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사사기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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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제가 담당했던 친구중에 사진 작가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자꾸 남들이 버린 물건들을 가지고 와서 그것들을 조합해서 작품을 만들고 그것을 사진으로 남기곤 했습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사진전을 열었다고해서 한번 갔었습니다.
그의 사진에는 정말 남들이 버린 책상, 의자들같은 고물 덩어리들이 전부 그의 작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왜 이런 것을 찍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자신의 과거를 제게 알려줬습니다.
자신은 모태신앙으로 자라서 교회를 한번도 떠나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교회는 다녔어도 자신의 삶은 쓰레기 같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게 되었고 주님이 자신의 죄를 용서해주셨고, 자신이 이제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하나님이 쓰레기 같았던 자신을 새롭게 해주셨듯이 이 버려진 물건들도 누군가의 손에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참 감동받았던 순간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날 한 인물도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뭔가 부족한 사람입니다.
[1. 본문 배경설명, 영적 타락]
지난주까지 우리는 출애굽기를 보았습니다.
출애굽기 마지막장에서 이스라엘은 순종을 통해 성막을 세웠고, 그 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찬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보호하시고, 인도해주셨습니다.
원래 출애굽기 다음 이야기는 광야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다룬 민수기, 광야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이야기를 다룬 여호수아서가 나와야 하는데 우리는 곧바로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일어난 일을 다루는 사사기로 이동했습니다.
사사기 바로 앞 여호수아서를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남아있던 가나안 족속들을 모두 쫓아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족속들이 가진 무기들이 두려웠고, 한편으로는 그들을 노예로 삼아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가나안 근방에 있던 메소포타미아의 왕을 통해 이스라엘을 혼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8년간 고통을 당하자 하나님께 부르짖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옷니엘이라는 사사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은 40년동안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이 평안하게 되자 또다시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12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저질렀다. 그들이 이렇게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저질렀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모압왕 에글론을 강적이 되게 하여서 이스라엘을 대적하게 하셨다.
‘악한 일’이란 우상숭배를 의미합니다.
다시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가나안 신을 우상숭배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근처에 있던 모압을 이용해 이스라엘을 징계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야 가장 빛나는 법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물들어 살게 되면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도 사라지는 법입니다.
배는 물 위에 떠 있을 때 제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지, 물이 배 속에 들어오면 가라앉고 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징계는 아직 기회가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내 삶의 고통과 고난은 아직 우리에게 기회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는 점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아에 포기했다면 징계조차도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모든 경우는 아니지만 많은 경우 고통과 고난은 아프지만 하나님이 자신의 자녀를 위해 사용하시는 사랑의 매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2:7,8절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 아들이 아니니라
징계가 없으면 오히려 친 자식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자식이 아니면 관심도 없고 징계할 이유도 없다는 것입니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는 내 삶에 아무런 고난도 없고, 고통도 없는 것입니다.
[3. 여리고를 잃고, 고집이 세면 더 세게 더 오래 때리신다]
이제 13절입니다.
에글론은 암몬 자손과 아말렉 자손을 모아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종려나무 성읍인 여리고를 점령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이 열여덟 해 동안이나 모압 왕 에글론을 섬겼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죄를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중요한 도시였던 여리고를 모압의 왕 에글론이 점령하도록 내버려두셨습니다.
이 여리고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면서 처음으로 차지한 성읍입니다.
여호수아서에 나온 것처럼 그곳은 정말 천연의 요새였던 곳인데 주님의 기적으로 이스라엘이 얻게 된 그런 곳입니다.
또한 오아시스가 있어 물이 풍부하고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도시입니다.
그만큼 이스라엘에게 의미가 있는 장소인데 이제는 모압에게 빼앗기는 처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징계하실 때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게 하시기도 합니다.
소중한 것을 잃어봐야 정신이 번쩍 들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범죄로 인해 사랑하던 아들을 잃고난 후에야 하나님 앞에 겸손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가 계속되자 그들이 겪는 고통의 시간도 더 길어졌습니다.
앞서 메소포타미아 왕 때는 8년간 고통을 당했는데 이제 에글론왕에게는 18년을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이 계속될 수록 하나님의 징계의 강도도 더 세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8년을 겪어도 정신 못차리니까 이번에는 18년을 고통스럽게 만드셨습니다.
