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혼인잔치에서 하나님의 혼인잔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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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복음 2장 1절 - 11절의 말씀입니다. 저 한 절, 여러분 한 절, 교독하시고 마지막 11절은 다 같이 읽겠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거기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설교 제목: 사람의 혼인 잔치에서 하나님의 혼인잔치로
서론
코로나 때문에 집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영화나 드라마 많이 보고 있을 것 같은데 여러분은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요? 전도사님은 마블 영화 굉장히 좋아하는데, 마블 영화 본 사람 있나요? 아이언맨, 블랙 팬서, 닥터 스트레인지, 어벤져스, 굉장히 스케일 큰 히어로물 영화입니다. 마블 세계관에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캡틴 아메리카를 보러 갔는데, 그곳에서 아이언맨을 보게 되기도 하고, 스토리도 되게 탄탄하고 재밌는 요소들이 정말 많이 들어가있어요. 마블 영화의 또 하나 큰 특징이 있는데 여러 영화가 하나의 세계관, 하나의 큰 스토리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영화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쿠키 영상이 보통의 쿠키 영상과는 조금 다릅니다. 보통의 쿠키 영상은 보통 영화가 다 끝나고 영화 감독은 누구이고, 어떤 배우가 영화를 찍었으며, 그 분장은 누가 해줬고, 영화를 찍는데 도움이 되었던, 참여했던 사람들 소개 다 해주고 나서 마지막에 짧은 영상을 보여줍니다. 보통은 NG 장면이나 메이킹 필름, 즉 영화를 찍을 때 있었던 재밌는 장면들을 보여주는데, 이런 스케일이 큰 시리즈 영화에서의 쿠키 영상은 조금 다릅니다. 시리즈 물에 있어서 쿠키 영상은 한 편의 짧은 예고편과 같아서 다음 영화에서 어떤 내용이 있을지 기대하게 하고, 그것을 토대로 추측하게 만듭니다. 일종의 떡밥을 날립니다. 그래서 마블 영화를 보기 전에 쿠키 영상이 두개가 있으니 꼭 두개 다 보고 나와라. 이런 후기도 있고요. 어떤 사람은 하나만 있는 줄 알고 하나만 보고 왔다. 이렇게 아쉬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지막에 던져주는 떡밥이 한편의 반전을 일으키기도 하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가나 혼인 잔치 여러분도 한 번 쯤은 다 들어보았을 정도로 예수님의 유명한 기적 이야기 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늘의 혼인잔치 기적이 이 땅에 오셔서 처음으로 행하시는 사역이었습니다. 30년동안 평범한 목수로서의 일상을 보내시다가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제자들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오늘 본문에서 처음으로 예수님의 정체를 밝히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할 것을 알리고 계신 상황입니다. 지금 우리는 성경을 통해 예수님께서 나중에 어떤 일들을 할지 이미 알고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이제 처음으로 그것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제자들에게 알리고 계신 상황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의 기적은 한편의 쿠키 영상, 예고편과 같아서, 예수님께서 앞으로 어떤 사역하실지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 아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본론
1절에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오늘 본문의 배경은 혼인 잔치입니다. 요한복음 2장에 따르면 예수님과 그분의 어머니와 예수님의 제자들이 가나라는 동네의 어느 피로연에 초대되었습니다. 고대 전통 문화는 개인보다 가정, 그리고 공동체를 훨씬 중요하게 여겼어요. 삶의 의미와 목적을 ‘개인이 얼만큼 성공하느냐’보다는 좋은 남편, 좋은 아내가 되는 것, 좋은 아들과 딸이 되는 것, 좋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는 것, 즉 그들의 삶의 의미는 공동체에 좋은 일을 하는 것, 좋은 역할을 맡는 것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의 목적은 주로 두 사람의 행복보다는 두 명의 개인이 결혼하여 만들어지는 가족, 즉 공동체를 중요하게 여겼으며, 자녀들을 낳아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결혼해서 자녀를 많이 낳을수록, 그래서 식구가 많을수록 높은 경제력을 가지게 되고, 사람이 많을 수록 군사력이 안정되고 강해지기 됩니다. 