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개오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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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 기도 :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포되게 하시고 듣는 마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이 심기어 하나님의 열매가 나타나는 시간 되게 하여주옵소서. 이시간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고 역사하실 줄 믿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본문 읽기 :
누가복음 19장 1절부터 10절 말씀을 번갈아가며 읽겠습니다.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여러분 안녕하세요~ 요즘 다들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시험기간인 친구들도 있고 시험이 끝나서 여유로운 친구들도 있죠? 또 어떤 친구들은 연말이어서 곧 있으면 20살이 된다고 좋아하는 고3 친구들도 있을거에요. 또 교회적으로는 성탄절 시즌을 맞이해서 예수님의 오신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어요. 그래서 오늘은 예수님의 오심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도대체 왜 오셨을까요? 오늘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삭개오와 예수님이 만나는 이야기를 통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1절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여리고는 부요한 도시였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오고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는 지리적 중심지역으로 경제, 사회, 정치의 핵심적 역할을 감당했어요 쉽게 설명하면 서울 옆에 있는 인천, 경기도와 같은 도시인거죠. 그 뿐 아니라 여리고는 향료의 도시요 무역의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큰 세관이 있게 된 것입니다.
2절에서 보면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여러분의 부모님께서 여러분의 이름을 지을 때에 어떻게 지었을까요? 부모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그 아이가 자라면서 이렇게 자라면,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이름을 지을거에요. 그렇게 이름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아이들의 이름을 돈 주고 짓기도 하죠.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름은 단순히 사람이나 장소를 뜻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가치와 중요성을 가지고 있어요.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는 역할 뿐만 아니라, 그 이름을 소유한 사람의 기본적 성격을 나타내는 역할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삭개오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일까요? 바로 ‘순결, 정의, 순수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삭개오의 부모님은 그를 낳고 순결하고 깨끗하게 크라고, 또한 정의로운 사람이 되어 줄 것을 바래서 삭개오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그런 부모님의 바램과는 다르게 악랄한 세리장이며, 부자로 자랐습니다.
세리라는 직업은 로마의 식민지 사람들인 유대인에게서 세금을 거둬다가 로마당국에 바치는 일을 하는거에요. 그러니까 유대인인 세리장을 한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일본에 점령당하고 있을 때에 같은 민족인 사람들에게 세금을 받아서 일본에 내는 거에요. 내 옆 집, 앞 집, 초등학교 동창, 친척들 상관할 거 없이 가혹하게 세금을 붙입니다. 그런데 세리들이 크게 질타받는 이유는 그렇게 자기 민족들이 땀 흘려서 번 돈에서 세금을 떼는데 예를 들어 10만원을 떼야 한다면 15만원을 떼고 나머지 금액을 본인의 월급으로 받았다는 거에요. 근데 만약에 그 세리가 자신의 민족과 주변 사람들을 미안하게 생각해서 자신의 월급을 적당히 받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끼치지도 않았겠죠? 그런데 삭개오는 부자였다는 거에요.
그는 동족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이 약해져서 세금을 약하게 거두지 않고 무겁게 거두면서 돈을 자신을 위해서 거둬 들여서 부자가 되었고 부자가 된 지금도 악착같이 다른 사람들을 압박했습니다.
부모님께서 지으셨던 이름의 뜻과는 정 반대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순결한 유대인으로 살아가기 보다 이방인보다 못한 존재가 되었고,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돌보고 정의롭게 살아가기 보다는 자신의 부와 유익을 위해서 가난한 자들에게도 무겁게 세금을 부과하고 있었습니다.
