물고,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찼으므로, 거기에 들어갈 수 없었다.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 가운데 가득했습니다.
그것을 여기서는 구름으로 표현했습니다.
그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모세조차도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영광을 함부로 보면 모세도 죽음을 면치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모습이 상상이나 되십니까?
저는 도저히 상상이 안됩니다.
이제 우리는 성막 대신 교회가 존재합니다.
교회는 믿는 자들의 모임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다면 어떨까요?
그것을 알려면 먼저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란 하나님의 본체입니다.
그 분의 거룩함과 능력이 드러나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피조물들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작은 풀꽃의 아름다움도 하나님 영광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늘과 우주의 신비함과 광대함은 하나님 영광의 장엄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는 절정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사람입니다.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이것이 가득한 것을 부흥, revival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사건은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기독교 역사에서도 몇 차례 있었을 뿐입니다.
18세기 영국 웨일즈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 당시 웨일즈라는 곳은 탄광 도시였습니다.
그 곳은 매춘과 술집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더러운 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찾아온 것입니다.
한 작은 교회에서 목사가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불길이 다른 교회에도 번져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며 통곡했습니다.
그 때 기록에 보면 교회에 사람들이 넘쳐났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도시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교도소에 넘쳐나던 범죄자들은 사라졌고, 넘쳐나던 술집도 손님이 없어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나중에는 교도소가 결혼식장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부흥은 18세기 전 영국으로 퍼져 어머어마한 교회부흥의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그게 미국까지 이어져 미국에서도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 영향이 우리까지 미쳐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해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교회에 가득하면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까지도 변화됩니다.
그 하나님의 영광이 지금 성막가운데 가득찬 것입니다.
그 동력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철저한 순종입니다.
그 때 뿐만 아니라 지금도 하나님은 언제든지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을 가리는 게 우리의 죄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니
먼지가 햇빛을 가리듯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 바로 우리의 죄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가득 채울 사람과 교회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교회를 통해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할 때 우리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36, 37,38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구름이 성막에서 걷히면 진을 거두어 가지고 떠났다. 그러나 구름이 걷히지 않으면 걷힐 때까지 떠나지 않았다. 그들이 길을 가는 동안에 낮에는 주님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구름 가운데 불이 있어서, 이스라엘 온 자손의 눈 앞에 밝혀 주었다.
하나님의 영광은 이제 성막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면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게 됩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뜨거운 태양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해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차가운 추위에서 그들을 보호해주십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이 백성들이 가야할 길을 인도해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기둥을 보며 멈춰야 할 때와 이동해야 할 때를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삶은 어떤가요?
우리 삶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던 광야와도 같습니다.
외롭고 힘겨운 곳이며, 두렵고 위험한 곳입니다.
그 때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인도해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쳐다보며 멈춰야 할 때와 이동해야 할 때를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통해 그것을 알 수 있을까요?
바로 말씀과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말씀과 기도를 통해 자신의 뜻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순종은 성막을 만들 때 그들이 보였던 단 한번의 순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 완성은 또다른 시작입니다.
그게 17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들은 출애굽한 지 1년만에 성막을 완성합니다.
그 날이 1월 1월입니다.
실제 날짜가 1월 1일이지만 상징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따라 광야의 길을 떠나는 첫 걸음인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 그들의 삶은 어떻게 될까요?
아무런 위험도 없이 성공적으로 가나안 땅으로 입성하게 될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수많은 전쟁을 치루게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만 그들은 때로는 의심하고 고민하며 나아갑니다.
때로는 하나님께 불순종해서 전쟁에서 뼈아픈 패배를 맛보기도 합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하다보니 때로는 불순종하여 인생의 쓰라린 패배를 맛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더 배우고 더 성장하게 됩니다.
그런 삶의 연속이 계속될 것입니다.
이처럼 순종이란 단어는 완료형 단어가 아니라 진행형 단어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함으로 가득찬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히브리서 1장3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자신의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30년을 목수의 아들로 사셨고, 3년동안 모든 자신의 사명을 다 하셨습니다.
철저히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순종하시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순종으로 인해 우리는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설교 맨 처음에 인생은 BCD라고 했습니다.
그 때 C는 Choice를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C는 Christ입니다.
우리의 삶은 예수님을 따라 예수님과 동행하며 사는 삶의 연속일 뿐입니다.
우리의 삶은 예수님의 순종을 닮아가는 삶의 과정일 뿐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모세의 이름에 제 이름을 넣어봤습니다.
제 인생도 꼭 이렇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은상이는 목회자가 되었다.
주님께서 은상이에게 명하신 대로 한 것이다.
은상이는 다카포 교회를 시작했다.
주님께서 은상이에게 명하신 대로 한 것이다.
그 다음 문장이 또 있겠죠?
그 문장 다움에 주님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한 것이다라는 문장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주님의 영광이 나의 삶에 가득 찼다라고 적히길 원합니다.
여러분들 이름도 그렇게 적히길 바랍니다.
나는 왜 삶에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을까?
이런 고민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내가 하나님 말씀에 적극적으로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통로입니다.
순종을 통해 내 삶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소망하십시오. 기대하십시오.
가득찬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는 저와 우리 다카포 식구들이 되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