그러면 그 주변은 안전하게 되기 때문에 더욱 번창해질 수 밖에 없죠. 즉 결혼하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에도 큰 축복이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도 큰 축복이었던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결혼을 하는 것과 결혼을 축하하는 혼인 잔치는 굉장히 중요한 행사였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두 사람이 만나 한 가정을 이루는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 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축복하고 그들의 앞길을 위해 기도하죠. 그런데 그 때 당시에는 결혼 하는 한 부부, 그 가족의 축제보다는 훨씬 큰 고동체, 이웃과 온 동네의 잔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 당시의 혼인 잔치는 일주일 이상 지속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만큼 축하해줬던 것이죠.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축복의 장소인, 혼인잔치에서 대형 사고가 일어납니다. 3절에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집안에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준비해둔 포도주가 다 떨어진 거에요. 고대 잔치에 있어서 포도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포도주는 기쁨과 축하를 상징했습니다. 기쁨과 축하를 상징하는 포도주가 없다는 것은 기쁘지 않은 것이고 축하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결국 그 결혼은 즐겁지 않은, 축복 받을 수 없는 결혼이 되어버린 것이죠. 그래서 사실상 파티는 끝난 것이에요. 예를들면, 전도사님이 고등학교 다닐 때에 체육대회를 하면, 가끔씩 반장의 부모님께서 간식을 사가지고 보내주셨어요. 막 그러면 옆 반은 뭐 시켜 먹었는지 보면서 우리게 더 맛있네, 우리 반 반장 짱이다 막 이렇게 자랑하면서 먹는 것이 하나의 기쁨이었는데요.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근데 마치 이런거죠. 반장이 막 반에 가서 오늘 우리 부모님께서 햄버거 사신다니까 이따가 다 받아가! 이렇게 반 친구들에게 다 자랑하고 있는 힘껏 목에 힘을 줬는데, 그랬는데 반 아이들이 숫자에 터무니 없이 모자라게 배달이 온거에요. 만약에 한 반에 30명이라고 하면, 15개 정도 온 거에요. 그러면 반장이 어떨 거 같아요? 완전 창피하고 부끄러워할 꺼에요. 내가 왜 아까 친구들한테 햄버거 온다고 얘기했을까, 차라리 얘기 안하고 있다가 모자라면 모른 척 할껄. 도대체 부모님은 내가 우리 반 애들 몇명인지 얘기해줬는데 왜 제대로 안보내셨을까. 막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학교에서 30명을 대상으로만 해도 엄청 창피할 것 같아요. 반을 넘어서 우리 학년 전체에 다 소문이 났을 것 아니에요. 그런데 오늘 예수님이 참석하신 혼인잔치에서는 그 중요한 포도주가 없습니다.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요. 동네 사람들이 전체다 모여 있는 결혼식을 그렇게 대충 준비 했다니 얼마나 대참사였을까요
9절에 ‘연회장’이 소개 되는데, 연회장은 행사 진행을 맡은 사회자였습니다. 하객들을 불러 축하하게 하고 그 축하의 조건을 두루 완비하는 게 그의 직무입니다. 한마디로 그에게는 파티 총 책임지는 사람이었죠. 그런데 그 사람이 일을 똑바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똑바로 일을 했다면 최소한 포도주가 맛이 없다고 하더라도 구비는 해놨어야 했을 거 아닙니까? 아니 먹다가 멈추는 것, 그것만큼 기분 나쁜게 없잖아요. 일단 흐름이 한 번 끊기면 원래 충분히 더 먹을 수 있더라고 해도 못 먹게 되잖아요. 그래서 맨날 고기 구울 때에도 전도사님이 굽습니다. 평소에 다른 사람이 굽고 있는거 보면 똑같이 굽는데도 불조절에 실패한 것인지 고기가 안 익어서 먹다가 멈춰야만 하는 상황이 생겨요. 진짜 그러면 굽는 사람도 민망해지고 먹는 전도사님도 민망해지니까 처음부터 전도사님이 굽는게 귀찮아도 내가 구워야겠다. 생각합니다. 하물며 평소에 밥 먹을 때에 우리도 이렇게 흐름, 분위기가 중요한데 축제에 가서 기쁨을 누리고자 하는 있는 사람들이 포도주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잘은 모르지만 아마 난리나겠죠?
