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룩한 공교회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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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9 - 공교회)

Notes
Transcript

S1. 환영과 인사

반갑습니다.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시간에 함께 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우리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믿음 안에서 충만하세요’하고 인사 나눕시다.
네 감사합니다. 오늘은 종교개혁 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흔히들 1517년 10월 30일에 루터가 비텐베르크의 성곽교회(Castle Church)의 문에다 95개조의 반박문을 붙인 것을 종교개혁의 날로 생각해서 이날이 되면 모든 개혁 교회가 종교개혁 기념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물론 루터는 이후 개혁파와는 다른 길을 걷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개혁교회의 유산을 따르는 우리 교단과 우리 교회는 보다 온전한 개혁교회의 역사와 교훈을 마음에 잘 새겨서, 특별히 공교회로서의 본질에 충실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S2. 주제 제시

이런 맥락에서 오늘은 신경이 고백하는 공교회에 대해 함께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 사도신경의 고백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거룩한 공교회를 믿습니다.
사도신경은 성령님께서 구속의 은혜를 적용하시는 첫 번째 사역으로 거룩한 공교회를 세우셨다고 고백합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삼위로서 아버지와 아들의 이루신 구속을 성도에게 적용하시는데, 그 첫번째 사역이 바로 교회를 세우시는 것입니다. 공교회라는 말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교회라고도 부릅니다.

S3. 문제 제기

그런데 흔히 교회를 그냥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도 성도들의 교제가 가장 우선이라고 여깁니다. 한때는 교회라는 한자어의 앞의 ‘교’자를 가르칠 ‘교’에서 사귈 ‘교’로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교회의 공동체성과 성도의 교제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교회의 교제보다 더 우선에 두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도들의 가르침입니다. 행 2:42절입니다.
사도행전 2장 42절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교제는 분명 초대 교회의 중요한 모습이었지만, 이 교제는 항상 가르침을 받은 교제였습니다. 그냥 사람들끼리 모여 즐거워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교제가 아닙니다. 참된 교제는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통해 말씀을 받고 그 은혜를 나누고 함께 식사하며, 기도하는 삶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도의 교제에서 말씀의 위치를 우선에 두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함께 모였는데 말씀이 없고, 말씀을 나누는 삶이 없이, 그냥 밥먹고 앉아서 이런 저런 교회 품평회만 한다면 그건 교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는 항상 말씀이 있고, 말씀을 나누는 생활이 중심이어야 합니다.

J1. 하나님의 심정, 속성, 그리고 방법

우리 하나님은 아담을 창조하셔서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인간이 창조되었을 때는 하나님과 깊은 영적인 친밀감을 나누기 위해 인간에게 초자연적인 영역에서 모든 은사가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짐승들의 이름을 지었고, 그것을 기억하며 자연 만물을 다스리는 자로 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에덴동산을 향해 달려오시는 하나님을 맞이할 수 있었고,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 창세기 3장 8절 말씀을 봅시다.
창세기 3장 8절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기에 나타난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동산을 향해 자신의 온힘을 다해 걸어오시는 하나님을 묘사하는 말입니다. ‘거니신다’는 것은 재귀적 강세태를 가집니다. 이는 걷는 것을 강조하면서 자신이 그렇게 한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문법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평소와 같이 아담을 찾아 기쁨으로 달려오시며 친밀한 교제를 원하셨으나, 아담이 범죄하자 수치심과 두려움, 그리고 죄책감에 붙들려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유지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모든 영적인 은사들은 사라졌고, 하나님과의 깊은 친밀감도 없어졌습니다. 심지어 인간이 육신이 되자 하나님의 영은 더이상 우리 안에 거하지 않게 되셨습니다. 창세기 6장 3절 상반절입니다.
창세기 6장 3절 상)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
이처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고 성령님도 더이상 인간 가운데 거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이를 가장 안타깝게 여기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사실 부모는 항상 자녀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자녀는 꼭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다 자랐다고 생각하는 자녀는 부모의 기다림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그렇지 않습니다. 항상 자녀를 기다립니다. 우리 하나님도 바로 그런 아버지시기에 떠난 죄인에게도 일반 은혜를 주시고 결국 심판받아 사라질 운명을 가진 죄인들에게도 지혜와 지식의 많은 은사를 부어주십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우리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보내심으로 죄인 가운데 구원할 자를 교회로 불러 주십니다.

