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부장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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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마태복음 8장 5절부터 13절까지입니다
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7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서론
여러분은 어떤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나요? 거울? 체중계? 내가 공부하지 않은 곳에서 출제된 시험지? 성적지? 무서운 영화? 사람마다 다 다른 관점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놀라는 포인트가 다른 것 같아요. 또한 그 사람이 놀라는 것을 보면서 인간미도 느끼게 되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짐작할 수도 있죠.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1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놀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이건 그냥 어이쿠 깜짝이야 이 정도의 수준이 아니에요. 어느 정도로 놀란 것이냐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바다에 배를 타고 나갔는데 폭풍을 만나서 죽을 뻔 했는데 예수님께서 폭풍을 조용하게 하시는 것을 보면서 “뭐야!! 예수님이 도대체 어떤 분이길래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나? 이게 말이 되???!!” 놀람의 정도가 굉장한 거죠. 그런데 지금 예수님이 이 정도로 놀라고 계시는 거에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놀라시는 것이 성경에 2번 나오는데 한 번은 예수님의 고향인 갈릴리, 예수님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 곳에서 그들의 믿음 없음을 보고 깜짝 놀라십니다. “이렇게까지 없다고?,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 있어?” 그리고 두번째 놀라는 장면이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것이에요! “내가 지금까지 본 사람 중에서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이게 말이냐”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렇다면 도대체 그의 믿음이 어떻길래 예수님께서 이렇게 놀라시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어떠한 믿음인지 깨닫고 이 믿음을 갖는 우리 청소년부가 되길 소망합니다.
본론(BOOK)
오늘 본문 5절과 6절을 보면 로마의 한 백부장이 나아와 자신의 종을 위해서 간구합니다.
백부장은 어떤 사람이냐, 100명을 말 한마디로 부릴 수 있는 존재에요. 보통 군에서 복무한 경험이 보통 15년 정도 꽤 오랜 시간을 군인으로 복무해야 오를 수 있는 높은 자리이죠. 전도사님도 군대에서 전역한지 얼마 안 됐는데, 군대 안에서 계급은 절대적인 것이어서 자신이 나이가 많더라고 하더라도 자신보다 높은 사람에게 무조건 순종해야 합니다. 평소에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전쟁시에 자신의 부하가 자신의 목숨을 아끼겠다고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수도 있는 거죠. 그렇기에 상급자의 명령은 군대가 원활히 돌아가기 위해서 벌과 징계, 사안이 심각하다면 처형을 통해 명령을 듣지 않는 사람은 이렇게 된다!를 보여줌으로 명령을 무조건 지키게 만듭니다. 특히나 오늘 본문의 백부장은 지금의 군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막강한 권력을 가진 상황이에요. 실제로 전쟁을 경험하였고, 지금 이스라엘은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는 식민지이기 때문이에요. 그렇기에 백부장은 실전 경험이 많은 장교가 맡게 되어있어요.
백부장이 어떠한 사람인지 알겠죠? 엄청난 힘과 권력을 가진, 자신의 말 한마디로 자신 아래에 있는 군사들을 부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백부장이 오늘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합니다”
그 때 당시의 하인은 어떠한 존재였는가? 당시의 하인은 한마디로 사고파는 물건에 불과했어요. 따라서 어디 아파? 어떡해.. 이런 어떤 인격적인 접근 자체가 없었던 시대였어요. 하인으로 쓰다가 몸이 아프기 시작한다면 그냥 갔다가 버리고 다른 하인을 사면 되는 거죠. 완전 쓰다가 고장나면 버리는 소모품과 같은 존재였어요. 그런데 백부장은 별 가치가 없는 종, 심지어 병들어서 제 역할도 못하는 종을 위해서 예수님께 나아와 도움을 요청합니다. 백부장은 하인을 하나의 인격으로, 사람으로 대했습니다. 심지어 유대인들은 로마 군대를 경멸하는 사회적 편견이 있었고, 반면 로마사람들은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을 멸시하여, 서로 편견과 증오의 벽이 있었던 분위기입니다. 또한 백부장은 남의 시선도 있고, 사회적 체면도 있었지만 로마 장교가 유대인에게 찾아와서 자기 일도 아닌 자기 종의 일을 예수님께 간절히 부탁합니다.
백부장의 하인을 사랑하는 마음과 예수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는 모습에 예수님의 마음이 움직이십니다.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 그 때에 백부장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이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예수님, 아.. 죄송한데 제 집이 드러워가지고… 집 정리하기 귀찮으니까 그냥 오시지 말고 대충 빠르게 해주세요” 이런 내용일까요? 전혀 아니에요. 예수님 저는 당신을 집으로 받아들일 자격이 없습니다… 이렇게 귀한 분을 어떻게 추한 저의 집에 들어오게 하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이방인이에요.. 제 집에 오면 예수님을 힘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말씀으로 하셔도 충분할 것을 믿습니다.
