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특별하단다1 왼손잡이 에훗

너는 특별하단다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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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사사기 3장 15절 - 23절 말씀입니다. 제가 가진 성경으로 구약 성경 364페이지입니다. 다 찾으신 줄 알고 교독 하도록 하겠습니다.
15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통하여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칠 때에
16 에훗이 길이가 한 규빗 되는 좌우에 날선 칼을 만들어 그의 오른쪽 허벅지 옷 속에 차고
17 공물을 모압 왕 에글론에게 바쳤는데 에글론은 매우 비둔한 자였더라
18 에훗이 공물 바치기를 마친 후에 공물을 메고 온 자들을 보내고
19 자기는 길갈 근처 돌 뜨는 곳에서부터 돌아와서 이르되 왕이여 내가 은밀한 일을 왕에게 아뢰려 하나이다 하니 왕이 명령하여 조용히 하라 하매 모셔 선 자들이 다 물러간지라
20 에훗이 그에게로 들어가니 왕은 서늘한 다락방에 홀로 앉아 있는 중이라 에훗이 이르되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왕에게 아뢸 일이 있나이다 하매 왕이 그의 좌석에서 일어나니
21 에훗이 왼손을 뻗쳐 그의 오른쪽 허벅지 위에서 칼을 빼어 왕의 몸을 찌르매
22 칼자루도 날을 따라 들어가서 그 끝이 등 뒤까지 나갔고 그가 칼을 그의 몸에서 빼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기름이 칼날에 엉겼더라
23 에훗이 현관에 나와서 다락문들을 뒤에서 닫아 잠그니라
설교 제목 : 너는 특별하단다
서론
혹시 성도님들 중에 왼손을 주로 사용하시는 분 계신가요? 네 확실히 왼손잡이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전과 다르게 지금은 그래도 꽤 존중해주고 배려해주는 문화가 생겼지만 과거에는 어릴 때, 왼손으로 밥을 먹거나 글씨를 쓰면 때려서라도 오른손으로 바꿔서 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그것 때문에 많이 혼나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죠.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부분, 밥 먹는 손? 하면 오른손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라왔기에 많은 사람이 오른손을 주로 사용하시고,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많은 것들이 오른손잡이를 대상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가위, 마우스, 문 손잡이, 키보드 자판의 배열과 같은 부분이죠.
그렇다면 도대체 왜 오른손을 사용하도록 교육 시켰을까요 그 이유는 언어의 담겨져 있습니다. 오른손이라는 단어는 옳다라는 단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반면에 왼손은 그르다는 뜻을 가진 외다에서 시작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오른 쪽이라고 얘기하지 않으시고 바른 쪽이라고 이야기하십니다. 이것이 우리나라만 이러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외국어를 살펴보면 영어, 프랑스, 독일어 모두 ‘오른쪽‘과 ‘옳다’는 뜻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꽤 오랜시간, 언어가 만들어질 당시, 아니 언어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릿속에 오른손이 왼쪽보다 더 우월하다. 옳다 라고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이 오른쪽의 우월함은 고대의 이스라엘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야곱이 죽음을 앞두고 자식들에게 축복하였습니다.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축복할 때에, 왼손이 장남에게 올라가 있었으며, 오른손이 차남에게 올라가 있자, 요셉이 오른손으로 장자를 축복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렇듯 이스라엘 시대 속에서도 왼손은 오른손에 비해 부족하다라고 인식 되었습니다.
오늘은 함께 살펴보는 본문에 이렇게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왼손잡이가 한명 나오게 되는데요. 왼손잡이 사사, 에훗의 말씀을 오늘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론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은 사사기 3장인데요. 사사기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을 마치고 시간이 지나, 여호수아가 죽음 이후에 일어나는 역사가 적혀있습니다. 사사기를 살펴보면 한 가지 사이클이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첫 번째 사사였던 옷니엘을 살펴보면요. 여호수아가 죽고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가나안 땅에 있는 우상들을 섬기며,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징계하시기 위해 메소포타미아 왕을 통해 8년 동안 다스림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께서는 옷니엘을 사사, 구원자로 임명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옷니엘에게 임하였고 옷니엘은 전쟁에 앞장서서 승리로 이끕니다. 그 이후 40년 동안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평온을 누렸지만 영적 지도자였던 옷니엘이 죽고 난 후에 또 다시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고 범죄하였습니다. 내버려 두실 수 없으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십니다.