J2. 하나님이신 예수님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셔서 자기 백성을 성령님 안에서 거룩한 공회로 불러 주십니다. 우리 시편 111편 1절 말씀을 봅시다.
시편 111편 1절
1. 할렐루야, 내가 정직한 자들의 모임과 회중 가운데에서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여기 보면 ‘정직한 자들의 모임’ 즉 ‘회중’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에다라는 말로 무리라고 보면 적절합니다. 잠언에서는 ‘회중’을 의미하는 ‘에다’를 ‘카할’과 바꾸어 사용합니다. 카할은 ‘소집하다’라는 뜻으로 교회는 소집해서 모은 자들이라는 뜻이 됩니다. 성령님은 세상 가운데 있는 성도를 말씀과 이를 전하는 자를 통해 소집하셔서 교회로 모으시는 분이십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고백과 그의 사도적 부르심과 증언에 힘입어 교회를 세우신다고 말씀하시는데, 이때 교회는 에클레시아라는 말로 사용합니다. 마태복음 16장 17, 18절을 봅시다.
마태복음 16장 17, 18절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에클레시아는 그리스도께서 불러낸 자들을 말합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사도들을 먼저 부르셨고, 그들을 통해 말씀을 주심으로 오늘의 우리들을 불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시대부터 신약시대를 거쳐 지금의 교회 시대에 지속하여 자신의 사역자들을 통해 말씀으로 자기 백성을 부르시고 교회를 통해 성도를 보호하고 지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혁 교회는 교회를 성도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가 공교회 혹은 교회는 창세 전부터 세상의 종말까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택하여 성령님을 통해 믿음을 주셨고, 주실 모든 사람을 지칭하는 것입니다.그래서 사람은 공교회를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창세 전에 예정하시고, 세상의 마지막 날까지 구원할 자를 보내실 것이기에 한 인간은 전체로서의 예수님의 거룩한 공교회를 눈으로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룩한 공교회를 무형의 교회 혹은 불가시적 교회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은혜 안에서 바로 이 무형의 교회에 속하게 하심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J3. 사람이신 예수님

물론 우리가 알듯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제한적이긴 하나 이 무형교회가 성령님 안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즉, 우리가 출석하고 예배드리는 이 눈에 보이는 유형의 교회는 비록 한계가 있으나 하나님의 거룩한 공교회, 즉 무형의 교회를 드러내는 공동체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 성경에서 사도 바울은 세상 곳곳에 있는 성도의 유형의 모임을 교회라고 불렀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2절을 봅시다.
갈라디아서 1장 2절
2.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이처럼 바울이 각 지역의 유형 교회들에게 편지를 보낼 때 그는 이들 교회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공교회임을 선언하고 인정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무형의 교회를 오늘날 유형의 교회속에서 세상 가운데 드러내셔서 믿는 자들이 이 교회에 가입함으로 구원의 은혜들을 누리도록 하신 것입니다.

W1. 우리 예수님은 성령님 안에서 지역교회를 통해 공교회를 보이십니다.

