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one Analysis

Overall tone of the ser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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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otion Tone
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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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g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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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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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
0UNLIKELY
Sadness
0UNLIKELY
Language Tone
Analytical
0UNLIKELY
Confident
0UNLIKELY
Tentative
0UNLIKELY
Social Tone
Openness
0.19UNLIKELY
Conscientiousness
0.13UNLIKELY
Extraversion
0.44UNLIKELY
Agreeableness
0.6LIKELY
Emotional Range
0.22UNLIKELY

Tone of specific sentences

Tones
Emotion
Anger
Disgust
Fear
Joy
Sadness
Language
Analytical
Confident
Tentative
Social Tendencies
Openness
Conscientiousness
Extraversion
Agreeableness
Emotional Range
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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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오늘 받을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복음 4장 3절부터 18절 말씀입니다
3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4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7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8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5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16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17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설교 제목: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
서론
여러분은 지금 바다 위에서 유유자적하게 떠 있는 엄청나게 큰 유람선을 타고 있다고 여행을 하고 있다고 상상해봅시다.
물론 우리의 상상 속에서는 코로나라는 질병은 종식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리두기를 할 필요가 없이 친구들과,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상황이에요.
지금 여러분은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곳에서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해가 떠있는 낮에, 유람선 옆을 바라보면, 돌고래 떼가 지나가는 장관이 펼쳐집니다.
여러분 앞에 야생의 돌고래 수 천마리가 뛰 놀고 있어요.
단순히 아쿠아리움에서 보던 돌고래의 모습과 전혀 딴 판이죠.
그렇게 낮에 돌고래를 보고 나서 밤이 되니까 저 멀리서 불꽃놀이를 하고 있어요.
엄청난 대규모의 불꽃놀이로 같이 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광경에 푸욱 빠져버립니다.
그 엄청난 불꽃들이 바다 위에 있는 여러분을 집어 삼킬 듯이 밤 하늘에 찬란한 빛들을 수 놓습니다.
낮에도, 밤에도 장관이 펼쳐졌죠.
그런데 완벽했던 그 다음날 유람선 여행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지금 제 앞에 있는 물병 이거 하나를 제외하고 준비한 물이 다 떨어졌어요.
지금 바다 한 가운데 있어서 다시 물을 공급 받으러 육지로 열심히 달려도 5일 정도가 걸린다고 합니다.
지금 바다 한 가운데 있어서 물 한 가운데 있지만, 그 물은 그냥 마시면 되는 물이 아니죠.
바닷물로 굉장히 짠 물이잖아요.
갈증이 있다고 해서 그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그냥 바닷물을 마시면 어떻게 되요? 갈증을 해소하고 싶어했지만 그 짠 물 때문에 더 물을 마시고 싶어지고 갈증이 심각해집니다.
그 때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에요?
다른 무엇보다 그 때에 필요한 것은 정수된 물 한 잔일 것입니다.
갈증을 씻어줄 깨끗한 물 한 잔입니다.
아니 여행이 마칠 때까지 마실 수 있는 충분한 양의 물일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갈증, 목마름은 우리도 삶을 살다가 보면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 성경에 나와있는 사람도 갈증을 느끼게 되는데, 말씀을 통해서 갈증을 겪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살펴 볼 것입니다.
목이 말라 물을 요청하신 예수님과 물을 기르기 위해 우물에 찾아온 사마리아 여인.
이 만남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갈증을 해소시키는 물 한 잔, 영생하도록 솟아난는 샘물을 마시고 돌아가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본론
4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오늘 본문의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고 계십니다.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는 길은 2가지가 있습니다.
(사진 4)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하여 지나가는 직선의 A코스, 여리고를 들렸다가 베뢰아 지방으로 돌아가는 B코스.
어떤 길이 더 빠를까요?
당연히 A 코스가 빠르겠죠.
실제로 그 때 당시에는 보통 걸어서 다녔으니까, A 코스는 3일, B 코스는 7일 정도 소요된다고 해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디 길로 다니겠어요?
A 코스 손? B 코스 손?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고서는 A 코스로 많이 다닐 것 같잖아요?
그런데 그 때 당시에 유대인들은 A 코스로 가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은 A 코스 중간에 있는 사마리아 지역을 향한 적개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번 주에 이스라엘은 2개로 나눠진다고 했잖아요?
