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one Analysis
Overall tone of the sermon
This automated analysis scores the text on the likely presence of emotional, language, and social tones. There are no right or wrong scores; this is just an indication of tones readers or listeners may pick up from the text.
A score of 0.5 or higher indicates the tone is likely present.
Emotion Tone
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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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g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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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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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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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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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guage Tone
Analyt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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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fi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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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ta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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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 Tone
Open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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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cientious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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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ver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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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reeable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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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otional 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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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e of specific sentences
Tones
Emotion
Language
Social Tendencies
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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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친구들, 오늘이 몇 월 며칠이죠?
그럼 10월 31일은 무슨 날일까요?
아마도 10월 31일이 ‘할로윈데이’라는 건 다 알고 있었을 텐데, 10월 31일이 ‘종교개혁기념일’이라는 것은 아무도 몰랐을 거예요.
전도사님이 지난 번 설교 때도 살짝 언급했었지만, 종교개혁은 유럽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정도로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어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종교개혁에 대해서 잘 알고 또 기념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종교개혁 기념 주일로써,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루터에 대해서 잠시 함께 살펴보려고 해요.
[전개1]
루터는 1483년 11월 10일 독일의 아이스레벤에서 태어났어요.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광물을 채굴하는 일을 하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법률가가 되게 하여 사회적 성공을 얻게 하려고, 당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법률가들만 모인다는 에르푸르트 대학에 입학시켰어요.
즉, 루터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아버지의 뜻대로 진로를 정해야 했어요.
결국 아버지의 열성적인 지지로 대학에 입학한 루터이지만, 그에게는 말 못할 문제가 한 가지 있었어요.
당시에 유럽에는 흑사병이 유행이었는데, 그의 동생들과 학교 교수들이 그 병으로 인해 죽게 되자, 자신도 돌연사를 할까봐 두려웠어요.
그런데 그가 정말로 두려워했던 것은 아직 자신에게 회개하지 못한 죄가 남아있어서 지옥에 갈 것이 두려웠던 거예요.
이것을 통해 우리는 그가 ‘자신에게 죄가 단 하나라도 있으면 결코 구원받을 수 없다’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루터가 21살이던 해에 부모님을 뵙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던 길에서 큰 폭풍을 만나는 일이 있었어요.
그 순간 벼락을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자, 자신도 모르게 “성 안나여! 나를 도우소서! 그러면 신부가 되겠습니다!”라고 수호성인에게 외쳤어요.
당시 카톨릭에는 자신의 수호성인에게 기도를 하면 그 성인을 통해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고 자신의 기도에 응답해준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금도 카톨릭은 성모 마리아 상 앞에서 기도를 하는 풍습이 있어요.
아무튼 무사히 학교로 돌아온 루터는 자신이 수호성인에게 고백한 대로 신부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그러나 신부가 돼서도 루터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어요.
그는 신부가 되어 수도원의 규칙들을 지나칠 정도로 철저하게 지켰고, 고해성사를 할 때도 온 마음을 다해서 했는데, 한 번 할 때 여섯 시간이 걸리더라도 생각나는 모든 것을 고백했다고 해요.
한 번은 선임 신부에게 한참 동안 고해성사를 한 후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또 죄를 범하자 그 즉시 다시 가서 회개를 했다고 해요.
이처럼 루터는 자신의 극단적인 금욕생활을 통해, 하나님께 구원받고자 발버둥 쳤어요.
그러나 이처럼 금욕을 지키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어요.
금욕을 통해 죄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죄에 사로잡힐 뿐이었어요.
우리는 때로 우리의 노력으로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해요.
그래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말도 있어요.
이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에요.
그만큼 노력은 중요하고 노력하는 것은 굉장히 가치 있는 일이에요.
전도사님도 매일 노력하는 삶을 살기 위해 힘쓰고, 노력하는 사람을 매우 좋아해요.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해야할 것은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성취할 수 없는 것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이에요.
그것이 무엇이냐면 바로 ‘구원’이에요.
우리의 영혼이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이 구원이에요.
그러나 이것은 결코 인간의 노력으로는 이룰 수 없어요.
왜냐하면 죄가 있는 상태에서는 구원받을 수 없는데, 우리는 루터와 같이 죄를 회개하고서도 또 순식간에 반복하여 죄를 짓는 죄인이기 때문이에요.
그렇기에 우리의 힘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구원을 이룰 수가 없어요.
그러나 이 세상은 능력만 있으면, 실력만 갖추면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있다고 말해요.
마치 자신의 인생까지도 구원할 수 있을 것처럼 말이에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문제에 관심을 갖기보다 자신의 실력을 높이고 스펙을 갖추는 일에만 관심이 있어요.
우리 친구들도 그렇지 않나요? 실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학원도 다니고, 과외도 받고, 수많은 노력들을 하지만, 정작 구원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있지 않나요?
만약 어떤 사람이 지금부터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결국 원하는 모든 것들을 이뤘다고 생각해봐요.