사사기 3장 12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므로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하게 하사 그들을 대적하게 하시매”
하나님께서 모압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 하시는데요. 모압은 어디입니까? 모압은 이스라엘과 연고가 없는, 관계가 없는 나라가 아니죠. 모압은 아브라함의 조카였던 롯의 자손입니다. 그러니 지금 이스라엘의 친척이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압은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위협이 되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했을때 그 이야기를 들었던 모압 사람들이 두려움에 빠졌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광야에 진을 쳤을 때, 모압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히 두려워 했었습니다.
민수기 22장 3절 “모압이 심히 두려워하였으니 이스라엘 백성이 많음으로 말미암아 모압이 이스라엘 자손 때문에 번민하더라”
그렇게 약했던, 두려움에 떨던 모압이 지금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약하고, 보잘 것 없었던 모압을 하나님께서 강성하게 하셨습니다. 올바른 방향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징계하시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심지어 그 전쟁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패배하게 되고 종려나무 성읍을 빼앗기게 됩니다.
여기서 종려나무 성읍은 여리고 성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여리고성은 큰 의미와 상징을 지니고 있었는데요. 어떤 것이죠? 네.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너와서 가나안 전쟁을 처음 시작했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겼던 첫 전쟁터였죠. 그곳에서는 그 어떤 사상자도 없이 성벽을 도는 것만으로 승리를 경험했던,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경험했던 승리의 장소이었던 곳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상징적인 장소를 전혀 생각하지 못한, 약소국이라고 얕보았던 모압, 아주 연약한 나라에 의해 패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압에게 18년간 지배를 받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착취 당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사사로, 구원자로 세우십니다. 그 사람이 누구이냐면 에훗입니다.
그 에훗은 어떤 사람입니까? 15절에서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다.
두가지 특징이 있는데요. 첫번째는 왼손잡이입니다. 왼손잡이라고 표현하면, 왼손을 오른손보다 더 잘쓰는 사람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본문을 살펴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오른손이 묶인 사람이다. 오른손이 구속되었다. 즉 오른손이 기형이거나 마비와 같이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인 것이죠. 쉽게 말해서 장애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사용하지 못하는 손이 오른손입니다. 아까 이야기했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도 오른손은 꽤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힘이 없는, 실패자와 같습니다. 이것이 첫번째 특징입니다. 오른손을 사용할 수 없는 왼손잡이.
그리고 두번째 특징은 첫번째 특징을 부각시켜줍니다. 무엇이냐면, 에훗은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입니다. 즉 베냐민의 후손이었는데요. 우리가 흔히 어릴 때 듣던 말이, 우리 가문, 집안은 대대로 내려오는 양반 가문이야, 왕족 혈통이야! 저는 영천이씨 초래공파 29대손(?) 이렇게 듣고 자랐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야 이 자식아 우리 집안에 걸맞게 먹칠하지 말고 똑바로 살아라! 라고 듣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시대에도 이러한 조상, 지파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항상 누군가를 소개할 때에, 자신의 지파를 이야기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 조상이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겠죠. 오늘 에훗의 조상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베냐민이었습니다. 베냐민은 야곱의 12번째, 막내 아들인데요. 베냐민의 이름의 뜻이 중요합니다. ‘오른손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에훗은 오른손의 아들, 집안, 가문에 오른손을 쓰지 못하는 왼손잡이인 것이죠. 그 때 당시에 사람들이 에훗을 느끼기에는 베냐민 지파 에훗이 아니라, 오른손의 아들 집안에 오른손을 사용하지 못하는 왼손잡이 에훗으로 여겨집니다. 그렇기에 그는 실패자, 집안을 망신시키는 자, 가망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에훗이 후에 어떤 일을 했는지 알고 있기에 대단한 사람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바라보게 되는데요. 알고 있는 전제를 다 지워버리고 보십쇼. 그가 가지고 있는 것만 보면, 가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왼손잡이, 연약한 사람인데다가, 집안에서 거절당한 실패자.
