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one Analysis

Overall tone of the ser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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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otion 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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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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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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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guage Tone
Analyt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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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fi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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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ta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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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 Tone
Open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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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cientious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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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otional 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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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e of specific sentences

Tones
Emotion
Anger
Disgust
Fear
Joy
Sadness
Language
Analytical
Confident
Tentative
Social Tendencies
Openness
Conscientiousness
Extraversion
Agreeableness
Emotional 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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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오늘 받을 하나님의 말씀은 느헤미야 3장 1-5절 말씀입니다
1 그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2 그 다음은 여리고 사람들이 건축하였고 또 그 다음은 이므리의 아들 삭굴이 건축하였으며
3 어문은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건축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4 그 다음은 학고스의 손자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므세사벨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바아나의 아들 사독이 중수하였고
5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들의 주인들의 공사를 분담하지 아니하였으며
설교 제목: 소망을 가진 자의 실제적인 행동
서론
유니세프
후원의 광고를 보면, 아프리카나, 일부 도움이 필요한 국가의 경우, 어린 아이들이 더러운 물을 마시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근데 그들이 그 더러운 물을 마시는 이유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1. 그것이 더러운 물인지 몰라서 - 마시면 안되는 물인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기 때문에. 2. 더러운 것인지 알지만, 그것을 해결할 힘이 없어서, 더러워도 마시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그렇다면 이들에게 어떻게 해야할까요?
문제인 것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지금 현 상황이 문제임을 알려줘야 하고
문제를 알고 있지만 해결할 힘이 없는 사람에게는 물을 소독하고 정화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고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지원해 줘야 한다는 것 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펴보는 느헤미야 당시 이스라엘의 상태가 그랬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이 폐허가 된 상태는 꽤 오래된 일,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은 겨우 자기 몸을 지킬 터를 짓고 살아갔다.
아주 작은 공간입니다.
느헤미야 2장 14절 “앞으로 나아가 샘문과 왕의 못에 이르러서는 탄 짐승이 지나갈 곳이 없는지라” 발 딛을 곳조차 없는 상태인 것.
발 딛을 수 조차 없는 상태가 원래 상태가 아닙니다.
원래 상태는 성벽이 있어서 보호를 받는 것이 마땅하고 성문이 있어서 필요한 사람들이 왕래하는 것이 건강한 상태, 원래 성의 모습입니다.
그러한 곳에서 사람들을 살아가고 있으며, 심지어 그 곳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사람들에게 예루살렘은 어떠한 이미지였 겠는가.
그곳은 원래부터 당연히 그러한 곳이다.
건강했던 원래의 모습을 보지 않았기에, 지금 상태가 괜찮은 걸로 알고 있는 겁니다.
또 그와 다르게 건강한 상태가 무엇인지 알고 있기에, 지금 현 상황이 문제 인 것을 문제인 것을 아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벽을 쌓기 위해 여러 번 시도했지만 번번히 실패했기에 다시는 시도하고 싶지 않은 상태, 변화를 시도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아주 약한 밧줄에 묶여 있지만 그것에 적응되어서 더 이상 변화를 시도할 수 없는 코끼리처럼.
그냥 살던대로 살자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살면 안된다는 것을 알지만 나 혼자서는 어떻게 할 수 없다며 주변을 비난하며 포기해버린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자신이 아픈지 모르고, 변화를 시도할 힘조차 없는 그런 예루살렘의 이야기를 듣고, 예루살렘의 무너진 성벽의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느헤미야가 등장합니다.
느헤미야는 먼 타지에 고통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고, 그런 이스라엘을 보며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공감하며,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성벽을 쌓기 위해 실제적으로 계획 하였고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때에, 느헤미야의 생각보다 더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결국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3일동안 무너진 성벽의 상태를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합니다.
그리고 무너져버린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도 보았습니다.
그렇게 무너져 있는 성벽을 보며, 아픈지 모르고 있는, 아픈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여러번 실패했기에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 눈으로 확인합니다.
그리고 나서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 모아놓고 토론을 합니다.
“지금 이 상태는 우리의 수치입니다.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맙시다.”
지금까지가 저번주까지 함께 살펴본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실 전부를 다 읽어야 하지만 3장 1-5절까지만 읽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별로 흥미있는 말씀은 아닙니다.
계속 반복되는 말이 등장합니다.
누가 어디를 건축했다.
수리했다.
그 다음은 누가 어디를 수리했다.
알지 못하는 지명과 이름들이 계속 나옵니다.