이렇게 축제에 중요한 포도주가 없다는 사실을 예수님의 어머니께서 먼저 발견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지금 이곳에 현 상황에 문제가 있음을 말하시고 도움을 요청하십니다. 지금 기쁨이 넘처야 하는 이 자리에 기쁨을 상징하는 포도주가 없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에게 단호하게 얘기합니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답하십니다. 어머니에게 대답하는 것 치고 굉장히 차갑게 느껴지죠. 예수님은 굉장히 냉정하게 어머니께 말하고 있습니다. 어찌하여서 예수님께서 어머니께 이렇게 대답하셨을까요?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본인이 고문 당하고 계실 때에도 홧김에 독설을 내뱉으신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침묵하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오늘 어머니께 그렇게 얘기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민하고 계셨던 것은 지금이 본인의 때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종종 이렇게 ‘자신의 때’를 말씀 하셨을 때가 있습니다. 보통 그 때는 예수님의 죽음,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는 순간을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어머니께서 예수님이 말하는 그 때가 언제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 턱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따로 얘기하신 적이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어머니께 굉장히 민감하고 감정적이고 날카롭게 얘기하고 있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의 단순한 부탁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고자 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 혼인의 축제의 현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의 현장을 보게 됩니다. 내가 이제 여기서 사역을 시작하게 되면, 나는 진짜로 죽을 수 밖에 없구나. 하나님께서 나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는 그 일을 진짜로 해야만 하는구나. 그렇게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이들의 죄를 대신해서 짊어지고 죽지 않는다면 이곳에서는 매일 같이 결혼식으로 인해 축제를 벌인다고 해도 이곳은 진정한 축제를 경험할 수 없겠구나. 아니 죽음의 비명을 끊임없이 지르고 있겠구나. 나는 오늘 사역을 시작해서 내가 이들의 죄를 짊어지고 죽는 그 마지막 사역까지 이어졌을 때, 이들은 진정한 축제를 경험하겠구나
하나님께서 우리와 맺길 원하시는 관계는 왕과 신하의 관계가 아니라 신랑과 신부의 관계였습니다. 부부 관계만큼이나 깊으길 원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종종 자신을 신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는 가나 혼인 잔치를 통해서 자신이 죽음으로 완성시킬 우리와 하나님과의 혼인 잔치를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말한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는 대답은 ‘어머니, 내 백성이 내 품에 안기려면 내가 죽어야 하나이다. 내 백성이 기쁨과 축제의 잔을 마시려면 내가 정의와 형벌과 죽음의 잔을 마셔야 합니다.”라는 말이었던 것입니다.
5절에 예수님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담아서 그냥 그 물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순수한 물은 절대로 포도주가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가도 아무리 물에다가 압력을 가하고 힘을 준다고 해도 물은 여전히 그냥 물일 뿐입니다. 그 말을 하인들이 들었을 때에 어떤 생각이었을까요? 분명히 어르신 한 분이 믿고 따라보라고 했으니 어쩔 수 없이 따르지만, 속으로 이건 미친 짓이야, 이대로 나갔다가는 우리 잔치 망한다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행이도 그 하인들은 예수님께서 말하신 그 말도 안되는 그 말을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순종하던 그 때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잠깐 항아리에 들어갔다 나온 그냥 물, 아무런 것도 첨가하지 못하였던 그 물이 지금 포도주가 되어서 사람들에게 나가고 있습니다. 아니 지금 심지어 아무런 맛도 안나는 그 맹맹한 물이 최고급 포도주, 비싼 포도주가 되어 잔치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을 감동하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그 포도주로 말미암아 혼인 잔치는 신랑과 신부만 기쁜 것이 아니라, 그 주변 사람들, 동네 사람들, 잔치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그 기쁨이 흘러가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예수님은 포도주가 없어서 망신 당할 수 밖에 없는 나의 상황, 실패 할 수 밖에 없던 우리의 인생에 찾아오셔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어 주심으로 해결하십니다. ‘그 맹맹한 물이 어떻게 포도주가 되겠어’라고 생각되지만 그 포도주는 그냥 구색만 맞춘 포도주가 아닌, 가장 고급스러운 포도주가 되어, 나의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그리고 나의 인생만 예수님이 주신 기쁨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 기쁨과 즐거움이 흘러가게 하십니다.
