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적 앞에선 유대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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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오늘 받을 하나님의 말씀은 느헤미야 4장 1절-6절 말씀입니다
1.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
2.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일러 말하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 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
3.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이르되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4.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5. 주 앞에서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며 그들의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를 노하시게 하였음이니이다 하고
6.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
설교 제목: 대적 앞에선 유대 민족
서론
코로나로 집에 많이 있게 되면서, 유튜브를 보는 시간이 늘어난다. 보면 댓글창이 심심치 않게 막혀 있는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논란이 되거나, 특정 인물에 대해서 지나치게 비판적으로 얘기하는 댓글들이 있다.
악플이 너무나도 심각하게 달리게 될 경우에, 그것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변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나를 위해서 조언하는 소리가 아니라, 악플, 인격적인 모독과 상처가 되는 말들을 듣게 될 때, 다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악플은 너무나 먼 이야기이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 속에서도 칭찬이 아니라 비난을 보게 된다. 놀리고 비웃고 공격하는 대화가 존재한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칭찬도 듣고 비난도 듣지만, 희한하게 칭찬은 머릿속에서 쉽게 사라지는 편이지만, 비난은 머리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나를 괴롭힙니다. 이렇게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부정편향’이라고 해요. 부정적인 것을 향해 치우쳐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상대방의 부정적인 발언에 속 아파하고, 더 오랫동안 기억한다. 실제로 긍정적인 말을 들으면 우리 몸에서는 도파민이나 옥시토신의 분비가 증가하지만, 부정적인 말을 들으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분비가 증가한다. 우리를 기분 좋게 하는 호르몬의 지속 시간은 짧다. 그러나 스트레스 호르몬은 26시간 이상 지속되기도 하기 때문에 한 번 마음의 상처를 입으면 아물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을 비난한 사람의 말을 수없이 되새기면서 상황을 과장하고 기억 속에 이를 각인시킨다.(부정적인 것은 농담이어도 기분 나쁘다)
물론 그러한 부정적인 것들을 하나도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라면 괜찮겠지만, 우리는 쉽게 상처받는 연약한 사람들이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실제로 상처 받기도 합니다. 우리의 실수와 같이 잘못한 행동으로 비난 받기도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비난 받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의 느헤미야와 유대 민족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던 중에 하나님의 대적들로부터 부정적인 비웃음과 비난을 받게 됩니다.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비난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대적들 앞에 느헤미야와 유대인들은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길 원합니다.
본론
느헤미야 배경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무너진 성벽의 이야기를 듣고 슬퍼하며 기도하던 중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전반적인 상황을 확인한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놓고 하나님께서 도우시니 성벽을 쌓자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두 눈으로 경험하고 나자 소망을 갖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성벽을 쌓기 시작합니다.
대적의 방해(1-3절)
변화가 시작되어 진행되어 가는 가운데, 우리가 잊고 있었던 빌런이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 1절과 3절에 등장합니다.
산발랏과 도비야! 언제 등장했었나요?
느헤미야 2장 10절에 등장했었습니다.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하게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산발랏과 도비야는 느헤미야가 이스라엘 땅에 도착하자 그 소식을 듣고 근심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시작되는 것을 보았다면 당연히 그것을 축하하며, 잘 진행 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오히려 느헤미야를 통해서 시작되는 하나님의 일을 보고 근심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랬습니다. 그렇게 근심했던 2명의 빌런이 한참 잊혀졌다가 오늘 다시 등장합니다.
유대인들의 성벽
오늘 빌런인 산발랏의 입장에서 생각해봅시다. 이스라엘에 느헤미야라는 새로운 총독이 엄청난 병력과 함께 도착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에 새로운 변화가 시도되는 것이 불편하고 그로 인해서 근심하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예루살렘 성벽은 세워지지 않을 것이야! 내가 지금껏 그들의 상태를 보았기 때문에 알아! 그들은 성벽을 건축하기도 전에 무너지고 말꺼야! 성벽을 쌓기 위해서는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그들은 그지 못해서 뿔뿔이 흩어지고 말꺼야! 산발랏과 도비야! 2명의 빌런은 이들의 무너진 마음을 보았기 때문에 시작도 못할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보니 성이 건축되고 있었습니다. 1절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가 되어서 건축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분노합니다. 산발랏이 지금 그래요! 건축 될 일이 없는데… 성이 건축되고 있는 거에요! 그렇기에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성벽을 건축하는 것을 본격적으로 막으려 합니다.
빌런은 과거에 이렇게 성벽을 지으려 했을 때에 선조들이 사용했던 방법이 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에스라 4장 7절’ 아닥사스다 때에 비슬람과 미드르닷과 다브엘과 그의 동료들이(즉 대적들이) 바사 왕 아닥사스다에게 글을 올렸으니’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나라의 왕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고소했는데 무엇이라 하였는가?