성도는 지역 교회의 회원이 됨으로 하나님의 공교회의 자녀가 됩니다. 물론 이 경우는 그 지역 교회가 공교회의 표지를 분명히 소유한다는 조건 안에서 그런 것입니다. 세상의 교회가 온전하게 하나님의 공교회의 모습을 다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교회로서 존재하는 공동체에게는 두 가지 공교회의 표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거룩한 성례를 믿음의 표징으로 행하는 교회라야 합니다. 지역 교회가 부족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예배 가운데 선포되고, 예수의 이름으로 집행되는 세례와 성찬이 이루어질 때, 이는 충분히 공교회를 증거하는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성찬이 부족한 현실은 이런 점에서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편과 상황을 넘어 교회의 본질인 표지를 가장 온전하게 드러내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입니다. 성령님께서는 말씀을 먼저 선포하심으로 세례가 일어나게 하시고, 이어 성찬이 진행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선포되는 말씀 안에서 성령님의 은혜로 믿음을 얻고 회개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성례는 그 다음에 이루어지는 은혜입니다. 이런 까닭에 성령님은 지역 교회에서 말씀을 선포하시고 성도가 그리스도의 교회에 참여하는 놀라운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W2. 그런데 참된 교회 혹은 온전한 공교회는 기강의 확립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종교 개혁자들 안에는 교회의 본질 혹은 표지를 두고 다소 의견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우리 아는 개혁자 부처는 교회의 표지를 말씀과 성례만이 아니라 기강에도 두었습니다. 기강이란 흔히들 권징을 말하는 것인데, 원래 의미는 훈련을 말합니다. 말씀이 주어지면 그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는 것, 그래서 말씀은 교육과 훈련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기강이라고 합니다. 혹 이 말씀을 배우는 일이나 그 말씀대로 사는 것에 훈련되기를 싫어하는 자들에게는 영적인 시벌이 주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부처만이 아니라 벨직 고백서의 초기 작성자인 네델란드의 귀도 드 브레 역시도 권징을 교회의 표지로 두어야 한다고 벨직 고백서에서 강조합니다. 그래서 네덜란드 개혁교회는 권징을 교회의 본질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귀도 드 브레의 선생이었던 칼빈은 교회를 성도의 어머니라고 가르치면서 교회의 본질, 혹은 표지에 권징을 두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칼빈은 권징을 교회의 구성에 둠으로써 어머니로서의 교회가 성도를 말씀으로 먹이고 성례로 양육하면서 반드시 당회를 통해 권징을 시행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인 성도들이 불의함에서 떠나 시벌을 통해 영적인 온전함을 세우도록 교회를 개혁했던 것입니다.

W3. 우리 하나님은 말씀과 성례를 거룩한 공교회의 중심으로, 그리고 권징을 교회의 거룩을 위한 사역으로 세우심으로 이 땅에 참 공교회를 세워 주십니다.

우리 한국장로교회사를 보면 초기에 지금의 중국 심양 등지에서 번역된 성경을 압록강을 넘어 한국으로 들여오는 일에 힘을 썼던 권서들이 있었습니다. 이분들 중 한 분은 최초의 장로교회를 설립하기도 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분을 장로로 세우자는 교회의 의견이 있었는데 당시의 선교사들은 이에 대해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 분이 첩을 두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장로는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하는데 어떻게 그를 장로로 세우겠느냐는 것입니다. 이 의견은 끝까지 관철되어서 결국 그분은 그 교회의 장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첩을 내보내라는 교회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이 장로가 될 수 없음을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한국 장로교회의 초기 선교사님들은 이처럼 철저하게 권징을 다루었고, 한국 교회가 거룩한 공교회가 되도록 힘을 다하신 분들이었습니다.

T1. 교회는 공교회의 본질에 충실함으로 영적인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을 가르칠 때 온전한 성찬 참여를 매우 강조했습니다. 고린도 전서를 보면 당시 성도들 중에 성찬에 늦게 오는 성도들이 함께 음식을 먹는 데에서 소외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에 사도는 먼저 와서 준비한 음식을 다 먹어 버리는 성도들의 태도를 책망하면서 온전한 성찬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을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고린도 전서 11장 29, 30절
29.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30.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사도의 이 말씀은 성찬을 온전히 행하지 않음으로 인해 영으로 약해지고, 육으로 병들고 죽는 자들도 생겨난다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의 본질을 온전히 이행하지 못할 때는 교회 안에 질병이 많고 신앙이 약한 자가 생기며 심판을 받고 죽는 자들이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바르게 표지를 행하면 어떨까요? 그렇죠. 풍성한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T2. 오늘 세상은 성령님의 공교회 사역에 무지함으로 구원의 복을 얻지 못합니다.