3절에서 보면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삭개오는 물질적으로 보나 지위적으로 보나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권력을 가지고 부를 가지면 행복해질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관계도 포기하고 자신의 이름의 뜻도 포기하고 경쟁사회에서 1등을 차지했습니다. 누구나 가고 싶어하지만 한 명밖에 오를 수 없는 피라미드의 꼭대기, 정상을 차지 했습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를 존경,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경멸하였고 삭개오의 친구였던 자들 조차 그를 죄인 취급했습니다. 그렇기에 삭개오는 계속해서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는 돈을 위해서 내 모든 것을 포기했는데, 돈 조차도 나를 회복 시키지 못하네. 자신이 유대인이 맞는가, 과연 내가 아브라함의 후손이 맞나? 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가? 이런 고민들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때에 삭개오가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삭개오 또한 세리장이었기에 다른 세리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에 한 사람인 마태도 세리였습니다. 그런데 그 마태가 철통 밥솥이었던 세리라는 직업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갔다는데 과연 그는 어떠한 분이신가?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바리새인들, 아니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죄인이라고 칭하는 세리들과 함께 밥을 먹고 교제를 하는가?
그래서 삭개오는 예수님을 구경하러 나갔습니다. 하지만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려고 가까이 갔지만 예수님을 코빼기도 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삭개오는 키가 작았으며,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둘러싸고 있었어요. 어지간해서 낑겨서 앞으로 가고 싶었지만 삭개오를 싫어하던 다른 사람들은 삭개오를 위해서 그렇게 쉽게 자리를 내어줄 일이 없죠.
그러자 4절에서 보면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삭개오가 취했던 행동은 되게 유명하죠.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나무 위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할 때에는 기발하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으로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어죠. 그 때 당시에 입고 있는 옷은 제가 입고 있는 바지처럼 생기지 않았어요. 한 벌의 원피스와 같이 생겼어요. 그 옷을 입고 나무에 올라간다는 것은 바로 자신의 치부가 훤히 들어내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삭개오는 아랑곳하지 않고 예수님이 누구신지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했을 수 있지만 이제 삭개오의 모습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예수님을 보고자 해요. 그러한 삭개오 앞으로 예수님이 지나가십니다.
5절에서 보면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삭개오 앞을 지나가시던 예수님께서 그러한 삭개오를 쳐다 보십니다. 예수님의 시선에 나무 위에서 매달려 있는 추한 삭개오를 보시면서, 모순 덩어리이자 부와 지위를 얻기 위해서 자신의 핏줄, 관계, 양심 모든 것을 다 팔아먹은 삭개오를 보면서 예수님은 “삭개오야” 라고 그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삭개오가 지은 죄들이 예수님의 눈에 훤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꾸짖지 아니하시고 예수님을 보고싶어서, 알고싶어서, 만나고싶어서, 나무 위에서 기다리고 있는 삭개오를 향해 “얼른 내려와, 나는 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라고 얘기하십니다.
6절에서 보면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지금 삭개오는 예수님이 자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교제한다는 사실이 밎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껏 돈이 가득하고 지위가 높았지만 그 누구도 나와 함께 하지 않았고 멸시만 받았어요. 그런데 지금껏 소외 받고 있는 삭개오가 자신이 가진 돈과 지위를 사용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직접 찾아오셨고 오늘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너무 감동하게 하였고 행복하게 하였습니다.
7절에서 보면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그러자 주변에 삭개오를 싫어하는 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죄인인 삭개오와 함께 하는 것을 보며 뒤에서 수근거리기 시작합니다. 삭개오는 죄인 중에 죄인이야, 쟤는 진짜 답이 없는데 왜 예수님은 쟤랑 같이 있는거야? 죄인이랑 함께 있는 것도 죄야!! 그렇게 얘기합니다.