이 에훗은 위협이 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통해서 에글론이라는 모압 왕에게 조공을 바치게 합니다. 왜냐하면, 모압이라는 적군에 입장에서 가장 안전한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전혀 위협적이지 않기 때문이죠. 가장 창피한 일이고,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에훗을 하나님께서 사사로 부르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하는 사사의 모습이 아닙니다. 아까 서두에 말씀드렸던 초대 사사, 1대 사사 옷니엘 기억하십니까? 전형적인 영웅의 모습이지 않았나요? 당당하게 전쟁에 선두에 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휘하고 적들 가볍게 무찌르는 모습, 아주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런데 지금 에훗은 사사가 되어서 무엇을 하고 있나요? 공물을 바치는 상대방 왕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백성들에게서 거둔 조공을 바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뒤에서 에글론이라는 모압의 왕이 총애하고 믿는 모습을 보면, 꽤 오랜시간 그렇게 특사의 역할을 감당한 것 같습니다. 가망이 없는 왼손잡이일 뿐입니다.
모압 왕 에글론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요. 18년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겼던 에글론은 매우 비둔한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비둔하다는 것은 뚱뚱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 때 당시는 굉장히 양식이 풍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아 자신의 배를 불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8년 동안 이스라엘을 지배했지만 말이 지배한 것이지 사실은 이스라엘에 돈을 빼았는 사람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배하고 있는 모압의 왕이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억압하고 있는 것입니다. 15절에 드디어 왼손잡이 에훗이 모압의 왕을 죽일 계획을 세웁니다. 오른손을 쓸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비교적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않을 오른쪽 다리, 허벅지에 무기를 숨겨둡니다. 그리고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치고 돌아갈 때, 혼자서 다시 왕에게 찾아가 은밀한 일(메세지)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당연하게도 모압의 왕에게는 에훗을 의심할 만한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는 오른손을 쓰지 못하는 왼손잡이, 누가 보아도 위협적이지 않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에훗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다 물리칩니다. 무방비 상태가 되는 것이죠.
에훗은 왕에게 가까이 가서 “하나님이 당신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그 하나님의 메세지는 왕을 처단하는 것이었죠. 무방비 상태에 있는 왕에게 가까이 가서 왼손으로 오른쪽 허벅지에 숨겨두었던 칼을 꺼내 왕의 몸을 찌릅니다. 그리고 빠르게 그 방을 잠그고 탈출 하였습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신하들은 왕의 죽음을 발견하게 되며 마무리 됩니다. 이 모습 우리에게는 굉장히 익숙한 스토리 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역사 하셨습니다. 옷니엘, 여호수아, 모세처럼 당당하게 전쟁에서 앞장서 적들을 물리치고 승리를 우리에게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들을 뒤집었습니다. 심지어 오른손이 아닌, 아니 오른손은 쓸 수 없는 왼손잡이 에훗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이것으로 인해 에훗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통치권을 부여 받게 되고, 적군을 이스라엘의 손으로 물리치고 맙니다. 오른손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왼손(에훗의 왼손)으로 모압을 물리칩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서 80년동안 평안을 누리게 되죠.
여기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2가지 방식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첫 번째, 모압을 세우는 장면입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모압은 연약하였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보잘 것 없는 족속이였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심판하시고 징계하실 때 모압을 강성하게 하셨습니다. 전적으로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지 않으셨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족속, 연약한 모압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거의 영광에 젖어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떠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가르치시기 위해, 충격 받게 하기 위해, 모압을 세우셨죠.