저희 집에서도 둘째 누나가 제일 고집이 셌는데 그래서 엄마가 얼마나 세게 때리셨는 지 몰라요.
반면 제 여동생은 엄마가 뭐라고 하면 금방 잘못했다고 하니까 별로 안 맞았거든요.
우리의 부모가 되시는 하나님도 역시나 그러신 거 같습니다.
18년이나 고통을 당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서야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4. 부르짖음과 구원자 보내주심-자식을 때린 부모의 마음]
15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께 울부짖으니, 주님께서 그들에게 한 구원자를 세우셨는데, 그가 곧 베냐민 지파 게라의 아들인 왼손잡이 에훗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징계하시지만 그들을 미워하신 것은 아닙니다.
돌이키기를 바라실 뿐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스럽게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긍휼히 여겨주십니다.
그들의 부르짖음이 그들이 진정으로 회개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단지 고통스러우니 하나님을 찾았던 것이죠.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고통스러워하자 그들을 불쌍히 여겨주셨습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시죠.
자식 혼내고 나면 마음이 아프시잖아요.
자식 회초리로 때리고나면 약 발라주시는 분이 부모님이잖아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셨습니다.
그래서 한 구원자를 보내주시는데 그가 바로 에훗입니다.
[5. 에훗의 이름과 출신배경]
‘에훗’이란 이름은 히브리어로는 ‘하나, 한번에’ 이런 의미입니다.
그가 왜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요?
성경의 이름들은 그 사건과 연관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에훗은 혼자서 단 한칼에 이스라엘의 상황을 역전시켰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제 15절부터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에훗을 시켜, 모압 왕 에글론에게 조공을 보냈다. 그러자 에훗은 길이가 한 자쯤 되는 양쪽에 날이 선 칼을 만들어서 오른쪽 허벅지 옷 속에 차고, 모압 왕 에글론에게 가서 조공을 바쳤다. 에글론은 살이 많이 찐 사람이었다.
에글론 왕의 모습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는 비둔한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이스라엘을 착취했는 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에글론이라는 이름 자체에도 그것이 드러납니다.
그의 이름은 ‘어린 황소’라는 의미입니다.
에훗은 에글론 왕에게 조공을 바치는 일을 했습니다.
아마도 에훗이 왼손잡이이다보니 이런 일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에훗을 왼손잡이라고 했지만 원래 의미는 오른손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는 왼손을 주로 사용하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당시 사회에서는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던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다보니 조공을 바치는 일에 쓰임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가 약 30센티 정도 되는 칼을 오른쪽 허벅지 옷 속에 차고 있었습니다.
그가 에글론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칼을 차고 다니는데도 그가 들키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도 왼손잡이를 멸시하던 문화라서 그를 신경쓰지 않고 무시했었을 것입니다.
[6. 길갈-이스라엘의 영적 상태]
18절부터입니다.
에훗은 조공을 바친 뒤에, 그 조공을 메고 온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그러나 에훗 자신은 길갈 근처 돌 우상들이 있는 곳에서 되돌아와, 에글론에게 ‘임금님, 제가 은밀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하고 아뢰었다. 왕이 모시고 섰던 부하들에게 물러가라고 명령하자, 그들은 모두 물러갔다.
길갈은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적적으로 요단강을 건넌 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기념비를 세운 장소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이제는 돌우상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흔적이 있어야 할 자리를 우상이 차지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에글론 왕은 왼손잡이인 에훗이 다시 돌아와 알려야 할 말씀이 있다고 말하자 부하들을 모두 물렸습니다.
원래 의미는 ‘은밀히 드릴 어떤 것’입니다.
에훗은 아마도 그가 자신에게 뭔가 줄 특별한 조공이 있다고 생각하고는 신하들을 물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결국 자기를 죽일 칼이었던 셈입니다.
[7. 에글론-하나님께 바쳐진 제물]
20절입니다.
에훗이 왕에게 다가섰을 때에, 마침 왕은 시원한 그의 집 다락방에 홀로 앉아 있었다. 에훗이 “임금님께 전하여 드릴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하니, 왕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때에 에훗은 왼손으로 오른쪽 허벅지에서 칼을 뽑아 왕의 배를 찔렀다. 칼자루까지도 칼날을 따라 들어가서 칼 끝이 등 뒤로 나왔다. 에훗이 그 칼을 빼내지 않았으므로, 기름기가 칼에 엉겨 붙었다.