사실 집중되지 않는 내용이고 익숙하지 않으며, 재미없는 구절입니다.
하지만 3장은 한가지 숨겨놓은 것이 있는데 그 어떤 것보다 ‘극적인 반전.
큰 반전이 일어나는 장’입니다.
어떤 반전이냐! 바로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동으로 옮기는 때입니다.
우리 잠깐 굽은 허리를 쫙 펴볼까요?
기지개를 피고 허리를 딱 펴 봅시다.
좋은 자세.
여러분은 이 자세를 얼마나 유지할 수 있나요? 여러분도 굉장히 불편하지 않나요? 좋은 자세를 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히 몸에 좋을 텐데, 오히려 굽은 허리가 더 편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사실 그 편한 자세가 우리의 몸을 조금씩 해치고 있습니다.
거북 목과 굽은 허리, 디스크가 낫기 위해서는 좋은 자세를 꾸준히 취해야 합니다.
그런데 바로바로 눈에 보이는 성과가 아니기 때문에, 오랜시간 걸려야 한 것이 티 나기 때문에, 너무나 어려워요.
공부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조금만 공부하면 확 성적이 오른다면,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하겠지만, 안그래도 어려운 공부가, 꾸준히 해도 너무 조금씩 티가 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해도 한 것 같지 않고, 그럴 바에야 안 하는 것이 낫다.
그런데 성벽을 쌓는 것. 사실 너무나 티가 나지 않는 일입니다.
혼자서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포기하고 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비전을 나누자.
그것을 행하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느헤미야의 비전에는 하나님께서 동행하신다는 믿음이 전달 되었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을 도우셔서 완성하실 것이라는 확신에 찬 소망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의 스토리를 듣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을 하셨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스토리인 것입니다.
느헤미야라는 대단한 사람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느헤미야를 쓰기 시작한 것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소망이 보이자, 성과 없어 보이는 오래 걸리는 일을 하기로 결단했습니다.
그토록 황폐했던 땅 속에서 좌절했던 사람들이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말도 안되게 먼 이방 나라에서 느헤미야에게 나타나신 하나님, 또한 그러한 느헤미야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라면, 능히 이 예루살렘의 성벽을 세워지는 것이 허튼 소망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실제적으로 가능하다고 도전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일하신다면, 하나님이 동행하신다면, 일하신다면, 가능하다.
문제를 인식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변화에 대한 소망이 생기자,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그 내용, 행동하기 시작하는 내용이 3장의 말씀이다.
3장 1절, 그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대제사장이 그 형제 제사장과 함께 양문으로 가서 문을 만들어 달았다.
여기서 양문은 제사를 드리기 위해 양을 데리고 들어가는 문입니다.
그러니 제사장은 자신이 맡은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예배를 세워가기 위해 양문을 수리했습니다.
그렇게 양문과 그 주변의 성벽이 세워지자 그 다음은 여리고 사람들이 대제사장이 건축했던 성벽에 이어서 건축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이므리 사람들이 여리고 사람들 옆에서 이어서 건축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 일을 느헤미야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누가 맡아라! 이렇게 나눠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억지로 시키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가 채찍을 손에 쥐고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너네 몫이니 너네가 기한에 맞추서 무조건 완성하는거야!
이렇게 외치며 일하지 않으면 다 죽여버리겠다!
이렇게 감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도우신다는 확신을 가지자.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 일하기로 결심한 사람들을 보자.
세워지겠구나, 그래 진짜 성벽이 다시 세워졌으면 좋겠다.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이야! 라고 생각하며, 성벽이 다시 세워지는 소망을 가지고 있기에 자원한 것입니다.
어린 아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대제사장에서부터 다른 직업을 가진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만큼 스스로 지원하여 성벽을 건축 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다들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지라도 눈치보면서 시작을 못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리더였던 대제사장이 나서서 하는 것을 보며, 용기를 얻었을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내가 할 수 있는 것, 예배를 위해서 지나가는 양문, 이것은 우리의 책임이니 우리가 세우겠다.
이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여리고 사람들이 제사장의 일하는 것을 보며, 그래 내가 많이 할 수 없을지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 만큼이라도 조금만 하자.
돌 하나 옮기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거 하자.
했을 것입니다.
10절을 보면, 그 다음은 하루맙의 아들 여다야가 자기 집과 마주 대한 곳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하삽느야의 아들 핫두스가 중수하였고
그래, 내 집, 앞에 있는 성벽은 내가 책임지겠다.
