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기 다른 달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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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오늘 받을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25장 20 - 26절 말씀입니다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설교 제목: 각기 다른 달란트
서론
여러분 앞에 나와 있는 400m 달리기 트랙을 보면 출발점이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출발점이 다른 이유는 무엇 때문이죠? 트랙이 원으로 되어 있죠? 그렇기 때문에 똑같은 출발선에서 출발하면 안쪽 레인은 조금 뛰게 되고 바깥쪽 레인은 더 많이 뛰게 됩니다. 그렇게 경기에 나가게 되면 올바른 경쟁이 되나요? 그렇지 않죠? 그래서 올바른 경쟁, 측정을 위해서 400미터에 가깝게 출발선을 조절한 것입니다.
이것을 기회의 평등이라고 합니다. 혹시 기회 균등 또는 기회의 평등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기회를 가짐에 있어서 모든 사람들이 인종, 성별, 가정 환경 등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요소들로 차별받지 않는 것. 그러니까 출발점이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완벽하게 똑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똑같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정환경과 인종과 성별 때문에 차별 되는 것을 경험할 때 우리는 분노하게 됩니다.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종종 뉴스를 통해서 이렇게 기회의 평등, 기회 균등에서 벗어난 사례들, 자녀 특혜 취업, 입학, 가족 간에 시험지 유출, 성적 조작 등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보면서 의로운 분노가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노력하지 않은 다른 사람 때문에 노력한 사람들이 기회를 뺏기게 되잖아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기회를 가짐에 있어서 차별받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들이 동등하게 보장 받는 것을 원합니다. 그래서 공정성을 중요하게 내세웁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본문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달란트 본문입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를 가지고 성실하게 일한 종들을 칭찬을 받고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성실하게 일하지 않아 버림을 받는 내용입니다. 사실 어릴 때부터 너무나도 많이 들어왔고 수 없이 배워서 잘 알고 있는 본문이지만, 사실 늘 마음 한편으로 해결되지 않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무엇 때문인가요? 주인이 종들에게 달란트를 동일하게 주지 않았을까? 사실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잘못한 게 아니라, 종에게 똑같이 주지 않은 주인이 잘못 된 거 아닌가? 이런 의문들이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말씀을 다시 한번 살펴보면서 과연 달란트 비유는 기회가 균등하게 제공 되었는지 살펴 볼 것입니다. 그리고 균등하게 기회가 제공 되었다면, 그들에게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 보길 원합니다.
본론
오늘 본문인 달란트 비유는 마태복음에서 가장 긴 비유에 해당됩니다.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깁니다. 총 세 명의 종에게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나눠서 맡겼죠.. 참고로 예수님 당시 한 달란트는 성인 노동자의 약 20년의 임금에 해당됩니다. 오늘날 연봉을 3000만원으로 잡았을 때 6억원에 해당되는 매우 큰 금액입니다. 그러니까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거의 30억원을 받은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여행을 마친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종들에게 맡겼던 재산 즉 달란트를 결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얼마를 남겼습니까? 다섯 달란트의 수익을 냈습니다. 두 달란트는요? 역시 두 달란트의 수익을 냈습니다. 문제는 한 달란트 받은 종입니다. 얼마를 남겼습니까? 단 한 푼의 수익도 내지 못했습니다. 정확히는 한 달란트 즉 6억원의 밭에 그냥 묻어두었습니다. 결론은 수익을 냈던 두 종 곧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은 모두 주인의 칭찬과 신임을 받습니다. 반대로 아무런 수익을 내지 못한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기는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본문의 줄거리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여러점들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14절-15절에 이렇게 나오는데요.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오늘 주인이 종들에게 자신의 소유를 맡깁니다. 여러분이 친구들 간에서도 맡기는 것과 주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나요? 주는 것은 소유권이 아예 상대방에게 넘어갑니다. 그렇다면 상대방은 그것을 가지고 어떤 짓을 하든지 상관이 없어요. 내가 사고 싶은 것을 사도 되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할 수 있겠죠. 그런데 맡겨 놓은 것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다시 돌려줘야 합니다. 소유권이 나에게 있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대로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다시 돌려줘야 하니, 원상복구 시켜 놔야죠. 오늘 주인이 나눠주는 달란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종들이 그것을 잘 관리하고 있다가 돌려줘야 합니다.
근데 특이한 것이 주인이 자신의 소유를 종들에게 다르게 분배하고 있어요. 지금 여기서부터 문제가 제기됩니다. 흠?? 공평하지 않은 것 같은데? 여기서부터 이미 평등하지 않을 것 아닌가요? 동등하게 대해 줘야죠. 정확하게 나눠줘야죠. 왜 도대체 종들에게 다르게 분배했을까요? 사실 그 이유는 주인이 자신의 생각대로 무작위로 나눠준 것이 아니라, 그 종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대로 소유를 나눠 줬습니다. 재능이 많은 사람, 즉 많은 돈을 관리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많은 돈를 맡기고, 재능이 적은 사람, 즉 적은 돈를 관리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조금의 돈를 맡긴 것입니다.