세상은 문제의 해결이 자신의 힘에 있다고 생각하기에 성령님이 주시는 구원과 은혜를 누리지 못합니다. 세상은 영에 무지하기에 현세에서 성령님의 은덕을 누리지 못합니다. 소교리 문답은 성도에게 주어지는 현세적 은덕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32문 효력 있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현세에서 무슨 은덕을 받습니까? (대 69문)
답 효력 있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현세에서 칭의와 양자됨과 성화에 참여하고, 그리고 현세에서 이것들과 함께 또는 이것들로부터 나오는 여러 가지 은덕을 받게 됩니다.
여기 칭의와 양자됨과 성화의 은혜는 곧 공교회의 회원이 된 성도가 누리는 복을 말합니다. 성령님을 무시하는 모든 세상이나 성도들 중에서도 성령님을 오해하면 바로 이런 성령님의 은덕을 누리지 못하는 불행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T3. 그러나 성도는 현세에 이보다 더 큰 복을 누립니다.

소교리 문답 36문은 교회인 성도들에게 더해주시는 복을 이렇게 가르칩니다.
문36 현세에서 칭의와 양자됨과 성화에 수반되거나 거기서 나오는 은덕들은 무엇입니까? (대77-83문)
답 현세에서 칭의와 양자됨과 성화에 수반되거나 거기서 나오는 은덕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과 양심의 평안과 성령 안에서의 기쁨과 은혜의 증가와 그 은혜 안에 끝까지 견디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는 칭의와 양자됨과 성화의 은혜를 통해 공교회의 일원이 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 내적 확신, 평안, 기쁨, 은혜의 증가와 견인의 큰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L5.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는 성령님 안에서 부름을 받고 개인적인 삶에 만족하며 사는 이들이 아닙니다. 성도는 함께 부름받은 성도들과 함께 공교회를 이루어 참된 교회의 삶에 참여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성도의 교제에 앞서 먼저 거룩한 공교회를 세우십니다. 이는 공교회의 표지들인 말씀의 선포 이후에 성도가 부름을 받고 성례에 참여함으로 교제에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통해 선포되는 말씀이 먼저 있고서야 성도의 교제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 에베소서 4장 4절의 말씀을 봅시다.
에베소서 4장 4절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이처럼 성도는 성령님 안에서 한 몸인 공교회로 부름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선포하는 말씀에 귀를 열고, 베푸는 성례에 참여하며,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모든 기강에 순종함으로 거룩한 성도의 교회를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L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님은 거룩한 공교회를 세우시고, 우리를 그 교회 안으로 부르십니다. 이 공교회는 우리 눈에 다 보이는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눈에 보이는 유형 교회의 가시적 모습 안에서 공교회를 이루게 됩니다. 그것은 공교회가 가진 표지를 온전히 세움으로 교회됨을 이루어 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사람의 공동체에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 가운데 말씀이 선포되고, 세례와 성찬이 베풀어질 때 성도는 온전한 공교회를 이룰 수 있습니다. 교회가 선포하는 말씀에 순종하고 베푸는 성례를 존중히 여길 때 우리는 영적인 풍성한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성도는 교회의 기강을 존중하고 온전한 권징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도 앞으로 교육과 훈련에 힘을 쓰고자 합니다. 이제는 제자 훈련이나 교리 교육에 참여하지 않는 분들을 직분자로 혹은 당회원으로 세우지 않을 계획입니다. 그것이 우리 서로가 사는 길입니다. 하이델베르크 54문은 공교회에 대한 믿음을 이렇게 가르칩니다.
54문 거룩한 공교회에 관하여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
답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의 처음부터 마지막 날까지 모든 인류 가운데서 영생을 위하여 선택하신 교회를 참된 믿음으로 하나가 되도록 그의 말씀과 성령으로 자신을 위하여 불러 모으고 보호하고 보존하심을 믿습니다. 나도 지금 이 교회의 살아 있는 지체이며 영원히 그러할 것을 믿습니다.
성도는 교회의 살아있는 지체입니다. 선포되는 말씀을 온전히 받고 그 말씀 안에서 교제하며 참된 성례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른 기강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의 몸을 이루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이 공교회를 말합니다. 부족하지만 우리 송도제일교회가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 시온성과 같은 주의 교회로 온전히 서기를 기도하고 힘써 순종하시는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찬송가 210장

시온성과 같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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