이렇게 나선 것이죠.
사실 성벽은 엄청 컸습니다.
결코 느헤미야가 열정을 가지고 왔다 하더라도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느헤미야는 이것이 하나님의 일임을 알렸고, 하나님의 일하심인 이 일에 동참 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것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것이 하나님께서 돕는 일이라면, 누군가 방해하더라도 느헤미야가 말한 것처럼 이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이라면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실 것이야.
그러니 성벽이 완성되어서 우리를 보호할 것이야! 믿음으로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본 옆에 사람은 그 마음을 이어, 그 성벽의 옆을 채워 세워간 것입니다.
해야 할 이유가 생기고 그것에 대한 소망이 생기면, 사람은 옆에서 뭐라고 잔소리하지 않아도, 갈구지 않아도 시작하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변화가 필요하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느헤미야와 함께하고 계신 하나님을 믿고 나아갔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고 나가며, 신뢰하고 일을 시작하자는 것입니다.
그 작은 변화가 내 삶에 또 다른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고, 변화한 나를 통해 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변화를 이끌어 낼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어떻게 반응 할 것인가 두가지로 나눠집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소망 되심을 믿고 실제로 행동하며 변화하는 사람과 그 이야기를 들었지만, 내가 원래 살던 대로 살겠다.
나는 변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사람들
오늘 본문, 5절에 드고아 사람들이 그렇게 두 부류로 나눠집니다.
먼저는 열정적으로 성벽 보수에 헌신한 평민, 즉 하나님을 신뢰하며 변화하여 일을 시작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안전과 유익을 위해 작업에서 발을 뺀 귀족,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변화하지 않기로 결단한 사람들
드로아 사람들은 인원이 적기에 할당된 부분도 적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보수하는 일에 열심을 냈던 드고아의 평민들은 할당된 것보다 더 많은 분량의 작업을 기쁘게 감당했다.
5절에서 일을 했던 드고아 사람들이 27절에 보면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한 부분을 중수하여 내민 큰 망대와 마주 대한 곳에서부터 오벨 성벽까지 이르렀느니라.
원래 처음에 했던 것을 다 마치고 더 돕기 위해서 일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숙제 하듯이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내 정성을 다해 하는 것. 하지만 그와 다르게, 그곳의 귀족들은 하나님의 사업이고 뭐고간에 자신들의 안전을 가장 우선시 했다.
그 지역은 지형적으로 게셈 사람들이 쉽게 쳐들어올 수 있는 곳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귀족들은 게셈 사람들에게 아마 뇌물이라도 줘가며 자신들의 안전을 지키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그들을 화나게 하면 안되고 그들이 싫어하는 일은 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옥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하나님의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저 참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소극적이지만, 반대하는 것입니다.
안전하고 편하게 가진 것들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업에 동참하지 않는 것은, 그것을 반대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외면하는 것이다.
똑같이 느헤미야를 통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성벽을 세워야만 합니다.
하지만 반응은 극명하게 나눠졌습니다.
그 다음은 누가 등장해야만 합니까.
그 다음은 우리이길 소망합니다.
저번주에 어느 영역이 세워지길 바라는지 질문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영역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 나는 오늘 내가 세워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행동에 옮기겠습니까
결단한대로 행동 하기만 하면 우리는 꽤 괜찮은 삶을 살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죠.
매번 실패하고, 포기하는 것이 익숙해지도 합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를 통해서 보게 되는 것은 삶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있으며, 그것을 믿고 확신하며 나아가는 자를 통해 하나님은 일 하실 것입니다.
과거에 그렇게 일하셨기에, 앞으로도 그렇게 일하실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벽은 이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을 통해 세워졌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장의 이름만 나오고 그와 함께 한 사람들 이렇게 적혀있기도 합니다.
느헤미야 3장에 기록 된 사람들이 있지만, 적혀 있는 사람보다 많은 사람들이 기록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적혀져 있지 않는 기타 등등.
기타 등등의 헌신을 통해 예루살렘 성벽은 세워지게 됩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우리 삶에서 무너진 영역이 어디에 있습니까?
물론 사람마다 너무나 다를 것이에요.
친구들과의 관계의 문제, 부모님과의 관계의 문제, 학업의 문제, 진로의 문제,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
청소년부 예배의 모습은 기쁘게 찬양하며, 뜨겁게 기도하는 모습이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모이지 못하면서, 그 모습들이 아쉽지만 사그라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특히 우리 청소년부가 예배시간과 장소의 변동도 많았어요.