유대와 북이스라엘, 근데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앗수르 라는 나라에 멸망 당했다고 얘기했었죠.
그렇게 정복 되었을 때에 앗수르 사람들이 여러 지역의 이주민들을 북 이스라엘 땅에 정착시켜 버립니다.
근데 그들이 그냥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 신들을 데리고 들어옵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다른 종교들이 혼합되었습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짬뽕, 잡탕이 되어버렸죠.
그렇기에 유대안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배척하였고, 사마리아 사람들도 자신들을 배척하는 유대인들을 싫어하게 되었죠.
그렇기에 그 사이에 좀처럼 꺼지지 않은 긴장이 존재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지역을 지나가는 것이 제자들이 보기에 의아했을 것입니다.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지치셨어요.
예수님도 인간이시기 때문에 오랜 시간 걸으면 피곤하시고 지치신단 말이에요.
하필 시간대도 그 때 당시에 여섯시 - 현재 시간으로 바꾸면 낮 12시, 제일 해가 쨍쨍할 때인거죠.
그래서 우물 근처로 몸을 피하셨어요.
피곤하시고 오랜시간 걸으셨으니 목도 마르셨을 것이죠.
근데 의아스러운 일은 그 때에 한 여인이 물을 기르기 위해 우물로 왔습니다.
7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그 여인은 유대인들이 싫어하는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 여인이었죠.
완전 예수님과 정반대되는 사람입니다.
유대인이자 남성이었던 예수님 / 사마리아 사람이자 여성이었던 사마리아 여인.
심지어 그녀는 뒷부분에 보면 나오지만 남편이 5명이나 있는 여성.
윤리적 결함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절대로 두 사람은 엮일 일도 없는 완전 상반된 사람이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서로 대화하는 것은 커녕, 서로의 존재 자체를 무시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예수님은 그녀에게 직접 말을 거십니다.
심지어 부탁을 하시죠.
부탁을 한다는 것은 동등한 입장에서 여긴다는 것입니다.
어떤 누구도 절대로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에게게는 부탁 하지 않죠.
보통 시키거나 힘으로 짓밟죠.
그런데 또 한가지 신기한 점이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옮기고 있는 시간이 언제인가요?
예수님과 만난 시간과 같죠.
아까 말했던 낮 12시입니다.
가장 더울 때, 때양볕에 혼자서 물을 길러 왔습니다.
그 당시에 여자들은 우물에 혼자 가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여자 친구들이 학교에서 화장실을 같이 가는 것처럼 코인 노래방에 여러 친구들이 같이 가는 것 같이 다녀요.
그 때에 함께 얘기도 나누고, 서로 힘들 때 도와줄 수 있죠.
그런데 오늘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은 다른 여인들이 없을 때 혼자서 물을 걷는다.
그녀가 소외 되어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까 이야기했던 남편이 다섯번이나 바뀐 여성, 윤리적으로 되돌아 올 수 없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는 다른 여인들로부터, 사회적으로 배척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소외되어 있던 사마리아 여인은 문제 없는 유대인 남성이 자신에게 말을 걸자, 놀랍니다.
당신은 유대인인데 도대체 왜? 나에게 말을 걸고, 물을 달라하십니까?
원래 상종 안하지 않습니까?
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4장 10절을 통해 질문을 던지십다.
만약 그대가 나를 알았다면, 오히려 그대가 나에게 생수를 달라고 하였을 것이고 그랬다면 내가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야.
사마리아 여인은 당황합니다.
엥? 그럴 일이 없는데? 이 주변에는 다른 우물이 없어요.
무슨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당신이 나에게 물을 어떻게 줘요.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이 말하고 있는 우물물을 주신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물은 물이지만 어차피 물은 마셔도 결국에 시간이 지나면 다시 물이 필요하지 않는가? 내가 말하는 물은 육체의 갈증을 해결하는 물이 아니라, 영원히 멈추지 않도록 나는 영혼의 갈증을 해결할 물이다.
이것을 얘기하십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육체의 갈증을 해결하는 물(우물물)에서 천상의 물(생수) 영원한 삶을 얻게하는 물을 이야기합니다.
다같이 13-1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사마리아 여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그 물이었습니다.