지금 예수님과 제 하인이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은 아니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하인이 나을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충분히 그러실 분이십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만으로 하인이 나을 것을 확신하고 있는데, 그 이유를 9절에서 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수하들에게 말 한마디로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무엇을 만들라 하면 만들어져 있고, 무엇을 하라 그러면 하게 됩니다. 내 수하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다면 예수님은 말씀을 하는 것 만으로도 질병을 낫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백부장의 믿음의 고백을 들으시고 진짜 깜짝 놀라셔요. 딥 쇼킹하셔요. 내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에 이만한 믿음을 본적이 없다. 심지어 백부장은 이방인이지만 유대인들보다 더 대단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이 왜 이리 놀라시냐면 예수님이 만난 2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요. 첫 번째 내 앞에서 당장 바로 지금 여기에서 기적을 보여달라! 롸잇나우! 이러는 사람들이었어요. 병들어 있는 나를 고쳐주세요. 나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이럴 수 있죠. 그런데 그 와중에 마태복음 16장 1절을 보면 _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심지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오는 경우도 있었죠. 지금 당장 나에게 기적을 보여줘봐요! 그러면 믿을께요. 아이 못하네. 어떻게 당신이 하나님의 사람이야?
또 그들과 다르게 두 번째 부류의 사람이 있어요. 예수님의 기적을 수 없이 보았지만 그럼에도 예수님을 믿지 못했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인데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했어요. 여기서 누룩은 이스트와 같이 빵을 만드는 발효 효소인데 빵 반죽에 아주 소량 들어가지만 빵 반죽 전체에 영향을 주고 변화 시킨다는 성질을 뜻해요.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을 부패되어 있음을 지적하신 것이에요. 그런데 제자들은 잘 못 알아듣고 본인들에게 빵이 없는데 예수님이 빵을 찾으시는가보다 하고 허둥지둥 거리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오병이어와 칠병이어를 통해서 예수님에게 있어서 빵이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요.
그렇게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기적을 눈으로 직접 보길 원하고, 눈으로 보았으나 예수님을 온전히 믿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백부장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권위 있는 분이시기에 당신이 말씀하시면 하인이 무조건 나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만났던 어떤 사람보다 믿음이 컸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과 함께 천국에 있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유대인, 혈통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밖에 없는 자인 유대인들은 그 천국에서 빼앗겨 울며 이를 갈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백부장에게 가라, 네가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백부장에게 말씀하자마자 즉시 하인이 나았습니다. 백부장은 일말의 고민조차 없었습니다. 예수님께 이렇게 멋있게 고백했는데, 낫기는 다 낫는데 80퍼센트만 낫고 20퍼센트는 안 나으면 어떡하지?,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1주 정도 뒤에 나으면 어떡하지? 이러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중풍병 걸린 하인을 무조건 낫게하시라 믿고 돌아가는 백부장의 발걸음은 어떠했을까요? 고민하면서, 걱정하면서 돌아갔을까요? 이미 나았다고 믿고 돌아갔을 것입니다. “믿은 대로, 즉시” 그리고 돌아가서 하인의 병이 깨끗하네 나은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살아계심, 예수님께 진심으로 감사해했을 것입니다.
(LOOK)
하나님께서 이 백부장의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2가지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1. 나는 백부장과 같은 믿음이 있습니까? 따라해볼까요?
교회에 오래 있었다고 해서 결코 이러한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신 많은 기적들을 보아도 이러한 믿음을 가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제자들을 보세요. 5개의 떡과 2개의 물고기로 오천명을 먹이신 예수님 앞에서 빵을 걱정하잖아요. 우리는 하나님께 수 없이 외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를 보여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죠 하지만 우리는 그 기적을 보아도 기적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말짱 도로묵입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말도 안되는 일이 있어났다며,
올 한해 우리는 코로나로 오랜시간 흩어져 있었습니다. 얼굴을 마주할 수 없었고, 힘든 시기를 겪고나서야 마스크를 쓴 얼굴을 보아야 했고, 같이 앉아서 편하게 음식도 먹지 못하고, 서로의 삶을 나누기 어렵게 되었죠. 그런데 백부장이 믿은 것을 우리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물리적으로 거리가 떨어져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공간을 뛰어넘어 하인에게 역사하실 것이라는 사실 믿었던 것을 말이죠. 우리는 이미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임이 믿어지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했고, 흩어져서 예배를 드리지만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경험했죠. 하지만 또 제자들처럼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하나님을 또 다시 의심하겠죠.
오늘 보아서 알겠지만 믿음은 인생을 바꾸어 놓아요. 백부장은 처음에 자신의 하인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의 믿음으로 본인의 인생이 바뀌어 버립니다. 예수님에게 영원한 나라, 천국을 약속 받습니다. 이러한 믿음 우리에게 있습니까?
