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one Analysis
Overall tone of the sermon
This automated analysis scores the text on the likely presence of emotional, language, and social tones. There are no right or wrong scores; this is just an indication of tones readers or listeners may pick up from the text.
A score of 0.5 or higher indicates the tone is likely present.
Emotion Tone
Anger
0UNLIKELY
Disgust
0UNLIKELY
Fear
0UNLIKELY
Joy
0UNLIKELY
Sadness
0UNLIKELY
Language Tone
Analytical
0UNLIKELY
Confident
0UNLIKELY
Tentative
0UNLIKELY
Social Tone
Openness
0UNLIKELY
Conscientiousness
0UNLIKELY
Extraversion
0UNLIKELY
Agreeableness
0UNLIKELY
Emotional Range
0UNLIKELY
Tone of specific sentences
Tones
Emotion
Language
Social Tendencies
Anger
< .5
.5 - .6
.6 - .7
.7 - .8
.8 - .9
> .9
성경 본문: 오늘 받을 하나님의 말씀은 느헤미야 2장 1-10절 말씀입니다
1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니산월에 왕 앞에 포도주가 있기로 내가 그 포도주를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 앞에서 수심이 없었더니
2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하더라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3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사오리이까 하니
4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5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6 그 때에 왕후도 왕 곁에 앉아 있었더라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 날에 다녀올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좋게 여기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7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거든 강 서쪽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그들이 나를 용납하여 유다에 들어가기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8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그가 성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내가 들어갈 집을 위하여 들보로 쓸 재목을 내게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9 군대 장관과 마병을 보내어 나와 함께 하게 하시기로 내가 강 서쪽에 있는 총독들에게 이르러 왕의 조서를 전하였더니
10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하게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설교 제목: 하나님의 대적을 근심하게 하는 자
서론
여러분이 누군가를 근심하게 한 적이 있나요?
전도사님이, 어릴 때, 동생이랑 가출한 적이 있어요.
초등학생 시절 어린 마음에 어떤 이유인지도 기억 안나는데, 엄마가 싫어서 가출했었어요.
나는 이 집을 떠나리라! 하고 동생이랑 같이 집을 나왔어요.
그렇게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나왔는데, 오랜시간 버티지 못하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고작 집에 있던 떡볶이가 먹고 싶어서 5시간도 안되서 다시 들어갔을 거에요.
이것은 가출보다 외출에 가까운 수준이었지만, 어머니의 마음에 작은 상처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누군가를 근심하게 한다는 것은 부정적이다.
하지만 때로는 근심하게 하는 것이 긍정적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적, 나와 상대편에 있는 사람을 근심하게, 불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 함께 살펴볼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대적을 근심하게 하는데요.
어떻게 근심하게 하는지, 찬찬히 살펴보길 원합니다.
본론
저번 주에 함게 살펴 보았는데,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흩으신 그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과 예루살렘 성벽의 소식을 듣고 공감하며 기도함.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그 고통의 자신의 고통으로 여기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백성들을 바라보았기에 가능했습니다.
느헤미야는 결코 짧은 시간 기도하지 않았다.
꽤 오랜 시간동안 기도했습니다.
1장 1절에 나오는 기슬르월은 현재 달력으로 11월- 12월을 뜻하고 2장 1절에 나오는 니산월은 3-4월을 뜻한다.
대략 4개월 동안 느헤미야는 때로는 울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그 시간들을 준비했다.
느헤미야가 하나님 앞에 기도했던 내용 11절 ‘종의 기도를 들으시고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2장 1절에 느헤미야가 왕 앞에 서게 됩니다.
그 때 느헤미야의 기도의 응답의 때가 되었습니다.
5절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즉, 지금 일어나는 모든 사건, 왕 앞에 서는 것, 그리고 그 앞에서 은혜를 받는 것. 이 모든 것이 결국 하나님 앞에 해왔던 기도의 응답이다.
성벽을 건축하는 것. 개인이 하기에는 굉장히 어려운 일, 아니 할 수 없는 일 입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계속 기도해왔습니다.
사실 느헤미야도 힘들지만 그것에 더 이상 마음을 쓰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실 큰 문제 없이, 그것이 언제 나를 힘들게 했던 것마냥 나에게 있어서 사라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그 일을 잠시 있다가 사라질 일로 여기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그 아파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그 일을 나의 문제로 삼고 기도헀습니다.
우리 삶의 터전 안에서도 이러한 일이 있지 않은가요.
개인, 가정, 삶의 터전, 학교나 학원에서 나 뿐 아니라, 수 많은 친구들이 어려움 속에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 줄 수 없는 너무나 큰 일, 안타까운 일들이죠.