1차적으로는 사회적으로 외면당하고 소외당하고 있던 그 여인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에 나와서 우물 물을 뜨러 나와야 했기 때문이에요.
만약에 영원히 목 마르지 않게 된다면,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말하고 있는게 진짜라면, 이렇게 대 낮, 때양볕을 맞으며 다시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물을 뜰 필요가 없는거죠.
그녀는 호기심이 가득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1차적인 욕구에 멈추지 않으십니다.
사마리아 여인 안에 있는 중요한 갈증을 해결할 질문을 하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사마리아 여인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 스스로 해결할 수 없어서 피하고 도망치고 있던 가장 큰 문제, 그것은 그녀의 남자 문제였습니다.
16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그녀는 5명의 남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남자도 결혼을 통해서 맺어진 남편이 아니었죠.
그녀는 육체의 물을 마시러 우물가에 갔던 것처럼 영적인 갈증을 채우고 싶어했습니다.
저번에 한 번 말씀 나눴었죠.
누구나 하나님으로만 채워질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온전히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그것을 다른 무엇인가로 채우려고 합니다.
그렇기에 무엇인가를 항상 예배합니다.
숭배하죠.
누군가는 지위와 명예를 숭배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오르기 위해 노력하죠.
누군가는 돈을 숭배합니다.
돈을 누구보다 많이 벌어서 내 마음대로 살아보겠다는 마음을 가집니다.
하지만 그것은 한계에 도달합니다.
오히려 돈이 없는 사람보다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 허무함을 느낍니다.
아 높은 곳에 도달하였지만 끝이 없구나, 제일 높은 꼭대기에 도달하였지만 아무것도 없구나,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오히려 끝까지 높이 올라간 사람이 그곳에 아무것도 없음을 보고 허망해합니다.
사마리아 여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 두번 사랑을 통해서, 남자를 통해서 자신의 인생을 보상 받고자 했습니다.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실패했어요.
그렇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포기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이 와버렸던 것이죠.
지금 포기하면 인생을 보상 받지도 못하고, 지금까지 했던 것들 때문에 돌아가도 그 누구도 받아주지 못할 것이라는 거죠.
그래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계속 건넙니다.
그 다음 남자, 그 다음 남자.
그리고 마침내 결혼도 하지 않았지만 다음 남자와 함께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랑을 통해 자신 마음 속에 있는 그 공허함, 허무함.
채워지지 않는 그 영원한 갈증이 채워지지 않았죠.
그래서 차마 결혼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죠.
그런 내용을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는 생수를 권하시다가 사마리아 여인에게 자연스럽게 남자 문제로 연결해서 이야기하십니다.
내가 주는 이 생수의 본질을 알려면 먼저 네가 그동안 그것을 어떻게 얻으려 했는지 알아야 한다.
너는 그것을 남자들에게서 얻으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남자에 대한 욕구가 너를 산 채로 삼키고 있다면 앞으로도 늘 똑같을 것이다.
요한복음 8장 32절,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결국 사마리아 여인은 진리를 알아야만 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사마리아 여인은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계속해서 남편의 사랑을 붙잡을 것이고, 실패하고 또 다시 영원한 갈증으로 인해 목 말라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를 마시기를 위해서는, 더 이상 갈증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는 진리를 알아야만 합니다.
그렇게 진리를 알게 될 때에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사마리아 여인 뿐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붙들고 있던, 내가 숭배하고 있던,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내가 의지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던, 나의 우상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나의 삶 가운데 너무나도 착 달라붙어 있어서 깨닫지 못할 수도 있어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네 남편을 불러 오라고 하기 전까지 나의 인생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이 남편에게서 받는 사랑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죠.
그것을 알고 인정해야 진리를 받아드리게 됩니다.
그제서야 자유롭게 됩니다.
그래야 영원한 갈증에서 해소됩니다.
나의 인생을 오히려 계속 갈증나게 했던 그것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우리는 목 마르다는 이유로, 내가 원하는 것들을 마음다해 사랑했어요.
그것을 이뤄내면 나는 더이상 목마르지 않을 것이야.
그렇게 우리는 갈증을 느껴 물을 벌컥 벌컥 마셨지만, 오히려 그것은 갈증나게 하는 바닷물이었을 뿐이죠.