특별한 선물을 줄지 알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준다고 하니 에글론은 당황해서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습니다.
에글론의 몸이 무게가 많이 나가는데 일어나 몸이 앞으로 쏠려 칼이 더 깊숙히 박혔을 것입니다.
그래서 칼 끝이 등 뒤로 나올 지경이 되었고, 그 칼에는 에글론의 지방에서 나온 기름기가 엉겨 붙어 있었습니다.
참 아이러니 한 것은 그가 마치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이름도 어린 황소고, 보통 제사를 위해 짐승을 잡을 때도 기름기가 중요한 부분인데 그런 표현들이 모두 여기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에훗은 하나님께 모압왕 에글론을 제물로 바친 것입니다.
[8. 도망간 에훗-하나님의 완벽한 시나리오]
이제 모압 왕 에글론을 몰래 죽인 에훗은 그 다락방 문을 잠그고,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그의 부하들은 다락방 문이 잠긴 것을 보고 왕이 용변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왕이 칼 맞을 때 항문의 괄약근이 약해져 똥이 나온 것 같습니다.
냄새가 나니까 병사들도 왕이 용변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기다려도 왕이 나오지 않자 결국 문을 열어봤더니 왕은 죽어 있었습니다.
실패하면 에훗은 죽음밖에 기다릴 게 없는데 하나님은 모든 상황 상황이 딱 맞아 떨어지게 하셨습니다.
왕이 병사들을 물린 것도 그렇고, 왕이 일어서자 칼이 더 힘차게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그렇고요.
또 왕이 죽을 때 괄약근이 약해져 똥이 나와 병사들이 왕이 똥싸고 있다고 오해한 것도 그렇구요.
혹시 똥이 안나왔다면 병사들이 훨씬 더 빨리 문을 열었겠죠.
그럼 에훗이 잡힐 수도 있었습니다.
분명 어떤 소리가 났을 테니까요.
그런데 완벽하게 하나님은 이 일을 행할 수 있게 상황을 만들어주셨습니다.
그 후 에훗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 요단강 나루터를 점령하고 거기서 모압 용사들을 1만명이나 죽였습니다.
에훗의 말을 들어보면 이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28절입니다.
나를 따라라. 주님께서 너희 원수 모압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다.
[9. 에훗과 삼갈을 사용하신 하나님]
에훗은 작고 힘이 약한 베냐민지파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멸시받던 왼손잡이 였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등장하는 또다른 영웅인 삼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어느 지파 사람인지도 나와있지 않습니다.
그는 무명이었고, 소를 치는 정말 하찮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블레셋 사람 육백명을 쳐 죽여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다.
단 2줄 밖에 등장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 또한 하나님께 붙들려 쓰임받은 사람입니다.
[10. 보잘 것 없고, 하찮아 보이는 사람을 사용하시는 이유,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
하나님은 도대체 잘난 사람들 다 놔두고 하필이면 이런 사람을 쓰셨을까요?
출신배경도 보잘 것 없고, 능력도 하찮아 보이는 이런 사람을 하나님은 사용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만큼 하나님의 영광이 더 빛나기 때문입니다.
만약 잘난 사람이 이런 일을 했다면 그의 능력으로 한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봤습니다.
자신들이 멸시하던 왼손잡이 혼자서 18년동안 그들을 괴롭히며 자신의 살을 찌운 에글론 왕을 죽인 것을 말입니다.
한낯 소치는 사람에 불과하던 자가 자신이 가진 막대기만으로 600명의 블레셋 군인들을 죽이는 것을 말입니다.
별 볼일 없는 인물과 보잘 것 없는 능력일지라도 하나님께 붙들리면 가치있게 쓰임받게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때로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주어진 능력이 뛰어나고, 잘 준비된 사람을 사용하신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공식에 매어 계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라도 믿음과 용기가 있으면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보잘 것없는 능력과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영광이 그를 통해 더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 내가 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다는 고백을 듣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장 2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것은 오히려 우리가 돈없고, 백없고,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에 쓰레기 같은 것을 조합해서 작품을 만들어 찍는 사진작가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연약한 자를 하나님의 작품으로 만들어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다카포 식구들은 이처럼 세상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가장 아름답게 쓰임받으시기를 예수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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