‘에스라 4장 13절’ 이제 왕은 아시옵소서 만일 이 성읍을 건축하고 그 성곽을 완공하면 저 무리가 다시는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바치지 아니하리니 결국 왕들에게 손해가 되리이다
통치하던 왕에게, 이들이 만약 성벽 증축을 시작하면 왕에게 반역할 것이다라고 고소했단 말이죠. 실제로 그렇게 해서 성벽 건축을 제지하고 멈추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느헤미야가 공식적으로 페르시아 왕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왕이 준 재물을 가지고 성벽 중축을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이것은 선생님이 반장을 시켜서 무엇을 걷어 오라고 했는데, 반에서 친구들이 반장이 하는 것이 맘에 안든다고 선생님에게 그것을 이른다고 하는거랑 마찬가지죠.
그래서 이 행동을 할 수 없기에 산발랏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무시하는 강력한 여론을 조성합니다. 이렇게 막 무시하고, 비꼬고, 비웃기 시작합니다. 흔히 말하는 악플, 부정적인 소리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로 인해 지치고 마음이 무너져서 관두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산발랏은 자기 친구들과 사마리아 군인들 앞에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 연약한 유대인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가? 성을 재건하려는가? 제사를 드릴 작정인가? 하루에 공사를 끝마칠 셈인가? 다 타 버린 잿더미 속에서 돌을 끄집어내어 다시 사용하겠다는 말인가?” 게다가 암몬 사람 도비야는 이렇게 소문을 내고 다녔습니다. “저들이 건축하는 것은 여우가 올라가도 무너질 것이다!”
이것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부정적인 소리를 들었을 때, 해도 되지 않아! 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힘이 빠집니까. 여러분이 힘들게 공부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머리가 좋게 태어나서 공부 잘하는 형이나 언니가 갑자기 나와서 000 공부한대! 그 멍청한 머리 가지고 공부한대! 이런 얘기 들었다면, 공부하겠습니까? 탈탈 털리겠죠. 이렇게 정신 공격을 한 것입니다. 멀쩡한 정신으로도 어려운 일을 멘탈 공격, 악플, 부정적인 말로 포기하게 한 것입니다.
근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것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살펴보기 전에, 도대체 왜 산발랏과 도비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는 것을 그토록 강력하게 방해한 것일까요? 도대체 왜, 무엇을 얻고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적의 방해 속에서도 성전을 완공한지 거의 71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벽이 여전히 훼파된 상태에 있어서 안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주변 이방 사람들로부터 구별된 삶올 사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다.
성벽이 없어서 안전이 보장되지 못하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적, 산발랏과 도비야가 예루살렘 성벽이 중축되지 못하도록 온갖 노력을 다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가 될 경우에 보유하게 될 힘 걱정했습니다.
에스라 4:7~23은 성벽 쌓는 것을 반대하는 고소장의 내용인데요. 그 본문을 살펴보면 대적들은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이스라엘이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아갈 때, 이스라엘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던 가장 위대한 왕.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는 엄청난 땅을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사진
에스라 4장 20절 “옛적에는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큰 군왕(다윗, 솔로몬)들이 있어서 강 건너편 모든 땅이 그들에게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다 바쳤도다”
하지만 반면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강대국, 큰 나라 사이에서 누가 나를 도와줄까 저울질 하다가 멸망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갈 때, 번성했으며, 하나님을 버렸을 때, 멸망했습니다.
이 진리,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에게 속하여 있을 때 강력하다는 사실을 산발랏과 도비야가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벽이 건축된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히 순종하고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게 될 것임을 알았으며, 그것을 막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성벽 중축을 중단시키려고 결사적으로 시도하는 것이다. 유언비어와 비웃음의 소리를 통해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려고 합니다.
2. 느헤미야의 기도로 성벽 공사에 힘을 모으는 유다 사람들(4-6절)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산발랏과 도비야가 비웃고 놀리고 조롱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는 이렇게 비웃고 비난했을 때 분명히 성벽 건축이 멈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정적인 메세지들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에 성벽을 쌓으려 했으나 실패했던 과거들이 떠오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성벽을 쌓던 자리에서 도망치고 성벽을 다시는 쌓지 않으리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6절에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
오히려 성벽 건축을 포기할 줄 알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을 모아 더욱 열심히 일을 하였고, 그 결과로 구멍난 성벽은 메꿔지고 무너진 성벽은 세워져서 성벽이 전부 다 연결 되어 하나가 되고 높이가 원래 성벽의 절반이나 세워진 것입니다.