그 바닷물은 내가 물을 마시고 있다는 이유로 진정한 물을 마셔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만들었어요.
내가 사랑하는 것으로 인해, 하나님을 바라봐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향해 네 남편이 5명이 있었으며, 지금 함께 하는 사람도 남편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시자, 사마리아 여인은 놀라서 주여, 내가보니 선지자로소이다.
라고 반응합니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의 삶을 돌아봅니다.
내가 무엇에 매달려 있었는지, 나의 우상은 무엇인지, 그렇게 되돌아보자, 자신은 예배해야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녀는 이후에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예수님께서 오시기로 한 메시아임을 깨닫게 됩니다.
진리를 깨닫게 되자.
그녀는 이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회복합니다.
지금까지는 자신이 저질렀던 과거의 죄로 인해 다른사람들을 피하고, 눈치 보며, 소외된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에는 영원한 갈증의 회복을 경험하고 그들을 전도하는 삶을 살게 되죠.
그들이 어떻게 나를 평가할까 눈치보고, 자신의 죄 때문에 함께 어울리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어울리지 않았지만, 이제는 예수님을 통해 영원한 갈증이 해결되자.
그들에게 눈치보지 않고 그리스도를 전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 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서 구원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었던 이유, 그 원인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오늘 예수님께서 낮 12시에 사마리아 지역을 건너가고 있는 그 상황에, 너무 육체가 지치고 피곤하여, 갈증을 느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갈증을 느껴 우물가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갈증, 예수님의 육체적인 한계 때문에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우리의 영원한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갈증을 느껴야만 하는 육신을 입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육체적인 갈증으로부터 하나님의 사역은 시작됩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육체적인 갈증을 느끼시지 않으셨다면 사마리아 여인은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햇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오시지 않았다면, 인간으로 오셔서 그 육신의 한계를 경험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했을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연결 됩니다.
예수님이 갈증을 겪지 않으셨다면 사마리아 여인이 영원히 갈증을 겪을 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죽으시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인간으로 오셨고, 우리를 위해 갈증을 겪으시고, 죽음을 경험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야 진정한 생수인, 성령을 우리 마음 가운데 심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갈증을 무엇을 채우시나요?
아까 이야기했던 것처럼 스스로 혼자서 그것을 깨닫기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 전에는 사마리아 여인도 직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죠.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알 수 있어요.
하지만 내가 그것을 진짜 원하는 이유, 내가 무엇을 갈망하고 있었는지까지 알기 쉽지 않습니다.
40대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굉장히 성공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꽤 높은 실적과 얻게된 부와 명예를 가지고 있었죠.
그런데 그 사람에게는 하나의 문제점이 있었는데, 가족보다 일을 너무나 사랑했던 것이죠.
신앙과 가정을 다 내버려두고 더 성공하는 것에만 목표를 삼고 달려갔습니다.
그 가운데 많은 상처를 가족들과 함께 상담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상담을 받다 보니 그 완벽했던 사람 가운데 분노하던 포인트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그 어릴 적의 기억입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준비해도 완벽주의자였던 아버지의 기대에 못 미치자 항상 칭찬과 격려보다는 꾸지람을 듣게 되었죠.
나이가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니까, 끊임없이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다가 왔습니다.
가정이 생기고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어릴 적 받았던 상처로 인해, 그는 더 인정 받으려 노력하였고, 성공하려 하였습니다.
인정해주실 아버지께서는 꽤 오래전에 돌아가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게 인정받고자 했습니다.
결국 상담자는 성공을 향한 우상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바라볼 것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였고, 결국 가정은 상처만 남았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이러할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진리를 받아드리지 않으면 영원히 나를 갉아 먹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갈증은 무엇인가요?
결론
결론을 맺으려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영원한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갈증을 겪게 되셨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다른 것들을 숭배하며, 예배하며 찾았던 우리의 영원한 갈증을 채우시기 위해 영원한 생수,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십니다.
그리고 그 성령을 부어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을 죽이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진리를 깨달아 알기 원합니다.
하나님과 그 아들이신 예수님을 올바르게 아는 것.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갈증을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영원한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놓고 기도하길 원합니다.
나의 삶 가운데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갈증이 있음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오셔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나에게도 말씀하여주소서.
제가 듣고 그 부분을 내어드리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요청하며 결단하며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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