8절에서 보면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이 때에 삭개오가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했던 것을 포기합니다. 자신의 우상이었던 돈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핏줄, 관계, 양심,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였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의 재산의 절반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것이며, 자신이 세금으로 속여서 빼앗았던 것이 있다면 4배로 갚겠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저는 한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삭개오 또한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있구나,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속여서 그들의 돈을 빼앗았다는 것을 사실 알고 있었구나, 그런데 주변의 있는 사람들은 그를 향해서 수근거리며, 죄인이라고 수 없이 하였지만, 삭개오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죄를 짓고, 사람들을 속이고, 그들의 돈을 빼앗았습니다. 하지만 삭개오가 자신의 죄를 멈추고 올바른 길을 선택한 때는 언제입니까? 바로 자신의 죄를 덮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였을 때입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은 죄를 덮어주시기 때문에 죄를 지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죄를 충분히 보아야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 나이와 같을 때에 고2때, 성경을 읽다보면 저의 죄가 낱낱이 드러나기 때문에 마음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눈물이 앞을 가리고 죄인이구나를 깨닫고 있던 그 때에 결단한게 있었습니다. 성경책을 덮는 것이었죠. 그렇게 하면 저의 죄가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그것은 좋은 해결책이 아니었습니다. 말씀으로 오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귀를 닫는 것이고, 하나님과 대화하기 싫어요. 하나님이 이런 죄인이지만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잊을래요!라고 선언하는 거죠. 저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고 싶지 않았던거에요. 그래서 숨겨지지 않지만 숨기고 싶었죠. 하지만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자신에게 보이길 원하셨고,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가 훤하게 보일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시간, 하나님과 가까운 상태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었죠.
삭개오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신을 덮게 되자, 자신의 인생의 목표였던, 자신의 왕의 자리를 앉아있던 돈을 내 쫓고 예수님을 그 자리에 앉게 하시고 돈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한 가지 방법으로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9절에서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삭개오는 그동안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멸시의 대상이었고 정죄의 대상이었습니다. 이런 소리를 들었을 거에요. “저 죄인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닐꺼야”, “절대 아브라함의 자손 일 수 없어”, “순결한 자(삭개오)가 세상에서 제일 순결하지 못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보다 못한 존재야!”
하지만 삭개오가 자신의 죄를 보고 회개하고 하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삼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얘기하십니다. “삭개오야 너의 사죄는 이루어졌어, 이제 너는 하나님의 자녀야, 그리고 주변에 있는 너희은 이 사람을 향해 다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하지 말아라. 너희와 같은 하나님의 자녀야”
예수님께서 삭개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통해서 삭개오는 자신의 이름 뜻을 회복하였고,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 받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의 사람들과의 관계 회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10절에서 보면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 마지막에 이렇게 얘기하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
이 사실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줍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우연히 만나서 나무에 올라가 있는 것이 불쌍하여 그 집에 찾아갔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라는 도시에 온 것 자체가 단 한 사람 ‘삭개오’를 만나기 위해서 계획적으로 오셨던 것이에요. 잃어버렸던 삭개오를 찾아서 그에게 사랑을 주고 그가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하게 하기 위하여 여리고에 왔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느냐, 우리가 삭개오처럼 자신의 죄와 모순 덩어리이기에 슬퍼하고 고뇌하면서 하나님을 찾을 때에, 하나님은 분명히 나를 찾고 계시고 나를 찾아 오시고, 찾아 구원하려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이 사실 자체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가장 큰 이유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죄로 인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를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죄를 꾸짖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나의 죄를 밝히시죠. 그리고 나를 변화시켜 하나님의 자녀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곧 있으면 성탄절이에요. 그 때가 되면 여러분 중에 시험 늦게 보는 친구들도 끝나 있겠죠. 그 때에 삭개오를 찾기 위해서 여리고에 오셨던 예수님이 나를 찾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의 인생에 죄를 지적하는 것이 아닌 죄를 덮는 사랑을 주신 것에 감사하며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같이 찬양하며 나아가고 싶은데 ‘당신은 시간을 뚫고’를 불렀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해서, 하나님 나라에서 함께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같이 고백하며 나아갑시다
이 시간 기도할 때에
나를 찾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 나의 존재가 모순 같을 때에, 내가 아름답지 않을 때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