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one Analysis

Overall tone of the sermon

This automated analysis scores the text on the likely presence of emotional, language, and social tones. There are no right or wrong scores; this is just an indication of tones readers or listeners may pick up from the text.
A score of 0.5 or higher indicates the tone is likely present.
Emotion Tone
Anger
0UNLIKELY
Disgust
0UNLIKELY
Fear
0UNLIKELY
Joy
0UNLIKELY
Sadness
0UNLIKELY
Language Tone
Analytical
0UNLIKELY
Confident
0UNLIKELY
Tentative
0UNLIKELY
Social Tone
Openness
0.29UNLIKELY
Conscientiousness
0.27UNLIKELY
Extraversion
0.54LIKELY
Agreeableness
0.6LIKELY
Emotional Range
0.29UNLIKELY

Tone of specific sentences

Tones
Emotion
Anger
Disgust
Fear
Joy
Sadness
Language
Analytical
Confident
Tentative
Social Tendencies
Openness
Conscientiousness
Extraversion
Agreeableness
Emotional Range
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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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오늘 받을 하나님의 말씀은 느헤미야 1장 1-11절 말씀입니다
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2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3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5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6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7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8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9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10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11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설교 제목: 변화의 시작
서론
만리장성 사진.
만리장성은 주변 나라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중국 춘추 시대부터 짓기 시작하여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 때 완성되었다.
지도상의 길이는 2,700km 정도 되지만 중간에 갈라져 나온 성벽까지 재면 6400km 정도 된다.
지구의 반지름정도 되는 길이.
어마무시한 길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16번 다니는 길이.
성벽을 쌓은 이유.
주변 나라의 침입을 막기 위해.
훨씬 안전함.
성벽 안에 사는 것과 성벽 밖에 사는 것의 차이.
보호받을 수 있는가.
누군가 나를 지키는가.
성벽이 없다는 것은 1층 사는 사람이 출입문을 열어놓고 있는 상태.
오늘 본문.
이런 성벽이 없는 상태에 놓인 이스라엘.
굉장히 불안한 상태.
성벽을 쌓아야 하는데, 쉽지 않죠, 성벽을 쌓을 수 어려움들이 생깁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됨.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다시 세우는 일을 어디서부터 시키시는지 확인하길 원한다.
본론
몇 주간에 걸쳐서 느헤미야 말씀을 쭉 살펴보려한다.
간단한 배경
이스라엘이 망해서 바벨론에 끌려와 70년간 포로생활
그후에 고레스라는 왕이 1차 포로를 귀환 시킴.
스룹바벨 성전 건축.
그리고 80년 정도 뒤에 에스라가 2차 포로 귀환.
영적 부흥
그리고 13년 정도 뒤에 3차 포로 귀환, 느헤미야, 성벽 건축
성벽이 없으니, 침입이 잦음.
그런데 성벽을 세우려 하니, 유대인의 마음과 영적으로 어려움.
하나가 되지 못함.
지금 필요한 것은 유대인의 영적인 부흥과 성벽의 재건의 필요성
그 때에 느헤미야를 통해서 성벽이 건축 됩니다.
그렇다면 느헤미야는 누구냐
포로의 나라에서 태어난 유대인, 그리고 직분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 있음.
‘왕의 술 관원’ - 왕이 마시는 모든 술을 점검하는 사람.
이 때 당시에 왕이 수 없이 많이 바뀌던 시대.
어떻게 많이 바뀌나요.
보통 전쟁에서 져서 왕이 바뀌는게 아니라, 뒤통수 맞아서 진단 말이에요.
밥에 독 타고, 술에 독타고, 잠 잘 때 죽이고, 방심했을 때, 훗.
그러니까 내 옆에 가까이 두는 사람을 본인이 믿을 만한 사람을 두는 것. 심지어 술 관원이라 함은 내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
꽤 높은 관직.
술만 맡지 않고 동시에 다른 정치적인 업무도 보았을 것.
이제 그런 느헤미야가 왕궁에 있는데, 유다 즉 고향에 갔던 동생이 돌아옴.
그러니 고향에 갔던 동생의 안부를 묻고 그곳이 어땠는지 물어봄.
그런데 3절
3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그곳은 성문은 불 탔고 성벽은 허물어져있고, 그렇게 방어, 안전하지 못하니, 환란을 당하고 주변에서 계속 침입하고 고난을 당하고 있다는 것. 성벽이 없으면 당연히 그런 어려움을 당하겠죠.
그래서 사실 이미 13년 전에 에스라가 가서 성벽을 지으려 했어요.
