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one Analysis

Overall tone of the ser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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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otion 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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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g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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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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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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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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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guage Tone
Analyt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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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fi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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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ta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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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 Tone
Open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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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cientious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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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ver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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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reeable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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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otional 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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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e of specific sentences

Tones
Emotion
Anger
Disgust
Fear
Joy
Sadness
Language
Analytical
Confident
Tentative
Social Tendencies
Openness
Conscientiousness
Extraversion
Agreeableness
Emotional Range
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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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오늘 받을 하나님의 말씀은 느헤미야 4장 9절 말씀입니다
9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들로 말미암아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설교 제목: 우리의 신앙
서론
전도사님이 중학교 다닐 때 두발 제한이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두발 검사하는데 걸려 가지고 다음날 자르고 학교를 갔어야 했다.
근데 친구랑 노느라 바빠서 머리를 못자른 것, 그래서 어떻게 했냐면, 같이 등교하는 친구에게 가서 가위로 머리를 좀 잘라달라고 했다.
사실 앞 머리만 살짝 잘라주길 바랬는데, 머리 깊숙히 손을 집어 넣더니 너무나도 당당하게 뭉텅이를 짤랐다.
일명 쥐가 파먹은 헤어스타일이 되어서 학교에 갔는데 두발 검사에 또 걸린 것은 물론이고 너무 심각하게 짧게 짤라놔서 반삭할 수 밖에 없었다.그냥 미용실 갔으면, 최소한 반삭은 아닌데, 오히려 위기를 모면하겠다고 앞머리를 자른 것이 오히려 망해서 수습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설프게 뭔가를 시도했다가 실패하게 되면, 그 이후에 똑같은 것이라도 다시 시도하는 것이 어렵다.
오히려 실패의 아픔을 딛고 이겨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벽을 건축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땅이 아니라, 무너져 있는 땅이기 때문에, 폐허를 치우고 무너진 잔재들을 치우며 건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대적들의 방해는 계속 이어집니다.
성벽의 보수를 불편하게 생각한 산발랏과 도비야, 하나님의 대적들은 주변에 유언비어와 말도 비웃는 부정적인 소리를 외치며, 방해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러한 방해에 무너지지 않고 느헤미야를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의지하며, 계속해서 성벽을 쌓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느헤미야와 함께 성벽을 지으며, 하나님을 향한 무너진 신뢰가 회복되어 가기 시작했다.
본론
이 때부터 오늘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7절을 읽지는 않았지만 함께 보겠습니다.
7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허물어진 틈이 메꾸어져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노하여
오늘 새로운 인물이 등장합니다.
산발랏과 도비야는 원래부터 방해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벽을 건축하는 것을 반대하고 방해하는 사람들이 더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본문에 암몬 사람과 아스돗 사람도 동참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식을 듣고 분노했습니다.
어떤 소식이었느냐?
4장 2절에 백성들이 성벽을 짓는다는 소식을 듣자 산발랏과 도비야는 비웃으며, 부정적인 소문을 만들어 내며 방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으니 당연히 연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벽 보수하는 것을 멈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루살렘 성은 보수가 되어가고 있었으며, 중간중간 허물어진 틈 사이를 더 견고하게 단단하게 메꾸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계획 한대로 되지 않자 다시 분노합니다.
8절,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치고 그 곳을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 그리고 머리를 모아 계획을 짰습니다.
무슨 계획이냐, 사람들, 하나님의 대적들을 모아다가 작당모의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온 계획은 무엇이냐! 우리가 힘을 모으자.
그리고 예루살렘을 직접 가서 싸우자.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다시는 성벽을 쌓지 못하게끔 요란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물리적인 충돌, 직접적인 방해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의 대적이 모여 예루살렘으로 가서 싸우며 방해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대적하는 저들이 우리를 직접 치러 올 것이야!! 그러자 이제, 주목해볼 만한 것이 등장합니다.
‘9절’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느헤미야 처음에 시작할 때 어떻게 시작했나요?
느헤미야가 하나니라는 동생에게 예루살렘 상황에 대해서 듣게 되었을 때 기도함으로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기도는 혼자, 개인의 기도였었죠.
그 누구도 그 기도에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기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으며, 더이상 다시 일어날 힘을 가지고 있지 않는 상태인 것이죠.
그 이후로 느헤미야가 등장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설득할 때에도 항상 기도는 느헤미야의 몫이었습니다.
저번주에 다룬 본문에서도 느헤미야 기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물론 영적 성장이 일어나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실 것이라는 확신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느헤미야 혼자의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를 배웠습니다.
남의 기도, 느헤미야의 기도에 얹혀가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들이 직접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느헤미야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그 동안 느헤미야와 함께하는 시간들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긴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 느헤미야 한 사람의 기도가 이스라엘 민족의 기도로 변했습니다.
확장되었죠.
기도를 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느헤미야는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며, 실제로 일을 해결하시는 분임을 명확하게 보여준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기도는 단 한사람의 기도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처럼, 우리 청소년부 공동체의 예배가 한사람의 올바른 예배로부터 시작되길 소망합니다.