9절에 보면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물을 떠온 하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인들을 통하여 일하셨기 때문에 그 하인들은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푸셨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혼인 잔치의 기쁨이 예수님에게서 났음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나 혼인잔치 기적에는 하인의 순종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물을 포도주로 만든 예수님의 기적을 몰랐으지만, 하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인들이 숨은 공로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은 항상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직접 물을 포도주로 만드실 수 있으셨습니다. 사실 그것이 훨씬 더 편한 일이셨을 것입니다. 그냥 뽕하고 만드실 수 있는 분이시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하인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일이 말하는 것이 더 귀찮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쉽게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셨습니다. 번거로워도 하인들의 순종을 통해서 일 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하였을 때에 하인들이 그제서야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 만드시는 분, 우리에게 축제를 부어주실 분임을 깨달아 알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아직 정확하게 모르고 있을 때입니다. 오늘 본문 직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삼으셨습니다. 요1장 37절에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요1장 49절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2장 1절에서 나오는 ‘사흘 째 되던 날’은 나다나엘을 제자로 삼은지 3일밖에 안 된 날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혼인 잔치에 데려가신 이유는 앞으로 너희들이 이러한 하인의 역할을 할 것임을 가르쳐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 혼인잔치의 하인처럼 너희들도 순종하고, 하인처럼 누가 물을 포도주로 만들었는지, 누가 진정한 축제를 가져다가 주는지 알게 될 것이야!
11절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이 기적을 마치고나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믿게 되었습니다. 제자들 또한 예수님의 기적을 처음 보았기 때문에 이제서야 제자로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아직은 부족한 제자들입니다. 한참을 배워도 예수님의 뜻을 알지 못할 때가 있고,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믿지 못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 또한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순종하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몰라서 헤매고 오해하고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하고 행동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누구나 처음에는 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처음 배웠던 것들을 생각해보세요. 지금은 너무나도 잘 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완전 실패했던 것들 말이에요. 뭐가 있을까요? 누군가는 열심히 연습해서 노래를 잘 부르게 된 친구들도 있을 거고요. 그림을 잘 그리게 된 친구들도 있을거에요. 어떤 친구들은 나는 잘하는게 하나도 없어. 라고 생각하고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것, 혼자서 밥 먹는 것, 우리가 걷는 것. 이 것 모두 처음부터 잘 했을리 없는 일들이에요. 그렇지만 주변에서 지켜봐주고 보살펴주어 그 일들을 혼자서 할 때까지 혼내지 않고 기다려주었을 때, 우리는 그 일들을 혼자서 능숙하게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것처럼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것. 순종하는 것. 이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에요. 그렇지만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을 닥달하지 않으셔요. 기다려주시고, 이겨낼 힘을 주십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에 우리는 순종하며,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인들이 순종하였을 때에 기적을 베푸신 이가 예수님이었음을 알았던 것처럼.
결론
결론을 맺으려 합니다.
예수님께서 참여하신 결혼식장에 기쁨의 상징인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내버려두면 결혼식은 망하게 되겠죠. 그리고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기분이 좋지 못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이렇게 그냥 내버려두시고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낼 수 있는 문제를 두고 예수님께서는 인생 최대의 고민을 하고 계셨습니다. 본인 어머니의 부탁에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냥 깊이 고민하지 않고 포도주를 주시는 것으로 해결 하실 수 있었겠죠. 단지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을 위해서 기적을 베푸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흘러가는 대로 사역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결혼식을 참석한 사람들이 포도주를 못 마시는 것보다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버려서 다시 스스로의 힘으로 회복할 수 없게 된 우리들, 진정한 기쁨의 포도주를 알지 못하는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최종의 목표, 하나님과 우리 죄인들의 길을 연결하기 위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 그 하나 때문에 3년 뒤에나 있을 죽음을 바라보시고 사역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 2000년 전에 우리를 위해서,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 맺고 진정으로 기뻐하길 원하셔서, 고민 하시고 사역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얻게 된 기쁨은 전염성이 있어서, 우리가 올바르게 예수님께 나아가며, 순종할 때에 주변 사람들, 이웃 사람들, 나와 연결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그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제자로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였다면, 오늘 가나 혼인잔치에서 기적을 일으키신 것이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설교를 듣고 있는 당신을 향해서 말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제자로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물론 실패할 때도 있겠죠. 그리고 여러번 실패해서 나는 제자가 아닌가 고민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수 없이 무너질 때에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사랑을 다시 경험한다면, 다시 한번 일어날 힘을 회복하게 되고, 또 그때에 혼자서의 힘으로 걷고 있는 당신을 보게 됩니다. 혼자서의 힘을 걷고 있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 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주님을 사랑하는 그 기쁨을 놓지 않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