11시에 예배 드리다가, 코로나로 인해 저녁 8시에 예배드렸고, 중학생들을 위해서 5시 30분으로 변동하여서 지금 시간대에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드리는 예배 시간도 임시로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뜨겁게 예배 드리던 시간과 공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솔로몬 홀, 11시 예배로 돌아가서 드려야 합니다.
이제 원래 청소년부 시간대로 변경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시간과 장소를 변경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시간과 장소를 변경하는 것에 앞서서 예배를 향한 우리의 마음의 변화가 먼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시간과 장소만 변경한다고 다시 뜨겁게 예배 드렸던 때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먼저 우리가 예배를 위해서, 찬양과 설교와 기도를 위해서, 기도로 준비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말씀처럼 느헤미야가 성벽을 세우고 있는 것처럼, 각 모든 사람이 함께 일어나 자기 집 앞에 있는 영역, 성벽을 세워가는 것처럼, 우리도 각자 일어나 예배를 세워가길 원합니다.
설교하는 자는 말씀을 연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듣는자가 되고, 교사는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가 되고 그 은혜를 흘려 보내는 자가 되기 위해 기도하고, 예배팀은 단순히 찬양을 부르고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묵상하는 것. 또한 예배에 참여하는 자들은 시간이 되어서 늦게 자리에 오는 것이 아니라, 일찍 마음을 준비하고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찬양하고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먼저 선생님들이 먼저 기도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닫혀있던 청소년부실을 열고, 그곳에서 토요일, 주일에 시간을 내어 기도로 준비하고자 합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선에서, 함께 기도로 준비했으면 좋겠습니다.
거창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을 최선을 다해 하는 것.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성벽을 세우실 것을 신뢰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세우실 것을 신뢰하며 소망하며, 우리가 맡은 바 최선을 다하겠다고 결단할 때, 그 때에 우리가 해야할 일들이 분명히 보일 것 입니다.
결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제로 행동에 옮길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믿음과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누군가는 변화에 대해서 불필요하다고 느꼈을수도 있습니다.
또 누군가는 실패로 인해서 두려웠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느헤미야와 함께 하신 하나님, 이스라엘을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였고,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이뤄질 것을 소망했습니다.
그렇기에 행동에 옮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양문과 같이 거창한 것, 감당하기 어려운 것을 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무조건 어떻게든 하라는 것이 아니라, 할 힘이 없다면, 에너지가 많지 않다면, 조금만이라도 괜찮다.
아주 사소하더라도, 우리 집 앞에 있는 성벽을 내가 쌓겠다! 라고 결단하는 것이죠.
나의 예배를 위해서, 내가 기도하겠다.
예배를 잘 드리기 위해서 조금 더 일찍 와 묵상하겠다.
이렇게 말이죠.
이렇게 변화의 흐름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두 부류로 나눠집니다.
드고아 사람 중 평민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리라.
소망을 품고 행동에 옮겼지만 드고아 귀족들은 하나님을 소망하기 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물을 믿었습니다.
그것을 세겜 사람에게 바치면 그것이 나를 지켜 줄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소망해서 변화를 추구하는 것보다 내 목숨이나 지키자고 생각한 것이죠.
여러분은 어떤 길을 선택하길 원합니까?
성벽을 세우기 위해 자신의 것을 포기했던 수 많은 사람들처럼, 이름도 적히지 않아 알 수 없는 이들처럼 우리도 결단하고 행동으로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나 혼자서 어렵다면 도움을 요청해도 좋아요.
여러분을 도와줄 사람을 찾고, 도움을 요청하세요.
아주 작은 행동이라도 그것을 행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입니다.
오늘 찬양처럼 주의 말씀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이뤄질 것을 소망할 때, 우리는 행동하게 됩니다.아무리 해야하는 것을 알아도 가능성, 소망이 없다면, 우리는 1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하나님이 하신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이 일으키실 변화를 소망하게 되고요.
그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야말로 소망을 가진 자가 실제적인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먼저 우리는 믿음을 구하며, 하나님께서 주실 소망을 위해 기도합시다.
나에게 하나님이 행하신다는 믿음을 주옵소서,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변화를 소망하게 하옵소서.
실제적인 변화를 위해서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예배의 회복을 위해 내가 작은 것 결단하게 하옵소서.
거창한 것 아니라, 내가 감당하지 못 할 것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것 보여주소서.
그리고 행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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