우리 청소년부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는 한 사람의 기도가 있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들로 말미암아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지금은 하나님의 대적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하겠다고 선포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나 의문점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적들이 처들어오는 상황을 방비하고자 파수꾼을 세우기로 합니다.
파수꾼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파수꾼은 성의 높은 곳에 서서 주변을 살피며, 적군이 처들어 오는 것을 미리 눈으로 보고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을 뜻합니다.
즉 적군이 쳐들어 올 것을 막고자 하는 방법들이죠.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완전히 믿지 않은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일하신다고 했는데 나는 잘 모르겠으니, 내 방식대로 뒷패를 숨겨논 것이야? 하나님께 기도했으니, 하나님께서 그들의 행동을 막으셔서 안 오게 하시는 거 아니었나?
이것은 의아스럽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보면 자주 이런 점들이 목격됩니다.
이사야 38장을 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나옵니다.
히스기야 왕이 죽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하죠.
이에 하나님이 이사야를 통해 히스기야에게 말씀하십니다.
“알겠다.
네가 회복되어 십오년을 더 살리라” 그러고 나서 히스기야가 감사하게 여기자 이사야가 덧붙입니다.
무화과로 뜨거운 반죽을 만들어서 종기에 즉 감염된 부위에 붙이게 되면 낫게 된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원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어주겠다고 하십니다.
낫게 하겠다고 하시면서 처방책을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싸우실 것이며, 무기를 주십니다.
이처럼 성경에서 확인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 함께 강조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만일 하나님이 진짜로 지키신다면 파수꾼을 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또 만일 파수꾼을 세운다면 하나님이 지키신다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게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을 100퍼센트 믿고 기도했습니다.
착각으로 믿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끝인가요?
그냥 발 뻗고 편하게 자면 되나요? 하나님의 대적들이 쳐들어 오는데 편하게 자면 되나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는 것과 동시에 인간에게는 맡겨진 책임이 있습니다.
내가 해야할 일을 최선을 다해 하는 것이죠.
한 가지 좋은 예를 성경에서 찾으려 합니다.
사도바울이 로마로 향하는 배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유라굴로라는 폭풍을 만나게 됩니다.
폭풍 속에서 배를 운전하는 사공들이 포기해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살 가망이 없어.. 우리는 도저히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그 때에 사도바울이 담대하고 강하게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어제 말씀하셨다!
분명히 나에게 약속하시길 나와 함께하는 모든 사람들을 나에게 주셨으니 절대로 그 누구도 죽지 않으리라! 생명에 손상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마십쇼!
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서 한 섬에 도착하게 되니까 사공들이 도망하려고 합니다.
그것을 미리 발견한 사도바울은 그것을 제지합니다.
같은 배에 타고 있던 군인들에게 저들이 이 배에 없다면 우리는 죽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무조건 저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막으십쇼!
30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체하고 거룻배를 바다에 내려 놓거늘
31 바울이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그렇게 해서 그들의 도망을 막고 결국 한 사람의 죽음도 없이 폭풍 가운데 구조되게 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사도바울이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고 하신 약속을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망가는 사공들을 붙잡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이 도망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고 약속하셨기에 구원 받지 않았을까요?
만약에 사도바울이 사공들을 붙잡지 않았다면 과연 구원을 얻었을까요?
하나님이 약속하셨으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에는 사도바울이 사공들을 도망가지 못하게 하셨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돌아와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기도하였으니, 파수꾼을 세우지 않아도 되나요? 세워야 합니다.
예루살렘의 성벽을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하여도 그것을 위해 성벽을 지어야 하며, 파수꾼을 세워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해야만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은 파수꾼을 세웠지만 그 이후로 성벽을 쌓을 때에는 하나님의 대적이 쳐들어올 것을 대비해 칼을 허리에 차고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밤에도 옷을 벗지 않고 항상 무기를 휴대하며 보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일을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20 너희는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여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실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무장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합시다! 분명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믿음이 없이는 수 없이 무너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실 것입니다! 그렇기에 나는 최선을 다해 파수꾼을 세우고, 칼을 들며, 무기를 휴대하며, 성벽을 세울 것이다.
기도와 관련된 명언이 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처럼 기도하라.
그리고 모든 것이 당신에게 달려 있는 것처럼 일하라.
사실 모든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가 경험하는 일에 100퍼센트 주권을 가지고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벗어나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
그렇기에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기에 기도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기억해야할 것은 하나님은 일을 하실 때 사람을 통해 일 하 시는 분이시라는 겁니다.
그렇기에 일 할 때에는 100퍼센트 내가 일한다고 믿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최선을 다해서 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신앙이 자라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을 성장하도록 도우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성경을 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해야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과의 시간을 갖는 것이에요.
분명히 하나님은 우리의 성장을 바라시고 그렇게 일하십니다.
결론
느헤미야 한 사람의 기도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느헤미야는 그렇게 일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단지 기도만 할 수 있었죠.
그렇지 않았던 이유는 느헤미야도 하나님께서 일하시며, 자신도 일해야 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파수꾼을 세웁니다.
우리도 삶에서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셔요.
그리고 우리가 생활하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진 일을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일이 공부라면, 하나님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공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일이 실습이라면, 최선을 다해 실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간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부르셨습니다.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고백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당신만을 예배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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