두번째, 왼손잡이를 사용하십니다.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고, 자신의 혈통으로 인해 소외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사람 에훗입니다. 만약에 한가지 상상을 해볼까요? 그 때 당시에 사사를 민주주의 투표로 뽑았다면 과연 누가 사사가 되었을까요? 누가 되었을지를 알지 못하지만, 최소한 에훗이 아닐 것은 확실합니다. 저였어도, 흠이 없고, 떡대가 좋고, 강력한 사람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에훗은 일찌감치 탈락했을 겁니다. 아니, 심지어 후보에도 올라가지 못했을 것이죠. 능력이 없던 사람, 망신만 주는 사람이었을테니까요. 그런데 사사는 어떻게 정해지나요? 능력이 많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사람이 사사가 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선택으로 정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보여주신 것처럼 에훗, 부족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부족한 자를 통해서 항상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말을 잘하지 못한다고 이야기 했고, 그의 후임자였던 여호수아는 전임자에 비해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었으며, 사사 드보라는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자였고, 기드온은 겁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조차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하던 방식으로 오신 왕이 아니었습니다. 강한 지배자의 모습으로 오셔서, 압제 받고 있는 로마로부터 전쟁의 승리하여 다윗의 영토를 되찾기를 바랬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는 정 반대로 나무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죄 사함을 주셨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셨습니다. 제자들을 부르시는 예수님, 어부 - 4명. 교회 지도자가 될 것을 생각했다면, 잘난 집안에 영향력 있는 사람들, 똑똑하고 힘 있는 사람을 쓸만한데, 연약한 자들을 뽑아서 사용하십니다
오히려 연약한 자, 부족한 자를 사용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절,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지혜있고 똑똑한 사람들을 오히려, 부족한 자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부끄럽게 하십니다. 만약에 내가 많은 것을 가져서 나의 육체, 나의 강함을 자랑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게 된다면, 차라리 왼손잡이가 되더라도, 차라리 힘이 없어서 부족한 사람이 되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사람이 낫다는 것이에요. 에훗이 왼손을 잘 썻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사로 쓰이 받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했기 때문이에요.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때로는 우리가 이렇게 얘기하기도 합니다. 안됩니다. 주님, 나의 모습을 바라보면, 나는 너무나 연약합니다. 나를 쓰지 마시고, 나를 사용하지 마세요. 저는 전혀 가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나를 향해서 주변에서 욕하고 조롱하며, 소리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으시나요? 가족들은 나를 향해서 우리 집안에서 도대체 어떻게 너 같은 애가 태어났니? 이렇게 듣는데, 저에게 어떤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사실 우리는 성공보다 실패를 더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물론 미디어 매체에서는 아름다운 성공의 사례, 포기를 앞둔 상황에서 반전으로 얻게된 성공에 대한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들려줍니다. 우리는 그것을 듣고 또 다시 희망을 품게 되지만, 사실 아쉽게도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성공보다는 실패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처한 현실은 끊임없이 올라가야만 하는 피라미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실패한 경험들을 토대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 나는 실패자야, 나에게는 더 이상 가능성이 없어.
그로 인해서 우리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이렇게 갖고 합니다. 아 성공 해야만 하는구나, 이 시대는 성공하지 못하면, 가치가 없다고 느끼는구나. 공부를 잘하지 못하면, 능력과 힘이 없다면, 내 말은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구나
이 시대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경험합니까?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고민하게 됩니다. 대놓고 생각하진 않아도, 깊이 나는 누군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고민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존재를 경쟁 속 성공에서 찾으려 하면 결국 실패하게 됩니다. 물론 적절한 수준에서 타협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그것이 목을 졸라 맬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냐. 우리는 무엇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찾아야 하는가.
한 그림, 대충 한 붓 그리기로 그렸을 것 같은 그림으로 개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대충 그린 그림, 낙서가 얼마인줄 아나요? 900억원 정도 됩니다. 이 모조품조차도 10만원에 팔리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러한 가격에 팔리는 줄 아시나요? 그린 사람이 피카소이기 때문이에요.
똑같은 그림이어도, 모조품과 원본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바로 누가 그렸는가? 그 관계에 있습니다. 피카소가 그렸는가? 피카소와 상관없는 사람이 그렸는가.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칩니다.
