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완성된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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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오늘 받을 하나님의 말씀은 느헤미야 6장 15-16절 말씀입니다
15 성벽 역사가 오십이 일 만인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
16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설교 제목: 마침내 완성된 성벽
서론
솔로몬 홀에서 처음 예배드리는 친구도 있을 것이고, 거의 6개월 만에 드리는 친구들이 있을 것이에요. 그래서 어색한 친구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때요? 괜찮아요??
네~ 어떤 친구들은 지난주까지 늦은 시간에 예배드렸기에 이렇게 이른 시간에 하는 것이 피곤한 친구도 있는 것 같다요.
이렇게 11시에 청소년부실에서 오랜만에 예배를 드리는데, 찬양인도하는 수민이가 이런 얘기하더라고요. 오랜만에 여기서 하니까 떨리고 긴장된다고. 전도사님도 실제로 여기서 하니까, 기다리던 날인 만큼 신나기도 하지만 떨리기도 하는 것 같아요. 우리는 이렇게 지금 새로운 시작, 변화들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또 익숙해지겠죠? 그렇지만 이 느낌을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2주간 릴레이 기도도 하면서 함께 맞이하게 된 이 시작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함께 계속해서 예배드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본론
오늘 우리는 이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지만, 무엇이든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습니다. 그렇듯 우리가 4월 2번째 주부터 함께 살펴본 느헤미야도 오늘로 마무리가 됩니다. 물론 느헤미야 본문은 뒤에 더 남아있지만, 그것은 다음에 기회가 될 때에 살펴보도록 하고요. 이번 시리즈는 성벽 건축의 완성을 통해 마무리로 삼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드디어 느헤미야 성벽 건축의 마지막입니다. 오늘 본문,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적의 방해와 내부적인 문제들을 통해 어려움들을 겪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예루살렘 성벽 건축을 완성했습니다. 140년이라는 시간동안 성벽 무너진 채로, 보호받지 못하는 상태로 지내왔지만, 오늘 15절에 나와 있는데로 52일이라는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성벽 건축을 완성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면, 한가지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성벽의 완성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나도 원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완성이 되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엄청 기뻐했을 것이고, 느헤미야도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그것에 대해서 하나도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너무나도 역사적인 날이고 엄청 기쁜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짧게 이야기하며,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스라엘 의 대적과 이방 족속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16절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이방인들의 시점, 지금까지 하나님의 일을 방해했던 대적자들의 시선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방해했던 그들이 성벽 건축이 끝난 모습을 보며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라.
이방인, 이스라엘의 대적들도 성벽이 지어질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길,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느헤미야라는 리더십이 뛰어난 위대한 총독이 나타나서 성벽을 쌓은 것이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느헤미야는 리더십이 뛰어났습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대처했죠. 하지만 이 일이 완성으로 끝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느헤미야라는 한 사람의 힘이 아니라, 그와 함께 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인 것이죠.
52일만에 성벽 완성 아주 대단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어떤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셨어. 우리는 아무런 힘이 없잖아. 진작에 포기했을 것이야. 역시 하나님께서 하시니 되는구나, 이런 마음들이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켠에는 이러한 마음들이 생겨났을 것이에요.
우리가 해냈어, 역시 우리가 하지 않아서 그렇지 할 수 있는 일이었던 것이야!! 이렇게 완성한 것이 너무나 기뻐서 소리지르고 난리 부르스를 떨려고 했을 것입니다.. 만약에 저였다면 진짜 그렇게 했을 것이에요. 하지만 이방인들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싫어하고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던 하나님의 대적들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다.
이 이방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렇게 얘기했었죠. 저것은 100퍼센트 불가능하다. 여우가 올라가도 무너질 정도로 비실하다! 이스라엘의 힘으로는 불가능했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완성 되었을 때에 그들은 인정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셨다. 이스라엘은 그런 힘이 없었기 때문에, 이것은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옆에 있는 친구들을 살펴볼까요? 아름답나요? 네 우리 눈에 비췬 친구들의 모습 너무나도 아름답죠. 하지만 흠이 하나도 없나요? 네 사실 그래요. 우리는 아름답지만, 완벽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가만히 더 깊게 살펴보면 연약한 것들 투성입니다. 부족한 모습들이 너무나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죠. 하나님, 이 부분 더 잘하게 해주세요. 하나님 왜 저를 이렇게 못나게 지으셨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부족한 자, 완벽하지 않은 자들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그리고 오히려 연약한 자들을 사용하셔서 힘이 넘치고 강한 사람들을 야단치시고 창피하게 하십니다. 이것 보아라. 이들은 엄청 연약한 자들이지만,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이러한 일들을 하지 않느냐. 성벽을 짓지 않느냐.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이야, 나 때문이야)
우리의 부족한 모습, 연약한 모습 또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름다운 계획 안에 포함시키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한 모습 속에서도 하나님은 성벽을 완벽하게 완성하는 일을 행하십니다. 부족한 자들을 통하여 일하십니다.
첫번째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내가 생각했을 때에 나의 연약함, 부족함들이 눈에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때 이렇게 생각하죠. 분명히 이것은 하나님의 실수이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지 않으신다고 나는 보잘 것 없는 존재 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를 사용하셔서, 성공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끊임없이 사랑하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포기하거나 버리거나 우리를 부르신 것을 후회하시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의 부족함을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드러내신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의 부족함을 보게 된다면, 하나님을 원망하기보다 하나님께 더 매달리십쇼. 우리를 통해 하나님은 더 큰 일들을 행하실 것입니다.