즉 지금 주인이 종들에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양을 배분해 준 것입니다. 그렇다면, 달란트가 많을수록 기쁜 일 일까요? 사실 달란트를 많이 받았다면 내 재능이 좋다는 것이기 때문에 기쁜 일이죠. 반대로 달란트를 조금 받았다면 재능이 썩 좋지는 않은 것이겠죠. 하지만 달란트가 많을수록 내가 해야할 일들이 많고, 훨씬 더 부담감을 느낄 것입니다. 단순히 내가 쓸 수 있는 돈, 재산이 많아진 것이 아니라, 내가 관리하고 책임져야할 재산이 많아진 것, 그 재산을 가지고 해야할 일이 많아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재능에 따라 분배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달란트를 분배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적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나 많은 능력을 가진 사람을 나누지 않고 한 달란트를 다룰 수 있는 사람에게 두 달란트를 주었다면 과연 잘 되었을까요?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더 무책임한 일이고 무자비한 일입니다. 자신의 능력보다 더 큰 일을 하기 위해서 바등바등 애쓸 것입니다. 그렇게 노력한다고 해도 절대로 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정도의 능력이 아직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로 번 아웃 되고 포기하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동생이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심부름 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동생이에요. 그런데 그 동생에게 집 바로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간단한 심부름을 맡길 수 있나요? 그렇다면 그 동생에게 50만원을 주고 버스 타고 백화점에 가서 아이패드를 사오라고 맡길 수 있나요? 내가 아무리 동생을 사랑하고 믿는다고 해도, 동생이 걱정되어서 그 일을 맡길 수 없어요. 그 이유는 동생은 그렇게 먼 곳에 가서 사올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맡기기에는 너무나 멀고 너무나 큰 돈인 것이죠. 너무 큰 책임입니다. 오히려 이것은 무책임한 것입니다.
더 많은 책임을 맡을 수 있는 사람에게 더 많은 책임을 맡긴 것입니다. 아직 어려서, 아직 연약해서 조금밖에 책임을 맡지 못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조금의 책임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선에서의 책임을 맡긴 것입니다. 주인이 지금까지 보았던 모습을 토대로 종들의 능력을 측정하고 그 재능과 능력에 따라서 감당해야할 사명과 일을 준 것입니다. 내 능력보다 큰 것을 받으면, 지치게 될 것이고, 나보다 작은 것을 받았다면, 게으르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달란트를 받은 각 개인은 그 일을 충분히 감당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주인이 그러한 요소들을 다 파악해서 맡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딱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주인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신뢰하고 맡긴 주인에게 오히려 감사하며 주인이 다시 올 때까지 열심히 맡은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총 3사람이었는데요.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 입니다. 그 중에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들은 주인이 맡긴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바로 움직입니다.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바로’ 입니다. 이제 주인은 자신에게 달란트를 맡기고나서 가야할 길을 떠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을 감시하는 사람, 이들을 향해 무엇하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주인이 있든 없든, 주인이 나를 감시하든 하지 않든, 주인에게 달란트를 받은 즉시 바로 움직인 것입니다. 결국 사람이 보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주인이 주신 것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책임지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주인의 맡긴 일을 올바른 자세로 하였던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와 두 달란트를 받은 자는 모두 주인의 칭찬과 신임을 얻었습니다. 반면에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내쫓김을 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아무런 수익도 내지 못한 이 종의 문제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주인은 한 달란트 받은 종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책망합니다. 이 종은 게을렀고, 주인을 핑계 삼았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당당하게 내가 당신 때문에 하지 않았다고 선포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을 완전히 오해하였습니다. 주인의 이야기를 잘 들어보십시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너는 내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알았다. 그렇다면, 너는 내 돈을 돈놀이 하는 사람에게 맡겼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내가 와서,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받았을 것이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자신의 주인을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지독한 사람’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주인에 대해서 완벽하게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주인을 두려워 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심지 않은 것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는 데서 모으는 지독한 사람인데, 내가 돈을 잃으면 어떡하지.? 주인은 종을 믿었기에 맡겼지만 오히려 종은 주인을 왜곡하였으며, 믿지 못했고 그러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주인에게 있어서 돈의 액수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다섯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근데 만약에 주인이 돈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사람이라면, 똑같이 수고하였어도, 다섯 달란트를 남긴 사람을 더 칭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얼마를 벌어드렸는간에 똑같이 칭찬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주인을 오해하였습니다. 주인은 종을 믿었습니다. 그의 재능을 믿었고, 그가 나를 신뢰할 것을 믿었고, 그가 나를 위해서 열심히 살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차라리 자신의 능력이 없어서 최선을 다해 도전하였으나 한 달란트를 다 읽어버렸다고 해도 주인은 이렇게 실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재산이 늘어나는 것을 기대한 것이 아니라, 주인의 것을 나의 것이라 여기며,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내가 없는 곳에서 내가 있는 것 같이 해주길 바랬습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완전 산산 조각 났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그저 손을 놓고 아무런 행동도 어떠한 수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갖고 있었기에 그저 원금만 남겨놓고, 그 종은 자신의 죄와 잘못이 주인이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합니다. 그 종은 자신을 믿고 자신에게 일을 맡겼던 주인을 신뢰하지 못하고 비난하였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책임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심판 받게 됩니다.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마태복음 25:28)