아까도 이야기 했듯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어부와 같이 일반적인, 연약한 사람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능력을 주셔서 귀신을 쫓아내기도 하고, 기적들을 베풀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유대인의 대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이 바울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신비한 광경을 목도하고는, 흉내를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바울이 의지하는 예수의 이름을 명하노니, 귀신아 그 몸에서 나와라! 그런데 악귀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사도행전 19장 15절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은 대제사장의 아들들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은 누구입니까? 제사장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제사장들의 우두머리, 대장이었죠. 그러니까 그 대제사장의 아들들은, 혈통으로 따지면, 그 누구도 비교할 수 없는 로얄, 귀족이었으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죠. 누가보아도 저렇게 되고 싶은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예수님과 관계가 없으니, 그 어떤 능력도, 미치지 못합니다.
참된 정체성은 내가 어떤 사람이냐,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배경으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결국 내가 가진 능력을 잃어버리면, 내가 가지고 있는 배경이 사라지고 나면, 정체성이 사라져버리고 말죠. 하지만 에훗이 가졌던 것처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정체성을 의지한다면, 내가 지금 당장은 연약함이 나를 붙잡고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지금은 적의 대장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정체성으로 인해 결코 포기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하나님, 다들 나를 향해 비웃고 놀릴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일을 감당하기 위해 살아가겠습니다!
너는 특별하단다. 첫번째 시간인데요. 우리가 특별한 이유는 나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지으셨고, 나와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결론
한 가지 질문을 하고 마치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약점이 무엇이 있나요? 세상은 우리를 향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약점을 보완해야한다. 약점을 없애, 만약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너의 약점을 이렇게 손을 쥐어 감추라고 얘기합니다. 이렇게 왼손을 잡아보시겠습니까? 그리고 이 약점을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날수록, 부족함이 보일수록 상대방은 우리를 흔들고 조롱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약점을 최대한 빠르게 없애고자 합니다. 그런데 아쉽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약점, 이 트라우마는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쉽게 사람이 변하지 않더라고요.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우리는 또 좌절하고 절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꼼꼼하게 우리의 약점을 감추려 합니다. 애써 괜찮은 척 포장합니다.
하지만 결국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능력 위에 세운 나의 정체성은 곧 바로, 나보다 잘난 사람 한명만 만나도 무너지게 됩니다. 바로 비교에서 지는데요. 그래서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약점 투성이었던 왼손잡이 에훗이 하나님만을 붙잡고 그 약점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 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않습니까?
그런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충분하다. 너는 이미 아름답다. 나와 함께 하기에, 내가 너를 지었기에, 내가 너의 아픔을 바꿀 것이기에, 아름답다. 너는 그 자체로 존귀한 사람이다. 남들과의 비교에서 벗어나, 세상의 판단과 시선에서 벗어나, 나와 함께 하자.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나를 볼 때에 나의 연약함들만 보입니다. 거울을 보아도, 자신의 약점, 뽀루지만 보이잖아요.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의 못난 모습이 보이면 가차없이 버리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듯이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사랑으로 감싸 안아주십니다. 솔직하게, 연약한 모습들이 있었다면, 아픈 마음들이 있었다면 입술을 열어서(우리의 죄가 있다면) 하나님께 고백해봅시다 가장 큰 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에훗과 함께 했던 하나님 나와 함께 하여 주옵소서. 주님 없이는 이 세상의 가치관대로 나를 괴롭히며 살아가야만 합니다. 하나님 당신과 동행하며, 함께 걷고 싶습니다. 내가 어느 곳에 있던지, 내가 어떤 아픔이 있던지, 나를 포기마시고 함께 하여주소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시선으로 바뀌길 원합니다. 그 누구도 나를 건들지 못하리라. 나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이기에, 아무도 나를 쉽게 생각하지 못하리라. 이러한 존귀함을 갖게 하여주소서 에훗의 마지막에는 자신의 약점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그 놀림 받던, 왼손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시죠. 우리의 약점, 하나님과 함께 한다면, 어떻게 쓰일줄 알 수 없습니다. 찬양의 가사처럼, 나의 한숨을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나의 어려움, 한 숨 하나님께 맡겨드리오니, 사용하여주옵소서. 에훗을 통하여 80년동안 평안을 얻게 됩니다. 에훗은 잠깐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것이 아니라, 80년동안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게 했습니다. 하루의 은혜가 아니라, 평생의 은혜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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