16절에 말씀을 더 살펴보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다” 하나님의 대적들이 지금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고 재밌는 점은 하나님의 대적들이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였던 것이 바로 두렵게 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6장 9절에 보면 “이는 그들이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그들의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중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하였노라”
방해하던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렵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벽을 쌓지 못하도록 옆에서 비웃고, 이방 사람들이 쳐들어 간다고 소문도 퍼트렸습니다. 그들이 두려움에 떨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반전이 일어납니다. 어떤 반전인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방해하던 대적과 이방 족속들이 두려워하게 됩니다.
무엇으로 인해서 두려워합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었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원래 이방 민족들에게 있어서 이스라엘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두려워할 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기에 두려워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주 예전부터 원하셨던 뜻이었습니다. 이사야 49장 6절에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이스라엘을 이방의 빛으로 삼으셔서, 이스라엘을 통해 주변의 나라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길 원하셨으며, 기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숭배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강하게 하실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통해서 주변 나라들이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지 보고 배우게 하려고 하신 것이죠.
그런데 정작 실상은 어떠했습니까.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아주 잠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갔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나타났죠. 하지만 그 이후로 하나님의 말씀은 지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우상들을 숭배하였고, 돈이 있고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도우며, 그들이 가난에 허덕이지 않도록 도와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가난한 자들의 것을 빼앗아 자신의 배를 불리기에 바쁘지 않았습니까.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통해 이방의 빛으로 삼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성벽 완성이 되었을 때, 하나님꼐서는 이스라엘을 이방의 빛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드러내어 주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얼마나 위대한지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과거의 이스라엘 뿐 아니라, 현재의 우리에게도 똑같은 기대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에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직접 바라볼 수 없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성경을 읽어볼까요? 그들이 하나님께 기도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습니까? 그렇기에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우리의 모습과 행동들을 통해 하나님을 바라 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행동하는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렇기에 우리의 행실을 보아야 합니다. 나는 착한 행실을 실천하는가?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대로, 내 맘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모습을 통해 주변 사람들이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군대와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군대에서 첫 휴가 나왔을 때, 강조해서 얘기하는 것이 있습니다. 절대로 손을 주머니에 넣고 걷지 말고, 실외에 있을 때 모자는 벗으면 안 되고, 먹으면서 걸으면 안된다. 이렇게 하면 신고가 들어오고 잘못 걸리면 징계를 받을 수 있다.
근데 왜 이렇게 하면 안되나? 이렇게 행동하는 것 자체가 군기가 빠진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군기가 빠진 것이 도대체 왜?? 군기가 빠졌다는 것은 명령을 어기는 것이고, 전쟁에서 명령을 어기는 것은 전쟁의 패배를 뜻하기 때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군인이 군인답지 못한 행동을 하고 있으면, 그것을 지정하고 신고한다는 것이죠. 근데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한 사람의 실수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은 한 사람의 실수가 아니라, 군인 전체의 모습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군인 한명이 잘못된 행동을 하면, 전체를 다 싸잡아 요즘 군대가 그래.. 이런 얘기를 듣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한 사람이 실수해도 공동체가 함께 책임을 지게 된다. 단 한 사람이지만 그 사람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을 욕 먹게 되죠. 하지만 또 반대로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행동을 통해서 주변 사람들은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 주변에 올바른 그리스도인 단 한사람이라도 있다면, 그는 잠깐이라도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부족한 모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속이면서 완벽한 모습을 보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속이려고 한다면 상대방들이 더 먼저 알아차리고 그것을 통해 더 상황이 어려워질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의 모습이 부족하고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드러내고 하나님께서 나를 변화시킬 것을 확신하며,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더 낫습니다.
전도사님이 스스로 얘기하기 뻘쭘하지만, 전도사님이 성격 진짜 좋잖아요. 근데 가끔씩 중요한 것도 아니고 진짜 별것도 아닌 것, 쓸데 없는 것에 고집이 있어서 주변 사람들을 짜증나게 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전도사님이 다른 사람들에게 못난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서, 착한 행실을 하고자 고집을 부리지만, 고집 부리지 않는 척하면 어떻게 될까요? 오히려 그 모습이 더 못난 것입니다. 쿨하게 나는 고집이 있는 편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더 나은 것이에요. 근데 오히려 그런 고집 있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고집 피우지 않는 모습을 보이게 될 때, 고집 부릴 사람이 하나님 때문에 겸손해질 때, 주변 사람은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서 착한행실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통해 하나님 앞에 저렇게 엎드린다면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지? 관심을 갖게 되겠죠.
빌립보서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고집불통인 전도사님을 포기하지 않으셨고, 여러분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포기하시는 분이었다면, 전도사님을 먼저 포기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생각하지 못한 길, 다양한 길로 하나님께서 이끄셨어요.
그렇다면 못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성벽을 완성하게 하신 하나님, 못난 전도사님을 포기하지 않고 이끄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향해 무엇이라 얘기하실까요.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았어. 너의 모난 부분, 오히려 지금은 너무나 상처가 되지만, 그 모난 부분이 있었기에 오히려 너의 주변 사람들이 나를 볼 수 있게 될 것이야.
너는 이것을 기억해, 내가 너를 진짜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과 내가 너를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이야. 그러한 나의 변화를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이 보여질 것이야.
결론
마침내 완성된 성벽은 우리에게 위로를 줍니다. 못난 이스라엘 백성들, 무너질대로 무너질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시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변화시켜 성벽 건축을 완성하게 하십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대적들에게 이 모습을 보여주어 하나님의 크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실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 앞에 너무나도 연약하고 부족한 자들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불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으며, 나에게 가장 최선을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합시다.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이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