주인은 결국 한 달란트를 빼앗아서 그를 내쫓고 맙니다. 결국 이 종은 주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지 못하고 그를 오해하였습니다. 단순히 돈을 적게 받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다섯 달란트를 받았다면 그 다섯 달란트를 땅에 심어두었을 것입니다. 그는 주인을 오해했고, 비난했고, 그럼에도 게으르게 살아왔습니다. 그로인해 비참한 결과를 맞이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왜 이 비유를 지금 제자들에게 하고 계실까요? 이 비유는 다시 돌아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가 어떻게 삶을 살아야할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제 곧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승천하여 올라가실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올라가고 나서 너희들은 어떻게 살래? 다섯, 두 달란트 받은 종처럼 살 것이야? 아니면 한 달란트 받은 종처럼 살 것이야? 내가 다시 올 텐데 그 때까지 내가 너희에게 맡긴 일을 어떻게 할 것이야? 나를 오해하고 비난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야? 아니면, 내가 없어도 내가 있는 것처럼 살아갈 것이야?
지금 우리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자로써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나요? 우리는 하나님의 신뢰하며,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를 받은 종처럼 살아야 합니다. 이들이 가졌던 삶의 태도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주인이 없어도, 주인이 있는 것처럼’이었습니다. 사실 한 달란트를 받은 종도 주인과 함께 있을 때에는 꽤 일도 잘하고 믿을만 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주인이 재능이 있는지 몰랐을 것이고, 그를 믿고 그에게 달란트를 맡기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주인이 자신의 눈 앞에 없으니, 주인이 나를 감시하지 않으니까, 주인이 없는 것처럼 살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주인의 마음을 올바르게 다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뜻대로 다 결정해버렸던 것입니다. 그는 어떻게 했어야 했나요. 주인의 생각과 주인이 하라고 한 행동들을 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죠. 그렇기에 우리는 이 시간 이후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종처럼, 주인이 없어도, 주인이 있는 것처럼 살아가길 원합니다. 그 누가 보고 있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랑을 기억하며, 나에게 맡기신 소유를 기억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주인이 없어도, 주인이 있는 것처럼 사는 삶’, ‘예수님께서 아직 오시지 않았지만, 이미 오신 것처럼, 예수님의 음성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 하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이렇게 살길 기대하고 계십니다.
결론
사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이 돌아오지 않길 기도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있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비유 속에서 주인은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주인이 없어도 주인이 있는 것처럼 살았던 종들에게 칭찬을 주인이 없을 때 주인처럼 살았던 종에게는 벌을 내리셨습니다.
이 비유에서 주인이 돌아온 것처럼 우리 주님은 반드시 돌아오십니다. 돌아오셔서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반드시 결산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먼저 믿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환경과 비교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 최선은 주인이 옆에 없지만 옆에 있었던 것처럼 살았던 종들처럼,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으며, 그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삶 속에서 실천하며 사는 것입니다.
오늘 주인이 한 달란트를 맡은 자가 삶 가운데 실패하고 믿음의 열매를 많이 맺지 못해서 심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주인을 판단하고 아무런 믿음의 시도조차 하지 않아서 실망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순종하며 사는 것.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정체성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청지기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것들을 최선을 다해 관리하겠습니다. 최대한 충성하겠습니다. 물론 위험과 실패가 앞에 있을 때에도, 나의 상황에 맞게 허락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순종하겠습니다. 이렇게 결단하면 좋겠습니다.
기도제목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 앞에 안개와 같이 작은 존재이지만 우리를 믿고 달란트를 맡기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청지기로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길 원합니다. 내 옆에 주인이 없어도 주인이 있는 것처럼 살았던 종들처럼 살기 원합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이 내 눈 앞에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지켜보신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하시고, 거대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맡겨진 아주 작은 믿음의 시도가 일어나는 한 주가 되게 하옵소서.
한번 더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두 달란트 받은 종 기억나시나요? 처음에는 두 달란트 밖에 감당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난후에는 네 달란트를 감당 할 수 있는 종으로 성장했습니다. 애당초 처음부터 큰 믿음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작은 믿음들이 쌓이고 작은 것들에 충성하는 작은 경험들이 쌓여가다보면 결국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하나님, 나의 인생 가운데, 작은 일에 충성하게 하시고, 그 결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빚어가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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