사실 산발랏과 도비야가 비웃고 비난할 때에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현대인의 성경 느헤미야 4장 4-5절
그래서 나는 이렇게 기도하였다. '우리 하나님이시여, 들으소서. 우리가 모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저들의 조롱하는 말이 자기들에게 돌아가게 하시고 저들은 외국 땅에 포로가 되게 하소서. 저들이 주의 성을 재건하는 우리를 모욕하였습니다. 저들의 악을 묵인하지 마시고 저들의 죄를 용서하지 마소서.’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느헤미야에게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길 원하는 소원을 주시고, 그 목적이 구현 되도록 페르시아왕의 마음을 움직여서 성벽 공사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셨다. 그분이 성벽 건축을 시작하게 해 주셨고 그 공사를 중단하도록 온갖 계략을 꾸미는 대적의 상황도 간파하고 계신 분이십니다.
느헤미야는 지금 그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들으시옵소서. 저들이 우리를 업신 여깁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을 욕하였지만, 결국 이 일을 시작하신 이도 하나님이시고 이 일을 할 수 있게 하신 이도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을 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시여, 저들이 우리에게 욕 한 것들을 그대로 저들이 당하게 하여 주세요!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실까요?
출애굽기 6장 5절 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의 종이 되어서 너무나 힘든 삶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그 아파하는 작은 신음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이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지금 하나님께서 일하게 하신 느헤미야의 그 기도, 그 부르짖음을 하나님께서는 들으셨을까요? 분명히 들으셨을 것이고, 하나님을 욕한 자들에게 그 저주와 비웃음을 그대로 돌려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의 기도를 땅에 떨어뜨리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지금의 기도는 느헤미야의 기도 뿐이었습니다. 느헤미야가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나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혼자만 확신하고 있었다면, 예루살렘 성벽 건축은 계속 이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벽 건축이 이어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기도를 한 느헤미야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전부가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느헤미야와 함께 하면서 느헤미야와 함께하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듣고, 느헤미야가 하나님께 하는 기도를 들었을 때에,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생겼던 것입니다. 세상의 대적들이 외치는 비웃음과 비난보다 더 크게 하나님의 향한 믿음이 세워진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벽은 고작 절반 정도 세워졌지만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의 믿음은 더 견고하게 세워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을 확신하며 더 열심히 하나님의 일인 성벽 세우는 일에 전념하였던 것입니다.
결론
결론을 맺으려 합니다. 오늘 초반 부분에 2가지에 대해서 얘기하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의 대적들은 무엇을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비웃으며 비난하였는가 그리고 그러한 대적들 앞에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하였는가이죠.
첫번째 문제, 하나님의 대적들은 느헤미야를 통해 세워지는 예루살렘 성벽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갈 때 갖게 되는 강력한 힘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방해했습니다.
세상도 우리가 예배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그리고 차라리 우리보고 더 괜찮아 보이는 것에 집중하게 하고 시선을 빼앗기게 만듭니다. 그래도 하나님께 우리의 시선을 돌리면, 우리를 향해 비난하고 비웃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그 시간에 차라리 영어 단어 하나를 외우고 그 시간에 부족한 잠이나 더 자! 하나님이 너희를 사용하시겠어?
하지만 그렇게 세상이 우리를 방해하는 것은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될 때 하나님의 사람은 가장 강력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해 세상이 감당치 못하다고 소리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 안에 어떻게든 속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더 예배를 잘 드리겠다고 내 시간을 내어드려야 합니다. 내 마음에 초점을 계속해서 하나님을 향해 돌려야 합니다. 우리는 본질상 1초도 하나님만을 생각하기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중심에 하나님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두번째 문제, 대적들의 비난과 비웃음 앞에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성벽을 쌓았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는 내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도록 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장벽들을 만났을 때 주님께 확신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처음에는 하나님의 기도를 100퍼센트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나서는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우리도 확신하며 기도합시다.
1 예배를 위한 기도
하나님의 대적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훼방하고 방해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성벽을 재건하는 것을 막고자 비웃고 유언비어를 퍼트리는데, 그러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벽을 쌓게 되면, 그 안에서 안전한 가운데 올바르게 제식(공동체 예배)과 삶의 예배가 회복될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영적으로 회복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 안에 거할 때 이스라엘은 강력한 힘을 발휘했습니다.(다윗과 솔로몬, 히스기야 시대) 그것을 두려워하였던 하나님의 대적은 계속 방해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갈 때 가장 강력한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되길 소망한다. 세상도 그것을 알기에 계속해서 방해려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벽을 건축하여 하나님 안에 거하려고 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안에 거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2 예배를 위한 기도
하나님의 대적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강하게 비난하고 비웃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에 실패했던 것이 떠올라 다시 도망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에 느헤미야가 기도합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제는 그러한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느헤미야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듣고, 느헤미야의 기도를 들으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 영적 분별력이 생겼습니다. 그렇기에 백성이 마음을 모아 계속 성벽을 쌓았습니다. 무너져있던 곳이 세워지고 끊어진 곳이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는 성벽이 완성됩니다.
내일 예배를 위해서 기도할 때, 우리들도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것을 확신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러한 믿음을 달라고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