2. 나는 누군가에게 백부장과 같은 존재인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백부장의 하인, 중풍병 걸린 그 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부장을 주인으로 둔 덕분에 중풍병을 고침 받게 됩니다. 그리고 백부장을 통해서 이야기를 듣게 되겠죠. 내가 너를 낫게 하기 위해서 유대인인 예수님을 찾아서 만났으며, 그 분이 네 믿음대로 되리라 말한 그 때에 너가 나았다. 오늘 백부장은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 예수님 앞에 나옵니다. 또한 백부장은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그 하인에게 전달합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소모품에 불과하던 그 하인을 하나님께 은혜 입은 자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코로나로 본인의 신앙조차 지키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본질상 우리에게 본인의 유익을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고 가르쳐요. 본인의 신앙만 잘 지키면 된다고 가르치지 않아요. 이제는 매 주일마다 고백하는 주기도문의 첫 구절을 보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라고 고백하죠. 주문 외우듯이 하는 그 고백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부를 때에 ‘나의’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을 나를 공동체로 부르셨습니다. 나를 홀로 세워두지 않으셧고, 누군가와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게 하셨어요. 그렇다면 나는 지금 누군가를 위해 백부장이 하인을 책임졌던 것과 같이 책임지며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는가? 나눔 없이 혼자 예배드리고 있는 친구가 있다면 함께 나눠야 하지 않는가? 최소한 나는 온라인으로 예배 드리고 있다면 지금 온라인으로 드리고 않고 유튜브 보고 있을, 학원 강의를 듣고 있을 타인의 영혼을 위해서 나는 과연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소모품으로 여기는 하인을 위해서 백부장이 움직였는데, 하나님의 공동체, 가족이라고 부르는 내 친구들, 내 믿음의 동역자를 위해서 나는 과연 어떠한 노력을 하였나?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아야 할 때입니다.
결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2가지였는데요.
첫번째 나는 백부장과 같은 믿음을 가지었는가? 백부장과 똑같은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에요. 백부장과 같이 하나님을 신뢰하는가? 단순히 하나님을 믿기 위해 기적들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적을 행하실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두번째 나는 누군가에게 백부장과 같은 존재였는가? 이방인의 하인을 위해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이 내 동역자의 영혼을 버려두시겠습니까? 그렇다면 나는 하나님께 그것을 구했는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 2가지 질문을 하고 계신다면 그 질문에 빠르게 시험문제에 답을 내는 것처럼 빠르게 내지 말고 천천히 고민하고 답을 해봅시다. 주님 백부장과 같은 믿음이 제게 있습니까?
이 시간 잠시 질문에 고민하면서 찬양하고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믿네라는 찬양입니다. 가사에 보면 내게 허락하신 시련을 통해 나의 믿음 더욱 강하게 자라나고.. 믿음은 시련과 어려움이 있을 때에 강해집니다. 그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때로는 좌절하게 되고,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는 것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결코 내 앞에 있는 상황이 하나님보다 크지 않다는 것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앞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이 시간 기도할 때에 하나님 당신을 믿는 믿음을 나에게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합시다. 수 없이 기적을 구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기적을 보아도 그것이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키셨음을 믿는 믿음이 제게는 없었습니다. 백부장이 예수님은 공간을 초월하여 말씀으로 낫게하실 것이라고 믿었던 그 믿음을 저에게 주시옵소서. 이 시간부터 내 앞에 있는 상황을 보지 않고, 바다가 갈라지지 않는다고 상황을 보며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보게 하옵소서. 이렇게 믿음을 달라고 주님 한 번 부르짖고 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이 시간 한 번 더 기도 할 때에는 믿음의 동역자,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나의 믿음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공동체로 부르셨다는 것을 알지만, 나의 유익와 편함을 위해 때로는 무시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이방인의 하인도 책임지시고 고치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영혼과 나의 동역자인 내 친구의 영혼을 내버려 두시지 않으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 나의 유익을 추구하는 마음을 용서하시고 내 친구들을 붙잡아 주시옵소서. 나에게 내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동역자들을 위해서 주님 한 번 부르짖고 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하나님을 믿기보다는 나의 상황을 탓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보았으나 기적을 일으키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하나님을 믿기로 결단하였습니다. 이제껏 은혜 주신이도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겠습니다. 주님이 주신 은혜를 잊어버리고 또 다시 처음처럼 구하지 않겠습니다. 또한 신앙을 지키는 것에 있어서 이기적이었음을 보게 됩니다. 나의 게으름은 숨기고, 나의 신앙의 회복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부르셨고, 함께 헤쳐나가게 하셨음을 기억하겠습니다. 나의 삶 가운데 역사하셔서 믿음으로 나와 나에게 붙여주신 동역자를 위해 기도하게 하여 주옵소서. 백부장의 믿음의 고백에 즉시 응답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의 결단에 즉시 응답하실 줄 믿사오며,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