그런데 방해가 일어납니다.
어려움이 닥쳐요
그곳에 있는 사마리아 사람들 때문입니다.
처음엔 성전 재건을 도울 것처럼 찾아왔습니다(1,2).
그런데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의 힘으로 하겠다고 스룹바벨과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를 거절했습니다(3).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들의 뜻이 관철되지 않자, 본격적인 방해를 시작했습니다(4-6).
사실 도와줄 생각이 없었던 것. 도와주는 척하면서, 성전이 건축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려고 했던 것.
결국에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스라엘은 패역한 민족이라 성전을 재건하고,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도록 허락하시면 결국 왕에게 반역할 것’이라며 왕에게 조서를 쓰면서까지 방해합니다.
에스라 4장 23-24절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 초본이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그의 동료 앞에서 낭독되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급히 가서 유다 사람들을 보고 권력으로 억제하여 그 공사를 그치게 하니 이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성전 공사가 바사 왕 다리오 제이년까지 중단되니라
결국에는 실제로 성벽을 재건하는 것이 중단됩니다.
성벽이 없으니 어떻게 되겠나요.
계속 침입해 들어오죠.
약탈 당하고, 매일 두려움과 불안함에 떨게 됩니다.
그 현장을 지금 느헤미야의 동생인 하나니가 두 눈으로 보고 와서 노헤미야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4절에 느헤미야의 반응이 나타납니다.
그 사실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였음.
여기서는 수 일이라 표현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하루 이틀이 아니라, 3-4개월동안 기도하였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함
성벽이 다시 세워지는 것, 변화는 민족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기고 슬피 울며 하는 기도에서 시작됩니다.
사실 느헤미야는 꽤 높은 직분을 가지고 있었기에 관심 없을 수 있어요.
나는 편하게 먹고 잘 살수 있으니까.
내 출신 따위야 가볍게 포기하면 되니까.
심지어 자신은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땅의 문화가 너무나 익숙하죠.
오히려 지금 살고 있는 곳이 고향이라고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그 곳을 향해, 슬피 웁니다.
내가 경험하지 않으니까 나와 상관없어가 아니라, 내 주변 사람이 아파하니, 그 아픔을 내 고통으로 여기고, 함께 아파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그 누구도 느헤미야에게 시키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 누구도 느헤미야에게 눈치를 주지 않았어요.
그런데 자기 일로 여기고 슬피 울며,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 기도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됩니다.
어떤 기도였냐하면, 하나님께 원망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이렇게 펼쳐진 이유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자신의 죄를 살펴봅니다.
8절에 이렇게 얘기합니다.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다.
이것을 진작에 예언하셨어요.
언제 예언했냐면, 모세한테 했거든요.
그런데 그 말씀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왜 도대체, 우리를 흩으십니까?!! 왜 우리를 고통속에 내버려 두십니까??!!!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지금 우리가 흩어져 있는 범죄하였군요…!
6-7절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나와 내 민족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언약, 약속을 하나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펼쳐진 상황을 보며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합니다.
이것이 쉽지 않은 이유.
내 죄 뿐 아니라, 내 민족이 지은 죄까지 본인이 책임지는 것. 내가 짓지 않은 죄까지도 내가 책임 지겠다.
내 잘못입니다.
보통은 내 죄를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 전가합니다.
나 때문이 아니라, 쟤 때문이에요.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막 하면서 도망치죠.
그런데 느헤미야는 다른 사람의 고통 을 위해 우는 것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죄까지 본인이 하나님 앞에 회개합니다.
너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의 잘못이야… 내 잘못이야.. 하나님 죄송합니다.
우리가 느헤미야에게 배울 점입니다.
경쟁사회이죠.
그렇기에 다른 사람을 짓밟아야만 내가 올라갑니다.
내 실수를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켜서 나는 잘 포장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점수는 깎이고,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을테니까요.
그러니까 본질적인 것보다 내 책임을 전가할 방법을 찾고, 머리를 굴립니다.
그런데 그런 사회 속에서 느헤미야는 그런 시대적인 문화를 역행합니다.
내 실수, 내 잘못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의 실수와 잘못을 내 책임으로 알고 회개하는 것. 물론 이러면 높은 자리에 못 올라갈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의 눈에 큰 것들에 전혀 개의치 않고 하나님 앞에 두려운 마음으로 엎드리며, 회개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하나님 앞에 책임지고 회개하는 자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이게 첫번째입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약속하심에 근거해 기도합니다.
9절입니다.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죄를 지을 때는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흩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우리는 우리의 죄를 회개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죠.