그런 느헤미야가 했던 것처럼 일어난 사건을 보며,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그들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해볼 때에 하나님께서 하고 싶어하시는 일들이 있지 않는가?
그런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무기력하게 무책임하게 피하고 있지 않는가? 느헤미야가 이런 상황을 놓고 기도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기도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소극적인 일로 여긴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기도한다는 얘기를 우스운 이야기처럼 하죠.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것은 바로 기도이다.
우리가 삶에서 할 수 있는 일,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일들은 너무나도 작은 것들입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애를 써도 그 결과는 작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일들을 시작하실 때에 하나님을 통해서 일어나는 일들은 너무나 크고 위대하다.
그렇기에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도는 가장 작은 사역, 소극적인 사역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최고의 사역이다.
그렇기에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마음을 다해 기도했다.
4절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라는 그 왕의 질문이 사람의 질문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내가 지금까지 하나님에게 기도하며 응답을 구한 것에 대한 답을 이 사람을 통해서 하시는구나, 마치 예수님께서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 예수님을 필요로 했던 사람들에게 찾아가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길 원하느냐 라고 물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직접 찾아오셔서 말씀하신 것처럼 인식했다.
그렇기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왕에게 이야기하기에 앞서서 하늘에 하나님께 묵도하고 대답합니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하나님께 잊지 않고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그동안 계속해서 기도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8절 내가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품었더니, 하나님께서 잊지 않으시고, 하나님께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셨습니다.
마음을 주셨을 때, 그 마음을 잊어버리지 않고, 외면하거나 도망치지 않고, 부르짖는 기도가 필요한 것이고, 이것을 진정으로 놓고 기도하였던 느헤미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4개월이 지난 후에 기도가 이뤄졌다.
어떤 기도제목은 기도함과 동시에 이뤄지기도 하지만, 어떤 기도제목은 수십 년이 지난 후에 기도가 이뤄지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것이 언제 이뤄지든지 간에 분명히 이뤄질 것이다.
느헤미야는 그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듣고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단순히 눈물과 슬픔 속에만 잠겨 있는 기도는 아니었어요.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내가 무엇인가 하겠다는 결단이었죠.
사실 재밌는 것은 망해버린 나라를 위해, 페르시아의 왕이 도대체 왜 돈을 쓰냐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불가능하죠.
계산을 해보아도 전혀 남을 것이 하나도 없는 사업인 것이에요.
그렇지만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이다.
그것을 위해 느헤미야가 준비하고 기도했기 때문이다.
느헤미야의 기도가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역사하셨다.
4절에 왕이 이렇게 물어봅니다.
얼굴의 근심 있는 것을 보고 너는 무엇을 원하니?
너무나 기쁜 일이지만, 만약에 여러분에게 대답을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 여러분이 질문을 받게 된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 같나요? 갑자기 그 자리에서 눈은 막 흔들리지만, 당황하지 않은 척하면서 머리를 쥐어자서 얘기하겠죠.
느헤미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왕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만약에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면, ‘제가 기도는 했는데 따로 생각해보지 못했네요.
다음 주에, 다음 달에 생각해서 다시 말씀 드릴게요., 아니면 생각나는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로 얘기했을 것입니다.’
만약에 생각해놓은 계획이 하나도 없었다면, 그 때가 하나님의 때였을 지라도 느헤미야는 놓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그 타이밍에 그 때를 놓치지 않았다.
기도하면서 느헤미야는 구체적인 생각들을 가지고 고민하고 계획을 짜며,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왕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라는 질문에 내가 느헤미야는 당당하게 얘기합니다.
내가 예루살렘의 도성을 다시 세우길 원한다.
내가 직접 가서 해야 합니다.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시켜서 할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나를 직접 보내주십쇼.
왕이 좋게 여기며 얼마나 걸릴 것이냐고 물어봅니다.
느헤미야는 굉장히 정확한 사람이었다.
언제까지 걸릴지 기한을 정하고 또 왕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요청합니다.
왕이 이것을 좋게 여기신다면, 괜찮으시다면 2가지를 제게 허락하여 주십쇼
왕의 권위로 안전을 허락하여 주십쇼
페르시아에서 예루살렘까지 가는 길이 험하고 굉장히 깁니다.
꽤 오랜시간을 여행하며, 여러 지역을 지나게 될 동안 그 지역에 있는 권력자들과 충돌이 생길 수 있다.
왕의 조서, 왕의 편지를 통해서 가는 길에 어려움이 없도록, 안전을 지켜달라고 요청합니다.