명문대에도 입학하고, 대기업에도 취업해서, 많은 돈을 벌고, 큰 성공을 이루었어요.
이제 그 성공을 누리기만 하면 되는데, 갑자기 불치병에 걸려서, 혹은 불의의 사고로 죽고 말았어요.
결국 구원받지 못한 그의 영혼은 영원한 고통이 있는 지옥에 가고 말았어요.
이 이야기를 듣고서 ‘전도사님!
너무 극단적인 예를 드시는 것 아니에요?’하는 친구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일은 뉴스에서도 종종 나올 만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에요.
그래서 (눅 12:20, 어리석은 부자 비유)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친구들, 구원의 문제는 지금 여러분이 고민하는 진로의 문제, 가정의 문제, 시험의 문제, 친구관계의 문제, 그 어떤 문제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장 중요한 문제예요.
다른 문제를 다 해결한다 할지라도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 사람의 인생은 실패한 것과 마찬가지에요.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문제보다 이 구원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만 해요!
[전개2]
그렇다면 루터는 어떻게 구원의 문제를 해결했을까요?
그는 1510년에 로마에 방문했을 때, 카톨릭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돼요.
당시 로마에는 ‘성계단 성당’이란 곳이 있었는데, 이곳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되 오를 때마다 주기도문을 외우며 계단에 입을 맞추면 영혼을 연옥에서 구원해준다는 것이었어요.
루터는 그 의식을 따라 행했는데, 정작 계단을 다 오르자 과연 이러한 노력이 자신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생겼던 거예요.
그리고 전도사님이 지난번에 한 번 언급했던 ‘면벌부 사건’이 일어나요.
면벌부는 말 그대로 벌을 면해주는 부적과 같은 거예요.
당시 로마 카톨릭은 부족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면벌부를 판매했어요.
돈을 주고 면벌부를 사면 죽은 영혼이 천국과 지옥의 중간에 위치한 연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진다는 것이었어요.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말이지만 당시 사람들은 교황의 말이라면, 신의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철썩 같이 믿었던 거예요.
이 광경을 목격한 루터는 더 이상 ‘돈으로 구원을 살 수 있다’는 식의 로마 카톨릭의 가르침을 신뢰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그는 로마 카톨릭의 잘못된 가르침들을 직접 찾아내기 위해 성경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반박하는 글을 작성하게 됐어요.
그것이 바로 지금으로부터 504년 전인 ‘1517년 10월 31일’에 독일 비텐베르크에 만성 교회 문에 게시했던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이에요.
이것이 바로 종교개혁의 출발이자, 우리 개신교가 카톨릭으로부터 분리되어 독립하게 된 계기예요.
루터는 이후에도 계속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담겨진 놀라운 비밀을 깨닫게 돼요.
그 비밀을 발견한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인 (롬 1:16-17)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루터는 이 말씀을 통해 구원의 문제가 자신의 노력이나, 다른 사람의 공로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가능한 것임을 깨닫게 됐어요.
여기서 복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즉,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비밀을 드디어 알게 된 거예요.
성경에는 이곳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내용이 곳곳에 있어요.
(눅 7: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행 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이처럼 성경은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을 강조함.
친구들, 그러면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만약에 우리의 구원이 실력이나 능력에 의한 것이라면 우리 영광교회 학생부 안에는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한 사람도 없을 거예요.
왜냐하면 이 세상에 우리보다 뛰어난 실력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수없이 많기 때문이에요.
실력대로, 능력대로 줄서서 천국에 들어간다면 우리는 평생 천국문 근처에도 가보지 못할지도 몰라요.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을 강조해주고 있는 거예요.
사랑하는 우리 학생부 친구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고, 오직 믿음으로 천국에 갈 수 있어요.
즉, 우리는 이 땅에서 오직 믿음으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고, 오직 믿음으로 우리의 인생을 개혁할 수 있다는 사실이에요.
혹시나 고백하지 않은 죄가 자신 안에 남아 있어 지옥에 가지 않을까 두려움에 벌벌 떨었던 루터가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로부터 자유하게 됐어요.
이제는 믿음으로 자신의 삶을 완전히 개혁시켰어요.
[결론]
이후에 그는 1521년 보름스에서 열리는 법정에 서도록 소환 받았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그곳에서 이단으로 정죄되고 화형당할 것이라 생각했어요.
루터도 이 사실을 모르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 루터는 사람들 앞에서 위협을 느껴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해요.
그리고 루터는 그곳에서 자신의 주장을 취소할 것을 요구받았어요.
과연 그는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죽음이 두려워서 그들의 요구대로 주장을 취소했을까요?
“나는 성경의 증거나 또는 명백한 이성적 논증에 근거하여 설득력 있게 분명히 반박하지 않는 한 나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 나는 오직 내가 인용한 성경 구절에 묶여 있습니다.
나의 양심이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는 한, 나는 상황이 확정되지 않았기에 아무것도 취소할 수 없고 또 취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양심에 어긋나게 행동한다면 구원이 위협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시여, 나를 도우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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