다시 하나님께 돌아와 계명을 지켜 행하면, 다시 하나님께서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하니 그것을 기억하시옵소서.
다시 우리를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여 주세요!
하나님의 말씀, 약속에 근거하여 기도하며 요청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다시 모아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흩는 것도 내가 흩지만, 너희가 회개하고 돌아오면, 내가 너희를 붙잡을께.
에스겔 36장 36-37절
36 너희 사방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폐한 자리에 심은 줄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37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 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여호와께서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폐한 자리에 심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무조건 이루실 것입니다.
말씀하신 것을 실제로 이행하시는 분이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그런 하나님꼐서 이렇게 얘기하시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하나님, 즉 나에게 구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흩으실 힘이 있으시고 하나님께서는 모으실 힘이 있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힘이 있다고 하셔서 그대로 움직이지 않으십니다.
어떻게 행하시냐면,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오늘 본문처럼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다시 하나님께서 회복시킬 것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앞으로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가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일 하실 것입니다.
에스겔 말씀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원하신 일을 해내시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그 변화는 사람을 통해서 하십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간구하길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때로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주님이시잖아요.
그렇다면 내 상황을 아시니까, 내 상황에 맞게 알아서 잘 인도해주세요.
‘신조어 테스트 알잘딱깔센’ 그런데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다 알고 있어.
그리고 너를 위해서 일 할 준비가 되어 있어, 내가 다 할 것이야.
그런데 너가 기도하기를 기다리고 있어.
유튜브에서 한국과 영국의 등교 풍경이라는 한 영상을 봤습니다.
여러분도 본 적이 있을 수 있어요.
한국의 등교 풍경은 자고 있는 아이를 엄마가 꺠우다가 늦어지자 급한 마음에 엄마가 양말을 신기고, 엄마가 고른 옷을 아이에게 입히고, 밥을 먹여줍니다.
엄마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줍니다.
하지만 영국 등교 풍경은 달랐는데, 아이가 스스로 일어나서 입고 싶은 옷을 정하고 입죠.
그리고 먹을 것을 정하고, 스스로 밥을 먹습니다.
주체적으로 움직이죠.
그런데 스스로의 힘으로 되지 않을 때에는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스스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갑니다.
물론 모든 한국과 영국의 부모님이 다 이렇게 딱 나눠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한가지 생각해볼만 하죠.
혼자서 하기 힘들어 한다고 아이를 도와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모든 것을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 해주면 그 아이가 온전하게 자라기 어렵습니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해주길 하라게 되는 의존적으로 자라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것을 다 해주실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요청하지 않아도, 다 아시고 다 해주실 수 있으신 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하길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그 간구를 무시하지 않으시고 실제로 그 간구의 내용을 위해 일하십니다.
결론
느헤미야의 모습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점. 2가지
첫번째는 내 문제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것. 더 나아가 내 주변 사람, 우리 민족의 죄 또한 나의 것으로 여기고 회개하는 것.
두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물론 나의 기도제목을 아실 것이라고 간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간구를 기다리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느헤미야가 4개월동안 슬퍼하며, 때로는 금식하면서까지 했던 기도
이 두가지 모습을 배우고자 합니다.
성벽 재건이 멈춰진지 13년이나 되었습니다.
다시는 재개되지 않을 것만 같았죠.
하지만 그런 상황 가운데, 느헤미야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성벽 재건, 변화의 시작을 만들어가십니다.
수 없이 시도했으나 방해로 인해 멈출 수 밖에 없었던 이 성벽 재건이 52일만에 마무리 되고 맙니다.
그 시작인 바로 회개였으며, 기도였습니다.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우는 것보다 다 무너트리고 처음부터 기반을 잡고 세우는 것이 훨씬 더 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시고 무너진 곳에 다시 세우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위로입니다.
무너진 나의 삶. 아무리 보아도 나의 삶 가운데 쓸 것이 하나도 없어 보여도, 하나님께서는 그 무너진 삶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기다리시며 또 다시 일으키십니다.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면, 우리는 또 다시 힘을 내서 달려갈 힘을 얻게 됩니다.
그 때에 내 가 책임지며, 나의 삶을 회개하며, 주님께 기도로 간구하며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이시간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성벽이 무너져 있는 그 곳에 변화의 시작은 느헤미야의 회개와 기도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무너져 있는 성벽은 무엇입니까?
어떤 것을 다시 일으켜야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일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나의 죄를 보며, 하나님께 간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시간 기도할 때에 하나님, 나의 삶 가운데 다시 세워져야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그것을 위해 기도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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