재원, 자원을 구함.
즉 현재 시점에서는 돈을 달라고 한거죠.
성벽을 짓는 실제 공사였기에 재목, 즉 나무를 달라고 합니다.
즉 성벽을 짓기 위해서 내가 직접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일을 진행하지만, 나무가 없다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결국에 느헤미야는 그 일을 하는데 필요한 금액을 요청합니다.
정확하게 얼마가 필요한지 얘기한 것입니다.
이렇게 필요한 것들을 정확하게 요청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난 4개월 동안 눈물만 흘리며, 기도만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지식과 조언을 바탕으로 성벽을 짓기 위해서 철저한 계획을 짯던 것. 느헤미야가 많은 돈이 있다고 해도 불가능할 것. 자신의 시간이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
왕이 재정과 시간을 허락하지 않으면 어디도 갈 수 없는 왕의 신하, 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계획을 짯으며, 그 계획이 이뤄질 수 있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막연히 기도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는다면 과감히 꿈을 꾸고 과감히 계획 해보라.
하나님은 그것보다 더 큰일을 행하신다.
9절에 보면 군대 장관과 마병을 보내어 나와 함께 하게 하시기로
느헤미야는 왕에게 요청 한 것은 안전을 위해서 조서까지만 생각했다.
그런데 왕이 허락한 것은 조서, 편지 뿐 아니라 느헤미야 일행을 호위할 수 있는 군대장관과 기병을 보냈다.
가장 강한 군대를 보낸 것. 어떤 위협이 있다고 해도 그 일행을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사실 느헤미야를 예루살렘으로 보내달라는 것, 게다가 망한 나라를 위해 돈을 달라고 하는 것조차 이뤄지기 어려워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왕을 통해서 더 큰 것들을 허락하십니다.
기대 했던 것 이상으로 역사하십니다.
즉,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할 때에,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큰 은혜롤 주신다는 것. 하나님의 은혜 더하시는 은혜는, 믿음으로 준비된 자만이 누릴 수 있다.
10절 느헤미야가 결국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4개월 전만해도 재건될 가능성이 하나도 없었던 상태에서 느헤미야를 통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게 하셨고 그 기간동안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결국은 10절처럼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전혀 가능성이 없던 상태에서 이제 변화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10절에 우리는 어떠한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얘기해줍니다.
산발랏과 도비야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어떤 사람이냐면, 지금껏 이스라엘을 방해하던 대적입니다.
즉,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의 대적이죠.
이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지는 것에 대해서 관심 없을 뿐 아니라 싫어하고 방해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계속해서 예루살렘 성벽을 방해하고 괴롭혔던 것이죠.
그런데 오늘 10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을 돕기 위해 느헤미야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심히 근심하고, 불편해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사람들은 우리가 세상에서 만나게 될 비그리스도인, 반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에게 관심 없어 하기도 하고 때로는 괴롭히기도 하는 사람들이죠.
그런데 그들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기 위해, 일을 시작했을 때에 그 주변에 있던 대적들이 불편해한다.
세상은 우리를 불편해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 우리들의 실수와 잘못으로 인해 조롱 당하고 우리를 질색팔색하며 불편해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을 위해, 내 이웃을 위해 기도할 때 주변에 일어나는 그 일들로 인해, 세상은 불편해 할 것입니다.
어떻게 저런 일들이 일어나지?
아무것도 아닌, 힘도 없어 보이는 저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일어나서 성벽을 쌓아갈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지?
우리가 이렇게 세상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실수와 잘못들로 인해서 세상에 불편한 마음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들을 꿈꾸고 기도하고 계획하며 말도 안되는 일들을 실제로 해내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향해서 큰 소리로 이것봐라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느냐! 크게 외치게 되길 소망합니다.
결론
우리는 삶 가운데, 내 힘으로 해결하지 못할 일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또한 나의 문제 뿐 아니라, 내 주변의 있는 친구들의 아픔과 고통을 보게 됩니다.
가정의 문제, 친구들과의 문제, 학업과 진로의 문제.
그런데 그것을 위해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는가?
1. 우리는 때로 기도를 소극적인 사역으로 생각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사역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일 있을 예배시간을 통해 이스라엘을 위해 적극적으로 기도했던 느헤미야의 신앙을 배우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2.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한 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대적들은 근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올바르게 하는 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대적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실수와 잘못으로 인해 받게되는 비그리스도인들의 질타와는 다른 것입니다.
그 불편함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하나의 반증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기도함으로 세상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 .5
.5 - .6
.6 - .7
.7 - .8
.8 - .9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